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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러브 오브 시베리아. 한 영화의 제목이다.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던 초강대국, 개방되긴 했으나 아직도 사회주의체제인 러시아.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더러 크레믈린 같다고 하나. 하지만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아름다운 설경, 안나까레리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지구 반 바퀴, 환상에 젖어본다.

극동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고 했다. 여름엔 백야현상이 있어 늦은 밤까지 해가 지지 않는 땅, 오로라의 신비도 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고려인의 터전이었던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내렸다. 그곳에서 바이칼호수 가까이 있는 도시, 이르쿠츠크를 향해 비행기가 하얀 날개를 폈다. 구름 위에 올라 푸른 창해에 번지는 노을을 보았는가. 하얀 솜에 젖어드는 잇꽃물이다. 이르쿠츠크 공항에 내렸을 땐 깊은 밤이다. 버스는 러시아 사회주의혁명 50주년 기념으로 설립한 것이라는 브라츠크 수력발전소를 지나갔다. 앙가라의 거대한 인공호수 위로....... 그러나 버스는 폐차단계에 이른 중고자동차로 한국의 유치원버스다.




8월 16일

이르쿠츠크는 러시아의 동시베리아 상업, 교육, 경제중심지다. 생명의 시원인 바이칼호수가 인접해 있어 관광객이 이곳을 경유한다. 주변엔 푸른 초지와, 홍송, 자작나무수림이 분포해 있다. 초기도시 주택들이 거의 목조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도심 한가운데로 깊고 푸른 앙가라강이 흘러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린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가 자주 들어 온 동토의 땅, 정치범들의 유형지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먼저 옛 시베리아 총독관저였던 칼 마르크스 거리 이르쿠츠크 데카브리스트 미술관을 답사했다. 전시된 그림들은 12월의 난으로 유배 온 러시아 귀족혁명당원인 데카브리스트후예들의 작품들이다. 데카브리스트들은 1825년 12월 농노제 폐지와 짜르전제에 맞서 봉기를 일으킨 청년 장교들이다. 러시아 정교사원인 수도원 부활의 성당에 들렀다. 장엄한 성당벽화며 조각품들을 처음 대하니 고요 속에 가슴은 뭉클거린다.

키로파광장의 ‘영혼의 불’은 앙가라강가에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에 희생된 무명용사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켜둔 불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다. 마침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신부가 있어 그들의 혼례관습을 엿보는 기회다. 쌈지공원 오벨리스크에는 시베리아 개척에 공헌한 3대 영웅인 엘마크, 스페란스키,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첨탑형식의 구조물로 철도기념탑이다. 강변을 산책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공원은 앙가라강 가운데 있다. 백악관과 같은 흰 건물의 벨리돔도 있고, 이르쿠츠크 향토박물관은 시베리아 원주민이었던 브리야트족의 지역역사 박물관이다.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은 수수한 목조건물로 12월의 난 때 황실 근위대 장교였던 트루베치코이(1790~1860)가 유배생활을 하며 살았던 집이다.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의 무대이며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 시베리아로 유배 올 때 데카브리스트들의 아내 11명도 함께 떠나 왔다고. 재래시장시장 및 이르쿠츠크백화점을 둘러보고 바이칼 호수로 가기로 했다. 러시아의 고속도로, 버스는 자작나무수림 사이로 난 길을 파도타기 한다. 리스트비앙카에는 간간히 안개비가 내리고,


8월 17일

바이칼의 이른 아침, 바이칼 호텔에서 바라본 호수는 목욕을 하는 여인처럼 안개에 싸여 있다. 호수는 길이 636km, 넓은 폭이 79.5km, 최대 깊이 1,637m로 브리티야 공화국과 이르쿠츠크에 걸쳐있다고. 호수가 아니라 바다라 표현함이 더 나을 것 같다. 336개의 하천에서 물이 흘러들고, 흘러나가는 곳은 앙가라강 한 곳뿐이라니. 그 장대함이란. 징기스칸의 무덤이 있다는 ‘알흔’이 있으며 호수엔 2,600여종의 동식물이 서식한다고. 바이칼의 물은 깊은 밑바닥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깨끗하다. 연안에는 작고 예쁜 집들이 많으며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의 별장도 있다고 한다.

