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의 선택( 룻기 1장 1-18절 )

by 이재섭 posted Oct 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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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의 선택

룻기 1장 1-18절


오늘날 이 세상에는 거대한 세력이 활동하고 있읍니다. 한 세력은 모든 것을 파괴시키려고 하고 반면에 다른 세력은 그것들을 다시 회복시키려고 합니다. 죄는 파괴자이지만 예수 그 리스도는 건축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이 회복되기를 필요로 하고 있 읍니다. 그들의 삶과 기정은 파괴되었고 일자리는 불안정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허물어져 버릴 듯 하게 보입니다. 그들온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재정적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타락해 가고 있읍니다. 구약성경의 룻기에서 우리는 두 과부의 오습을 생생하게 팔 수 있는데_하나는 젊고 다론 하나는 늙은 -그?의 삶은 하나님의 뜻하심 안에서 다시 회복될 수 있었고 행복과 만족을 찾게 되었읍 니다. 룻기 I장에서 모든 것은 퇴락하였읍니다. 나오미와 그 가족들 은 몇? 실수를 범하게 되었읍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이와 잔은 실수를 냄합니다. l장은 ?어 내려가다 보면, 나오미와그의 가족 들이 행한 첫번째 실수와 그 실수를 하게 된 까당을 볼 수 있읍 니다.
룻기 1장 I-5절은 그의 가족들의 첫번째 실수를 보여 주고 있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문제들로부터 도망하고자 하였읍니 다. 베들레? -유다는 기근을 당하였읍니다. 나오미와 그녀의 남 펀과 두 아들은 기근과 다른 문제들을 피하고자 짐을 싸서 모압 으로 갔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입에서 더 큰 문제들에 직면합 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깨 대한 자신의 블순종을 은례시키고자 했 는데 그것이 바로 두번째 실수였읍니다(s~ I8절). 그녀는 두 자 부를 그들의 집으로 돌려 보내고자 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합 께 베들레?에 가서 그녀가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것의 증인이 될 까 두라워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그녀는 문제들을 피해 도망하 였읍니다. 두번째는 죄를 은폐하여 숨기고자 하였습니다.

나오미의 세번째 실수는 I 9절에서부터 22절에 기록되어 있읍 니다. 그녀는 하나럼을 원망하였옵러다. 룻은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으로 돌아왔읍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괴로운 여자이었읍 니다. [나오미]란 이름은 '회락'이라는 뜻이 있읍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 모든 희락이 떠나가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녀는 H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o절)고 말했읍니다. [마라]라 는 이름은 H괴로움n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악취를 막기 위해 사용했던 몰약과 같은 어원에서 온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자신의 삶을 파괴시키기 원한다면 이와 같은세가 지 실수들을 범하십시오. 문제들로부터 도망하고, 당신의 불순종 을 은폐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이 세가지 방 법을 취하신다면 당신의 삶은 틀림없이 타락하기 시작할 것이라 고 나는 확신할 수 있읍니다. 기근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했읍니다. 이 가족들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의뢰하는 대신 짐을 챙겨 모압으로 가는 길을 택하였 읍니다. 그들은 문제에 직면하기보다 그 문제들로부터 피할 것을 문제들에서 피할 수 없다
결정하였읍니다. 왜 사람들이 그들의 문제들포부터 도망하고자 할까요 ? 이에대 해 몇 가지 가능한 이유들을 추측해 보기로 하쌌읍니다.

