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기원을 최초로 인류에게 설명하여 줍니다.
과연 세상은 조물주에 의해 육천년전에 창조 되었을까요?
아니면 수십억년동안 진화의과정을 거쳐 변화한것일까요?
요르단 계곡과 뱃센사이의 이 지역이 에덴동산이 위치했던 바로 그장소일까요?
그 장소가 티그레스강과 유프라데스강 사이 어딘엔가 존재했던 것일까요
에덴동산은 역사적으로 실제 존재했었을까요?
진리의 유일한 모체인 성경은 세계 삼대종교의 바탕이며 바로이 성스러운
땅에서 이루어지고 기록된 것입니다.
이 조그마한 이스라엘땅에서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찾아 볼수 없는 다양하고
대조적인 모습을 함께 경험할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나 문화에 구애됨없이 성지 이스라엘은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오는
순례자들에게 무한한 매력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영원한 진리가 잉태된 바로 이 광경과 경치 / 그리고 산과 들/역사적 장소들을
함께 느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역사를 대변하는 기념장소들/역대 제왕들에 의해 건설되고 파괴
되었던 웅대한 성곽들 그리고 나라의 운명을 가름하던 전장과 도로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서도 인류의 운명을 만들어온 사건들의 현장을 직접 만날수
있는 곳이 바로 이땅입니다.
성지 이스라엘 바로 인류역사의 현장속으로 들어가 시간을 따라 기나긴 여정을
함께 시작 하기로 합시다.
우물 곁에서 외롭게 한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집트 여종인 하갈 후에 하갈은 아브함의 소실이
되어 아랍민족의 조상인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배두인들이 광야에서 자연과 더블어 생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들의 유목생활을 보노라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등 족장들이 살던 삼천년전의
모습을 찾을수 있습니다.
아직도 고대풍속과 전통을 고수하며 배두인들이 내게브 사막의 20세기도시 브엘세바
에서 십리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이제까지 살고 있습니다.
고고학적 유적들이 건설현장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스라엘 에서 아주 흔한 일입니다.
일곱게 우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도시 브엘세바 아브라함이 양젖을 짜던 이곳에서
이젠 아이스크림을 맛볼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되던 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며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지요.
아브라함은 이후로 커다란 두민족 즉, 유대민족과 서자 이스마엘을 통해 아랍
민족에 조상이 되었습니다.
태양이 뜨겁게 내려쬐이는 정오쯤 마므레 수풀 그늘 아래서 아브라함이 앉아 있습니다.
이 나무는 4000년이나 된 것입니다.
이때 문득 천사 셋이 나타납니다.
새 천사는 늙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고대하던 아들 이삭이 탄생할 소식을 가지고
나타난 것입니다.
현재는 비잔틴시대의 교회가 그것을 기념해 주고있다.
여기는 그 유명한 사해입니다..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선고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로 롯의 아내를 제외한 롯의 가족이 구원 되었지요.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고로 소금기둥이 되었구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하라
명하셨습니다.
나귀와 두사환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뭇단을 이삭에게 지우고 길을
떠납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아들을 죽이려할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불러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마라.”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더라”.
모리아산 /하나님께서 인간의 믿음을 시험하신 바로 이 장소에서
천년이 지난후에 여호와의 전이 건설되었읍니다.
기리앗 아르바는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헤브론 이라고도 불리우는 기리앗 아르바는 창세기에 처음으로 언급되었습니다.
헤브론 도시에 확장된 신시가지의 모습들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장사 지내기 위해 막벨라 동굴을 구입했습니다.
그후로 이곳은 족장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의 아내들의 무덤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야곱이 꿈에 본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더라.고 했던 곳입니다.
야곱이 꿈을 꾸고 이스라엘땅을 약속받은 장소가 벧엘인데 고대층계 유적
아랫부분일 것이라고 믿어 집니다.
야곱이 그 꿈을 꾼 며칠후에 우물가에서 장차 아내가 될 라헬을 만납니다.
이 베두인 여인이 제 아비의 양들에게 먹이기 위해 물을 긷고 있습니다.
야곱이 그것을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광경을 연상케 하여 줍니다.
베냐민을 낳고 산고로 죽은 라헬이 베들레헴 입구 무덤에 묻혀 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괴로움과 아픔의 비극으로 인해 라헬은 모든 세대에 걸쳐
희생과 인내의 모성애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열두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조상이된 야곱, 그의 아들중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
후에 바로에게 신임받는 총리가 됩니다.
7년동안에 심한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하게 들자 그는 그의 아비와 형제들을
애굽에 초대하여 더블어 살게합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죽고 그 후에 이스라엘자손이 출애굽을 통해 가나안땅에 들어올때
그의 관을 가져다가 이곳 나불루스 가까운 곳에 장사 지냈습니다.
수백년이 지난후 애굽의 바로 딸손에서 자라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더 이상 자유인이 아니었습니다.
파라오의 노예가 되어 애굽에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데 동원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사상를 전달하는 정신적 지도자로 출연하여 그 백성을
구원하게 됩니다.
모세는 그 백성을 시내광야로 인도하여 사십년 동안 유랑생활을 한후 자유의
나라로 이끌었습니다.
이곳 시내산에서 60만 장정과 권속들이 보는 앞에서 십계명이 주어졌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해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다
안식일을 지키라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것은 골짜기에든지 산에든지 시내와 분촌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에 소산지역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들과 꿀의 소산지라“.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오르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인 것입니다.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그리하여 모세는 모압 땅에서 죽어 장사되었는데
트렌스 요르단 땅에 있는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아무도 그 장소를 모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긴 여정은 이제 요단강을 건너는 어려움만 눈앞에 두고있습니다.
모세는 죽었으나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딛자 요단강물이
흐르기를 멈추었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마른땅을 밟아 건너게 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와 함께 하신다는 징표인 것입니다.
요단강 건너기를 마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앞 길갈에 유숙하며 유월절을
지키게 됩니다.
길갈을 떠나 여리고에 도착하였습니다.
여리고는 현재 고고학 발굴 장소로 또한 정치적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곳이기도 합니다.
