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의 아름다움(마태복음 18:18-20)

by 이재섭 posted May 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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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의 아름다움

 


                     마태복음 18:18-20

 


I. 하늘과 땅에서의 풀림

 

A.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범죄한 형제에 대한 방법을 가르치신 주님께서는 이제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그들을 재판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하여 언급하십니다.

 

(고전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딤전1: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 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딛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 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범죄자가 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외면할 때 교회는 그들을 이방인과 세리로 대할 것이며(17), 하늘에서도 동일한 판결이 그들에게 예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권세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의로운 재판장의 역할을 대신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권징은 하나님의 권징과 똑같은 효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다만 교회는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요, 말씀 중심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권위를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실추시킨다면 하나님으로부터의 더욱 큰 진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B.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교회는 권징의 권한이 있는가 하면 면책의 특권도 있습니다. 모든 법이 그렇듯이 법은 처벌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보호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처벌받는 것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 처벌을 통하여 그가 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음에 더 큰 목적을 갖는 것입니다. 교회가 범죄자를 징계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죄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인간으로부터 멀어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죄인을 구원하심에 있기에 교회가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범죄한 형제를 권징 하는 것은 그를 처벌함이 아니라 그에게 면책의 특권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권징을 통하여 그가 회개함으로 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교회가 그에게 기회를 제공하여 주는 것입니다.

 

※.교회의 중요성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행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C. 천국 열쇠

 

주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습니다.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제자들은 이 열쇠를 가지고 천국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 열쇠는 매고 푸는 것으로 복음이며 오늘 모든 교회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는 천국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복음 위에 서 있다면 다윗의 열쇠를 가진 절대 권한을 위임 받을 것이요

 

(계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계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II. 기도 응답의 비결

 

 

A. 합심하여 구하면

 

(행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교회에 대한 또 하나의 주님의 약속은 성도의 공동체인 교회의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교회의 치리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교회에 있어서 제반 의걸 사항과 집행과정은 인간에 의해서 진행되어집니다. 인간에 의해서 계획되고 결정되어 인간에 의해서 추진되어 집니다.

 

교회는 개인의 소유물이나 재산이 아니기에 공동체적 삶을 이루어 가는 구체적인 현장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방법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기도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함께 연합하여 한 목적을 가지고 합심하여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도는 모든 일을 가능케 합니다. 특히 범죄한 형제에 대하여 권징하는 일에 대해서 교회가 기도함은 절대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을 평가할 수도 심판할 수도 없습니다. 성도는 공동체적인 운명을 가지고 한 배에 함께 동승한 자들일진대 더욱 서로가 합심하여 협력하고 노력하며 정진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함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B.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말씀에 의거한 교회의 모든 요청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인간에 의하여 운영되어집니다.  아담에게 에덴을 위임하셨던 하나님은 아담의 의지를 전폭적으로 인정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를 인간에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이제 위임된 모든 교회는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사고에 의하여 다스려집니다. 적어도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범주에서 이탈만 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기에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두 사람이 합심하여 구한다는 사실은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하여 구하는 것을 이루게 하시는 최소한의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시91: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III. 주님의 동참

 

A.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이유와 목적은 인간의 구원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없이 속죄가 불가능하며,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과의 화해가 불가능합니다.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의 접근이 가능합니다. 그리스도는 성도의 희망이며 삶의 전부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배제한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교회일 수가 있으며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성도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사실은 교회의 실제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교회를 교회 되게, 성도를 성도 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에서 권능이 나타나며 그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으며 그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때 삶의 모든 영역을 통제 받으며 조명 받습니다. 그의 이름만이 인간의 존재 목적이기에 그 이름을 위해 열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B.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임재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공동체는 모이는 목적과 취지가 동일합니다. 행위가 선하며 방법이 성경적입니다. 동일하신 성령께서 홀로 주관자이시기에 동일한 능력에 의해서 통제됩니다.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이시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의 모임일지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더욱 용기를 가집니다.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신 주님의 약속은 우리 기독교인에 삶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기도 합니다. 현실 속에서 극심한 고난과 고통을 겪더라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근본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인생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생애 속에 능력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동참하시기에 생명력과 힘을 지닌 참다운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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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세 사람이 합심할 때

