교회가 지키고 있는 중요한 예식이 침례(세례)와 주의 만찬입니다. 주님께서 잡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발을 씻기 주시며 사랑의 원리를 온 몸으로 보여주셨고,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는 십자가의 사랑을 온 몸으로 고백한 주의 만찬은 모든 지체들의 마음에 진한 감동을 줍니다.
목회하는 동안 사랑의 관계성에 금이 가고,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아픔으로 인하여 목회를 중단하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단에 앞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며 아내와 함께 주의 만찬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떡을 들고 고백했습니다. “여보, 내가 정말 목회하기 싫습니다. 갈등을 이겨내기 힘듭니다. 하지만 주님이 자신의 살이 찢기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듯이, 주님이 도와주신다면 나도 내 살을 찢어주는 마음으로 지체를 사랑해보고 싶습니다.” 이어서 잔을 들고 같은 고백했습니다. “여보, 정말 목회하기 싫지만 주님이 자신의 피를 다 쏟아내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듯이, 주님이 도와주신다면 나도 내 피를 다 쏟아내는 마음으로 지체를 사랑해보고 싶습니다.” 이와 같은 고백을 한 후에 밀려오는 주님의 사랑과 내 속에서 일어나는 서러움들이 북받쳐서 아내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한 시간을 넘게 통곡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용기를 얻어 목회의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상황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제가 변해 있었기에 목회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주의 만찬에 관하여 깨닫고 적용하게 된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예배의 한 부분으로서 기념되었던 주의 만찬이 아니라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예배가 준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월 첫 주일, 혹은 부활절과 성탄절 등, 정기적인 시간을 정하여 예배의 한 부분으로 진행 될 때 자칫 본질을 망각하고 형식과 틀, 또 하나의 제도로 정착될 수도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일방적인 집례, 혹은 나눔이 아니라 서로서로의 간증과 교제가 있는 주의 만찬을 기념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나눔을 위해서는 시간도 많이 소요될 것이기에 예수님과 제자들처럼 소그룹(목장, 셀, 가정교회, 다락방, 구역...)으로 모여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와 감동, 눈물과 나눔, 위로와 격려, 함께 기도하며 헌신을 다짐하는 것들을 포함하는 주의 만찬을 기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주의 만찬을 인도(집례)하는 일을 안수 받은 자가 아니어도 목자(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위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의 만찬은 사랑의 관계성 안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목자(평신도 지도자)들에게 가르쳐 주고, 위임해 주어서 잘 감당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목사의 중요한 사역이라고 생각됩니다(엡,4:12).
사랑하는 우리의 지체들이 때때로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들다가도 주의 만찬을 나누었던 그 감동적인 밤을 생각하며 멈추어 섰던 제자들처럼, 자신의 살과 피를 사랑하는 일에 다 쏟고 싶은 진한 감동과 추억이 있는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2008년 09월 21일 보낸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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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김영희 님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