엿세 동안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여리고성을 돌고 7일째날 양각나팔을 일제히
불자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가나안에 아모리 족속 다섯왕이 강대한 이스라엘을 크게 두려워하며 나와 대적해 싸우니
기브온에서 부터 아얄론 골짜기에 이르기까지 전투가 계속되었습니다.
현재는 관상수도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이 지역에 자리잡고 유명한 포도주를
생산하며 여호수아가“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라고 외치던 장소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언약에 땅을 정복하는 과정은 힘들고 고달픈 것입니다.
여기 에브라임 산지와 이스라엘 골짜기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여사사 드보라가 이스라엘 백성을 치리하던 장소이지요.
다볼산 아래에서 가나안장군 시스라는 바락이 이끄는 이스라엘군사와 여사사
드보라에 지략에 의해 격파 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해롯샘은 현재 이스라엘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자연에 장소로서 기드온은
이곳에서 미디안 군사를 무찌르기 위한 300명의 군사를 선택했습니다.
물마시는 모습으로 정예군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지중해 해안지대에 위치한 블레셋 다섯 성읍중에 하나였던 아스클로네 모습입니다.
막강한 적인 블레셋을 대항하여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여호와께 바쳐진 전설적인
삼손이 등장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삼손은 들릴라의 꾐에 속아 그
힘의 근본을 누설하고 맙니다.
머리를 깍이고 결박되어 두눈이 뽑히고 잡혀갔으나
머리가 자라면서 하나님의 권능이 다시 임하여 다곤 신전에서 두 기둥을 무너뜨려
그안에 있던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곳이 바로 엘라 느티나무골짜기입니다.
사울왕이 이끄는 이스라엘군이 블레셋군과 마주보고 대적합니다.
이스라엘 인공위성 수신소가 위치한 이 지역이 골리앗 이라는 거대한 블레셋
장수가 이스라엘군을 모욕하던 장소입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어린 소년 다윗이 대적합니다.
겉 모습만보고 골리앗은 감히 싸우러 나온 어린소년을 조롱했지요.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어 물메돌을 던지니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혀 땅에
꼬꾸라져 죽고 말았습니다.
유대 평화로운 골짜기에서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던 막내아들 다윗은 이제 기름
부음을 받은 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전쟁이 또 일어나 이즈르엘 계곡 길보아산에서 블레셋과 싸우던중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은 전사하고 맙니다.
다윗 왕가가 사울왕가를 대신하여 수백년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됩니다.
다윗이 처음 한 일은 여보스 사람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차지한 것입니다.
다윗이 성을 쌓고 거하며 그 장소를 다윗의 도시라고 불렀습니다.
새로이 수도를 건설한후 다윗왕은 언약궤를 유대지방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그의 아들 솔로몬왕이 여호와의 전을 짓게 됩니다.
이후로 천년동안 이 장소에 성전이 위치합니다.
그때부터 예루살렘은 모든 유대인들에게 영화와 왕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과거와 미래에 모든일들이 합쳐져 모든 나라들이 더 이상 전쟁하지 않고 무기를
농사기구로 바꾸게 되는 그날 천성의 예루살렘이 될 장소입니다.
다윗이 왕국을 건설키 위하여 3000년전 이 도시에 입성한 이후로 지금까지
또 미래에도 황금의 예루살렘으로 불리울 것입니다.
하나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다윗도 피를 많이 보았다는 이유로 여호와의
전을 지을 것을 금지 당했다는 사실로
예루살렘이 지극히 성스러운 장소라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다윗이 죽어 이곳시온산에 묻혔습니다.
유대인 믿음의 지손들은 메시야가 오실때 다윗의 가문을 통하여 온다고 하여
다윗왕의 무덤앞에서 유대인들의 메시야가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무덤에서 가까운곳 기드론 골짜기에 압살롬의 기념비가 서있습니다.
다윗의 아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다윗에게 가장 쓰라린 아픔을 비통하게 여기어
상징적으로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왕권을 이어받고 솔로몬은 언약의 궤가 있는 장소에 성전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솔로몬은 넓고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여 욥바 항구를 통해 세계의 보물과 진귀한
상품들을 들여왔습니다.
홍해 해안 에일랏 항구를 통해 솔로몬은 오빌지방에서 삼천달란트나 되는 황금을
성전건축을 위해 날라왔습니다. 오늘날 세계에 널리 알려진 해양휴양지인 이곳은
솔로몬때나 지금이나 동양을 연결하는 관문입니다.
인류사상 가장 지혜로운 솔로몬을 만나기 위해 스바여왕이 배를 타고 도착한
장소도 바로 이곳 에일랏입니다.
모리아산위에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제사지내려던 그 장소에 영원한 제단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만들어 건축하니 그 길이가 60규빗이요 폭이 20규빗이며
높이가 30규빗이더라 성전안에 지성소를 두고 그곳에 언약궤를 모셔 두더라.
성전과 지성소를 정금으로 둘러 쌓았더라
성전 짓기가 끝나자 솔로몬은 모든 이스라엘 장로들과 지도자를 소집하고 제사장
들의 메를 메어서 성전으로 옮겨오니 가장 거룩한 장소 지성소에 모셔 두니라.
성전 신축이 성공리에 끝나자 솔로몬은 부와 관심을 다른 건축사업에 돌리게 됩니다.
베들레헴 부근에 왕의 정원과 새 연못을 건설하여 예루살렘 시민을 위해 빗물을
모아 저장하도록 했습니다.
왕국의 변방을 지키기 위해 병거성을 쌓고 왕자신을 위한 궁궐도 건축했습니다.
비록 왕국이 평화와 번영에 시대를 구가하더라도 솔로몬왕은 비상시를 대비하여
왕국의 안전을 도모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애굽 바로의 딸과 결혼하여 동맹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천명의 아내를 거느리던 솔로몬 대왕은 사랑의 시 아가를 집필했다고 전해집니다.
“ 나는 샤론의 수산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여자들 가운데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너울속에 있는 네눈이 비둘기 같고 내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예루살렘 여인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가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어 깨우지 말지어다.
나의 사랑이여 나의 누이여 나의 아내여 내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다.
내 입술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고 내 혀밑에는 꿀과 젖이 있구나
내 젓가슴은 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목은 상아망대 같구나.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같고 너의 고움이 예루살렘 같고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같구나
평화에 시대는 끝났습니다.