환바이칼 열차를 타려다 크루즈여행을 하기로. 리스트비양카에서 출발 배는 호수를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출렁이는 호수의 청정광천수 시음도 하며 배는 환바이칼 열차가 지나가는 l절벽의 언덕에 갖다 댔다. 철로변에 올라 46개나 된다는 암벽터널까지 걸어 본다. 우리를 환영하듯 기적을 울리며 지나는 열차,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8월의 바이칼은 자연의 절정을 노래한다. 청어처럼 생긴 훈제 담수연어인 ‘오물’, 역한 선입견과는 달리 맛이 구수하면서도 담백하다.

바이칼호수 자연사박물관은 바이칼에 서식하는 2,600여종의 동식물 중 주요한 것들을 박제나 화석 상태로 수집해 전시한 산 교육장이다. 샤먼바위는 브리야트 샤먼이 바이칼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범죄자를 처벌하는데도 이용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죄인을 바위에 올려놓고 하룻밤을 지나고 없으면 바이칼신이 수장시킨 거라 하고 살아있으면 무죄라 여겨 살려주었다. 또 하나의 전설은 바이칼 추장은 336명의 아들과 앙가라라는 외동딸이 있어 바이칼청년 이르쿠트(이르쿠츠크의 유래)에 시집보내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예니세이를 사랑하게 된다. 딸의 야반도주를 막으려 바위를 던진 것이 앙가라의 목에 맞았고 그녀는 죽었다. 그 바위가 샤먼바위다. 앙가리는 지금도 예니세이를 그리며 눈물을 흘린다고. 앙가라강물은 흘러서 예니세이강을 만나 북극으로 든다.

시베리아 삼림지역의 자작나무 수림과 야생화,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의 촬영무대이기도 한 대초원지대, 시베리아 야생화 풍성한 꽃내음, 앙가라강가 통나무집에서 러시아식 사우나인 반야를 하는 체험해보라. 증탕에서 찬물을 한 바가지 뿌리면 데일 듯한 그 뜨거움 속 자작나무 가지로 후려치는 맛, 얼음같이 차가운 강물에 뛰어 들면 살을 에는 아픔을 맛보리.

딸즤박물관은 앙가라강가의 시베리아 전통 목조건물이다. 바이칼호 연안에 생활하는 원주민인 브리야트족들의 농촌 풍물들을 전시한 역사박물관, 성채(방어진지) 등이 있다. 슬라브족들의 유형지인 시베리아 개척당시의 모습, 무녀의 집 같기도 가옥들, 농기구며 생활도구가 우리와 흡사한 게 많다.



8월 18일

앙가라 강가의 자연휴양림, 러시아산 소나무로 지어진 목조빌라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바이칼 호안의 목조빌라는 구 소련시절부터 자연보호정책에 의해 콘크리트로 서구식호텔은 지을 수가 없었다. 자작나무와 곧게 뻗은 송림사이로 난 산책로, 그 숲 속에서 이루어진 야외식사도 하나의 추억거리다.

이르쿠츠크에선 역으로 이동하여 쿠페라는 4인실 침대열차에 오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시베리아 벌판을 달려 보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자작나무숲과 초원이 빚어내는 자연의 신비에 흠뻑 취하리. 난쟁이 나라의 뾰족지붕과도 같은 가옥들, 눈이 많이 오기에 지붕의 경사도가 심하다고. 하루 밤 이틀, 담요와 이불에서 떠오르는 먼지와의 사투도 여행의 묘미다. 공업지대인 지마역에 내려 잠깐 휴식을 취했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역에선 과일이랑 잣을 사는 여유를 부리기도. 노보시비르스크에 내려 오비호텔에 투숙하다.




8월 20일

노보시비리스크는 새 시베리아라는 뜻으로 러시아의 3번째 도시다. 인구는 190만이며 러시아의 시발점으로 노보시비리스크 역은 전체 러시아를 통괄하는 중심역이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길다는 오비강, 그 강을 가로지른 시베리아횡단철도의 회색빛 노브시비리스크철교는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 때문에 일부가 금속 덮개로 덮여진 박스형철교다. 오비운하, 오비댐의 수력발전소를 둘러보았다. 거대한 인공호수는 전력과 아카뎀고로독의 과학자들의 휴식공원으로 활용키 위해 조성했다고.

