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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4 17:00

경건한 삶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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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2:11-14을 중심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경건은 국내외 어디서나 유지해야 할 우리의 과제입니다.

"모든 이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을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서 살고 복된 소망과 우리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구속하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을 열심을 내는 자신의 소유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시려는 것이다." 디도서 2:11-14(바른성경)

디도서 2장 11-14절은 크리스챤 삶을 위한 신학적 기초와 삶에 관해 말하고 있다. 거스타프슨의 경건에 대해, “신학적으로 말해라”에서 정의하기를, “경건은 세계와 인간의 삶 속에 주어진 것에 대한 하나의 근본 자세이다.... 그 경건은 자체 발생적 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그 긍정적인 힘이 경건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알려진다는 점이다. 일종의 감동(affection)으로서의 경건이 없으면 인간은 궁극적인 힘을 말할 수 없다. 즉 경건이 없으면 우리는 신학을 할 수 없는 것이다‘고 말한다.

경건이 하나님없이 그저 인간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경건은 대상(object)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간을 있게 하며 유지하고 압도하는 힘에 대한 응답을 통해 형성된다.
하나님에게서 경건이 야기되며, 그 경건이 있어야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요구하는 신중심적인 윤리가 전개되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경건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 꼭 필요한 삶의 자세인 것이다. 경건을 위해서는 먼저 신학적 기초가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건, 하나님의 나타나심, 성도의 기업과 영생의 소망, 감사와 기쁨의 생활이 가능할 때 비로소 경건한 삶으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본문은 성도 특히 목회자들이 지니고 있는 신학 사상과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영적 성숙을 위한 지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속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도록 너 자신을 단련하여라. 육체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모든 일에 유익하며, 현재와 미래에 생명의 약속이 있다”(딤전 4:7,8 바른성경).
디도서 2장 11-14절에서, 하나님의 신자들을 구원하신 이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그리스도가 하신 것, 그가 그 일을 하신 방법, 그것의 실천적인 의미, 종말론적인 결과를 논한다. 바운즈,『목회서신』(서울:솔로몬,2009) p.863.

하나님이 있는 것만으로도 안 된다. 그 하나님을 인간이 알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경건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된다.
사도바울은 목회서신에서 기독론적 기초와 특히 경건 부문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어느 계층의 신자이던 간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만큼 신자는 모두 경건해야 한다. 특히 직분자에게 경건은 필수 요소이다.

여기서 그리스도 사건은 과거에 나타난 구원하는 은혜를 묘사되고, 그것은 특이하게도 그리스도인들을 ‘양육하는“ 능력이 있어서 그들을 회심으로 인도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12절). 더욱이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는”(14절) 것은 죄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강조되기도 한다(14절). 따라서 경건은 그리스도 사건이 산출하는 효과적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다(이한수).

디도서 2장 11-14에서는 현시대의 구원과 연관된 삶의 성질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발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목회서신의 윤리는 신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역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온다. 바울 서신을 연구함에 있어서 “인간으로서의 바울”과 그의 “종교적 경험”에서 출발할 것이 아니라 그의 서신의 신학적 사상에서 시작하는 것이 타당하다( V. P. 퍼니쉬).

1) 구원과 나타남에 대한 이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11절). ‘구원’이 허락된 것은 뜻깊은 일이다. 이 구원은 민족이나 신분에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고 있다.
본문에서 ‘나타나’란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하나님의 백성)과의 계약에 따른 본질적인 요소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이 내용은 디모데전서 1:10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구원”으로 나타났었다. 신약의 다른 곳에서도 이 구원이라는 단어는, 관사가 붙어가지고 명사로 사용되는 때, 영적인 의미를 가진 구원을 뜻한다(눅 2:30;3:6; 행 28:29; 엡 6:17).
남녀노소 빈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 그런데, 그들 모든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불러 모으신다. 늙은 남자들, 젊은 여자들, 젊은 남자들, 그리고 심지어 종들도(참고 1-10절)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었기 때문이다.