솔로몬이 죽자 나라가 남북으로 갈려 다윗의 가문은 예루살렘과 유대를 계속 통치
하나 사마리아의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고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의 집안이 통치하게 됩니다.
아합이 성을 쌓고 도시를 치장하며 이방신을 섬기는 신전이 들어서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를 거역하여 몰래 가증한 신상들을 만들어 도시위
신전자리에 놓았습니다.
형상을 만들고 산기슭에 산당을 만들고 악에 빠졌습니다.
이런 형상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모습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종교개념이 타락하고 널리 퍼졌으나 여호와의 사람인 엘리야 예레미야 이사야
같은 선지자들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그 잘못의 벌을 받게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성문앞에 서 있습니다.
그는 머나먼 미래에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난뒤 구원이 도래하며 메시야가 이 문을
통해 임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서서히 두 왕국은 쇠퇴하고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게 되는 정복자가 나타나서 이스라엘
왕국이 망하고 앗수르 10개지파의 이스라엘이 유배를 가게됩니다.
영원히 동족으로부터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00여년이 지난후 예루살렘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되고 살아남은 사람은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되어 바벨론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여호와의 전은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 동굴은 시드기야의 왕이 포위된 예루살렘을 탈출하기 위해 숨었다가 체포된
곳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한탄하며 울부짖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늘날 성전의 남아 있는 부분 통곡의 벽 앞에서 성전파괴에 비극을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유대인들은 바벨론 강가에 앉아서 슬퍼하며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했을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을 보고 동포들을 위로합니다.
아마 수천년동안 에스겔의 환상이 유대인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 그때 그는 미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길이 내게 다가와 뼈가 가득찬 골짜기에로 인도해 내셔서 보이시며 인자야
“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오주여 당신께서는 아시나이다.
마른 뼈들아 주의 말을 들으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내가 뼈를 맞추고 살을 붙이고 가죽을 씌우며 숨을 쉬게 하리라
그리하여 네가 나를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신약과 구약사이엔 500년이란 세월의 간격이 있습니다.
이 단절의 시대에 중동의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고 이 지역을 통치하게 되는
그리스 쎌루시드 왕조가 자리 잡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예루살렘 시온으로 돌아오고 바벨론 유배가 끝나게 됩니다.
페루샤왕 고레스가 칙령을 내려 시온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근처 모디인 이라는 곳에서 마까베오 유대명문 집안이 일어나 헬라의
그리스 군대에 대적하게 됩니다.
두 문화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으로 그리스제국에서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이방신을
섬기라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마까베오 집안은 그리스 군대를 무찌르고 다시 이스라엘 땅에 왕국을
건설하여 하시모니아 왕조가 시작됩니다.
지중해 해안 가이샤라 로마제국이 세계를 제패하게 되어 유대는 더 이상 막강한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독립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가이샤라는 로마군대의 총본부가 되고 새로운 지배자에게 대항하는 유대인들을
진압할 군대가 모여지는 장소가 됩니다.
그들은 도시에 반원형 극장을 건설하고 산악지대 샘으로부터 물을 끌어오기 위해
수로를 건설했습니다.
그 당시 헤롯대왕은 가장 위대한 건축가였습니다.
헤롯대왕의 이름을 딴 헤로디온입니다.
인공으로 산을 쌓고 그 위에 궁전과 성체를 쌓았으며 .
예루살렘 남쪽 유다광야 접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헤롯대왕은 로마제국의 임명을 받아 분봉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카시모니안 왕가에 공주와 결혼하기는 했지만 유대인들은 그를 합법적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읍니다.
결국 이런 불만들이 갈릴리 지방에서 반란으로 발전케 됩니다.
대왕은 무자비한 진압을 명령하였고 아르벨산이라는 이곳에서 끝까지 항전하던
독립군들은 동굴속에서 토벌되어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지는 처절한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항상 불안에 쫓기는 헤롯은 나라곳곳에 성전과 성체를 건설하고 휴가를 즐김과
동시에 유사시를 위해 피난처를 마련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헤롯대왕은 성전개축을 합니다.
예루살렘의 웅대한 성전 모습이 오늘날엔 통곡에 벽이라 불리우는 서쪽벽만이
남아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들과 거대한 건축을 가능케 했던 기술과 그 규모는 오늘날 보는이를
놀라게 합니다.
헤롯은 유대사막 사해 옆에 맛사다라는 휴양지를 건설합니다.
후에 이 장소는 로마군에 대항 최후 결전지가 되어 유대민족 정신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또다시 유대인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정치적, 종교적 종파사이에 분란이 생깁니다.
이런 종파들 중에 유대사막에 위치한 쿰란이라는 장소에 엣세네파가 자리잡습니다..
이들은 두루마리 성경을 필사본 하는 일을 했는데 특히 후에 발견된 다니엘서에는
말세에 관한 내용이 강조되고 세속권력의 몰락을 기원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들 동굴들에서 사해문서가 발견된 것입니다.
성경의 전당이라 불리우는 이스라엘 박물관에 사해 문서를 특수보관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의 지붕은 두루마리 성경을 담던 질그릇 항아리 뚜껑을 본따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아기 예수께서 베들레햄에 탄생하시게 됩니다.
갈릴리 산간지대/ 나사렛이라 불리우는 자그마한 마을입니다.
사사 시대에 스블론 지파에게 할당된 지역에 위치한 나사렛은 성경에서 많은
예언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기를 멸시받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귀하게 여김을
받고 괴롭히던 자의 채찍을 꺽으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에 어깨에는 정사를 메겠고 이름은 평강에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역에 대한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천사가 바로
이곳에서 마리아라고 불리우는 처녀에게 나타나게 하시어 성령이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시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알려주게 하였습니다.
이런일이 있은지 얼마되지 않아 로마 황제는 온 천하에 호구조사령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본 고장을 찾아 호적하러 가게 되었죠.
요셉도 조상들의 땅인 베들레헴으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갔습니다
마리아는 달이차서 곧 아기를 낳아야 했으나 마침 방문객이 많을때라서 여관에는
그들이 머물방이 없었습니다.