레닌광장의 레닌동상, 자유시민상, 트레차코프미술관, 옥색지붕의 시청사, 니콜라이 정교사원을 둘러보았다. 레닌도로는 붉은 도로란 뜻이다. 그러나 레닌은 본명이 아니고 필명이다. 그도 한 때 문학을 사랑한 청년이다. 서커스공연장을 스치고 지나 부활성당을 둘러보고 노보시비리스크 향토박물관을 답사했다. 17만 여 이상의 전시물은 시베리아역사에 관한 자료와 자연환경, 인구에 관한 자료들이다.

아카뎀고르독은 핵, 첨단과학연구단지로 대전의 대덕단지와 같은 러시아과학의 메카다. 학자들은 특별대우를 받으며 연구에만 전념하고, 물리수학 영재학교는 후루시쵸프 때 설립한 명문학교다. 시베리아 전역에서 11~12세의 우수아동을 선발, 물리수학 등 기초과학을 교육하는 곳이다. 연구단지안에는 30여개의 대학연구소, 아파트, 호텔 등 생활기반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핵물리연구소는 러시아최대의 연구소로 입자물리학분야에서 세계최고수준을 인정받는다. 독립된 각 건물들은 수학, 화학, 무기학, 컴퓨터학, 반도체, 지질학, 유전학, 자동화, 핵물리학연구소다. 티타늄을 개발한 유리가가린의 동상도 있다.

우랄광물박물관은 바이칼, 예니세이, 노보시비리스크에서 산출되는 천연광물을 전시한 곳. 노천광산으로 반지름 800m, 깊이 500m에 이르는 다이몬드광산도 있다고. 이곳에서 몇 점 액세서리를 구입했다. 철도박물관은 시베리아철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초기의 증기기관차부터 최근의 기관차까지 야외에 전시되어 있으며, 의료시설이 갖추어진 객차와 조종실의 내부도 관람할 수 있다. 노보시비리스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건설되면서 태어난 도시라나.

노보시비리스크 전승기념공원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1,000만 명이 희생된 용사들을 기려 세운 기념탑과 공원에 전시된 비행기, 탱크들을 보니 인류는 멸망할 때까지 서로 죽이고 죽으면서 지구상에 존재하려나 보다. 그곳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표트르 대제가 늪지대에 세웠다는 인공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모스크바 호텔에 투숙했다. 여름에는 백야현상이 있는 도시다.




8월21일,

유럽의 베니스라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도시 그 자체가 매우 아름답다. 중세역사가 꿈틀거리고 있다. 러시아의 2번째 도시로 시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박물관이다. 도시건축물은 거의가 7-8층에 이르는 나지막한 건물로 외벽조각은 하나도 같은 게 없는 예술 그 자체다. 또 외벽조각들은 개인소유가 아닌 국가소유라 마음대로 바꾸거나 보수도 할 수도 없다고.

제정 러시아 수도로 도시가 세워진 지 올해가 300주년이 된다. 대구와 자매결연 도시로 지난주 한국주간 공연에 이덕수 사물놀이패가 문화사절단으로 다녀갔다고. 네덜란드에선 2시간 거리로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고 시인 푸시킨이 표현했었다나. 또 이 도시는 데카브리스트 난과 노동운동 및 공산혁명의 무대가 된 ‘피의 일요일’사건으로 시작되는 러시아혁명이 결행된 도시로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혁명이 성공을 거둔 곳이다. 2차 대전 때는 독일군의 포위 속에 29개월 동안 40만 명이 아사하면서까지 도시를 지켜내 ‘영웅도시’란 칭호를 받았다.

먼저 네바강과 넵스킨대로의 건축물을 둘러보다. 넓은 도로. 옛날에는 마차가 다녔을 텐데 표트르대제는 300년 뒤의 미래를 내다보고 도시를 건설했나 보다. 데카브리스트광장은 표트르대제의 청동기마상이 서 있으며 예카테리나 2세 때 1782년 프랑스 조각가 파르콘에 의해 만들어졌다. 1825년 12월 청년귀족들이 농노제폐지를 외치며 데카브리스트의 난이 일어난 곳이다. 이삭성당은 표트르대제 석상 남쪽에 있으며 현재 페테르부르크 의회가 사용, 1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축물로 1818년부터 40년 걸려 세웠다.