구원의 두 측면들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칭의의 교훈과 인간 노력에 대한 부정은(딛 3:5,7절) 디모데후서 1장 9절과 평행을 이루기는 하지만 바울의 은혜 칭의론의 배경하에 이해되어야 한다. 둘째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통해.... 구원하셨다(5절)는 표현과 그것이 세례에 대해 갖는 관계는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대부분 학자들은 5-7절의 칭의 교훈이 바울 사상에 의존한다는 점에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하나님의 은혜’라는 표현은 바울 신학의 핵심적인 단어라고 단연코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기독교인의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와 별개로는 생각할 수 없다(엡 2:8).
나타남의 목적(2:12-13). “우리를 양육하시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새 삶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기기 위함이다. “새 삶”은 하나님의 커리큘럼의 목표이기도 하다.

2장 11-14절 본문 안에 담긴 그리스도 사건과 구원 개념에 대한 강조점은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이 마땅히 처신해야 할 행위와 관련하여 가능한 방식은 다음 장에 다룰 문제이다. 이제 우리의 구원론적인 의도는 그리스도 사건과 구원 개념 순으로 탐구될 수 있다.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속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은 우리(즉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것이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고 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경건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2) 그리스도 사건

그리스도 사건을 지칭하는 디도서의 다른 구절에서처럼 우리의 본문에서도 그것을 구원사적 현상으로 묘사된다. 2장 11절에서처럼 여기서 ‘에피파네인’ 동사와 함께 사용된 신현 개념은 전에 감추어졌던 것이 역사의 한 지점에 나타난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의 표현이지만, 각 구절에서 그리스도는 의도된 내용을 구성한다.

12-13절과 14절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목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상대적으로 확장된 묘사를 담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큰 관심은 현재의 존재 양식, “구원받은” 삶의 스타일이 결정적인 과거사건에 조심스럽게 연결되어 묘사된다는 사실에 있다.
원문에 사용된 동사는 명사 강림 즉, 나타남 또는 현현(예를 들면, 동틀 때 태양이 나타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어두움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갑자기 임하였던 것이다(참고 말 4:2; 눅 1:79; 행 27:20; 딛 3:4).헨드릭슨.

12절에서 경건과 불경건 용어와 대조되어 나타난다. 이 단락은 윤리적 주제들과 구원론적 주제들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구기정).
고대에 경건에 관한 용어가 여러 형태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목회서신의 덕목들은 그것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목회서신의 덕목들은 구약의 덕목에다가 구원론과 기독론적 관점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

경건은 그리스도 사건에 의해 소개된 구원의 목표가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2절은 ‘회개’(막1:15)와 연관된 초기 복음 메시지의 형태로 생각(mind)의 전환을 가리킨다. “나타나”는 딤후 1:10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미래적으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2:13과 딤전 6:14; 딤후 4:1에 나온다. 살후 2:8과 비교.

13절의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이란 표현은 그리스도 재림과 동일한 표현이다; 목회서신에에서 재림이 이런 식으로 묘사되는 첫 번째 경우는 디모데전서 6장 14절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과거와 미래 사건을 지칭하는 신현 기독론은 이 구절에 구원사적 전망을 부여한다. “나타나”라는 술어의 사용은 과거 그리스도 사건의 “비밀” 개념을 거의 확실하게 만든다.
14절에 발견되는 과거 그리스도 사건의 전승적 측면으로 인도한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구속)하시고”란 문구가 과거의 역사적사건에 초점을 맞출 뿐만 아니라 특별히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에 초점을 맞춘다. 진술한 첫 번째 부분이 마가복음 10장 45절에 보존된 전승에 의존한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로 분명하다.
11-14절은 과거의 역사적인 그리스도의 사건에 대한 모종의 강조점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기원한 구원사의 문제였고, 시공간의 연속 중에서 죄로부터 구속으로 귀결되었다.
‘나타나다’는 술어의 사용은 과거 그리스도 사건의 “비밀” 개념을 거의 확실하게 만든다. '나타남'은, 보편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자유인이건, 노예이건 모든 사람에게 유효하게 되었다는 목회서신의 주제다(바운즈). 그런 까닭에, 아무도 자기가 속해 있는 특정한 계층을 이유로 하여 기독인의 삶을 살 수 없다고 핑계할 수가 없는 것이다(헨드릭슨).

