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 김용실 목사
제목 :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본문 : 출애굽기 3:1~5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크게 두 가지 일로 기억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사람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여 준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모세가 40년을 애굽에서 교육받고 40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생활 한 후 나이가 80세가 되었을 때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애굽으로 파송되어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자가 된다는 부름의 내용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모세에게 명령하신 말씀은 발의 신을 벗으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모세는 신을 벗었으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모세는 신을 벗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은 모세의 신을 벗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의 시작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을 벗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향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출발점이 두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나이 40세가 될 때입니다. 애굽에서 높은 학문을 터득하고, 또 체격이 튼튼하고 모든 자격을 다 갖추었을 때 밖에 나가 이스라엘 사람과 애굽 사람이 다투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동족에 대한 사랑이 있었던 모세는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밭에 묻어 두었습니다. 다음 날 나가보니 이스라엘 사람끼리 다투고 있는데 모세가 그들에게 만류하면서 “왜 너희는 이렇게 하느냐? 동족이 아니냐? 동족끼리 왜 이렇게 싸우느냐?” 하면서 만류할 때에 그 중에 보다 더 힘세고 보다 더 악한 자가 하는 말이 “네가 어제 애굽인을 죽이더니 오늘은 나를 죽이려고 그러느냐” 하자 모세는 자기가 사람을 죽인 사실이 탄로난 사실을 알고 도망쳐 간 기사가 나옵니다. 그 때에 분명한 모습이 아니지만 모세는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의 고초를 제거하고 싶은 마음이 간곡했습니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애쓴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40년의 세월이 경과한 뒤에 넓은 광야에서 양과 더불어 세월을 보내는 가운데 나이도 늙고, 모세는 수백 번 자기의 동족을 더 생각하고, 수 백 번 자기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체념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다시금 부르셔서 애굽으로 보내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때 모세는 두려워하면서 도저히 자기가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면서 여러 번 거절하였지만, 기어코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자로 삼아 주신 사실입니다. 나이 40이 될 때에 나서고자 하였지만 거부를 당하였습니다. 나이 80세가 될 때 나서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기어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입니다.
신이라는 것은 사람의 신분을 가리켜 말합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에 그의 발에 신을 신겼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다시 아들의 위치를 회복시켜주시는 사실로 생각합니다.
발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성경말씀 가운데 어떤 때는 슬픔을 표시했습니다. 에스겔서 24장 17절에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혹은 계약을 맺을 때 발에서 신을 벗었습니다. 룻기 4장 7절에 보면, 보아스가 룻을 취할 때 보아스보다 선택권이 있는 그 사람이 자기의 발에 신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넘겨준 그 사실이 있습니다. 또 발에서 신을 벗긴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불명예스럽게 모욕하는 그런 자세가 됩니다. 신명기 25장 10절에 보면 자기의 의무를 감당치 못한 사람의 발에서 신을 벗기라, 그리고 그 집안을 가리켜서 신을 벗기운 자의 집안이라 칭한다고 하는 그런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모세가 큰 인물로서 나서갈 때에,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하는 이것이 그 때의 모세에게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며, 위대한 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모세에게 어떤 자격을 교훈해주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큰 인물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를 갖습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자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불꽃 가운데 바라볼 때에 모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가득 찼습니다. 그 두려운 심령을 자기의 발에서 신을 벗은 것으로 표현한 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 설 때 누구나 다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자기의 두려움을 표시하는 방법이 바로 발에 신을 벗는 방법이었습니다. 계시록 22장 8절에 보면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엄숙한 임재와 계시를 받아보았을 때 두려워서 자기에게 계시해주었던 분 앞에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한국말에 두려워한다는 말이 있고, 무서워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닌 줄 생각합니다. 예컨대, 우리의 가정에서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무서워한다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동시에 그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성도의 가장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우리가 지극히 하나님을 두려워 할 때 세상의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에 가운데에 하나님이 없을 때에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경제 문제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건강 문제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가정 문제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회 문제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임재하실 때 세상의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한 분 하나님만 두려워한다는 것, 인간이 참으로 강하게 될 수 있는 근원이 됩니다.
둘째, 자신을 철저히 부정하는 자세로 신을 벗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모세가 신을 벗었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부정의 자세였습니다. 모세는 참으로 많은 자격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높은 학문을 터득한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굉장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발에 신을 벗는 것은 자기의 모든 자격을 다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자세였습니다.