카잔성당은 건축가 아느드레이 보르니힌이 설계했으며 아치형 긴 회랑으로 건축된 수도원이다. 거대한 붉은 이태리 대리석기둥들이 천정을 떠받치고 있다. 천정과 성당내부의 금빛 벽화를 살피니 그 경이함이란? 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서양의 성당벽화를 접하면 마음에 천둥번개가 치더라고. 가히 신이 빚어낸 예술이다. 광장에는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러시아 총사령관이었던 미카일 쿠투조프상도 있다. 러시아에선 1호 건축물은 성당이며 두 번째로 꼽는 것이 궁전이다. 레닌도서관과, 푸시킨 동상, 푸시킨 기념극장, 고리키 문화궁전, 러시아 민족박물관, 예카테리나대제의 기념상, 알렉산더극장 등은 건물만 살피며 지나갔다. 센나야 지역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산실이었던 집도 답사했다.

부활의 사원(피 흘리신 구세주)은 피의 성당으로 불리며 1881년 3월 알렉산드르 2세가 이그나티 그리네피트스키라는 테러범이 던진 폭탄에 치명상을 입었던 그 장소에 1883~1907년에 세워졌다고. 다섯 개의 돔이 있는 본당은 금도금 돔과 두 개의 현관이 있는 종루와 이웃하고 있다.

에르미타쥐미술관(1754~1764)은 일명 겨울궁전으로 네바강가에 있다. 러시아 바로크 양식 건물로 바로톨 로메오와 라스트 첼리가 건축했으며 궁전광장, 분수대, 러시아 구해군성이 인접하고 있다. 루브르미술관,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며 겨울궁전과 4개의 에르미타쥐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수장품은 표트르대제의 딸 엘리자벳 파블로브나에 의해 시작, 본격적인 미술품은 예카테리나 2세가 수집하였다. 그녀는 남편 표트르3세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국고를 탕진하며 독일 그림수집상에게서 225점의 명화를 손에 넣고 에르미타쥐란 별관을 지어 소장하고 혼자 감상했다고. ‘에르미타쥐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건 쥐와 나 뿐’이라며 사람의 출입을 금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 황제들도 미술품 수집은 이어져 나가고 겨울궁전과 5채의 건물에 분산 전시했으며 1863년에 박물관으로 면모를 갖추었다고. 1917년 혁명으로 러시아가 붕괴하자 국립박물관이 되었다. 혁명군의 일부가 보물을 약탈하려 하자 ‘아무 것도 손대지 말라. 이것은 인민의 재산이다’라는 함성 속에 미술품들이 모두 무사했으며, 독일군의 침입 때도 소도시로 소개했으나 잃어버린 건 단 한 점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전시관을 세밀히 살피면서 관람하려면 17년이나 걸린다는 이 박물관은 러시아에서 제일가는 문화유산임이 틀림없다.

1층 전시실은 원시 및 고대예술, 2층 전시실은 레오나르 다빈치, 라파엘로 등의 이태리예술, 3층은 세잔느, 고갱, 고흐, 드가, 모네, 르노아르 등 인상파와 피카소, 마티스, 칸딘스키 등 20세기 초기의 예술이다. 그밖에도 엘그레꼬, 렘브란트의 명품들도 소장하고 있다. 각 전시실마다 바닥, 벽면, 모서리, 천정까지 각기 다른 벽화가 그려져 감탄, 감탄사를 연발한다.

네바강 건너 페트로파블롭스키요새는 토끼섬에 있으며 표트로프스키문, 베드로와 파울성당, 표트르대제의 기념상, 그가 기거하던 소박한 집이 있으며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박물관으로 이용된다. 러시아의 마지막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의 묘도 있다. 또 제정러시아 정치범 형무소였는데 표트르대제의 급진적 개혁을 반대하던 알렉시스세자를 최초로 가두는 아이러니를 겪기도 했다. 네바강가의 노란색 건물의 유스포프 궁전은 황제가 총애하던 그레고리 라스푸틴이 왕정 음모가들에 의해 암살당한 곳이기도 하다.

나키모프 해군사관학교와 거리의 악사들이 여행객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제정러시아의 막을 내리게 했으며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게 한 순항함 오로라호에 승선해보는 체험도 가졌다. 저녁엔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앙역(모스크바역)으로 이동 모스크바행 야간열차를 탔다. 이곳의 역 명칭은 가고자하는 도시명이다.