갈릴리로 부터의 여정은 길고 힘이 들었으며 그들은 지칠대로 지쳐 있는 상태였으므로
외양간이라도 가서 밤을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
이곳은 구유교회인데 유대의 작은 고을에서 일어난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교회로
바로 이곳 외양간에서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집 짐승들 사이에서,가장 초라한 환경에서,마리아는 인자를 낳은 것입니다.
그 근방에는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무서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전하러 왔노라“
‘오늘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니라.“ 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그런 후 천사들은 목자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며칠 후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를 데리고 결례를 치루기 위해 성전에 올라
갔습니다.
# 성전 주위의 최근 발굴 현장은 예수님 시대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전 입구로 향하는 잘 보존되어 있는 계단들은 바로 마리아와 요셉이 첫아들을
바치기 위해 성전을 향할때 걸어올라 갔었을 계단입니다.
성전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마리아는 유대인에 결례에 따라 예식을 행하는 욕조의
찬 물속에 몸을 담궜을 것입니다.
이 장소를 따라서 마리아는 계단을 오르고 지금은 돌로 막혀있는 아치형의 남쪽문을
통해 성전에 올랐을 것입니다.
바로 이문들 성전안에 이방인의 뜰이라 불리우는 곳으로 통하는 지하통로가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성전에 들어갔을때 기도하고 있던 나이 먹은 유대인들을 만나게
되는데.아직도 경건한 유대인들이 통곡에 벽이라고 불리우는 서쪽벽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서기 70년 헤롯대왕이 증축한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서 완전하게 무너졌지만
바로이 벽만이 그래도 남아서 예수님 시대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므온이라고 불리는 경건한 유대인 그리고 여자 선지자 안나가 성전안에서 기도하고
있다가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를 데리고 나타나자 그들은 바로 아기 예수가
그들이 고대하던 메시야라는 것을 알고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신약성서는 예수님의 소년시절과 친척들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요셉이 하나님 말씀으로 예수님을 기르셨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들이 알기로는 그들은 금이나 돈으로 만든 장식물을 지니지 않으며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였을 것입니다.
진흙과 지프라기 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진 검소한 집에서 장차 인류의 죄를
어깨에 짊어지실 소년 예수님께서 성장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숙련된 목수였고 손놀리는 방법을 소년 예수께 가르치기도
했을 것입니다.
나무를 만지는 목수일은 무언가 평화롭고 순수한 직업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항상 못쓰게 된 가구를 혼자 고치기도 하고 숲에서 쓸만한 나무를 고르기도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나사렛에는 아버지로부터 자식들에게 전수되는 옛 기술의 공예품이 많이
있습니다.
오래되고 고난에 찬 유대역사는 소년 예수에게 인간의 비애와 생명력을 잘
이해케 해주었고 경건한 유대인인 요셉은 소년 예수에게 유대인의 역사를
잘 설명해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 내가 너와 언약을 맺는다.
너는 많은 민족에 조상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또한 열두지파가 광야를 헤매면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유랑하던
사실도 잘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바로 이곳 황막한 광야에서 약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던 앨리사벳이
늙은 나이에 얻은 아들 세례요한이 활동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곳에서 죄를 용서 받기위해 회개하라고 군중에게 스가랴가 외쳣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가까운 엔카렘이라는 아름다운 유다 산골에는 세례요한의 탄생을
기념하고 방문객에게 조용한 묵상과 휴식의 장소를 제공하는 휴식처와 교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 마을에서 세례요한은 소년시절을 보냈으나 선교 활동을 시작한 것은 오랜후에
예루살렘 동편 사해바다 주변에서였습니다.
헤롯대왕은 이 산위에 웅대한 요새를 건설했는데 바로 이곳이 요새라는 뜻을
지닌 맛사다라고 불리우는 장소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사해바다 주위에 몇 개에 공동체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곳/ 쿰란이라고 불리우는 곳에는 특별한 유대인 공동체가 주거장소로부터
마주 보이는 험한 절벽들 아래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두루마리 성경을 손으로 복사하는 섬세한 작업으로 유명한 엣세네파 쿰난 공동체는
이 주위에서 활동하던 세례요한과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례요한에 대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있어“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평탄케 하라“ 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
물가에 닿을때마다 세례요한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든
이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요단강가에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받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갈릴리로 돌아가시기전에 예수님께서는 사탄으로부터 온
세상에 부귀와 영화를 보여주며 내앞에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이 너의 것이
될 것이라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받으신 시험은 여리고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 산마루에서 기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서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주님이신 너의 하나님/ 그분만을
섬기라고 되어있다고 대답하시며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떠나갔습니다.
얼마후에 갈릴리 지방 가나마을에 혼인찬치가 있었는데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초대받고 와 계셨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도 오셔서 혼인잔치 준비를 거들고 계셨습니다,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하인들에게 말하시기를 예수께 알리고 예수께서
시키시는대로 하라고 이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채우라고 하셨고 하인들이 시키는대로 하자
어느새 물은 포도주로 변해 있었습니다.
가나마을에서 예수께서 첫 이적을 행하시자 제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사렛 출신에 젊은 랍비가 선교활동의 새로운 전기를 맡게 됩니다.
이적에 관한 소식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많은 군중이 예수를 따랐고 그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습니다.
장님과 불구자들이 치유를 받기 위해 모여들고 어떤이는 옷자락만 만지고도
병이 낫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주시는 이분을 해치고자 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유월절 축제를 지내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셔서
행랑사이에 문을 통해 들어오시는데 마침 주위의 높은 행랑들이 건축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엘악사 회교사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경건한 회교신자들이 예배와
기도를 드리기 위해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때 성전에서는 마침 장사아치들이 양,비둘기, 황소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채찍으로 모든 장사꾼들을 성전에서 쫓아 내시면서 이것들을 거두어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꾼의 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놀란 유대인들이 나서며 이런 권한이 있음을 증명하는 무슨 이적이라도 보여주겠소
라고 묻자 예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안에 다시 세우겠다” 고 하자
그들은 예수께 “ 이 성전을 짓는데 46년이나 걸렸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단 말이요
라고 또 대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것은 당신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얼마후에 예수께서는 베데스다 못 / 양과 다른 가축을 씻던 장소에 가셨습니다.