이사야서 6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하나님의 크신 임재를 바라볼 때에 자기도 알지 못하게 외치기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외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크신 임재를 대할 때에 사람은 두려워하고 그 다음에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5장에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을 만나 뵈었을 때에 맨 처음에 그는 단순히 주님이 일반 선생인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설교를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에 가서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는 물론 이적을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말씀이니까, “네, 그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체면을 보아서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하고 깊은 데에 가서 그물을 내렸었는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한 배에 고기가 가득히 찼습니다. 그 다음에 친구에게 반을 나누어 주니 두 배에 또한 가득히 찼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볼 때 베드로의 마음속에 이 분이 보통분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선생이여”라고 말씀했습니다만, 이번에는 “주여”라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주’라는 것은 신성의 대명사입니다. 그 다음에 하는 말이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확인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느낄 때 자기를 부정하게 됩니다.
모세가 자기 발의 신을 벗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자세였습니다. 자기의 가진 모든 재능이나 모든 지식이나 모든 자기의 조건을 다 내던져 버리고 맨발로 주 앞에 섰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 설 때에 어떻게 우리 자신을 부정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까? 철저히 자기를 부정할 때 철저히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모세는 도저히 자기 자신이 못한다는 사실을 말하며 거듭거듭 사양했지만, 하나님은 기어코 모세를 불러내셔서 그를 애굽에 보내시면서 출애굽의 지도자로 사용했습니다.
요한복은 12장 24절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처럼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부정할 때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다닐 때에 요단 들판에서 엘리야가 승천해서 하늘로 올라갔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엘리사는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면서 자기 옷을 찢은 사실이 있습니다. 자기의 옷을 찢는 것은 자기 부정의 자세였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종으로 위대한 이적을 많이 행하고 , 지금 승천해서 올라가는 스승의 모습을 바라볼 때에 자기는 너무나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옷을 그냥 찢게 됩니다. 그 때에 엘리야의 옷이 내려와서 엘리사에게 덮였고 엘리야의 권능이 임하였고, 엘리야를 계승하여 엘리사가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나를 찢을 때에 하나님의 권능이 임합니다. 내가 나를 부정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로마서 8장 31절 이하의 말씀 가운데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하리요 환난이나 적신이나 곤고나 위험이나 칼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아무 것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자에게 임하게 됩니다.
셋째, 신은 벗어야 하나님의 권능 받습니다.
끝으로, 발에서 신을 벗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발의 신을 벗었을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의 능력을 부정하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의 권능이 그에게 임하셔서 지팡이가 뱀이 되고 다시 지팡이가 되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게 됩니다.
우리가 자세히 모세의 성경을 읽어볼 때 모세는 위대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했습니다. 예컨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열 번 반복하는 재앙이 내려왔습니다. 강물이 피가 되었습니다. 이가 번창했습니다. 파리가 나왔습니다. 어두움이 있었습니다. 장자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볼 때에 모세 자신이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전부가 다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이었지 모세 자신의 힘을 가지고 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가 출애굽 한 후에 애굽 군대가 따라 왔습니다. 뒤에 바로의 군대가 따라오고 있습니다. 앞에는 홍해 바다가 놓여 있습니다. 백성은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하는 말이 “가만히 있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라”고 명하였습니다. 드디어 모세가 지팡이를 가지고 바다를 가리킬 때에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게 됩니다.