8월 22일,

모스크바는 사방 3km에 산이 없다. 새벽에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붉은 광장, 크레믈린궁에 입장 위해서는 일찍 줄을 서야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먼저 붉은 광장에 들렀다. 15세기 말 이반 3세 때 광장의 형태를 갖추고 트로이츠광장, 피차르광장 등으로 불리다 19세기에 ‘아름다운, 훌륭한, 최상의’의 어원을 가진 붉은 광장으로 불린다고. 광장엔 크레믈린궁과 레닌, 스탈린, 아드로포프의 묘가 있으며, 국영백화점인 굼백화점, 높이47m로 러시아를 상징하는 바실리성당 등이 있어 문화유산의 보고다.

크레믈린은 1156년 유리 돌고루키공이 목재로 성을 만들었으며, 1368년 석조 벽과 탑이 세워지고, 1495년 벽돌로 된 성채가 완성되었다. 현재의 크레믈린궁은 혁명 이후에 지은 건물로 보로비츠카야 언덕에 위치한 건물. 4만 명을 수용하는 궁전에는 성 게오르기홀, 블라디미르홀 등이 있다. 1961년 이래 구소련 공산당대회 때 서기장과 정치국원등이 열렬한 박수를 보내던 곳이다. 역대 서기장의 집무실이 이었던 대통령관저는 정부종합청사와 함께 공개되지 않아 건물만 바라봐야했다.

아르항겔스키사원(1505~1508)은 이태리건축가 알레비즈 노브이가 설계했으며 모스크바 대공과 황제의 묘지가 안장된 곳이다 미카엘 대천사를 찬양, 르네상스 시대의 베니스건축의 선을 첨부하였다. 사원벽화는 92명의 예술가들이 그렸다. 우스펜스키사원(1326~1327)은 러시아 정교의 중심지, 1479년 건축가 피오라반테가 설계 완공했으며 러시아 대주교와 총주교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러시아국교사원으로 승모승천성당이다. 황제가 대관식을 치르는 곳이며 사원의 내벽과 천정을 구세주 이콘화로 장식, 12세기 게오르기상과 14세기 삼위일체상이 있다. 블라고베쉔스키 사원(1484~1489)은 모스크바 대공과 황제의 그 가족들이 예배를 올리던 곳, 금색지붕, 양파모양의 금색 돔으로 외형이 화려하고 세련되었으며 우아하다. 1547년에 화재로 손상되었으나 60~70년대에 복원했다.

그 밖에도 총주교 궁전과 12사도교회(1653~1656), 이반대제의 종루(1505~1508), 짜르의 대포(1586), 짜르의 종(1753년)을 둘러보았다. 트로이츠카야 망루는 삼위일체탑이라고도 불리는 크레믈린 망루로 높이 80m의 첨탑이다. 지하 감옥으로 쓰였으며 화려하고 웅장하다. 그밖에도 베크레미쉡스카야, 붉은 광장의 시계탑인 스파 스카야, 엘레닌 스카야, 보곱즈보드나야, 따이니츠카야, 니콜 스카야 망루 등이 있다.

푸시킨국립미술관(1897~1912년)은 모스크바 볼혼카고리의 미술박물관에 있으며 크레이가 설계 건축했다. 15세기 전반에서 르네상스시대까지의 석고로 된 조각품, 서유럽의 개인 소장품인 회화, 조각물들이 기증되었다. 푸시킨 서거 100주년인 1937년에 박물관은 위대한 러시아 시인의 이름을 부여받았다.

구세주 대성당은 모스크바 강가에 위치하며 하얀 외벽에 양파모양 황금돔 지붕이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러시아정교의 총본산이었던 이곳은 스탈린의 종교말살정책으로 성당을 허물고 높이 415m의 소비에트 대궁전 건축을 계획했다고. 그러나 늪지대여서 부적합해 그 자리에 2천명 규모의 원형수영장을 만들었다. 1990년 공산정권이 붕괴, 종교자유화가 되면서 정교도들의 성금으로 1997년 현재의 대성당이 재건되었다.

