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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 한 토막 / 허세욱 

 

지난봄 한겨울을 지냈던 타이페이의 중앙연구원을 떠날 때 그 쪽 관()소장은 한사코 별주 한 잔을 나누자고 했다.

 

그날 밤 그분과 내가 마주 앉고 옆으로 배객 둘이 있어 마침 네모난 식탁이 가득 찼다. 그리 넓지 않은 식탁에다 요리 몇 접시를 올리니 비좁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화제가 즐겁고 진미가 넘쳐서 말하고 먹는 일 말고 어디다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관소장과 그 옆에 앉은 그의 후배인 위()교수 사이에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식탁 한 가운데 있어야 할 조미료 세트가 안주에 밀려 그들이 앉은 모서리에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놓였다.

 

다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참 주흥이 무르익는데 위교수가 그 조미료 세트를 슬그머니 끌어다가 자기 옆에 놓자 그것을 발견한 관소장이 또 끌어다 자기 코 앞에 놓는 것이었다. 그러한 실갱이가 몇 번을 거듭하자 관소장은 자기 후배를 나무랐다.

 

자넨 내 손님으로 온 사람이니 잠자코 먹기나 할 일이지.”

 

그 뒤에도 위교수는 그 초 간장 후추 통들을 끌어오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는 술 말고도 그들의 훈훈하고도 끈끈한 정과 예의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 조선시대의 어느 야담에서 읽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형제가 가을 농사를 거두자 볏단을 자기집 마당에 앃게 되었다. 노적봉이 되도록 쌓은 날 밤 아우는 우선 형님댁 마당엘 가 보았다. 어찌 보면 노적가리의 높이가 비슷했고 어찌 보면 차라리 낮았다. 그래서야 되겠는가? 형님은 제사도 받들고 손님들도 많이 오시는데 밤이 으슥해서 아우는 볏단을 풀어서 형님네 노적으로 옮겨 놓았다.

 

그런데 이튿날 일어나 보면 아우의 노적가리는 항상 그만한 높이였다. 형님네 노적도 마찬가지였다. 형제는 서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들 형제는 각각 볏단을 지게에 진 채 담 모퉁이에서 마주치고 말았다.

 

한 얘기는 서로 자기쪽으로 끌어당기는 일이요, 한 얘기는 서로 상대쪽으로 넘겨주는 일이었다. 또 하나는 보이게, 하나는 서로 보이지 않게 하는 차이가 있었지만 고금이란 시간의 벽이 두껍게 놓여 있었다.

 

50년대 초 전선은 북으로 옮겼지만 내 고향 지리산 북쪽엔 아직도 빨치산 난리가 한창이었다. 그러한 난리통에도 우리들 두메에선 서당을 차려 글을 읽었고, 사랑방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본시 가난한 데다 장조차 서지 않아 멸치 한 꼬랭이 사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굴비나 몇 마리 사거들랑 잔치라도 치를 양 넉넉했다.

 

그때 오는 손님은 정말 귀객이었다. 걸핏하면 기차는 물론 버스까지 끊겼다. 시커면 군수 화물차에 실려 오거나 산판 다니는 트럭에 매달리기 일쑤였다. 그토록 멀고 험한 길을 발섭했건만 대접할 것은 정말 염반(鹽飯) 그것이었다. 심지어 보리밥에 냉수 한 그릇, 된장에 풋고추 한 접시…… 그게 십상이었다.

 

어느 날, 아버님 진짓상에 굴비 한 토막이 올랐다. 우리 집으로는 드문 일이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진짓상을 물릴 때 그 굴비는 원상 그대로 되돌아왔다. 두었다가 손님 대접에 쓰라는 분부가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무렵에 손님이 오셨다. 아버지와 겸상한 손님상에 그 굴비가 오를 것은 뻔했다. 그럼에도 그 굴비는 옛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주인은 손님에게, 손님은 주인에게 사양하다가 결국 아무도 그것에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이다.

 

내 기억에 그 굴비는 그런 일을 몇 번인가 더 당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깡마른 것이 까맣게 타서 거무틱한 돌덩이를 연상케 했다. 철없는 내 소년은 늘 침을 흘리는데도…….

 

그때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그토록 가난하고 그토록 불편하고 그토록 위기를 느끼면서도 예의를 정조처럼 지키던 내 고향. 금방 소리가 카랑했던 그 두메가 그립다. 그때 뉘 집이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았던가.

 

몇 년 전 미국에서 만난 그레이 스나이더란 시인이 생각난다. 그는 수척한 몸매에 길게 수염을 길렀다. 그 파란 눈과 노란 머리가 아니면 우리나라 강원도 어느 사찰에서 만난 법한 도승의 모습 꼭 그것이었다.

 

그는 불가의 선과 노자의 도에 미쳐 있었다. 그는 몸소 자연에 돌아가서 무위 속에 살고 있다고 자처했다. 그는 북 캘리포니아 어느 시골 산턱에다 통나무로 집을 짓고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을 갈아 푸성귀를 먹고, 먼 거리가 아니면 모두 마차로 나들이한다고 뽐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이 눈은 노루처럼 맑았다. 그리고 흔히 서양 사람들에게 풍기는 노린내 같은 것이 없었다. 나는 우두커니 그이를 쳐다보았다. 꼬불꼬불한 턱수염에서 고사리 잎새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서양 땅에서 말이다.

 

그는 갑자기 뚱딴지 같은 말을 했다.

 

한국이 부자가 되었다면서요?”

 

나는 빙긋 웃었다.

 

개발도상국을 벗어나면 스스로 행복을 내던지는 것이나 같은데.”

 

이번에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 우리들 사회에는 이미 별별 흉측스런 일이 일고 있었다. 문을 꼭꼭 잠그는데도 도둑은 밤낮없이 횡행하고 소득은 샘물처럼 올라가는데도 누굴 위해 주머니를 털 줄 모르고, 주지육림으로 손님을 대접해도 고마운 줄 모르고, 20년을 넘게 교육이 실시되고 교회가 골목마다 생겨도, 사양의 미덕은 전시에 그치고…….

 

옛날, 우리 집에 굴비 한 토막이 서너 번씩 손님상에 오를 때는 가난해도 예를 알았고, 누굴 원망할 줄 몰랐는데 말이다.


굴비 한 토막 허세욱 [좋은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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