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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되, 당신들 안에 있는 소망을 설명해 주기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을 방어하기 위한 준비를 늘 갖춤으로, 당신들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구별하시오.” (벧전 3:15)

캐롤이라는 한 자매가 비행기에 오릅니다. 그녀는 힌두교도 정도로 여겼던 터어빈을 쓴 옆 좌석의 남자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대화 중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기독교를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전제(premises)들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노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녀는 그 전제들이 적힌 공책을 그로부터 전달 받았습니다. 그녀가 그 공책에서 읽은 첫 번째 전제는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그것이 어떻게 믿음을 위한 전제가 될 수 있느냐고 묻자 라비라 이름하는 형제는 자신이 성경을 읽고 처음부터 그 부활에 관한 사실을 진리로 받아 들일 수 있었노라 밝힙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그리스도로 이끌었노라 밝힙니다. 그는 자신이 믿어져야 하는 것이 있다면 잘 믿는 사람이라 말하면서 논리를 구성하기 위한 필요한 진리를 믿기 보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경험적 진리를 자신을 믿는다고 밝힙니다.

그는 1+3=4라는 것이 진리이기 보다 체계를 세우기 위한 필요한 전제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인데 자신은 필요한 전제들의 연합이 “그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역사상 경험되어진 것을 진리로 믿는데 주저함이 없다고 밝힙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에게 좀 더 넓게 받아들여진 전제가 일부의 사람들이 지닌 전제보다 더 낫다라고 볼 수 없다고 밝힙니다 [i].
이번 주 조선일보 신문에 죽어가는 별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내용은 사멸하는 별이 그 무게 때문에 은하의 중심부에 모여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동안의 전제였는데, 천체망원경의 발달로 살펴본 결과 오히려 사멸하는 별들이 은하의 외부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포착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넓게 받아들여진 전제가 경험적 사실에 의해 수정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중요한 예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기를 두려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죄와 사망,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영생에 대해서 말할 때 객관적 전제로서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복음은 믿는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진리요, 결코 객관적이지 않기에 합리적 설명으로 상대를 납득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스스로의 전제 때문일 것입니다. 부활과 영생은 기존의 전제들로서는 결코 납득시킬 수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명합니다. “당신 안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명하여 방어하기 위한 준비를 늘 갖춤으로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서 구별하라.” 내 안에 진리로 담고 있는 복음을 밝히라는 것입니다.

전도에 대한 논의에 앞서,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안에 소망이 있는 줄 알게 될까요?
우리에게 그들이 예상치 못하는 선함과 흔들림 없는 의로움이 있을 때입니다. 그들은 그 때 묻습니다. “어떻게 너는 이렇게 행동할 수 있냐? 대단하다.” 인도네시아의 예리코 소녀의 심장수술을 위해 성도들이 힘을 합쳐 1000만원을 보냈을 때, “왜 당신들은 이렇게 큰 돈을 전혀 알지 못하는 한 소녀를 위해 보내는 것이요?”라는 모슬렘 병원 관계자들의 물음이 가능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 자연스러운 물음에 우리는 기꺼이 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주님이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이유에 대해 답하는 것은 심지어 위협에도 불구하고 두려워 하거나 곤란해 하지 않고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14). “그들의 위협을 두려워 말며, 곤란해 하지 말고, 항시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음으로 그리스도를 주로 구별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평상시에는 더욱이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앞선 라비의 경우에서와 같이, 부활과 영생이 있음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우리 교회에 두 분의 성도님들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들은 몇 년 전, 우리 교회 성도들이 던지신 말씀을 기억하여 교회에 발걸음을 하시게 되었노라 밝히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교회에 나오면서 자신이 50여 년 동안 처음 교회가자는 말을 듣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노라 말씀하신 분도 있습니다.
심지어 전에 섬기던 화평교회 최모 집사님은 자신에게 “교회가자”고 하는 사람이 없어 혼자 교회 찾아가셔서 “나, 예수님을 믿게 해 주시오”라고 부탁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한결 같이 주를 주인으로 모시는 그 누군가의 설명에 의해서일 것입니다. 부모님이나 친구, 혹은 학교의 친구나 직장의 동료일 수 있을 것입니다.
“혹 거부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이 그들에게도 있었을 것입니다. 기회로 삼아 자신을 몰아 붙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들도 온유와 공손한 태도로 전했을 것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으며, 먼저 상황을 살펴 행동하며, 끊임없이 도와주며, 선배를 높이며, 후배를 사랑하는 의로움이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들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라비와 같이 영원을 사모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생의 문을 여는 일이 되어질 것입니다.

하늘소망교회 김희승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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