여기는 성안나 기념교회가 있는 유서깊은 곳입니다. .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 십자군시대에 건축한 기념교회를 볼수 있으며 원래의
베데스다연못이 얼마나 컷는가를 가늠케 해주는 일부의 모습을 깊은 웅덩이를
보고 짐작할수 있습니다.
38년이나 거기 누워있는 병자에게 “ 낫기를 원하느냐 ” 라고 물으시자 “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 ” 제가 혼자 가는 동안 다른사람이 먼저 그곳에
들어갑니다 “ 라고 대답했습니다.
“ 일어나 자리를 걷어들고 걸어가거라 ” 하시자 그사람은 어느새 병이 낳았습니다.
현재 여기에는 오래전에 일어났던 그 기적을 기념하는 교회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성안나 기념교회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모친을 기념해서 세워졌는데
마리아는 이 주위에서 성장하신 것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한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유대광야를 지나시는데 많은
무리들이 그의 뒤를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유대를 떠나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서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식과 신앙의 다른면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하고
있었는데 제자들은 왜 예수께서 이 지방을 통해 지나가시는지 의아하게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아직도 이 지방에 살고 있으며 겨우겨우 그들의 과거예식을
보존해 오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스러운 산으로 여기고 있는 그림심산 아래에는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만났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오래된 우물이 있는데 .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 이 우물에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우물 근처에는 한번도 완전하게 준공된 적이 없는 교회 일부부분에 남아있습니다. .
예수께서는 나사렛에 잠시 머무시고 갈릴리 호숫가 가버나움으로 옮겨 가셨습니다.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호숫가에 앉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예수시대 바로전에 세워진 조그마한 어부들의 공동체의 유적들을 오늘날 가버나움에서
볼수 있습니다.
세밀하게 조각된 이 커다란 돌들은 한때 이곳에 서 있었던 유대회당의 잔재들입니다.
가버나움은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의 마을이었으며 그들의 주요 생산품 중의
하나는 맷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맷돌의 의미를 선교활동 중 많이 비유하셨는데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 어린아이에게 죄를 짓게 하는 자는 차라리 목에 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자신을 위해 오히려 나을 것이다 “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호숫가를 따라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이
마을을 수시로 떠났지만 항상 가버나움으로 돌아와 베드로 장모집에 기거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과 어부들을 만날 때마다 함께 말씀을 나누시며 호수주변의
마을들을 방문하셨다.
온유한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자는 행복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만족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에 복음선포 하시기전 소년시절로 잠시 되돌아가면 예수께서는 그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성장하셨는데 갈릴리 호숫가 주위보다는 이스라엘 골짜기 주위를
더 자세히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역시 이지역에 무깃도 평야 또는 아마겟돈 이라고 불리우는 지역에
중요성도 잘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신약성서에 마지막 부분인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장차 환란때 세계 각지에서
군대들이 이골짜기로 모여들고 빛이 군대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며 결국에는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습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다볼산 언덕에서 부터 산아래까지 나 있는 길을
자주 지나 다니셨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이 산위에 꽤 큰 마을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다볼산 위에서 순례자들은 예수의 거룩한 변화를 기념하는 교회를 방문
할 수 있으며 주위의 넓은 평야에 고립되어 우뚝 솟아있는 위치 때문에 예수의
거룩한 변화를 기념하는 전통적인 장소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동일한 지역을 지나가며 예수께서는 모래언덕 아랫부분에 위치한 나인성을
방문하셨습니다.
신약성서는 예수께서 이 마을에서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시는 기적이 있었다고
전해줍니다.
마을 사람들은 경의에 차서 위대한 예언자가 우리들 사이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에 엘리사 선지자가 이웃동네인 수넴에 찾아와
한 죽은 소년의 목숨을 살려주신 것을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서에는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이 지방을 지나가신 세 번의
각기 다른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선교 사업에 가장 많은 시간을 호수북쪽의 언덕에 모인 군중들을
가르치시는데 할애 하셨습니다.
언덕에 모인 군중들은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기 원하였으며
이러한 모습을 기념하기 위해 이탈리아 건축가 바로루치가 건축한 아름다운 프란체스칸
교회 입니다.
이밖에도 다른 교회들이 조용히 호수를 따라 위치하고 있으며
각 교회들은 예수님 당시에 특별한 사건들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브가에 위치한 오병이어기념교회는 5천명을 먹이신 떡과 물고기에 이적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용암 바위들은 예수님 시대의 가옥 건축에 쓰이던 주요건축자재였습니다.
이러한 집들의 특징은 자그마한 창문들과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은 바닥이다.
이러한 초가지붕들은 어떻게 병자가 지붕을 뚫고 예수께서 설교하시는 장소까지
내려질수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갈릴리 지방은 풍요로운 소출이 나는 지역이며
물이 풍부해서 수세기에 걸쳐 방목을 해오던 지역입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며 풍요로움을 감사드리고 있었습니다 .
예수께서는 이 지역을 두루 다니시다가 이 지방의 유대회당을 제자들과
함께 방문하셨을 것입니다.
감라에 있는 이 회당은 2000년이상 이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곳 유대교육의 중심지에서
아마 예수님께서도 많은 가르침을 주셨을 것입니다.
비록 가버나움에 있는 이 회당은 예수님시대 이후의 건물이지만 그당시 건축
양식의 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숫가 고대교회의 유물들과 회당의 모습을 보면서 교회 건물의 유래를 알 수
있습니다.
고대교회 건축에 사용되었던 많은 정성과 노력 흔적은 순례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이제 예수께서 유대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그 가르치심의 내용들을 반대하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하여 논쟁을 하고 예수를 따르던 어떤 이 들은 예수를 떠나
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열두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떠나갈 것인가” 시몬베드로는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주시며 우리는 믿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아침이슬이 땅을 촉촉하게 적시면 예루살렘 주변의 나무가지사이로 아침 햇살이
빛을 발합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얼마남지 않을 때면 수천명의 유대인들이 친지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모여 듭니다.
나사렛 예수께서도 예루살렘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시고 예루살렘 모든 사람들은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성밖의 계곡에서는 목동들이 조용히 양떼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곧 제일좋은 수양들은 희생제물로 사용되기위해 성전에 팔릴 것입니다.