l. 믿음으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는 생활
이 기정의 문제들로부터 도망한 이유 증의 하나는 그들이 믿음으 로가 아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압 에서의 삶과 베들레?에서의 삶을 오직인간적인 관점으로서만 비 교하는 실수를 범했읍니다. 베들레?에서 오직 굶주림과 고통만 을 보았던 그들의 눈에 모압은 ?부함의 땅으로비겼읍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들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었읍니다. 모압 은 이방 땅이요, 모압 사람들은 거짓 신들을 숭배하였읍니다. 그 리고 그들온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원수들이었읍니다. 하나님은 신 명기 2s장 s절에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 게 속한 자는 십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 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들은 근친상간 행위의 결과로 얻은 롯의 후손들이었읍니다(창세기 19 : so~s8). 롯이 소돔에서 구출되 었을 때, 그와 그의 딸들은 동굴에서 살았읍니다. 그리 딸들은 아 비에게 술이 취하게 한 후 그와 동침하였읍니다. 여인들에 게 서 태어난 아들들이 암몬과 모압의 조상이 되었고, 이 나라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가 되었읍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엘 리멜렉과 그의 가족은 집을 떠나 원수에게 의존하며 함께 살고자 모압으로 갔던 것입니다.
베들레헴이란 이름은 '떡집'이란 의미가 있읍니다. 유다는'찬 양'으로 번역될 수 있는 반면 에브라다는 '수확이 많음' 이란 의미가 있읍니다. 베들레헴은 베들레헴-에브라다 라고 불리웠읍니 다. 이 기정이 수획이 많은 떡집'에서 본 것은 오직 기근과 메 마름뿐이었읍니다. 불평의 소리는 '찬양'의 땅에 가득찼읍니다. 엘리멜렉은 나오미에게 이렇게 말했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일은 바로 떠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보이는 것만을 따라 살고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이 러한 곤란한 상황은 당신에게 절망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며 도망하는 것만이 가장 최선의 해결책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들은 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을까요? 하니님께서 는 율법을 통해, 만일 자신의 백성이 자기를 순종한다편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셨읍니다. 신명기 28장을 통해 우리는 기근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연단임을 압니다. 만일 그분의 백성들이 하니님께 온전히 순종한다면 하나님은 곡식과비 와 햇및 즉 그들에 게 펄요한 모든 것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읍니다. 백성들은 기근시에 도망하는 대신, 하나님 ?에 엎 드려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고 그분의 용서를 구했어야 했읍니다. 당신이 믿음으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기를 시작한 다면 딩신은 모든 어려움을 이기도록 도움을 주실 하나님을 의지 하는 대신, 문제와 죄들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곤 란한 상황을 빠져나갈 쉬운 길을 찾기 시작할 것입니다.

2. 영이 아닌 육을 위한 생활
사람들이 문제들로부터 피해 도망하는 두?째 이.e-는 그들이 영 적인 것보다는 육신적인 것을 위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우선 살아야 합니다 ! '라고 하며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곳에서 ?족하고 만족한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도리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굶주리기를 원합니다.
사단이 예수께 가져온 첫번째 시험은 영과 육 사이에서의 선택 이었읍니다. 우리 주님은 광t베서 금식하시며 사십 일을 보내셨 읍니다. 그분은 몹시 주리셨읍니다. 사단은 실지로 그분께 이떻게 말했읍니다. '그대는 굶주볐으니 이 돌들로 떡딩이가 되게 하시오.' 만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자신의 아들에게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면 예수께서는 그떻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예수께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으셨읍니다. 예수 께서는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 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태복음 4: 4)고 답변하셨읍니 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 밖에서 자신의 필요를 채움받을 수 있는 그 시험에 미흑당하지 않으셨읍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사럼은 우선 살고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 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야 한디는 것이 진리인 반면 그 대가가 무 엇이든 상관없이 오직 살아야만 한다고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 다. 하니님의 뜻을 떠나서 삶의 모든 안릭을 얻기보다는 하나님 의 뜻 안에서 가난하고 주러게 되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더 ?읍니다. 이것이 바로 에서가 범한 실수이었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에게 주신 장차권을 경흘히 여겼읍니다. 에서는 사냥하러 들로 나 갔다가 시장하여 집으로 돌아왔읍니다. 그때 마침 야곱이 맛있 는 팥죽을 쑤고 있었고 그는 그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리고 말았읍니다. 그는 그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생 각하기에 앞서 육신의 욕구를 채우기에 바빴읍니다.
만일 당신이 영적인 것보다 육적인 요구를 앞세우기 시작한다 면 당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당신 에게 있?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된 삶인데, 하니님의 뜻 안에서 삶의 안정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러인 일보다 육적인 일을 더 먼저 앞세우셨다 면 일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 만일 그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보다 자신의 안일과 기쁨만을 엄두에 두셨디면 오늘날 우리는 어 디에 속하게 되었겠읍니까 ?

