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주의 종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본문: 창15:1-6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의 원리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세상은 그러한 우리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적당하게 타협하며 살라고 담콤한 속삭임으로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음성을 거절하며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좁은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때때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낙심한자와 눌린자를 위로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어떤 방법으로 위로하시는가를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의 위로와 영적인 재충전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방패가 되어주심으로 위로하셨습니다(1절a).
하나님께서는 이상(異常/vision)중에 아브라함(아브람은 아브라함의 옛이름)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두려움의 배경을 창세기 14장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만의 패권을 쥐고 있던 엘람의 왕은 그돌라오멜이었습니다(14:1). 그런데 그돌라오멜에게 조공을 바치던 소돔왕을 포함한 다섯 왕이 반역하자 그돌라오멜은 동맹군을 이끌고 이들 다섯 나라를 격파합니다. 그 결과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이 탈취당하고 그 가운데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14:11,12).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아넬, 에스골, 마므레 세 형제와 동맹을 맺고 평소에 집에서 훈련시킨 삼백십팔명의 군사로 그돌라오멜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포로된 자들을 다시 회복합니다(14:15,16).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가장 강력한 패권국의 맹주인 그돌라오멜의 적이 된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마음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아브라함을 아시고 직접 찾아오셔서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을 도전하는 그돌라오멜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경제문제입니까? 아니면 복잡한 인간관계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이러한 두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하시거나 그 두려움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라고 말씀하십니다. 방패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다윗도 시편18편을 통해 주님과의 관계를 노래하는 중에 '주는 나의 방패'라고 고백합니다. 그돌라오멜과 같은 적이 호시탐탐 나를 노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삶을 아시고 나의 삶에 개입하여 방패가 되어주신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아브람의 방패되신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방패도 되십니다.
2. 상급이 되어주심으로 위로해주십니다(1절b).
‘상급’이라는 단어는 ‘보상’, 또는 ‘임금’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원래는 전쟁의 용병들에게 대가로 지불하는 임금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상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을까요? 아브라함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멜기세덱의 축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린 사건입니다(14:19,20). 십일조는 교회가 임의로 제정한 제도가 아니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의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하나는 소돔왕의 영접을 받은 것입니다. 소돔왕은 노획물은 아브라함이 취하고 사람만 보내라고 말합니다(14:21). 원래 전쟁에서 승리하여 취한 사람과 노회물은 승리한자에게 귀속됩니다. 그런데 소돔왕은 사람만 보내라고 말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 어느 것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당신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고 할 셈이냐? 내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당신이 물질로 권세를 부린다 할지라도 나는 당신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14:23절). 이는 아브라함의 신앙의 자존심이었습니다. 또한 소돔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는 세속주의,인본주의, 사탄주의를 대변할 만큼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소돔왕과 관계를 맺는다면 나중에 소돔왕의 청탁을 거절할 만한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왜 소돔왕의 왕궁과 자신의 장막이 비교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물질적인 면에서 손해가 있다하여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신앙의 결단을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과 원리를 따른 경제논리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물질의 헌신에 아브라함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내 삶을 도와주시고 내 삶의 상급이 되어주신다면 주님 외에 더 좋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겸허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아브라함의 관계가 여기에서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복이 이땅에서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계산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내세에 영생의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막10:29-30). 우리는 이 땅에서 성공의 여부를 판가름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계산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히11:24-25). 모세가 이와 같이 애굽의 보화를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상주시는 이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히11:26). 우리도 이 땅의 나그네로서 아브라함이 겪은 두려움과 갈등을 동일하게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찾아오시고 위로하시며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마음깊이 신뢰할때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당당하게 이 시대를 이끌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3. 후손의 언약을 주심으로 위로하십니다(4,5절).
하나님께서 75세된 아브라함을 부르신 후에 후손을 약속해 주실 때까지는 적어도 10년의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다메섹에서 산 노예의 태생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우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잊혀졌던 후손에 대한 약속을 그의 마음속에 다시 심어주셨습니다. 셀 수 없는 밤하늘의 별과 같이 자손을 번성케 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의 마음에 다시 새겨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아시고 다시 꿈을 가지라고 도전하십니다. 혈통의 자손과 믿음의 자손을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새로남 교회에 다음세대를 향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다음세대들이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되는 은혜가 있게 될 것을 믿고 바라봅시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우리의 삶과 우리 교회에 아름답게 이루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성전건축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 하나입니다. 목표는 하나님의 자녀를 복음의 은혜로 이땅에 충만케하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고 이땅에 주님의 복음을 펼칠때에 우리의 주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심으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마28:19-20)
아브라함은 “내가 너의 방패와 상급이 되어주며 너의 후손을 책임져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두가지 태도를 갖습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6절).
‘믿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멘’입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아브라함에게 주신 믿음을 우리에게도 선물로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 삶과 신앙의 핵심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그리고 승리와 축복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우리도 나의 미래를 맡기면 주님께서 책임지시고 열어가실 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믿을 때 약속에 신실하신 주님께서 주님의 방법대로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했습니다. 이는 믿음의 자손이요. 동시에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두려움과 고통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을지라도 하늘을 바라보며 주님의 위로를 체험한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담대함을 얻어 승리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 된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받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종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좁은길을 감사함으로 걸어가는 저희들의 마음과 환경을 알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실천하다가 만나게 되는 삶의 외로움과 비난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고 담대하게 받아드리게 하옵소서!
아브람의 방패와 상급이 되신 하나님!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도 동일한 능력이 되어 주옵소서! 주님과 교회사랑 때문에 가지는 마음의 긴장과 흐르는 눈물을 기억해 주옵소서!