봄에 따뜻한 기운이 오르고 겨울동안 비는 충족하게 내렸으며 원근각처에서
몰려온 순례객들은 계속 시내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이 애굽인들을 치실때 그들의 문설주를 지나가신
그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너희들은 이날을 기억하고 주님을 위한 축제일로
지키라“ 하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사랑하신 은혜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며
유월절 절기는 현재까지도 온 세상의 유대인에 의해 지켜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라고 불리우는 작은 마을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어쩌면 문둥병자였던 시므온집에 머물고 계셨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알고 있었고 그의 치유능력도 능히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를 죽은지 사흘만에 무덤 입구의
돌을 치우라 명하시고“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살려 주셨습니다.
나사로는 베 옷을 입은체 무덤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다음날 일찍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 마을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을 향하여 “ 맞은편 마을로 가라 거기에 가면 아무도 탄적이
없는 어린나귀 한마리가 메어 있을터이니 그 나귀를 풀어오너라
혹시 누가 왜 남의 나귀를 푸느냐고 묻거든 주님께서 쓰시겠답니다 라고
대답하여라“ 하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께서 명하신대로 옛날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실로안이라는 아랍
마을처럼 보이는 마을로 갔습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순례객들은 유월절 절기에 예수께서 지나신
발자취를 따라 예루살렘 입성을 한다.
예수께서는 고독감에 쌓여 계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장차 예수께서 당하실 고난을 알고있던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친히 받으소서 하늘에는 평화 / 하나님께 영광
겉옷을 펴서 길위에 깔고 종려나무가지를 흔듭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속박에서 그들을 인도해낼 정치적 지도자로 환영
했던 것입니다.
며칠 후 예수께서는 길가에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은 것을 보시고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고 저주하습니다.
그러자 무화과나무는 곧 말라 버렸습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보고 놀라서 어떻게 당장말라 버렸느냐고 묻자 예수께서는
너희가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라고 대답하셨다.
바로 이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무리들의 간교함에 대해서도 경고하셨습니다.
감람산을 거닐며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며 눈물 흘리셨습니다.
오늘 내가 평화의 길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곳 프란체스칸 교회는
도미니스 플레닛이라고 불리우는 교회로 예수께서 우시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교회 모습은 인자가 예루살렘을 위해 흘리던 눈물방울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종말이 이제 얼마남지 않은 것을 아셨으나 매일매일
성전뜰에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바로 얼마전에 성전동쪽 벽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인 솔로몬의 행각이라고
불리우는 장소에 성전뜰이 개축되었습니다.
서기 70년에 로마군에의해 성전이 완전히 부서졌고 성전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는
알기 힘들지만 성전은 바로 바위사원이라고 불리우는 회교예배 장소보다 훨씬
높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회교인들은 약 1,000년 전에 이곳에 그들의 사원을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그후로 건축물의 모습이 거의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회교신앙에 성스러운
경전인 코란의 내용들이 유리표면에 서리낀 모습으로 새겨져 남아있습니다.
유월절 축제 동안 성전산은 붐비고 있었으며 걸인들은 벽에 기대어 줄서 있었고
상인들은 흥정에 정신이 없었으며 환전상들은 그들의 의자에서 동전을 짤랑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바로이곳 회교사원이 서있는 장소에서 있었던 일들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오셔서 이러한 모든일들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시고는 상인들을
쫓아 내시면서 “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라고 한탄하셨습니다.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여러가지 놀라운 일들과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화를 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장님들과 절름발이들의 아픔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성전밖으로 나오시자 제자들도 함께 나오며 성전을 가르키며 감탄하자
예수께서는 “지금은 너희가 성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저들이 돌위에 하나도 그대로
남아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성전 남쪽의 가장자리 부분을 발굴한 모습들에서 성전 건물의 화려함을
미루어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따금 베다니 같은 건너편에 있는 마을들을 방문하기 위해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가셨습니다.
수천년 동안 이 계곡은 묘지로 쓰여지고 있다.
이곳 감람산에서 제자들은 예수께 조용히 다가와 세상의 종말과 주님의 재림의
징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심판날에 관하여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주님의 재림을 설명하시기 위해 간단한 비유들을 사용하셨으며 마태복음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던 추수하는 사람들이 들에서 일하는 모습을 아직도 찾아볼수
있으며 양과 염소를 가르는 목동들의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세례요한도 앞으로 있을 주님의 심판에 대하여 간단히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그 분은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다에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에 태우실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제사장집에 모여 예수를 체포할 음모를 꾸미고
갈릴리에서 온 젊은 예수를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결정했다.
단한번의 입맞춤으로 하나님 외아들이 배신당할 때가 몇시간 남지 않은 것입니다.
베다니에서 예수님은 친한 친구들과 마리아 마르다와 함께 나사로집에 머물고 계셨을
때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방문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순례자들은 예수께서 메시야와 스승으로서 당신의 친구들과 보내셨던
마지막 순간들을 돌이키곤 합니다.
유월절 절기에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은 예수께서 당신의 열두제자와 함께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시던 순간을 기억하며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만찬을
준비하라 이르시고 성안에 들어가 물동이를 메고가는 사람을 따라가 그집에
들어가서 이층 큰 방에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라고 하시자 제자들이 나아가 도성
안으로 들어가 예수께서 시키신 그대로였습니다.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가기 위해 제자들은 아마 이 계단들을 따라 올라갔을 것입니다.
조세프스의 글에 따르면 실로암 연못으로부터 시내 중심부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구전에 따르면 최후만찬 장소는 예루살렘 도성이 이 시온문 바로 옆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비록 이곳이 최후 만찬이 있었던 원형 그대로는 아니지만 최후 만찬 다락방을 기념하던
비잔틴 교회와 대략 동일 한 장소에 위치한 방입니다.
수백년동안 최후만찬이 시온산에서 있었다고 받아 들여져 왔으며 이 장소에 있던 1세기
교회의 페허의 발견은 이러한 주장에 증거자료를 제시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교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행전에 기록된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을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날 저녁 만찬이 끝난후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함게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감람산으로
가셔서 겟세마네동산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후 예수께서는 홀로 기도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두고 따로 가셨습니다.