3. 주님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생활
사람들이 그들의 문제들로부터 도망하는 실수를 범하는 세번째 이 유는 그들이 주님을 위해 살기보다는 세상을 위짜 살고 있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들의 통치하던 때에'(룻기 I : I) 라고 기록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사사기는 '왕이 없 는n 시대의 상황을 기록한 것임을 알았읍니다. 적어도 네 번을 우리는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l7: 6/ 18 : 1 / l9: I/ 21 : 25)라고 기록된 구절을 발견할 수 있읍니다. 또 두 번에 걸쳐 u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 은 대로 행하였더라u(21 : 25/I7' S)는 구절을 찾아볼 수 있읍 니다. 나오미와 그의 가족들은 무질서의 시대 속에서 살았읍니다. 그 시대의 인기 있는 구호는 '모든 사람은 자기 소견대로 행하고 있 다 ! 왜 우리가 못하==는가? '라고 하는 것이었읍니다.그러나 사 실 모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간 것은 아니었읍니다. 보아스 는 모압으로 가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가 있던 자리에 머물러 있 었고 하니님은 후에 그를 사용하셔서 나오미와 룻을 건지셨읍니 다.
베들레?에서의 상황이 어렵게 되었을 때, 들온 세 가지 잘못된 결정을 내?읍니다.
(l) 그들온 베들레?을 떠날 결정을 내?읍니다.
(2) 그들온 모압으로 가기로 결정했읍니다.
(3) 엘리멜렉이 죽은 후 나오미는 그의 두 아들들이 모압 여인과 결흔하도록 허락하였읍니다. 에스라 9장 I절과 느헤미야 I3장 1절에서 당신은 에스라와 느 헤미야 두 사람이 다 이스라엘 나라 밖의 여인과 결흔한 유대인 에 대해 책망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문제는/사람들이 거역하는 마음과 태도를 갖고 세상을 본받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문제들로부터 도망가기 시 작할 때 당신은 주님을 위하지 않고 세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변명 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기의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합니 다.

4. 문제의 근원에 대한 무지
사람들이 그들의 문제로부터 도망하는 네번째 이유는 그들 자신의 마음, 즉 문제의 참된 근원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 오미와 엘리멜렉과 그들의 두 아들이 모압으로 내려갈 때 그들온 그들의 문제까지도 같이 가지고 갔읍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 었을까요 ? 그들의 마음은 영적으로 되보하고 있었읍니다. 문제 는 그들 자신이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보다도 더 나은 일을 스스로 행할 수 있고, 또 자신의 삶도 스스로 영위 하며 조종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젠간한 마음을 갖고 있었읍니 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읍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마음에 있읍니다. 우리는 환경을 탓하고 또 하나님을 탓 하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을 추적해 보면 탓해야 할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 을 의심하였고 말?에 불순종하였으며 하나님의 뜻 대신에 세상 과 육신을 우선적으로 따랐읍니다. 그리고 도망갈 수 있다고 생 각탑니다. 그러나 하니섬의 말씀은 당신이 도망갈 때 당신와 죄된 마음이 당신을 도망가도록 허용했다닌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읍 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도망칠 수 없는 이유이며, 당신이 도 망할 때 문제를 확대시키는 이유입니다. 당신이 새로운 장소에,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있게 될 수 있읍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 히 옛날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므로똑같은실수 를 여전히 되풀이하게 될 것입니다. 에머슨 (RaIph WRldo Em. ergon) 은 지리적인 변화가 성격의 결함을 결코 보충하지 뭇할 것이 라고 말하곤 했읍니다.
나오미와 그의 가족은 떼들레?에서 모압까지 약 80 kn'? 여 행을 하였읍니다. 그 여행은 그들을 하나님의 뜻 밖으로 멀리 떼 어 놓았읍니다. 그들은 잠시동안만 모압에서 살기로 작정했을 것 입니다. 그러나 Io년을 그곳에서 머물랐읍니다. 모든 것은 퇴색 해 버리고 말았읍니다. ?성한 열매를 맺던 모압의 밭들은 나오 미의 남핀과 두 아들의 매장지로 변했읍니다. 소망을 갖는 대신 나오미는 소망 없는 여인이 되고 말았읍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고 향으로 돌아가게 하고자 이 가족을 연단시키셔야만 했읍니다. 이 것은 결코 하나님을 대항해 거역한 것에 대한 대가가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나오미는 아직도 그녀가 받고 있는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읍니다. 우리는 그녀가 또 다른 실수를 범하는 모습 을 봅니다. 그녀는 그녀의 죄를 은폐시키려고 했고 다른 사람을 탓하였읍니다. 히브리서 I2장 1l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 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니오미는 도망하기를 멈추고 하나님의 연단에 순종하기를 배워야 만 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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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가 가진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하나님을 믿었으나 잘못된 신앙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오미의 가정은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었습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가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남편의 이름은 엘리멜렉(하나님은 왕이시다.) 나오미(은혜스러운 자, 사랑스러운 자) 말론(연약한 자, 병약한자) 기론(사모하는 자) 라는 뜻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이라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베들레헴은 미가 선지자가 예언하기를 메시아가 탄생하신다는 곳으로 매우 의미가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고대하며 기다려 왔던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특히 베들레헴이라는 곳이 떡집으로도 유명하고, 먹을 것도 풍부한 곳인데도 흉년으로 인해 고통스러웠습니다.
왜 이 땅에 흉년이 들었을까요?
하나님은 까닭 없이 자신이 세우신 기업의 땅을 징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를 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와 그의 가정은 흉년이 들어 삶의 어려움이 다가왔을 때 하나님 앞에서 뜻을 발견한다거나 깊이 있는 기도도 한 번 하지 않고 너무 쉽게 고향을 떠나 모압으로 갔습니다. 모압이라는 땅은 가나안 동편에 있는데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땅입니다. 이 땅은 초목이 무성한 넓은 들판입니다.
아마 나오미의 가정이 모압 땅에 살았어도 자신의 동족을 멀리 떠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주변에 르우벤 지파가 모여서 살고 있었으며 그 근처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정착지로 정했을 것입니다. 또 멀리 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가는 것과 같은 두려운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땅을 떠나서 살았다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었습니다. 이들은 떠나서는 안될 거룩한 땅을 떠나 버렸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떠나 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모압이라는 땅을 선택하였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고 난 후 나오미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하여 아들들을 결혼시키기로 했는데 자신의 동족 중에서 자부를 맞이하지 않고 모압 땅에 사는 이방인을 자부로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갓 결혼한 두 아들들도 끝내 죽어 버리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였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이곳에 정착하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남은 것은 이제 자신의 몸과 외로움, 쓸쓸함 뿐이었습니다. 가족들도 물질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고통의 삶이었습니다. 무엇이 나오미의 가정을 이처럼 고통스럽게 하였습니까?
그가 가진 잘못된 신앙관 때문입니다. 그의 잘못된 신앙은 무엇일까요?

