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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교사에 대한 감사 / 정목일

 

 

3월이 되면 새학기를 맞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을 본다. 새봄을 맞은 나무처럼 눈동자에 물기가 돈다. 내 조카 승훈이도 5학년이 된다.

 

나는 아이들의 담임 교사가 제발 유명 교사가 아니길 바란다. 유능한 교사보다 사랑이 넘치는 교사이길 바란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해와 같은 존재다. 새싹이나 다름없는 학생들에게 사랑의 햇빛을 골고루 비춰줘야 한다. 관심과 보살핌과 사랑은 학생들이 지닌 재능의 잎눈과 꽃눈을 툭툭 틔우게 만드는 햇살이다. 장난꾸러기, 부진아, 미운 짓만 하는 반항아일지라도 아이들에게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 잎과 꽃이 피는 나무들이 있는 것처럼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사랑과 관심이 부족하여 묻혀 있는 재능과 장점을 찾아내지 못하는 건 애석한 일이다.

 

승진 경쟁에 눈이 팔려 점수 올리기에 정신이 빠져 있으면서도, 노상 열린 교육만을 외치는 교사가 제발 담임이 되지 말기를 바라고 싶다. 유명 교장이 아닌 무명 교장이 있는 학교였으면 더 좋겠다. ‘유명이 되기 위해 아이들을 보살피고 정성껏 가르쳐야 할 시간가지를 차용해야 했으며, 자신의 영달과 앞날을 위해서 힘을 더 쏟지 않을 수 없다. 열린 교육을 한다는 학교를 보면 형식, 획일, 타성, 겉치레릐 닫힌 교육을 하기 일쑤고, 자율, 창의, 개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을 자초하고 마는 모습을 본다.

 

무명 교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아이들의 가슴에 희망의 씨잇을 심는 거룩한 손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요즘 아이들은 교사를 존경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충고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잘못이 있어도 사랑의 매를 들 수도 없다. 말을 듣지 않고 교실도 통제되지 않아 고민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교사가 아니면 가정마다 귀염둥이로 자란 이기적인 아이들에게 평등의식과 공동체의식, 봉사와 협동정신을 누가 가르쳐줄 것인가. 누가 아이들의 장래를 위하여 체벌보다 더 아픈 사랑의 말로 반성의 눈물을 뺨 위에 흐르게 하고, 솔선수범을 보여 삶의 자세를 가르쳐줄 것인가.

 

무명 교사는 자신의 영달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고 매일 한 번씩 이름을 불러주고, 자주 얘길 나눌 기회를 갖는다. 학교 오갈 때 부모님을 한 번쯤 안아주길 권한다. 어떤 교육방식보다 아이들의 눈동자를 한 번쯤 들여다보고 이름을 불러주는 무명 교사가 참 스승임을 알고 있다. 아이들과 더 오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학급 홈페이지를 만들어 매일 한 번씩 전자우편으로 소식을 주고받는 교사도 있다.

 

무명 교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신임할 수 있는 이들을 골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임무를 부여한 사람이다. 순수무구한 영혼을 지니고, 맑고 고운 심성이 분수처럼 뿜어오르는 사람들을 찾아 택하셨다. 그들은 언제나 정성과 성실을 다햐여 아이들의 가슴속에다 지워지지 않는 감동과 사랑의 씨앗을 심어줄 수 있을까를 고뇌한다. 무명 교사들은 민족의 꿈을 가꾸는 위대한 정원사(庭園師)들이다.

 

3월이면, 학부모가 아니더라도 무명 교사를 찬양하고 그들의 신성한 손을 잡고 노고에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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