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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남 목사(온천제일교회)

제목 : 신앙생활의 정도(正道)
본문 : 요 6:66~71, 행 20:28


항성인 태양의 주위를 도는 행성들은 정확하게 궤도를 따라 운행합니다. 바다의 선박이나 하늘의 항공기는 그것들이 통행하는 해로와 공로인 항로를 따라 운항합니다. 기차가 철길로만 달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각종경기엔 경기규칙이 있듯이 정치인에겐 정치철학, 경영자에겐 경영철학, 목회자에겐 목회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인생에겐 인생살이의 법도가 있는 법이며 성도에겐 신앙생활의 정도가 있는 것이므로 이 궤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요합니다.

나의 생애는 한 번만 전개되므로 회한이 쌓인 실패한 인생이 되지 않겠금 살아야 하고 종교는 지고지선한 것이로되 자칫 중심을 잃고 궤도를 벗어나면 최악의 궁지에 빠질 수 있기에 더욱 정도를 걸음이 중요합니다. 현모양처가 무개성하나 남편과 자녀들에겐 최고의 여성, 최선의 주부이며 그 가정으로선 가장 안정성 있는 이상적 주부상이듯이 정도를 걸음은 인생살이나 신앙생활에서 너무 일상적이므로 지극히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것처럼 여겨지나 사실은 개성적이며 파격적인 경우보다 훨씬 안정감 있고 덕성스러운 법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어떤 면에서 고지식하다 할 정도로 인생의 삶에서나 신앙생활, 목회생활에서 정도를 걸으며 정석을 놓으려는 입장입니다. 순리와 상식, 논리성과 합리성, 신앙면과 윤리면에서 일탈하는 행위란 옳지 않으며 양심에 어긋나며 신앙에 맞지 않고 무책임하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정도를 걸음이란 어떤 입장에 서는 경우를 말함인지 몇 가지로 새겨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유일신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숭앙하는 종교입니다. 십계명 중 제일계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있게 말라는 것입니다.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의 유형적 표현이 인성을 취하여 세상에 오신 성자(聖子) 예수님이며 누구든지 신인(神人)이신 그를 나의 구주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백하고 영접하면 구원받습니다. 이런 확신과 감동과 희열은 보혜사 성령님이 내 안에 임하사 거하시며 항상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내 안에 영접한 그 순간부터 자아가 왕 노릇하던 자리에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주로 모시고 나는 그 수하의 신민이요 하인으로 자처하며 사는 삶을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롬 14:7, 8에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한 것처럼 주님이 내 삶의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엔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찬양함만 있을 뿐입니다. 고전 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으며 엡 1장에선 성부의 예정과 성자의 구속과 성령의 인침이 모두 성삼위를 찬미케 하려 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바울 선생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인생의 행복보다 우선시 했고 사람을 기쁘게 함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는 빌 1:20, 21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또 살전 2:4에서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했고 갈 1:10에서는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존귀케 하고 그 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는 하나님께 영광돌림이 자신의 행복 추구나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려는 입장에 앞서는 것입니다. 마치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중세의 지구중심 세계관에서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아간다는 태양 중심의 세계관으로 사고의 전환을 가져 왔듯이 코펠닉스적 삶의 전환을 가지는 게 신앙생활의 출발점인줄 인식해야 합니다.


