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this page
2022.11.02 12:36

  시간여행

조회 수 20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시간여행

 

20여 년 전, 우리 가족은 부득이 사역하던 카자흐스탄을 떠나야 했다. 여권을 탈취당해 임시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멀리 떨어진 알마타에 있는 대사관을 찾아갔다. 영사가 여러모로 도움을 주어 감사했다.

그동안 사용하던 물품들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는 말씀대로 자녀들이 다니던 샬롬 스쿨을 비롯해 몇 곳에 나누어 주었다

막내가 즐겨 타던 자전거는 동네 아이들 공용이 되었다아직 자전거를 접해보지 못한 현지인 아이들의 눈에 환상적으로 보였나 보다. 한 아이가 막내에게 나 자전거 한번 타봐도 돼하고 부탁하자 선뜻 양보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너도나도 타기 시작했다. 처음 접하는 자전거임에도 곧잘 탔다.

어느 날 집 밖으로 나갔더니 동네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행여나 자전거를 가지고 나올까 봐 기다리는 중이었다. 막내가 자전거를 집 밖으로 갖고 나오면 줄 서있는 순서대로 탔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기준으로 한 바퀴 도는 코스까지 정해 두었다. 며칠 사이에 자전거를 잘 타는 아이도 생겼다자전거 타는 재미에 푹 빠진 한 소년은 생일이 되면 부모님에게 꼭 자전거를 사달라고 말하겠다고 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그만 벽에 충돌해 앞바퀴가 휘었다샬롬 스쿨 교장에게 자전거가 고장났지만 조카에게 선물하겠다고 말하자 아이가 마음이 설레어 밤새 잠을  잤다고 한다수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냉장고를 비롯해 값나가는 물품들은 샬롬 스쿨로 기증했다이 학교를 설립하고 돌보는 영국인 코디네이터가 우리의 선물에 큰 감동 받은 것 같았다.

우리가 당신 가족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니다당신들의 호의에 정말 감사한다많은 도움이 됐다

청소년 센터로 사용하던 아파트를 임시 숙소로 사용하게 해주어 고마웠다.

샬롬 스쿨 교장인 로자바이가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우리 아이들이 러시아어 사용하는 학교에 다닌 만큼 러시아를 사용하는 나라로 다시 오고 싶다

  자기 나라로 돌아와 달라

민족과 민족이 만나는 아름다운 교제의 순간이라 생각되었다

 3 가까이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가 많았다. 특히 동족의 아픔을 많이 겪었다. 대신 주님의 역사를 몸소 체험할 기회가 주어져 감사했다.

우리가 먼 나라에서 찾아오자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기도 했다. 여러 가지 방해를 극복하고 교회설립 허가를 받은 것이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여러 곳에 교회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핍박자를 피해 영국 선교부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한동안 지내야 했다고난이 계속되고 있던 어느  기도 시간에 주님께서 뜻밖의 응답을 하셨다

 내가 지금 너희 자녀들을 연단시키는 중이다

  아무리 힘든 환경이라 할지라도 어른보다 아이들이  힘든 나날들이리라서울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열악한 나라에 와서 고생이 많았다. 

 이들은 내가 앞으로 사용할 나의 종들이다. 너희는 이들을 잘 가르쳐 나의 일에 지장이 없도록 하여라. 결코 성경 교육을 등한히 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된다. 후일 내가 이들을 필요로 할 때 아무 미련 없이 모두 내게 맡겨라.”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주님의 예정과 섭리가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이러한 뜻을 그대로 따를  있겠느냐 

 , 주님의 종이오니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주님의 선하신 뜻에 모두 맡기겠습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를 떠나 주님께서 관심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이방 나라 환경 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카자흐스탄을 철수하기 전날 , 이날도 전기가 나가 촛불 아래에서 자녀들과 함께 가족 모임을 가졌다.  

 우린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선교지로 돌아오라고 하시면 우리 모두 따라야 하지 않겠니. 약속할 수 있지.” 

내 말에 아이들이 모두  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서약서를 받았다. 한국에 가더라도 선교지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한국으로 출발하기로 한 날은 큰아이 열한 번째 생일이었다르두밀라 남편인 샤샤 아저씨가 기은이 생일 축하  송별회를 위해 밤낚시를 가서 메기를  채로 3마리나 잡아 왔다한 마리는 6kg, 다른  마리는 3kg 나가는  놈들이었다메기를 튀겨 같이 식사를 하면서 석별의 정을 아쉬워했다

 우리 가족은 카자흐스탄 국경을 넘어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 공항으로 갔다드디어 한국행 비행기에 무사히 탑승했다마치 나라 없는 백성처럼 이리 저리 쫓겨 다니다가 마침내 자기 나라를 찾아 가게  것이다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었다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한국에 1년 머무는 동안 자녀들의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 새로운 선교지를 찾던 중에 러시아 시베리아로 가기로 했다. 긴 겨울을 견뎌야 했지만 가족 모두 비교적 잘 적응했다. 러시아 목사와 함께 시베리아 원주민 마을을 자주 순회했다. 딸이 동시통역을 위해 동행해 주었다. 세 자녀 모두 이 도시에서 스꼴라와 대학을 졸업했다.

선교종합지 아름다운동행에서 큰아이를 면접한 후 모스크바 국립대에 이론물리학 박사 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학비를 지원해 주어 정말 감사했다. ADD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같은 교회에서 만난 자매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딸은 러시아 법대를 졸업해 유리스트 자격을 취득했다. 지금 두 딸을 거느리고 있다. 막내는 형의 도움과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수학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셋째라 해서 의료보험 적용도 안 해 주던 시절에 태어났지만 잘 자라 주었다. UNIST 연구원으로 있는데 내년 초 미국 대학 연구소로 갈 예정이다.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시베리아 지역 선교를 위해 후원과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때를 따라 도우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린다.

 

이재섭

 

2015에세이스트신인상으로 등단

 

중구문학회 수필 부분 우수상 외

 

목사. GMS 러시아 선교사. 총신문학회 회원

 

칼빈대학교 박사 과정 수료, 신학교 교수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