크림스키다리는 물이 얕았지만 오래전 모스크바를 침략한 타타르군이 한 번도 건너보지 못했던 크림스키 여울에 1785년 목조다리를 놓았으나 90년 뒤 현대식 크림스키다리를 건설했다. 크림스키의 조명이 모스크바강 야경과 어우러져 도시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모스크바대학은 두 번이나 들린 곳이다. ‘참새의 언덕’이라 불리는 보로비예브(레닌)언덕에서 대학본관의 조명과 모스크바 시내의 야경을 한 번 더 보기 위해서다. 이 대학은 러시아연방 최초의, 최대의 종합대학으로 로마노소프가 러시아 학생들을 위한 고등교육기관 창설의 필요성을 원로원에 건의, 엘리자벳 페트로브나 여제의 칙령으로 1755년에 설립했다. 10월 혁명 이후 국립대학이 되었으며 노동자계급에도 개방되었다. 우리가 가본 레닌언덕의 신 건물은 첨탑을 포함해 높이 240m, 30층의 장대한 건축물이다. 세계 70가지 기이한 건축물에 들 정도다. 광장에는 로마노소보의 동상이 있으며, 모스크바대학은 언덕에서 바라보는 모스크바야경과 곁들여 새로이 각광받는 관광명소다.

모스크바지하철역은 역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고 전시장이다. 1935년 3월 첫 개통된 이래 하루 평균 700만 명을 실어 나른다고. 내부는 조가비모양의 전시박람관인 ‘붉은 정문’역, 1938년 3월 개통된 ‘혁명의 광장’역, 크라뽀트킨스카야역, 아르바트스카야역, 봉기광장역 등 각기 다른 조형물로 그들의 예술혼을 한껏 발휘한다고. 각기 다른 지하철역사는 새로운 과학기술과 현대적, 감각적, 독창적인 설계로 새로운 문화유산을 만들어 가고 있다.

대 조국 전쟁승리 기념관(1941~1945)은 전승공원의 빠크론느이 언덕의 높은 곳에 위치하며 박물관의 조각 기념물과 승리의 여신인 니키가 날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완성된 동상이 있는 전승기념탑은 첨탑높이가 142m나 된다. 넓은 광장에 분수와 화단이 조성되어 휴식공간으로 적당하다. 여기서도 신랑과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신랑신부는 왜 전쟁기념관을 찾을까?

볼쇼이극장, 푸시킨 동상은 차량으로 둘러보고 노보데비치 수도원(1524~1525)은 비행장으로 가면서 저녁야경을 보기로 했다. 공항으로 이동,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블라디보스톡행 비행기를 탔다.




8월 23일

부두엔 2차 대전 중에 활약한 C-56 잠수함을 육지로 끌어올려 전시해 놓았다. 구소련 해군력과 극동함대의 역사를 보여준다. 옆에는 대조국전쟁에 희생된 무명용사의 명복을 비는 영혼의 불이 타오른다. 이 불은 러시아인들의 상징인양 각 도시마다 전승기념관엔 빠지지 않고 켜져 있다. 전망대에 올랐을 때 마침 우리나라 진해 해군사관학교 해군함정이 입항해 반가운 빛을 감추지 못했다. 겨울에는 쇄빙선이 얼음을 캔다는 블라디보스톡항은 따뜻한 봄날처럼 오수에 잠겨 있다. 러시아의 현재를 돌아보고 우리민족이 조국을 떠나 실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연해주까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아쉬운 여행을 마감했다.

라스뿌친이 그랬다던가. ‘시베리아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는 눈이 녹을 때 보다는 겨울의 추위가 있을 때 쉽게 숨을 쉬며 아무 기척도 없는 야생의 밀림 속에서 두려움보다는 평안을 느낀다. 단순한 심상과 거대한 강은 우리 영혼을 자유롭고 거칠게 만들었다’고.


2007/04/3 http://blog.naver.com/trans20/40037082197[출처] 남 여행기|작성자 권민경
-2003. 8. 15~8. 24-

<사진설명> 글쓴이 권민경 님의 사진을 까페에서 퍼다 여기 올립니다. 괜찮겠죠
기차여행을 시작할 이르쿠츠크역 앞에서 식량이랑 물통 끌어안고 한컷
앞으로 이르쿠츠크 지날 때 연락하세요. 김치랑 챙겨드릴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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