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지 않을 부활의 몸

by 이재섭 posted Apr 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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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 15:50~15:58 · 관련찬송 : 134,135,136 ·


1. 시작하는 말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 부활장은 여러 부분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오늘 교독한 본문의 주제는 죽음에 대한 영원한 승리로 그 결론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이 가르치는 부활을 육체는 멸하나 영혼은 멸하지 않는다고 하는 영혼 불멸이나, 현재의 육체로 다시 살아난다고 하는 육의 부활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소생이나 환생 등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상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의 부활은 인간 자체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 속에 내주하신 성령을 통해 우리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11에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라고 했습니다.




2. 천국 유업을 받을 수 없는 혈과 육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천국은 현재와 같은 육의 몸으로는 받을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아담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우리의 육의 몸은 썩을 것이요, 욕된 것이요, 약한 것이므로 부활한 다음에 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미 죽어서 썩어 버린 몸으로는 썩지 않은 영원한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살아 있든 죽어 있든 간에, 현재의 우리의 몸은 천국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신령한 세계인 천국에서 살아가기에 적합하도록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와 같이 썩어 없어질 특성을 가진 육의 몸으로 부활한다거나 소생한다거나 환생한다거나 하는 등의 사상은 성경의 교훈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영혼은 아예 죽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영혼 불멸 사상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받는다고 하는 기독교의 부활 사상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3. 종국적인 대 부활 사건

바울 사도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 때에 살아 있는 성도이든 죽어 있는 성도이든 간에,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야만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변화는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요한 웨슬리는 “이는 전능자의 놀라우신 솜씨”라고 하였습니다.

전능자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솜씨에 의한 변화는 먼저 죽은 자들에게서 발생하고, 그 다음에 살아 있는 우리에게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52절에 보면,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부활의 몸, 또는 산 채로 변화되는 몸을 가리켜 ‘신령한 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거나 변화되는 것을 옷입는 것에 비유해서 표현한 것이 바로 53절입니다.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즉,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을 입게 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을 입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는 옷을 바꾸어 입어도 사람은 그대로 인 것처럼, 썩고 죽을 몸이 썩지 않고 죽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어도 자아는 동일한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우리가 영원히 썩지 않고 멸하지 않는 자아가 될 때에, 비로소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예언은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라는 것입니다. 이 이사야 25:8을, 바울 사도는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라고 의역해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사망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도들이 변화되거나 부활될 때, 완전히 멸망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6에 보면,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엄청나고도 놀라운 영적 진리를 깨달은 바울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당하게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죽음에 대한 영원한 승리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죽음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그러나 부활 승천하신 주님과 영적으로 연합한 성도들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죽음에 대한 영원한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기서 부활 승천하신 주님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죽음은 이미 죽음이 아니라, 부활 승천의 전환점일 뿐입니다.

마귀의 결정적 무기인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지만, 우리 주님은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셨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13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라고 했습니다.




4. 죽음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바울 사도는 멸망에 이르는 죽음에 대한 영원한 승리의 원동력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흔히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승리의 사건이라고 합니다. 얼른 들으면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것은 패배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실, 죽어야 할 이유나 조건이 전혀 없는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원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신 것은 정말로 놀랍고도 멋진 승리입니다. 골로새서 2:15에 보면,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의 승리에 대한 확증인 것입니다. 이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승리는, 믿음으로 주님과 연합한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공유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부활 신앙을 가졌다면, 세상 사람들처럼 죽음 앞에 두려워 떠는 생활이 아니라,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 사도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라고 간곡하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으시고, 확고부동한 부활 신앙으로 죽음을 이긴 자의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죽음과 함께 사라질 세상적이며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탐욕이 아니라, 죽음의 선을 넘어 영원히 소유될 위엣 것을 추구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마귀의 유혹의 빌미가 될 썩어 없어질 세상 보화나 세상 명예나 세상 권세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기자는 119:56에서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라고 고백하였고,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1:20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수고는 결코 헛될 수 없습니다.




5. 맺음말

해마다 부활절을 맞아 예배드리고 요란한 행사를 한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을 믿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부활 소망을 말한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 두려워 떨며 슬픔 속에 산다고 하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죄 아래 있던 우리를 위해 속죄의 제물이 되시고,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썩어 없어질 육적 이기심을 좇아 세상 것들을 추구하며 산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망의 쏘는 것인 죄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죄의 권능인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기 위해 속죄 제물이 되셨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이제 죽음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부활 소망과 천국 소망을 확고히 붙잡고,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최세창 목사 2010.03.29 c3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