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중반에 있었던 일이다.
사목으로 있던 회사 계열회사인 전자조립공장은 교회에서 차로 30분 이상 걸릴 만큼 떨어진 상봉동에 있었다.
이곳에도 매주 사내예배를 인도하러 갔다. 주로 야간 고등학생들이 숙식하며 근무하는 곳이었다.
어느 날 예배 시간에 말했다. 이곳에서 우리 교회가 좀 멀어서인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아직 교회로 온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얼마 후 한 자매가 교회로 찾아왔다. 내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하자 자기는 지금까지 사는 동안
한번도 교회에 들어가본 적이 없어 왠지 겁이 난다는 것이었다.
“용기를 내어 스스로 교회 문턱을 한번 넘어봐라. 교회 문을 넘어서는 것이 곧 천국에 들어선 것과 같단다.
하나님께서 큰 복을 내리실 것이다” 라고 말했다.
조금 후 자매가 교회에 들어왔다. 학생이 아닌 스무 살이 넘은 청년이었다.
“목사님, 전 오늘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저희 회사에서 여기까지 걸어왔어요.”
“아니 그 먼 길을 걸어 왔단 말이냐? 2시간은 족히 걸릴 정도로 먼 길을 -”
“목사님, 전요 사실 불치병을 앓고 있어요, 그래서 직장에 다니는 것도 의료보험증 때문예요.
장래 희망도 없어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걸요.” 하고 힘없이 말했다.
“그래,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라 죽을 자도 살리실 수 있단다.
그보다 아픈 것은 일단 좋은 의사선생님을 만나는 일도 중요해.
그래서 알고 지내던 내과 의사 선생님이 있는데 그리로 같이 가서 상담해 보자. 그리고 내가 널 위해 잊지 않고
늘 기도할게.”
라고 위로하고 위해 기도해 주었다.
시집을 가도 될만한 나이에 불치의 질병에 시달린다는 말이 꼭 혈루증 걸린 여인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녀도 주님을 만나므로 낫지 않았던가. 주님은 문제의 해결사시다.
그러므로 주님의 교회를 찾아오는 자 또한 어떤 식으라도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었다.
자매를 데리고 내과 의사인 강 선생님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찾아갔다. 내과 의사 선생님이 자상하게 자매를 돌보아 주고 적절한 치료를 해나갔다.의사의 전문성도 있겠지만 사랑이 실린 치료는 더욱 힘을 발휘하는 듯 몇 개월 후 자매가 밝은 표정으로 같이 근무하는 자매와 함께 교회로 찾아왔다.
“목사님, 이젠 괜찮데요. 정말 고마워요.”
“그래,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난 탓이다. 주님께서도 도와주시고-”
“이제 앞으로 시집도 가야지.” 하고 말하자,
“그래요, 진짜 시집을 가도 될 것 같아요. 정말 괜찮은걸요.”
“넌 인생을 두 번 사는구나. 죽음을 앞두고 살다가 다시 살아났으니 -.
무엇보다 주님께 감사드리렴.”
어둡던 자매의 표정이 밝아지자 더욱 아름답고 순박해 보였다.
“목사님, 전 이제 고향엔 가지 않기로 했어요.” 하기에,
“아니 고향에서 누가 널 오지 말래.” 하고 이유를 물었다.
“사실 저희 아버님이 완고하신 분이라 고향에 있게 되면 보나마나 여자가 교회 가는 걸 막으실 거예요.
그러니 그런 고향엔 갈래야 갈 수 없잖아요.”
“그래 듣고 보니 그렇구나. 그래, 천국이 바로 우리의 고향이란다.”
이 자매와 친구는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한터라 봉제공이 주축을 이루고있는 우리 교회로 볼 땐 고학력자들
이었다. 한동안 교회를 나오다가 친구가 인도하는 다른 교회로 옮겨갔다.
대신 이따금 찾아와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자매는 멀리 수원으로 직장을 옮겼는데도 토요일에 교회
옆에 사는 친구 집으로 와서 자고 아침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한다는 것이었다.
주님께서 영혼의 열매를 기뻐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그릇 속에 보배가 들어 있다면 보배 그릇이 아닌가. 주님을 영접한 몸은 천국 보배를 소유한 귀한
그릇이라 생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