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this page
조회 수 283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더 이상 찾지 못할때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들을
훈련시키시는 것을 보라.
외부의 군중들이 아닌
제자들은 갈피를 못잡았다.
제자들은 언제나 주님께 질문했고
주님은 언제나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이 임하신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 오스왈드 챔버스


+ 우리 머리속의 복잡한 질문들,
유혹, 실망, 질병, 상실, 깨어짐 등...
이 모든 것들을 통과하기까지
주님은 우리를 전적으로
홀로 두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찾지 못할 때,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주님께서 드러내실 겁니다.
지금 우리는 오직 주님과 함께 입니까?
아님 다른 문제들에 둘러싸여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상태입니까? +


한몸기도에서-


선교지에 나온 자만이 선교 현장에서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선교사로 지원한 자는 선교 현장에서 물러서면 안 된다. 전쟁터에서 일선 지휘관이 물러서게 되면 결국 전쟁에 지고 만다. 선교는 결국 선교사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물론 배후에서 후원과 지원이 필수적이다. 선교에 관한 모든 지휘는 성령께서 하신다.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현자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를 믿고 존중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직접 선교 현장으로 다시 달려 나가야 할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일선에 선 지휘관이 중요하다. 언제부턴가 선교사로 나갔다가 한국에 상주하고 있는 자들을 선교사라고 부르는 일이 많아졌다.
이들은 과거 경력을 들어 자신이 아직도(?) 선교사이기 때문에 현장 선교사들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행세한다. 어떤 선교회는 사무원으로 일하게 된 자매를 선교사라고 부른다.
2년 간 단기 선교사로 나갔다 오면 직업에 관계없이 평생(?) 선교사라고 지칭하는 선교단체도 있다. 그래도 선교사를 좋게 보는 한국 교회 문화가 대단한 것 같다.

존경하는 K목사님은 선교회장을 20년 이상 맡아오고 있다. 선교지 방문도 수없이 하고 교단 선교국장도 하셨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을 가리켜 선교사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기도 선교사로 나가고 싶었지만 가족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씀하신다.

신앙인이라면 자신이 사용하는 용어에 대해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선교”와 “전도”의 정의가 무엇인가. 오랫동안 국외 사역을 “선교”라 하고 국내 사역을 “전도”라고 불러 왔다.
그런데 선교사 세계를 접고 10년 이상 한국에 머물면서 선교사로 불러 주기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선교 현장을 다시 나가 일선에서 사역하면 자연히 선교사가 될 것이 아닌가.

운동선수들이 국가 대표로 외국에 원정갈 때만 태극 마크를 달게 된다. 그래서 외국 원정을 나가기 전에 창단식을 하고 외국을 다녀온 후에 해단식을 한다.
선교사 세계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어려운 선교지를 지키고 있는 선교사에게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을까. 심지어 국외와 국내에 번갈아가며 거주하는 자도 있다. 사사오입을 대입하더라도 한국에 6개월 이상 머무는 자는 국내 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어떤 목적으로 사는가가 중요하다.

어떤 이유로 선교지에 왔는가도 중요하다. 자기가 소속한 교회조차 선교사라고 부르지 않고 있는데 선교지에서 선교사라고 부르는 것은 모순이다.
선교사라는 용어가 더이상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 여행 가이드가 전문직이면서도 굳이 선교사로 자처하는 자도 있다. 더욱이 독신으로 나이든 것이 부담되어서인지 너도나도 선교사란 말을 선호하는 예도 있다. 선교사란 말이 개인을 꾸미는 악세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선교사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대신 선교사가 되기 원하면 최소한의 절차를 밟고 파송받은 곳이 있어야 한다. 현지에 도착 후 먼저 와 있는 목사 선교사나 지역 연합회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필요할 땐 지휘를 받아야 한다.
이런 선교지 질서를 외면한 채 자신을 가리켜 어느 지역 선교사라고 한다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보낸 교회와 자신과의 관계가 맺어져 있더라도 객관성을 거쳐 선교사의 직부를 보장받은 것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 가운데 자기가 아는 사람만 선교사로 인정하는 드는 예가 많이 있다. 회사가 직원을 뽑을 때도 서류와 면접으로 판정을 하는데 왜 교회는 이처럼 까다로워야 할까. 선교 단체도 문턱이 높은 편이다. 이제부터라도 선교사를 존중하는 사회를 건설하자. 선교사 지원자나 현장 선교사를 존중할 때 선교지가 밝아지고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까이에서부터 질서를 회복하고 하나되는 운동을 펴야 한다. 특히 선교를 위해 보냄받은 자라면 현지에서 더욱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선교의 주체는 성령이시다. 성령의 지시, 성령의 감동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령의 사람이 될 때 선교사로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에 순종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음지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박수를 보낸다.


사진설명- 4년에 한번씩 열리는 이르쿠츠크 침례교노회 장소를 찾아가 먹거리와 예수 영화
DVD를 선물했다. 식사시간에 우리가 가져온 것도 같이 차렸다. 사라 선교사의 모습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