2. 성경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입장입니다. 중세의 암흑과 미몽으로부터 벗어나는 두 가지 흐름 중 르네상스는 인문주의 운동으로서 이성의 자유, 개성의 해방 등을 추구했다면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주장하므로 제도 우선, 전통 우선에서 성경 우선, 말씀 우선으로 전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개혁신앙이란 교회도 신학도 오류를 범할 수 있으나 성경은 무오하므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라고 성경의 권위에 호소하여 항상 성경대로 바로 잡아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때의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듯이 우리의 신앙생활도 성경이 가는 만큼 나도 가고 성경이 멈추면 나도 멈추어야 합니다. 주경 신학자 박윤선 목사가 강조했듯이 계시의존사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은 성경보다 이성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진화론과 창조론이 마주칠 때 교육받은 자기지성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면 진보주의, 자유주의자가 되고 맙니다. 사람들이 신비주의자가 되는 것은 성경보다 체험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주관적 체험은 객관적이며 보편타당한 진리로서 성경의 검증을 통해서만 인정되며 그 사실의 공인은 교회가 하게 됩니다. 성경에 부합되지 않는 체험은 탈선이며 성경에 있는 체험은 새 계시가 아니므로 새 계시를 받았다 함은 거짓입니다. 사람들이 세속주의자가 되는 것은 성경보다 정욕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약 1:15의 말씀처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말씀의 통제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금령을 벗어나 자행자지 하게 됨이 세속주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반드시 성경의 원칙에 따라야 하고 성경의 권위에 순응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성장과 부흥도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했다(행 6:7), 흥왕했다(12:24),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19:20)하므로 말씀으로 이루어진 말씀의 부흥을 말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말씀의 원칙을 벗어날 때 이는 궤도 이탈입니다. 교의 신학자요 변증학자인 박형룡 목사가 성경원전의 축자영감설에 그렇게 집착했던 까닭도 이것만이 교회의 신앙을 바로 지키는 첩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신학은 성경위에 서 있고 교회는 신학체계가 그 성격과 승패를 가름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경에 비추어 내가 얼마나 틀렸고 얼마나 빗나갔는지를 바로 알아 교정하므로 원위치를 회복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벧후 3:15, 16의 말씀대로 성경을 자의대로 무리하게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며 그보다는 교회의 도움과 지도를 받아 성경을 이해토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캐논(canon)이란 말 그대로 척도로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조 제1조의 표현대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인 것입니다. 버나드 램의 표현대로 하면 성경은 카돌릭의 경우 신앙의 제일 기준이지만 보수적 개신교의 입장에선 신앙의 유일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서도 성경의 권위에 호소해야 하고 성경이란 이정표(guide post)를 따라가야 합니다.


3. 교회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교회공동체를 통해 그 실체가 인정되고 모든 것이 표현됩니다. 교회는 행 20:28 말씀대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기관이며 엡 4:15, 16과 고전 12:27 말씀대로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이며 딤전 3:15 말씀대로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를 세우고자 성자 예수께서 속죄 피를 흘리셨고 그 일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들로 이루어졌고 세상 끝 날까지 교회가 할 일은 예배와 교육과 친교와 봉사와 선교입니다. 만유 주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고 말씀의 교육을 통해 훈련받고 형제자매로서 성도의 교제를 강화하고 주님 정신 받들어 힘써 봉사하고 하늘나라 확장을 위해 열심히 전도함인 것입니다.

부름 받은 성도의 공동체로서 교회가 아직은 불완전하고 흠과 결함이 많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그의 몸이요 신부로서 끔찍히 사랑하시며 또한 이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려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창 1장과 2장에서 남녀를 창조하사 복을 주시므로 가정을 직접 만드셨고 신약의 행 1장과 2장에서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를 직접 세우사 복음 선교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표방하는 어떤 단체도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비교되거나 버금가는 권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이란 교회를 중심해야 하고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교회를 이탈하여 새로운 교회가 세워지는 경우는 - 선교적 차원에서 정상적으로 분리하여 주는 경우가 아니면 - 성경에 대한 기본입장과 주요해석이 다른 경우일 때입니다.