1. 영적 문제보다 육신적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당장에 먹을 양식과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방 나라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기근의 날이 있다면 풍족한 날도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지도 아니했으며 참을성도 없이 즉각 떠나 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바로 살아야 하는 가치관보다는 육신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는 일을 더 중요시하였던 것입니다. 나오미는 만약에 내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내 신앙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장에 배고픈데, 당장에 사업이 안되는데 라는 생각에는 골몰하면서도 이러한 것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내 삶이 끝나는 날에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인가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결정하려 할 때 조급하며 서두려는데 이처럼 조급한 결정은 실수를 동반하기 쉽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한 사람들은
육신의 문제가 영의 문제보다 앞서게 되며 자신의 마음의 중심이나 가정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자신과 가족의 영적인 가치관을 흔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일시적인 생활이 나오미로 하여금 고통의 굴레에 빠지게 하였고 이 고통은 자신에게 있어서 죽음의 고통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적으로 가려는 도피적인 삶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취해야 할 해결의 방법이 결코 아닙니다. 도피적인 삶의 결과는 잠시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풍요로운 삶을 바라보았으나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오미의 가정을 볼 때 하나님 앞에서의 도피적인 생활은 결코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비관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에도 소망의 메시지가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6절에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 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여기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 하사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 라는 소식이 들려지자 나오미는 한 가닥의 희망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신다는 소식은 그 동안 지은 죄들을 용서받는 소망의 소식입니다. 그리고 양식을 주신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살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복된 소식입니다.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이 새로운 소식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된 소식 들려지는데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멈칫거리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옳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복된 소식을 들을 때에 멈칫거려서는 안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러한 소식이 들려질 때에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이 권고의 기간에 내가 그 동안 잘못 결정해서 일어난 지난날의 모든 잘못들을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와야 할 적절한 시기입니다.
이제 나오미는 돌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331장♪ ③ 나 죄에 매여 고달파 이제 옵니다. 주 크신 사랑 받고자 주여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2. 하나님 뜻보다 인간의 현실적 문제를 더 생각하였습니다.

