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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자전거

 

 

거의 20년 전 일이다. 어린 자녀들과 카자흐스탄 남부 도시인 침켄트에 정착하기로 했다. 영국 선교부가 세운 샬롬 스쿨에 두 아이를 보냈다.  학생 수가 아직 얼마 되지 않은데다 미션 학교여서인지 선생님들이 친절하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어 고마웠다. 유치원을 임대한 탓에 나무가 많고 주위 환경 또한 보기 좋았다

기성이는 샬롬스쿨 초등학교 진학준비반인 0학년에 누나는 1학년에 입학시켰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선생님이 기성이를 데리고 사물 앞에 가서 러시아어로 말하고 따라 하게 했다.러시아어를 가르치기 위해 수고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어느 날 기성이 담임선생님이 부모와 상담할 것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기성이가 수학 능력이 뛰어나 보인다. 그래서 1년 월반을 시키고 싶은데 부모 생각이 어떤 지 물었다. 우리가 월반에 동의하자 한 살 많은 누나와 줄곧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다니게 되었다.

이 무렵 우리 가족은 IMF 영향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와 가까이 지내던 현지인의 태도가 돌변해 대피할 처소가 필요했다. 샬롬 스쿨 로자바이 교장 선생님이 이런 사실을 알고 영국 선교부 관리자의 동의를 얻어 청소년 센터로 사용하는 아파트에 머물게 해 주었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벽에 붙여놓은 글에 아이들이 놀라는 것이었다

 자기 집처럼 편한 마음으로 지내시오

  집에 있는 음식들은 마음대로 먹어도 좋습니다

 영국 신사다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대문 보안 장치가 잘되어 있어 더욱 안심하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웃에 현지인 아이들 많아 자녀들이 모처럼 집밖에 나가 마음껏 놀  있었다긴장의 날을 보내던 자녀들이 비로소 안심하는 것 같았다.

 

  기성이가 좋아하던 자전거는 동네 아이들 공용 자전거였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선뜻 자전거 하나  형편이  되었지 어린 아이가 자전거를 타는 경우를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8살 난 기성이가 자전거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한 아이가 기성이에게 자전거 한번 타도 되겠냐고 말하기에 허락했더니 동네아이들 모두 몰려들여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이튿날 아침 아파트 밖으로 나가자 남녀아이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나를 보자 아이들이 기성 부제”(기성이 언제 나와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자전거 타는 재미에 푹 빠진 아이들은 매일 자전거 한번 타는 게 소원이 되었다. 자기들끼리 상의했는지 자전거 타는 코스도 미리 정해 놓았다. 우리 집을 출발해 아파트 한 동을 돌아서 제 자리로 돌아오면 다음 차례 아이가 타도록 되어 있었다. 자건거를 비틀비틀 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제법 잘 타는 아이도 있었다. 매일 아침 동네 어린이 행사가 되었다.  아이는 자전거 타는 실력이 늘게 되자 자기 생일이 되면 부모님에게 꼭 자전거를  달라고 말해야겠다며 좋아했다며칠 후 한 아이가 아파트 벽에 충돌을  고장이 나고 말았다. 아침마다 줄지어 서있던 아이들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비자 연장이 어렵게 되어 우리 가족은 부득이 한국으로 철수하기 결정했다. 샬롬 스쿨 교장 선생님은 나이 든 독신녀인데 기성이 또래 조카가 있기에 자전거를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큰 고장이 아니어서 잘 손보면 탈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어린 조카가 자전거가 생긴다는 말을 전해 듣고 마음이 설레었던지 밤새 잠을 못잤다고 한다. 

  값이 나가는 물품들은 대부분 샬롬 스쿨에 기증했다. 영국인 코디네이터가 이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란 듯 고마워했다 나라 사람들은 그냥 주는 일이 드물다. 사실 우리도 돈이 필요했지만 선교사 신분이었던 만큼 거저 받았으니 거저주어라 라는 원칙을 지키고 싶었다).

 영국인 코디네이터가 우리 가족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라고  인사하기에, 아니다, 정말 당신들의 호의에 정말 감사한다. 많은 도움이 됐다 하고 인사했다샬롬 스쿨 로자바이 교장선생님은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우리 아이들이 러시아어 배우느라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가능한 러시아를 사용하는 나라로 다시 오고 싶다 말하자  자기 나라로 돌아와 달라 부탁했다

 

기성이는 6살에 한국을 떠났다가 9살에 처음으로 고국으로 돌아온 터였다. 한국에 온 며칠 후 기성이와 같이 롯데월드 앞을 지나고 있는데 무언가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 한국이 너무 좋다. 나 한국에서 살고 싶다하고 혼잣말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햄버거 가게 하나 제대로 없는 나라에서 지내  날들에 비해 정작 자기 나라의 환경이 너무도 화려해 보였나 보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동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컴퓨터가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다. 서울에서 태어난 자란 아이가 지루하리만큼 촛불 신세를 지기도 했다.  아파트 9층에 사는 친구 집에 송별 인사하러 갔더니 전기가 중단되어 9층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이런 수고 끝에 친구 집 문을 두드렸으나 아쉽게도 친구가 집에 없었다

  이런 기억이 되살아나서인지 기성이가 집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에서 내게 물었다.

 아빠 한국에서도 전기 나갈 때가 있나요.” 하는 질문을 들으며 우리 가족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한 30 쯤 전 구세대를 다녀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참 자라날 나이에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다니느라 너무 고생들이 많았다. 카자흐스탄 아이들은 나무를 타고 오르거나 창고 지붕 위에 올라가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나마 자연 환경이 좋아 다소 위로가 되었다

 

우리가족은 한국에 머문 지 1년 후 카자흐스탄 대신 러시아 시베리아로 진출했다. 기성이는 만 9살임에도 편입시험을 거쳐 4학년에 배정되었다. 비교적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최연소 학생이었음에도 지역 고교 졸업 평가 시험 수학 과목에서 1등을 해 졸업식장에서 수학 왕 상을 탔다.

기성이는 만 25살을 며칠 앞둔 지난 5,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기초 의학 분야를 연구 중인 기성이의 논문이 유럽 학회지에 여러 차례 실렸다고 한다. 한동안 러시아와 협약된 핀란드 대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 석박사 과정 학생들 지도까지 맡아 왔다. 독일에 있는 대학 연구소에서 일체 생활비를 부담하고 공학박사 학위를 주는 조건으로 초청해, 10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 세계학회에 참석한 후 독일로 가기로 했다고 한다.

셋째 아이를 낳게 되면 의료보험조차 적용해 주지 않았던 시기에 태어난 기성이가 잘 자라 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동네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빌려주던 그 이웃 사랑의 마음을 계속 유지해 주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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