오늘날 감람산 언덕에는 두개의 교회와 각각 관련된 두개의 동산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전통적인 장소는 바로이곳 번민교회 또는 만국교회라고 불리우는
프란체스칸 교회옆에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내부에는 번민의 바위라고 불리우는 돌이 있는데 예수께서“ 아버지 하시고자만 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치우소서 그러나 제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라고 기도
하시던 순간을 상징하는 바위인 것입니다.
번민에 쌓여 예수께서 열심히 기도하시는 동안 핏방울이 떨어지듯 땀이 흘러 땅을 적셨고
이곳 내려다 보이는 곳에 약 백 년전 알렉산더 3세 러시아 황제에 의해 세워진 성 마리아
막할례나 백 러시아 정교 교회가 위치하고 있으며 커다란 양파 모습의 둥근탑들이 제정
러시아에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병사들이 와서 그를 체포하고 제사장 가야바 집까지 기드론
골짜기를 통해 끌고 갔습니다.
시온산위에 위치한 에루살렘 성벽 가까운곳에 베드로통곡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은
예수께서 잡혀계시던 동안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신 것을 기억하는 장소로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최근에 발견된 이곳 교회 지하의 넓은 장소들과 이 제단이 놓여져 있는 장소는 예수님 당시에
광대한 건축물에 포함되었던 안뜰임이 판명되고 있습니다.
많은 현대 역사학자들은 바위를 파서 만든 이러한 동굴들이 그 당시 죄인을 일시적으로 가두어
두던 감옥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재판 받기 전에 예수께서는 이러한 어둡고 음침한 감옥에 내팽겨 지셨던 것입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예수께서 겪으셨던 처절한 외로움을 피부로 느낄수 있게
됩니다.
교회 내부에 들어서면 예수께서 베드로를 보시며 바로 오늘밤에 닭이
두번 울기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던 순간을 떠오르게 합니다.
매년 고난주일 금요일이면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은 예루살렘의 전통적인
고난에 길 예식에 참석하여 사형선고까지 예수께서 당하시던 수난을 기념합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유월절동안 예루살렘에서 머물 때 사용하던 요세성 또는 플레토리움
이라고 불리우는 장소가 시온 수녀원 지하에 위치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수녀원 아래에는 뜰이 있는데 로마군 수비대가 머물던 안토니아성과 가까운
장소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안토니아성의 뜰이 요한복음사가가 기록하고 있는 돌깔아놓은 자리
즉 리토스트로토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 장소의 재판석에 앉아 빌라도는 예수를 관저 안으로 불러 들였던 것입니다.
로마 치하에 있었던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바로 이 거리가 예수께서 고난의 길을
따라 걸어 가셨을 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아무리 심문을 해도 이 갈릴리 사람으로부터 어떤 죄도 찾아낼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과 군중은 여전히 예수를 사형에 처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히브리말로 골고다라고 불리우는 해골산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고
여기서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리셨습니다.
예수께서 목마르다고 하시자 병사들은 신포도주를 마시게 했습니다.,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맛보신후에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고개를 떨어드리시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십자가형의 장소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예루살렘 도성안에 위치하고 있는 예수님 무덤교회를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장소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교회 전통은 예수께서 돌아가신후 몇백년후에 시작된 것으로 많은 교회들과
제단들이 역사의 전환점인 과거의 순간들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무덤교회는 많은 세계 교회에 의해 역사적인 장소로 믿어지고 있으며 교회
내부에는 2000년전에 무덤으로 쓰이던 장소들이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합니다.
아무도 예수님 무덤의 원형을 그대로 볼수는 없지만 이곳 교회안에 장소가
예수님 시신이 사흘동안 모셔져있던 위치로 그 사실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안에 한번도 장사
지낸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습니다.
비록 최근에 개발되었지만 이 아름다운 장소에는 현재 정원이 꾸며져 있고 오래된
무덤이 있어 그 당시에 모습을 회상할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주일날 아침 동이 트기전 마리아 막달라와 다른 마리아는 무덤에 찾아 왔습니다.
그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며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그돌을 굴러내고 그
위에 앉아 천사의 모습은 번개처럼 빛나고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들은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는다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께서 선교활동을 하실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니 산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높은 곳에 얹져둔다.
그래야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추워 주지 않겠느냐 너희도 이와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워 그들이 너희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예수께서 부활하신후에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셔서 모닥불을
피우시고 물고기를 구우시며 빵을 준비하셨습니다.
이리와서 아침을 들라고 제자들에게 말하였으나 제자들이 와서 아무도 감히
누구시냐고 묻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인 것이 분명했던 것입니다.
이로부터 동쪽으로 서쪽으로 빛이 퍼져 나갔습니다. 인자가 다시 오실 때까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유대민족의 추방은 이제까지 유대민족이 겪었던 그 어떤
불행보다도 비극적인 것이었습니다.
로마군에 대항한 유대인의 독립 전쟁은 갈릴리 지방에서 시작되어 감라 라고
불리우는 성에서 포위공격을 받게 됩니다.
4000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하고 1000명의 유대인은 절벽에서 떨어져 자결합니다.
유대인의 무장봉기는 급기야 600만 학살사건이 일어나기까지에 이릅니다.
사해바다 수면보다 400미터 높은 천연 요세지 맛사다 헤롯대왕이 유대인 반란과
이집트 클레오파트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한 요세입니다.
유대열성 당원들은 로마군에 대항하여 마지막 결전을 벌린 곳으로 엘리에제즈벤
야이르라는 지도자의 지휘아래 산위의 철옹성을 구축하고 칠년동안 마지막
유대독립마을로 생활을 영위하며 유대회당과 목욕시설을 만들기도 한 장소입니다.
3년 후에 로마 디도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습니다.
그후 3년 동안 포위공격을 당한 후 노예로 살기 보다는 자유인으로서 죽음을 택하고
집단으로 자결하기에 이릅니다.
각자 자신의 배우자와 자식을 처치하고 제비를 뽑아 동료의 칼 아래 쓰러져 갔습니다.
로마군이 들어와서 널려있는 시체들을 보고는 실망을 감추지 못합니다.
