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의 노래가 제 마음을 계속 흔들고 있습니다. 처음 노래를 들을 때 시작된
감동이 삼일 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도 그 아이가 부른 노래를 켜놓고 있습니다.
웬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듣고 듣고 또 듣고 있습니다. 뭐라고 딱 표현하기는 쉽지
않는데 계속 감동이 밀려옵니다.
노래를 부른 아이는 인도에서 14년째 살고 있습니다. 이 아이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수요일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엄마와 함께 우리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아이를 만나
이야길 나누는데 참 좋았습니다. 아이를 만나고 저는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오늘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우리 막내 딸과 동갑인 열 여덟살 여자 아이입니다.
이름은 슬기. 이 아이는 인도에서 삽니다.인도는 6월에 학기가 시작됩니다. 이번에
이제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시험을 보고 합격을 하고 잠시 엄마와 함께 나왔습니다.
슬기 엄마는 선교사입니다. 슬기 아버지도 선교사였습니다. 3년 전, 아버지가 먼저
저 천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엔 짓다가 만 선교센타와 엄마
그리고 올해 중학교 2학년인 여동생이 남았습니다. 슬기 엄마는 남편을 선교센타
곁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편의 뒤를 이어 사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떠나자 신분이 가족선교사에서 싱글선교사로 바뀌었습니다. 이 의미는 선교비가 많이
줄었다는 겁니다. 한 달에 25만원이던 인터네셔날에 준하는 슬기 학교 학비를 댈 수
없게 된 엄마가 슬기를 한달 수업료가 2500원인 현지인 학교로 전학 시켰습니다.
슬기는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가 중 3이니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였습니다. 슬기는 너무나 힘들어 자살도 생각 했었답니다. 그런데
그러면 아빠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참고 견뎠답니다.
지금 슬기 동생은 영국인 선교단체가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슬기는
엄마 곁에서 엄마 사역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근처 학교를 다닙니다. 일 년 학비가
오십 만 원 이랍니다. 이걸 저는 한 학기에 오십 만 원으로 들었습니다. 제게 마침
선한일을 찾아 달라는 ‘천사’의 부탁을 받아 놓은 것이 있어 연락했습니다.
‘천사’가 보내온 백만 원을 슬기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아이가 참 이쁘게 잘 컸네요. 건강하고 씩씩하고 밝게. 선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지금은 사업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답니다. 2500원 내는 학교를 다니면서
꿈을 바꾸었답니다. 그 꿈은 또 다시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엄마와
함께 슬기도 사역 중입니다. 찬양인도로, 피아노 반주로 한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슬기를 울렸습니다. 이야길 하다 아빠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빠란
단어 앞에서 씩씩해 보이던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곁에 있던 목사님이
티슈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냥 울라고 했습니다. 아빠의 품이 되어 아이를
안아주었습니다. 교회가 아빠가 되어 슬기를 위해 삼백 만 원을 섬겼습니다.
순장반 간사님이 슬기 엄마와 함께 우리 성도네 옷 가게로 갔습니다. 이윤정
전도사님은 슬기를 데리고 아울렛 매장으로 갔습니다.
이번에 하나님이 슬기네 집에 은혜를 주셨습니다. 지난 주일 대구에 있는 한 교회에서
가족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슬기네는 이번에 우리가 교회설립 16주년을 감사하며
섬긴 열가정의 사모 선교사 가정 중 한 가정입니다.
새 옷을 입고 온 슬기에게 또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어 물었습니다. 혹 오늘
저녁에 찬양 한 곡 할 수 있겠니? 아이는 망설이지도 않고 하겠다고 했습니다.
수요예배 설교 전에 슬기가 나와 찬양을 했습니다. 모인 회중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노래를 잘하고 가창력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 슬기의 노래가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진 후에 계속 켜놓고 삽니다. 계속되는
감동이 있어 슬기에게 전화했습니다. 주일 낮 예배시간에 참석하는 사랑하는 성도들과도
이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낮에는 헌금시간에, 저녁에는 설교 후에 슬기에게
시간을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또래들이 경험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슬기는 경험했습니다. 고난의 깊은 강도 건넜습니다. 슬픔의 산도 넘었고,
사망의 골짜기도 지났습니다. 다 지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지나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특별하게 슬기를 인도하신 하나님이 슬기를 위해 갖고 계신 계획이 무엇일지
기대가 됩니다. 수 년 내에 우리는 그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조현삼 목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