 


                                   마 18:15-20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더욱 크게 힘입을 수가 있을까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적인 삶을 살아가며 공을 들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게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을 구할 수있는 길은 혼자만의 외로운 신앙의 삶이 아니라 두 세사람이라도 하나가 되어서 마음을 모아 기도할 때에 경험되어 질 수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혼자만의 외로운 신앙을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 자신도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시는 역사를 이루실 때에도 당신 혼자 하시지 아니하시고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만드시고 홀로 있음을 안 좋게 보시고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과 삶을 말할 때에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세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한자리에 함께 있고 함께 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도 한 집에서 아이 낳고 평생 함께 살아도 하나되지 못하고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거기에 행복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하나되는데에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마음이 하나되고 뜻이 하나가 되면 모든 어려움을 서로가 헤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되지 못하면 될 것들도 허물어지게 됩니다.

 

‘군중 속에 고독’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무슨 의미입니까? 아무리 사람들이 많은 곳에 모여도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안에서도 부부가 혹은 자녀들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고독하고 심지어 절망하는 이유는 하나되지 못함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열어 줄수도 없고 그리고 남의 마음과 생각을 받아 들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하나되지 못함으로 오는 결과입니다.

 

사단의 하는 일 중에 가장 큰 일은 우리의 하나됨을 훼방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단이라는 말의 의미가 ‘훼방하는 자, 분열자’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사단은 어떻하든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됨을 막아 서로 물고 뜯고 싸우게 합니다. 분열되게 만들고 결국은 갈라서게 합니다.

 

 하나로 뭉치면 큰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흩어지면 아무런 일도 못하며 힘을 상실하게 됩니다.

옛날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을 보세요 마음이 하나가되자 그들은 바벨탑을 쌓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언어가 혼동되어 마음이 분열되고 하나가되지 못하자 그들은 각 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주먹을 꼭 쥐면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힘이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를 위하여 하나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와 그 나라를 위하여 마음을 모으고 뜻을 모아 하나가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돈이 없어 못한다. 능력이 없어 못한다. 시간이 없어 못한다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도 하나됨이 필요합니다. 비록 작은 교회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하나되고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아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으로 하나가될 때에 그 교회를 하나님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모든 성도 한사람 한사람에게 능력을 주고 은혜를 주셔서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켜 나가실 것입니다.  

 

20절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한 마음이 되어 하나가 되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것이라면 우리 예수님이 친히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그곳이 바로 행복의 자리며 축복의 자리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우리 교회에서도 나타나야 하며, 여러분의 가정도 모든 식구가 하나가되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있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천국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두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시리라.”

너무나 놀랍고 감동스러운 약속이며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되고 뜻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혹시 서로가 질시하고 투기하고 미워하며 마음이 갈리고 분열된다면 거기에는 어떤 하나님의 은혜나 역사도 경험되어지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슬픔과 진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될 수있나요?

우리는 먼저 18장 전체의 말씀을 보도록 하십시다. 이 18장에는 몇가지의 주제가 일관성있게 기록되어 있는데 먼저는 1-5절까지는 어린아이가 되라는 것입니다. 6-10절까지는 형제를 실족시키는 문제가 나옵니다. 11-14절까지는 잃어버린 양 한마리의 비유가 나오며, 오늘의 본문은 범죄한 형제의 문제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용서에 대하여 나옵니다. 이 모든것들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해시켜가시는 장면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인데 인간관계란 다름아닌 ‘하나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1.어린아이 같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항상 누가 더 큰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투었습니다. 그러한 욕심으로 인하여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되는 제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우리가 관계에서 하나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분명히 욕심때문입니다. 남보다 더 높아지고 나아지고 소유하고 싶은 그런 욕심, 더 사랑받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은 그런 욕심이 우리의 관계를 하나되게 만들지 못합니다.

어린아이 같이 단순하고 순수하여야 합니다.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출 수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서로에게 있을 때에 우리의 관게는 하나될 수가 있습니다.

