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시대의 산물이고 시대에 따라서 변천한다. 기독교 초기는 기독론, 중세기는 성령론, 종교개혁기에는 구원론, 현대는 교회론, 종말론 또는 선교론이 시대의 주요 관심사항이다. 특히 요즈음에는 선교적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에 펼쳐지는 현장의 삶을 어떻게 적용시키는가 하는 것이 신학의 과제이다.
그러므로 시대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난 역사에서 보여준 경험을 해석, 연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행 15장에 선교지 안디옥에서 생긴 이방인의 교회 편입에 따른 신학적 논쟁이 예루살렘에서 있었다. 앤드슨(Anderson)은 선교신학을 “기독교신앙에 입각하여 세계 선교의 동기, 방법, 정책 그리고 목표를 결정짓는 기본원리와 전제조건에 대한 연구”라고 했다. 그러므로 선교신학의 관심은 선교의 근거, 선교의 동기, 선교의 목표에 있으며, 이에 근거하여 선교의 문제점들을 함께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들에 대한 구원의 약속과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 특별히 창세기 3장 15절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인류가 구원을 얻게 하시는 선교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한다. 나아가 하나님은 모세와 다윗을 통하여 약속을 실현해 나갔으며, 선지서를 통하여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낸다. 특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방의 빛(사42:6, 49:6)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는 구약 성경에 나타난 선교신학의 뿌리가 된다.
신약에서의 선교는 삶의 현존이며, 미래지향적이다. 예수님은 보내심을 받은 자로 이 땅에 오셨으며,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사역이 본격화 된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의 선교명령과 사도들의 선교사역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선교는 그리스도가 보내심을 받은 것같이 우리를 보내시는 선교의 대명령 위에 서 있다.
교회의 궁극적 사명인 선교는 미래의 목표이며, 오늘의 삶의 해결점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자신의 남은 사역을 땅 끝까지 전하도록 사명을 주셨다. 이는 바로 교회의 사명이며, 우리 성도들의 과업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신구약 성경에 그 뿌리를 두고, 거기서 우리가 수행해야 할 사명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주변에서 신학적 뿌리가 없는 사역으로 말미암아 좌절하거나 방황하는 일을 자주 본다. 바른 신학은 오늘날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소명이 무엇인가를 바로 가르쳐 줄 것이다.
안재은 목사(GMS 정책위원장)
사진- 이르쿠츠크 노회주최 성경학교- 지도자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이르쿠츠크 전역에서 온 학생들-
뒷줄 중앙에 미하일 목사님과 이 선교사 얼굴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