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3월 26일 (화) 이길환 국장 (기독신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이 많은 이적을 행하시던 중 베다니 마을에 사는 나사로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이미 죽어 장사까지 지낸 나사로의 누이 중 늦게 도착한 예수님을 원망하면서 지금이라도 이적을 베풀어 주기를 간절히 호소하는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은 그가 세상에 온 목적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즉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영생의 길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조작설들이 있으나 성경은 사흘이란 시간과 그 이후의 행적들을 통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2세기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부활절은 325년 니케야 종교회의에서 부활의 날을 정하여 지키기로 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랜 역사 속에 많은 유래와 풍습들이 생겨나고 전통으로 굳어졌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부활이 상징하는 생명력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47년부터 교파를 초월해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으나 교단분열의 영향으로 1960년대 보수와 진보 성향의 교단들이 별도로 기념예배를 드렸다. 이후 엑스폴로 74 같은 대연합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지면서 1978년부터 보수와 진보진영이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예배 준비위원회가 조직되어 함께 예배를 드려왔다. 한때 수만 명이 참석하여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기도 하는 대행사였으나 언제부턴가 지자체 단위로 예배가 드려지면서 규모도 축소되고 상징성이 강한 예배로 변했다. 그러나 그나마 한기총이 진통에 빠지면서 지난해부터 예배를 또 각각 드리고 있는데 부끄러운 일면이 아닐 수 없다.
흔히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는 계란, 백합, 토끼, 초 같은 것들이 있는데 초대교인들이 새봄의 시작으로 여겼던 계란은 씨앗, 즉 껍질을 깨고 돋아나는 생명력을, 토끼는 다산의 풍부함을, 백합은 순백의 순수함을, 초는 자신을 태우는 희생과 빛을 상징한다고 한다.
오늘날 부활신앙은 마음속 일면에 존재할 뿐 실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시대라고 한다. 인간사회의 명절처럼 의례적이고 형식화 됐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진정한 부활신앙이 회복되고 또한 최고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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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교회는 본래 예식 위주 교회에서 부활절과 성탄절이면 국민 행사처럼 아주 성대하게 치릅니다. 러시아 기독교 교회 또한 부활절을 아주 뜻깊게 생각하고 거의 한 달 동안 고난과 부활에 대해 설교합니다. 러시아 기독교는 신자가 1% 미만이어서 국민 절반 이상 따르고 있는 정교회만큼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방문객조차 제대로 없는 구유에 뉘이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십자가 상에서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이런 탄생과 고난을 뒤로한 채 부활만 내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부활에 앞서 주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난과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기 앞서 예수님의 마음을 지니고 고난을 감내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겠습니다.
<사진설명>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해 교화 설립 역사가 110년 가까이 된 이르쿠츠크1번교회 예배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