나오미는 이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문제로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자부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데리고 갈 것인가? 아니면 두고 갈 것인가? 나오미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두 자부를 자기들의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기 혼자 갈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11절에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이처럼 두 자부를 두고 가려는 나오미의 선택은 또 다른 실수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제시한 선택은 인간적으로 볼 때는 제도와 관습에 매여서 자식도 없이 과부로서 평생을 살아야 가야 하는 불행한 삶보다는 그 굴레를 벗어 줌으로서 자유를 주고 또 재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려는 시어머니 입장으로서의 생각은 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는 매우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돌려보낸다는 것은 단순히 고향 땅에 머물게 하려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지녀 왔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버리고 다시 옛날 우상을 섬기던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입니다. 15절에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선택의 길목에 서서 두 자부에게 권면하려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에 의해서 제시한 것입니다. 나오미의 선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혼이 잘되게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육신적인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도 육신적인 선택을 하는 부모들이 종종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자녀들을 향해 “교회는 어른이 되어서 나가도 되니 지금은 공부나 열심히 해라” 좋은 학교로 진학시키려는 부모의 생각은 어떻게 보면 자녀들의 장래를 생각해 주는 지혜로운 선택 같습니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한 자녀들의 이성과 판단력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신앙의 상태로 굳어지고 형성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하나님 없는 인생으로 살아간다면 그들의 영혼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려 하십니까? 나중에 장성하여 가정을 다스리며 사회인으로 살아 갈 그 때에 영적인 문제와 신앙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권면 하시렵니까? 그렇다면 이미 불신자로 형성된 그들이 돌아오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자녀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불신자의 길을 걸어가는 그때에 부모로서의 영향이 얼마나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때도 내 자녀가 지금과 같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고 따를까요? 갈수록 자기의 개념이 강하게 형성되는 신세대 자녀들 앞에서 연로한 부모의 영향은 지극히 미미할 것입니다.? 내가 믿으니 따라서 믿겠지 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입니다.(성도의 가정을 심방 해보면 내 자녀들이 신앙이 없어서 고민입니다. -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돌아오겠지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는가? 부모가 지금까지 잘못하고서는 이제 와서 하나님의 뜻에 맡겨 두려고 하는가?)
부모가 자신의 경건한 모습을 최선을 다해 보여줘도 자녀는 부모의 경건성을 50%밖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내가 적당하게 살아가므로 나의 경건성을 50%밖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내 자녀는 몇%를 받아들일까요? 말씀 앞에서 내 모습을 생각해도 부끄러운데 만약 내 자녀가 내 모습의 20%밖에 본받지 못한다면 그 자녀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3. 회복되어지는 나오미의 신앙

나오미는 자기 자신이 비참하게 된 원인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제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누구 앞에서라도 더 이상 변명할 형편도 처지도 못되었습니다. 나오미는 낭패와 실망을 당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된 신앙을 깨닫게 되었고 신앙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잃어버린 자신의 신앙은 10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의 수 없는 역경과 고난을 당한 뒤에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 330장 ②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자유와 기쁨 맛보려고 주께로 옵니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오미는 비로소 무엇을 깨닫게 되었습니까?
① 나오미는 하나님만이 나를 선대 하신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8)
히브리인들은 축복을 좋아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축복하시고 지키신다”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여호와는 너를 시온에서 축복 하시오며” 라는 성경 구절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즉 이 말은 주께서 나를 선대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때로 역경속에서도 주께서 당신을 선대 하신다고 말하면 비웃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도 그렇게 말합니다. 포도나무가 말라죽었고, 무화과도 말라죽었고, 양도 죽었으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때에 주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선대 하신다고?.... 그래서 영적으로 방임하기 쉬운 것입니다.
사실 나오미는 이 문제를 만나기 전까지는 약속의 땅보다 이방인의 땅을 더 의지하였고, 남편만 있으면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하였으며, 또 건장한 아들이 두 명이나 있었으니 마음이 든든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었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소망이라고는 가질 수가 없는 환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절망할 이때에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나를 선대 하시오며”라고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비록 지금까지 바르게 살지 못하여 수 없는 시간동안 아픔으로 살아왔으나 이제 내가 여호와께로 나아간다면 그분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선대하시며, 나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밑바닥의 인생을 살아왔으나 이제 하나님은 고통의 긴 터널에서도 나를 구원하시고 건져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② 나오미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있어야 할 자리는 베들레헴이었습니다. 선민들이 있어야할 자리는 베들레헴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던 그 자리로 나오미는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인데, 떡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의 떡, 생명의 떡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요6:48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떡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란 뉘우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 먼 이국땅으로 갔으나 결국 회개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나의 고집, 나의 생각, 나의 주관으로 살아왔으나 이제 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무디어진 영적 상태를 바로잡고 말씀 앞에 바로 서기 위하여 돌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이방인의 객이 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의 선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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