   

2.형제를 실족시키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는 여러종류의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모든 면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서로의 만남에서 상처를 입기가 쉽습니다.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에 상처가 되어 실족하기도 하고, 서로의 입장차이에서 오는 충돌에서 상처가 되어 실족하게도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족은 서로의 좀더 성숙된 인격과 조심성있는 교제안에서 충분히 극복될 수가 있습니다.  7절에보면 “실족케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자신의 주장만을 내 세운다든가, 남을 업신여기거나, 지켜야 할 선을 마구 넘는 그러한 행동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나로 인하여 상처입고 실족하여 한 영혼을 지옥에 보내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서로가 조심하고 하나됨을 지킬 때에 우리의 공동체는 서로에게 큰 유익과 은혜가 될 뿐 아니라 큰 일을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한 사람을 한 사람을 소중히 생각 하여야 합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는 양 한마리가 아흔 아홉마리의 양보다도 귀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14절 “이와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서로가 자신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을 중요시 여기지 낳는다면 거기에 하나됨은 없습니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남도 소중히 생각하고 남의 영혼과 삶을 볼 수있어야 합니다. 서로가 이러한 모습으로 만남을 가진다면 거기에는 하나됨의 멋진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4.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만약 형제가 죄를 지었을 때에 어떻하여야 하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먼저 혼자 찾아가서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되면 몇사람을 데리고 가고 그래도 안되면 교회에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레도 안될 때에 그를 이방인처럼 취급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시 생각할 것은 형제의 범죄 사실을 알았을 때에 먼저 소문을 내고 남에게 그 사실을 퍼트리는 일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형제가 자신에게 범죄하였을 때에도 그 사람을 홀로 찾아가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은 진정 범죄한 자를 정죄하는 일이 아니라 범죄한 그를 회개시키는 일입니다. 그로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안될 때에는 죄의 오염과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5.그리고 마지막으로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실수할 수있고 범죄할 수 있음을 압니다. 우리의 교회에도 결코 완전한 사람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것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임에서 중요한 일은 서로 용서할 수있는 마음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견지되지 않으면 그 모임이 하나되기는 어렵습니다.

 

예)용서에는 4가지가 포함된다고 합니다.

“지난 일을 잊어주는 것, 원망을 포기하는 것, 인내해 주는 것,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용서는 진정한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이 없으면 용서란 없고 용서가 없는 사랑이란 없습니다.

예)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불」-잘발장 그는 빵 한 조각을 훔친죄로 20년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합니다. 출옥하지만 전과자라는 이유로 외면을 당합니다. 마지막 찾아간 사제관에서 뜻밖의 따뜻한 영접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쉬는데 이른 새벽 버릇처럼 은식기를 훔쳐서 나옵니다. 그러다가 순경에게 붙잡혀 사제관으로 끌려 옵니다. 그때 사제는 “은 식기는 내가 준 것인데  당신 왜 은 촛대는 가져가지 않았나요?”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쟝발장은 충격을 받고 감동을 받아 새로운 인간으로 부활을 경험합니다. 20년 동안 감옥에서의 고생이 그를 변화시키지 못했지만 한 순간의 용서와 따뜻한 사랑이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위하여 초청된 우리는 하나되어서 그의 뜻을 이루며 더욱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삶을 경험하여야 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갈려있지 않습니까? 서로를 향하여 질투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은 없습니까? 용서하지 못한 마음이나 남을 실족시키는 분별없는 행동은 없습니까? 우리는 어린아이같이 낮아져서 서로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되어서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합심하여 모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서로 힘써 모여 간절히 기도하며 함께 묶고 함께 풀어거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하나됨을 지키고 있나요? 서로 하나되어 모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더욱 크신 은혜와 역사를 경험하며 그 분의 위대한 뜻을 이루어 나가는 교회가 되도록 하십시다.         

 

<설교자료모음에서>

 


선교사는 한국 교회를 대변하는 입장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외지에 와서 한국 교회 일반 성도만도 못한 태도를 지녀서는 안 될 것이다.

선교지에 나와 있는 성도들은 현지에 있는 목사 선교사를 존중해야 한다.  한국어로 하는 설교조차 듣기 쉽지 않은 곳에 살다보면 영적 고갈이 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적 안정과 성장을 위해 주의깊게 돌아보고 최상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실천할 수 있는 곳이 선교지다.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지체를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만남이 주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