이것 역시 모세가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광야를 갈 때에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와서 백성을 먹여주었고,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서 마시게 해주었고,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그들로 하여금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자세히 볼 때에 하나도 모세가 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셨고, 하나님께서 물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자기의 발의 신을 벗을 때에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자기를 포기한 자에게 주어집니다. 세상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이 다릅니다. 세상 방법은 뭔가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믿음으로 무엇이든 하려고 할 때 할 수 있는 여건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엘리사가 도단성에 있을 때에 아람군대가 쳐들어 와서 엘리사의 신변의 포위했습니다. 엘리사 곁에 있던 종은 대단히 두려워했습니다. 무서운 군대가 자기의 신변에 가득히 에워싸고 있으니 그야말로 절대 절명이었습니다. 그 때에 엘리사는 태연자약했습니다. 엘리사가 기도하는 말이 “하나님이여 이 사환의 눈을 밝게 해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의 종의 눈이 밝아져 놀라운 광경이 보였습니다. 저 아래에 있는 아람의 군대와 엘리사의 중간에 아람의 군대를 능가하는 하늘의 군대가 임하여 와서 엘리사의 신변을 첩첩히 에워싸고 있습니다. 하늘의 불병거가 임하여 있습니다. 하늘의 군대가 있습니다. 사환은 환경만 바라보고 겁을 먹었지만, 엘리사는 하늘의 군대를 바라보니 아무런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다와 합하여 모압을 치러 갈 때 넓은 광야에서 물이 없습니다. 그 때에 그들은 다 두려워했습니다. 여기서 엘리사가 왔습니다. 엘리사가 하는 말이, “여기에 바람소리도 없고 빗소리도 없지만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도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반석을 쳐서 반석에서 물이 나와서 온 백성이 다 먹고 마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언제나 우리 주변 가운데 가득히 차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발에서 신을 벗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크신 권능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발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 갖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에 세상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둘째, 밭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자세입니다. 내 자신을 부정할 때 하나님의 권능을 받습니다. 셋째, 내 능력을 접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내 권능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하나님의 큰 능력을 받게 됩니다.
목사 장로 기도회에 참석한 여러분, 이 시간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시는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들리기를 바랍니다. 모세의 삶을 풍요롭게 하시려고 주셨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시는 음성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는 우리에게 “너는 나의 종이 되어라. 나를 위해서 살아라. 지금껏 너 스스로 살아온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너의 인생의 경영권을 내게 맡겨라. 그리하면 너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고, 너의 좌절을 승리로 바꾸어주마. 지금껏 너 혼자 살아왔지만 나를 위해 사는 후회 없는 값진 인생이 되도록 만들어주마.”라고 하시는 음성이 이제는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비전에 붙들려 날마다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나라 확장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해 남은 생애를 더 가치 있게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년 4월 28일
제4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개회예배 설교 전문]
www.kidok.com 2008년 04월 29일 (화) 기독신문
제목 :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본문 : 출애굽기 3:1~5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크게 두 가지 일로 기억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사람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여 준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모세가 40년을 애굽에서 교육받고 40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생활 한 후 나이가 80세가 되었을 때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애굽으로 파송되어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자가 된다는 부름의 내용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모세에게 명령하신 말씀은 발의 신을 벗으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모세는 신을 벗었으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모세는 신을 벗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은 모세의 신을 벗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의 시작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을 벗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향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출발점이 두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나이 40세가 될 때입니다. 애굽에서 높은 학문을 터득하고, 또 체격이 튼튼하고 모든 자격을 다 갖추었을 때 밖에 나가 이스라엘 사람과 애굽 사람이 다투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동족에 대한 사랑이 있었던 모세는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밭에 묻어 두었습니다. 다음 날 나가보니 이스라엘 사람끼리 다투고 있는데 모세가 그들에게 만류하면서 “왜 너희는 이렇게 하느냐? 동족이 아니냐? 동족끼리 왜 이렇게 싸우느냐?” 하면서 만류할 때에 그 중에 보다 더 힘세고 보다 더 악한 자가 하는 말이 “네가 어제 애굽인을 죽이더니 오늘은 나를 죽이려고 그러느냐” 하자 모세는 자기가 사람을 죽인 사실이 탄로난 사실을 알고 도망쳐 간 기사가 나옵니다. 그 때에 분명한 모습이 아니지만 모세는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의 고초를 제거하고 싶은 마음이 간곡했습니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애쓴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40년의 세월이 경과한 뒤에 넓은 광야에서 양과 더불어 세월을 보내는 가운데 나이도 늙고, 모세는 수백 번 자기의 동족을 더 생각하고, 수 백 번 자기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체념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다시금 부르셔서 애굽으로 보내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때 모세는 두려워하면서 도저히 자기가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면서 여러 번 거절하였지만, 기어코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자로 삼아 주신 사실입니다. 나이 40이 될 때에 나서고자 하였지만 거부를 당하였습니다. 나이 80세가 될 때 나서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기어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입니다.