하지만 이단(αιקεσις)은 당파(sect)란 뜻을 가지며 이는 교회의 가르침과 달리 잘못된 교훈을 따르며 그 교회의 지도를 벗어나 당을 짓는 경우이기에 우리 교단의 헌법에는 이단과 불법 분리시 면직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권징조례 제6장 42조). 특히 그 행위가 교리를 방해하려하여 전력으로 다른 사람을 권유하려 했을 때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목사의 교회도 장로의 교회도 아닌 주님의 교회요 성도들의 교회이기에 공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특정한 사람을 중심한 집단은 사설단체이며 심지어 교회를 표방한다 해도 사교회(私敎會)로서 교회의 성격이 매우 약합니다. 교회는 특정개인에 따라 세워지고 폐쇄되는 그런 단체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여기 서 있는 장목사도 일정한 기간 지 교회를 섬기라고 보냄 받은 사환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공교회(共敎會)의 성격이 분명하고 성경의 가르침이 바르며 신본주의가 확실하면 가장 신앙생활의 안정성이 확보되어 정도를 걸음이 됩니다.

하지만 교회의 지도를 벗어나 특정집단의 다른 복음이나 특정개인의 은사 집회 등에 심취한 나머지 서로 권유하고 무리를 지을 때 이는 정상적 궤도를 이탈하여 빗나가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이견과 벽을 만들므로 교회의 확대며 연장인 복음 선교에 의한 천국확장의 전열을 혼란케 하며 교제를 가로막는 애찬의 암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와 우리 가정이 지극히 정상적이며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함에 교회의 지도를 벗어나지 않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전국 교회 지도자 여러분!

청교도들은 예배의 순결, 교리의 순결, 생활의 순결을 강조했습니다. 과연 우리들도 하나님께 향하여 예배의 순결, 말씀에 입각하여 교리의 순결, 교회의 지체로서 생활의 순결을 주장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은 인본주의를 극복한 신본주의 신앙생활을 말함이요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은 주관주의를 극복한 성경주의 신앙생활을 말함이요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은 당파중심을 극복한 공회중심 신앙생활을 말함입니다.

웨스터민스터 대소요리문답은 둘 다 제1문답이 사람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위함(Soli Deo Gloria)은 개혁교회 신앙과 신학의 중심사상입니다. 곧 신본주의 신앙인 것입니다.

또한 요 6:68, 69에서 너희도 가려느냐는 주님 말씀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표적 때문에(요 6:2), 떡 때문에(요 6:26) 예수를 좇던 무리들이 장시간 말씀만 강론하시니 어렵다고 투덜대면서 다 돌아갔을 때(요 6:60, 66) 주님이 물으셨고 베드로가 답한 것으로 말씀이 있고 주님이 계시면 떠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곧 말씀중심, 주님중심의 신앙인 것입니다. 이 신앙이야말로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입니다. 여기서 사회생활은 6일 동안 가정과 직업전선 등 세상에서 천국확장에 직접 간접으로 기여하는 삶을 뜻합니다.

저는 성직자로서, 지교회 담임목사로서 저 개인적 욕구가 이것저것 있어도 하나님과 성경과 교회에 맞는가 생각하여 늘 자제합니다. 나의 작은 실수가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할까.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적용함이 될까, 교회에 손상을 주고 성도를 실족케 할까 하여서입니다. 만일 사람들 기분과 감정에 맞추고 인기에 영합하여 원칙과 기준이 없는 채 행동, 처신하고 교인들 삶의 균형과 조화를 깨뜨려 가정, 교회, 사회에서의 정상적 신앙생활을 저해한다면 진리가 자유케 함이 무엇이며 복음의 효용성이 무엇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능률만을 위주한 장사꾼이 아니며 여론만을 따르는 정치꾼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교회를 지도하고 말씀을 외치고 천국을 확장해야 할 입장이므로 지금까지 그런 자세로 일해오고 있습니다. 제게는 가정이 정말 중요하지만 하나님보다 우선하지 않습니다. 성경보다, 교회보다 우선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성경과 교회에 매인 몸이라는 말입니다. 나의 할 일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엡 4:11~12).

그러므로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 중심으로, 교회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여 신앙생활의 정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하 27:6에 “요담이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고 한 말씀대로 정도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사 계속 강화시켜 주시며 결국 승리케 해 주십니다.

[제4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둘째날 저녁예배 설교 전문]

www.kidok.com 2008년 05월 02일 (금)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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