(자료출처: 새로남교회 오정호목사)
본문: 창15:1-6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의 원리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세상은 그러한 우리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적당하게 타협하며 살라고 담콤한 속삭임으로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음성을 거절하며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좁은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때때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낙심한자와 눌린자를 위로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어떤 방법으로 위로하시는가를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의 위로와 영적인 재충전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방패가 되어주심으로 위로하셨습니다(1절a).
하나님께서는 이상(異常/vision)중에 아브라함(아브람은 아브라함의 옛이름)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두려움의 배경을 창세기 14장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만의 패권을 쥐고 있던 엘람의 왕은 그돌라오멜이었습니다(14:1). 그런데 그돌라오멜에게 조공을 바치던 소돔왕을 포함한 다섯 왕이 반역하자 그돌라오멜은 동맹군을 이끌고 이들 다섯 나라를 격파합니다. 그 결과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이 탈취당하고 그 가운데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14:11,12).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아넬, 에스골, 마므레 세 형제와 동맹을 맺고 평소에 집에서 훈련시킨 삼백십팔명의 군사로 그돌라오멜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포로된 자들을 다시 회복합니다(14:15,16).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가장 강력한 패권국의 맹주인 그돌라오멜의 적이 된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마음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아브라함을 아시고 직접 찾아오셔서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을 도전하는 그돌라오멜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경제문제입니까? 아니면 복잡한 인간관계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이러한 두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하시거나 그 두려움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라고 말씀하십니다. 방패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다윗도 시편18편을 통해 주님과의 관계를 노래하는 중에 '주는 나의 방패'라고 고백합니다. 그돌라오멜과 같은 적이 호시탐탐 나를 노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삶을 아시고 나의 삶에 개입하여 방패가 되어주신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아브람의 방패되신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방패도 되십니다.
2. 상급이 되어주심으로 위로해주십니다(1절b).
‘상급’이라는 단어는 ‘보상’, 또는 ‘임금’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원래는 전쟁의 용병들에게 대가로 지불하는 임금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상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을까요? 아브라함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멜기세덱의 축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린 사건입니다(14:19,20). 십일조는 교회가 임의로 제정한 제도가 아니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의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하나는 소돔왕의 영접을 받은 것입니다. 소돔왕은 노획물은 아브라함이 취하고 사람만 보내라고 말합니다(14:21). 원래 전쟁에서 승리하여 취한 사람과 노회물은 승리한자에게 귀속됩니다. 그런데 소돔왕은 사람만 보내라고 말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 어느 것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당신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고 할 셈이냐? 내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당신이 물질로 권세를 부린다 할지라도 나는 당신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14:23절). 이는 아브라함의 신앙의 자존심이었습니다. 또한 소돔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는 세속주의,인본주의, 사탄주의를 대변할 만큼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소돔왕과 관계를 맺는다면 나중에 소돔왕의 청탁을 거절할 만한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왜 소돔왕의 왕궁과 자신의 장막이 비교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물질적인 면에서 손해가 있다하여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신앙의 결단을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과 원리를 따른 경제논리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물질의 헌신에 아브라함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내 삶을 도와주시고 내 삶의 상급이 되어주신다면 주님 외에 더 좋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겸허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아브라함의 관계가 여기에서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복이 이땅에서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계산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내세에 영생의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막10:29-30). 우리는 이 땅에서 성공의 여부를 판가름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계산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히11:24-25). 모세가 이와 같이 애굽의 보화를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상주시는 이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히11:26). 우리도 이 땅의 나그네로서 아브라함이 겪은 두려움과 갈등을 동일하게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찾아오시고 위로하시며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마음깊이 신뢰할때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당당하게 이 시대를 이끌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3. 후손의 언약을 주심으로 위로하십니다(4,5절).
하나님께서 75세된 아브라함을 부르신 후에 후손을 약속해 주실 때까지는 적어도 10년의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다메섹에서 산 노예의 태생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우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잊혀졌던 후손에 대한 약속을 그의 마음속에 다시 심어주셨습니다. 셀 수 없는 밤하늘의 별과 같이 자손을 번성케 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의 마음에 다시 새겨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아시고 다시 꿈을 가지라고 도전하십니다. 혈통의 자손과 믿음의 자손을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새로남 교회에 다음세대를 향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다음세대들이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되는 은혜가 있게 될 것을 믿고 바라봅시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우리의 삶과 우리 교회에 아름답게 이루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성전건축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 하나입니다. 목표는 하나님의 자녀를 복음의 은혜로 이땅에 충만케하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고 이땅에 주님의 복음을 펼칠때에 우리의 주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심으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마28:19-20)
아브라함은 “내가 너의 방패와 상급이 되어주며 너의 후손을 책임져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두가지 태도를 갖습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6절).
‘믿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멘’입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아브라함에게 주신 믿음을 우리에게도 선물로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 삶과 신앙의 핵심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그리고 승리와 축복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우리도 나의 미래를 맡기면 주님께서 책임지시고 열어가실 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믿을 때 약속에 신실하신 주님께서 주님의 방법대로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했습니다. 이는 믿음의 자손이요. 동시에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두려움과 고통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을지라도 하늘을 바라보며 주님의 위로를 체험한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담대함을 얻어 승리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 된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받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종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좁은길을 감사함으로 걸어가는 저희들의 마음과 환경을 알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실천하다가 만나게 되는 삶의 외로움과 비난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고 담대하게 받아드리게 하옵소서!
아브람의 방패와 상급이 되신 하나님!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도 동일한 능력이 되어 주옵소서! 주님과 교회사랑 때문에 가지는 마음의 긴장과 흐르는 눈물을 기억해 주옵소서!
(자료출처: 새로남교회 오정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