신이라는 것은 사람의 신분을 가리켜 말합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에 그의 발에 신을 신겼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다시 아들의 위치를 회복시켜주시는 사실로 생각합니다.
발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성경말씀 가운데 어떤 때는 슬픔을 표시했습니다. 에스겔서 24장 17절에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혹은 계약을 맺을 때 발에서 신을 벗었습니다. 룻기 4장 7절에 보면, 보아스가 룻을 취할 때 보아스보다 선택권이 있는 그 사람이 자기의 발에 신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넘겨준 그 사실이 있습니다. 또 발에서 신을 벗긴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불명예스럽게 모욕하는 그런 자세가 됩니다. 신명기 25장 10절에 보면 자기의 의무를 감당치 못한 사람의 발에서 신을 벗기라, 그리고 그 집안을 가리켜서 신을 벗기운 자의 집안이라 칭한다고 하는 그런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모세가 큰 인물로서 나서갈 때에,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하는 이것이 그 때의 모세에게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며, 위대한 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모세에게 어떤 자격을 교훈해주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큰 인물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를 갖습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자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불꽃 가운데 바라볼 때에 모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가득 찼습니다. 그 두려운 심령을 자기의 발에서 신을 벗은 것으로 표현한 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 설 때 누구나 다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자기의 두려움을 표시하는 방법이 바로 발에 신을 벗는 방법이었습니다. 계시록 22장 8절에 보면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엄숙한 임재와 계시를 받아보았을 때 두려워서 자기에게 계시해주었던 분 앞에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한국말에 두려워한다는 말이 있고, 무서워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닌 줄 생각합니다. 예컨대, 우리의 가정에서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무서워한다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동시에 그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성도의 가장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우리가 지극히 하나님을 두려워 할 때 세상의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에 가운데에 하나님이 없을 때에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경제 문제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건강 문제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가정 문제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회 문제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임재하실 때 세상의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한 분 하나님만 두려워한다는 것, 인간이 참으로 강하게 될 수 있는 근원이 됩니다.
둘째, 자신을 철저히 부정하는 자세로 신을 벗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모세가 신을 벗었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부정의 자세였습니다. 모세는 참으로 많은 자격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높은 학문을 터득한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굉장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발에 신을 벗는 것은 자기의 모든 자격을 다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자세였습니다.
이사야서 6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하나님의 크신 임재를 바라볼 때에 자기도 알지 못하게 외치기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외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크신 임재를 대할 때에 사람은 두려워하고 그 다음에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5장에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을 만나 뵈었을 때에 맨 처음에 그는 단순히 주님이 일반 선생인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설교를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에 가서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는 물론 이적을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말씀이니까, “네, 그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체면을 보아서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하고 깊은 데에 가서 그물을 내렸었는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한 배에 고기가 가득히 찼습니다. 그 다음에 친구에게 반을 나누어 주니 두 배에 또한 가득히 찼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볼 때 베드로의 마음속에 이 분이 보통분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선생이여”라고 말씀했습니다만, 이번에는 “주여”라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주’라는 것은 신성의 대명사입니다. 그 다음에 하는 말이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확인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느낄 때 자기를 부정하게 됩니다.
모세가 자기 발의 신을 벗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자세였습니다. 자기의 가진 모든 재능이나 모든 지식이나 모든 자기의 조건을 다 내던져 버리고 맨발로 주 앞에 섰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 설 때에 어떻게 우리 자신을 부정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까? 철저히 자기를 부정할 때 철저히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모세는 도저히 자기 자신이 못한다는 사실을 말하며 거듭거듭 사양했지만, 하나님은 기어코 모세를 불러내셔서 그를 애굽에 보내시면서 출애굽의 지도자로 사용했습니다.
요한복은 12장 24절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처럼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부정할 때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다닐 때에 요단 들판에서 엘리야가 승천해서 하늘로 올라갔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엘리사는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면서 자기 옷을 찢은 사실이 있습니다. 자기의 옷을 찢는 것은 자기 부정의 자세였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종으로 위대한 이적을 많이 행하고 , 지금 승천해서 올라가는 스승의 모습을 바라볼 때에 자기는 너무나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옷을 그냥 찢게 됩니다. 그 때에 엘리야의 옷이 내려와서 엘리사에게 덮였고 엘리야의 권능이 임하였고, 엘리야를 계승하여 엘리사가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나를 찢을 때에 하나님의 권능이 임합니다. 내가 나를 부정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로마서 8장 31절 이하의 말씀 가운데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하리요 환난이나 적신이나 곤고나 위험이나 칼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아무 것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자에게 임하게 됩니다.