나바티아인에 의해 처음 건설된 아브닷 아랍유목민은 이곳을 무역중계 도시로
발전시켜서 엘랏까지에 무역통로를 유지 동양과 통하는 중요한 교통로로 사용했습니다.
이 시기에 로마는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이곳 아브닷에 새로이 도시를 재건합니다.
비잔틴 시대의 성 데오도르 교회는 4세기 그리스 정교 순교자인 성 데오도르를
기념하기 위한 그 시대에 교회입니다.
교회 옆에 수도원자리는 네갭사막에 살던 수도승들의 자취입니다.
나밧데아 사람들은 이지역에 많은 교회와 성체를 건축해서 그들의 모습을
남기고 있습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남아 살며 전통을 유지합니다.
베이트샤아림 이라고 하는 이곳에 유대회고 법원인 산헤드린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유대교의 랍비중 유명한 미쉬나를 저술한 여우다하 낫시라는 랍비가
살던 곳이기도 합니다.
두 아들들과 함께 이곳에서 그는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문양으로 장식된 석관과 동굴무덤인 갓다꿈 이스라엘의 평화라는
글이 포함된 모자이크는 여리고 부근 유대회당 자리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이 고대 유적은 유대인들이 이땅에서 계속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가 됩니다.
그들은 기억되고 영원토록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회교인들의 정복이 시작되었습니다.
마호메트의 후예들이 중동에 이슬람을 전파시킵니다.
성전산 자리는 이제 예루살렘을 정복한 회교군주 셰리프 오마르의 이름을 따서
엘하람 아셰리프 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회교전통에 따르면 마호메트가 이 장소에서 승천했다고 하는데 바위사원의 팔각형
건축물은 회교문화의 절정을 이루며 압델멜릭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마호매트가 승천한 바로 그 바위 위에 사원이 건축된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바위사원은 회교도들에게 있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치한 메디나 메카와
더불어 삼대 성지 중 하나인 것입니다.
로마시대의 알리아페톨리나 라고 불리우던 예루살램은 이제 성지라는 아랍어 엘쿠드라는
새로운 지명을 가지게 된다. 여리고 도시는 회교도들에 의해 엘에스술탄이라고 불려지고
호마야드 왕조에 힛삼 군주에 의해 힛삼궁전이 건축됐습니다.
호마야드 왕조의 수도다마스 커스는 멀리 시리야에 위치하고 여리고 힛삼 궁전은
왕의 겨울 별장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회교통치동안 이스라엘 전역에 특히 예루살렘 헤브론 같은 중요도시에 회교사원이
많이 건축되어 유대교 기독교 외 회교의 자취를 많이 남기게 되었습니다.
성지를 수복하자 기독교가 돌아온다 유럽에서 성지회복의 열기가 몰려오는 것입니다.
불란서 독일 영국 등지에서 리쳐드왕 및 고프릴드 왕등의 지휘아래 십자군이
들어온다.
엘보라고 불리우는 십자군성은 이 성체를 건설한 프랑스 십자군이 명명한 곳입니다.
이곳은 주위의 요르단 계곡과 트랜스 요르단이라 불리우는 길아드 산악지대의
주변을 한눈에 볼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땅에서 사라지지 않고 예루살렘 헤브론 티베리아 갈릴리
지역 사파드 등지에서 살아나가며 유대 신비주의를 다룬 저작 까발라를 남깁니다.
성지를 뺏고 빼앗기는 전쟁이 계속되다가 쌀라딘이라는 회교도 장군이 나타나서
성지를 점령하고 통치의 기반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옛 성 기초위에 다시금 성벽이 쌓여졌습니다.
터키 오스만 제국 통치 당시의 모습으로 건축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지은 성문들이 오늘날까지도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가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나폴레옹도 동방으로 제국을 확장시키려는 야심을 가지고 영국을
인도와 고립시키기 위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가자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루고 북쪽으로 침입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코에서 나폴레옹은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고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 성밖에 모세 몬테삐여르 경에 의해 최초의 유대인 정착지가 건설됩니다.
현대 예루살렘이 건설되기 시작하여 예루살렘 옛 성보다 더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코스차일드 백작은 유대기금을 조성하여 이스라엘에 유대인 농업 정착을 지원하였습니다.
지크론 야곱이라 불리우는 이 지역이 이러한 정착 운동의 첫 장소인 것입니다.
비슷한 정착촌으로 위숀레찌원 이라고 불리우는 장소입니다.
시온주의 지도자 데오도르 헤르쩰이 주장한“유대국가에 재건”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개척자들이 생활하던 곳입니다.
시온주의가 세계 유대인 사이에 호응을 받아 조상의 땅으로 유대인들이 돌아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동안 이스라엘은 여전히 터어키 통치하에 놓여있었습니다.
대영 제국의 알렌비 장군이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옛 성 , 욥바 문을 통해 개선하며
영국 신탁 통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스라엘 땅, 즉, 정신적, 종교적, 국가적 독자성이
이루어진 독립적 유대인의 모태인 이 땅에서 조상들은 국가적 세계적 문화를 가꾸고
온 세계에 성경을 선물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독립 전쟁이 발발하던 때 발표된 독립선언문의 일부입니다.
그 다음날 바로 독립전쟁이 발발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포위당하고 독일의 집단 수용소에서 생존한 사람들이 모여살던 키브츠야드
모르데카이에 고립된 모습이 용감한 소수의 군사들이 이집트 기갑 연대와 포병대를
맞아 싸운 흔적입니다.
이 장소는 영웅적인 항전의 교육적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며 북과 남이 교차하고 과거와 현재가 교류하는 중요한
곳입니다.
또한 전통과 문화가 대화하고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며 현실이 공전하는 땅인 것입니다.
온 세계 만민들에게 커다란 은혜를 주며 모든 사람이 만나서 기쁨을 누리며 하나가
되어 샬롬- 평화를 이루어 내야 할 땅입니다 .
이곳에서 세계 삼대 종교의 예언자들이 거닐고 설교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희망의 메세지가 선포된 영원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들려오는듯 합니다.
이리가 새끼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사자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풀을 뜯고 어린이가 그들을 인도할 것입니다.
자료출처:KVC
사진-예루살렘 성전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