셋째, 신은 벗어야 하나님의 권능 받습니다.
끝으로, 발에서 신을 벗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발의 신을 벗었을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의 능력을 부정하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의 권능이 그에게 임하셔서 지팡이가 뱀이 되고 다시 지팡이가 되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게 됩니다.
우리가 자세히 모세의 성경을 읽어볼 때 모세는 위대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했습니다. 예컨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열 번 반복하는 재앙이 내려왔습니다. 강물이 피가 되었습니다. 이가 번창했습니다. 파리가 나왔습니다. 어두움이 있었습니다. 장자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볼 때에 모세 자신이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전부가 다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이었지 모세 자신의 힘을 가지고 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가 출애굽 한 후에 애굽 군대가 따라 왔습니다. 뒤에 바로의 군대가 따라오고 있습니다. 앞에는 홍해 바다가 놓여 있습니다. 백성은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하는 말이 “가만히 있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라”고 명하였습니다. 드디어 모세가 지팡이를 가지고 바다를 가리킬 때에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게 됩니다.
이것 역시 모세가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광야를 갈 때에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와서 백성을 먹여주었고,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서 마시게 해주었고,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그들로 하여금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자세히 볼 때에 하나도 모세가 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셨고, 하나님께서 물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자기의 발의 신을 벗을 때에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자기를 포기한 자에게 주어집니다. 세상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이 다릅니다. 세상 방법은 뭔가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믿음으로 무엇이든 하려고 할 때 할 수 있는 여건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엘리사가 도단성에 있을 때에 아람군대가 쳐들어 와서 엘리사의 신변의 포위했습니다. 엘리사 곁에 있던 종은 대단히 두려워했습니다. 무서운 군대가 자기의 신변에 가득히 에워싸고 있으니 그야말로 절대 절명이었습니다. 그 때에 엘리사는 태연자약했습니다. 엘리사가 기도하는 말이 “하나님이여 이 사환의 눈을 밝게 해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의 종의 눈이 밝아져 놀라운 광경이 보였습니다. 저 아래에 있는 아람의 군대와 엘리사의 중간에 아람의 군대를 능가하는 하늘의 군대가 임하여 와서 엘리사의 신변을 첩첩히 에워싸고 있습니다. 하늘의 불병거가 임하여 있습니다. 하늘의 군대가 있습니다. 사환은 환경만 바라보고 겁을 먹었지만, 엘리사는 하늘의 군대를 바라보니 아무런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다와 합하여 모압을 치러 갈 때 넓은 광야에서 물이 없습니다. 그 때에 그들은 다 두려워했습니다. 여기서 엘리사가 왔습니다. 엘리사가 하는 말이, “여기에 바람소리도 없고 빗소리도 없지만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도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반석을 쳐서 반석에서 물이 나와서 온 백성이 다 먹고 마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언제나 우리 주변 가운데 가득히 차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발에서 신을 벗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크신 권능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발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 갖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에 세상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둘째, 밭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자세입니다. 내 자신을 부정할 때 하나님의 권능을 받습니다. 셋째, 내 능력을 접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내 권능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하나님의 큰 능력을 받게 됩니다.
목사 장로 기도회에 참석한 여러분, 이 시간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시는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들리기를 바랍니다. 모세의 삶을 풍요롭게 하시려고 주셨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시는 음성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는 우리에게 “너는 나의 종이 되어라. 나를 위해서 살아라. 지금껏 너 스스로 살아온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너의 인생의 경영권을 내게 맡겨라. 그리하면 너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고, 너의 좌절을 승리로 바꾸어주마. 지금껏 너 혼자 살아왔지만 나를 위해 사는 후회 없는 값진 인생이 되도록 만들어주마.”라고 하시는 음성이 이제는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비전에 붙들려 날마다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나라 확장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해 남은 생애를 더 가치 있게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년 4월 28일
제4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개회예배 설교 전문]
www.kidok.com 2008년 04월 29일 (화) 기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