3) 구원개념

디도서 2장 11-14절에서 구원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로, 하나님과 그리스도 모두가 구원 계획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하나님은 구원을 가져다주는 은혜의 주체 또는 근원이며, 그리스도는 역사 속에 나타난 은혜이며 그것을 통해 구원이 집행된다.
둘째로, 구원은 신현 술어가 시사하듯이 신적인 목적과 시간의 문제이다. 그리스도가 선사한 구원은 기약이 되어 나타났으며(11절; 딤후 1:10; 딛 1:3 비교), 새롭고도 최종족인 역사 시기를 도래시켰으며(12절), 또한 하나님 이외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을 때에 다시 나타나셔서 이미 시작된 것을 완성하실 것이다(13절; 딤전 6:14-15절과 비교).
셋째로, 이러한 구원에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보편적 접근성은 11절에 주장된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딤전 2:4; 4:10 비교).
하지만 앞선 본문들과 비교할 때 디도서 2장 11-14절에서는 현시대의 구원과 연관된 삶의 성질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발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12절은 그리스도 사건에 의해 소개된 구원의 목표가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은혜가 급진적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산출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한 것은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불경건은 이 세상 정욕이며(딛 2:12), 불법적인 것이다(2:14). 이와 대조된 경건함은 근신함, 의로움과 나란히 병행한다(구기정)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12절)은 성도생활의 적극적인 면이다. 자신에 대하난 자세, 사람에게 대하는 바른 행위, 및 하나님께 대하는 경건은 신자의 구비된 덕행이다. 이런 구비된 덕행에서 현재(자신의 삶의 현장인) 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

4) 재림에 대한 기대

구원이 산출하는 또 다른 삶의 성질은 재림에 대한 기대이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13절: 살전 1:10 비교).
과거에 시작된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된 구원이 장차 그의 재림과 더불어 완성될 것이라는 신앙이 본질적으로 이러한 소망 배후에 놓여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특정짓는 소망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뿐만 아니라 지금 소유한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이해도 확증해 준다( 필립 타우너).

14절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11절) 형태와 방식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죽음의 목적과 효과들을 담고 있는 ‘히나“ 절은 저자의 구원 개념을 한층 더 밝혀준다: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그리스도 사건에서 나오는 구원은 죄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여기서는 구약 모델을 좋아 “불법”에서 벗어남), 그리고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의 형성으로 생각되고 있다. 환언하면, 구원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들의 성취와 관련하여 생각된다.

동일한 구절에서 “구원받는” 생활은 “선한 일에 열심하는” 삶으로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이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구원에 관한 진술 바로 뒤에 등장한다. 왜냐하면 “선한 일들”과 그것들을 추구하는 열심은 중생의 효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위들은 참된 회심에 의존해 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선한 일에 열심하는”, “선한 일에 열광자”라는 의미이다(로버트슨).

우리의 본문은 구원을 대체로 그것이 산출하는 삶의 전망에서 고려하고 있다. “근신함”, “의로움”, “경건함”과 같은 덕목들, 재림에 기대하는 소망, 그리고 선행에 대한 열심 등이 결합하여 이러한 삶의 방식을 특정짓는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내면적으로 그리스도 사건과 그것이 성취한 죄로부터 구속에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성령의 사역을 들 수 있다. 중생과 새롭게 하심 모두 성령의 사역이다. 그것은 근본적인 변화이다. ‘중생’과 ‘새롭게 하심’은 조금 구별할 필요가 있다. ‘중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다. 그러나 새롭게 하심 즉, 성화에서는 하나님 뿐만 아니라 인간(구속받은 인간)이 참여한다. 중생은 인간이 결코 직접 인지하지 못하고, 그것의 결과에 의해서만 인간에게 알려지는 데 반해서, 새롭게 하심(성화)은 하나님의 뜻에 인간이 자기의 전 인격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계속적으로 복종시키는 것을 요구한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의 목적은 “이는 우리가 그분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딛 3:7)은 후사로 삼으시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감사와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 소망은 반드시 실현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기뻐해야 할 이유에 대해, 예수님의 기도문에 잘 나와 있다. “이제 나는 아버지께 갑니다. 이제 내가 세상에서 이것들을 말하는 것은, 그들이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 17:13 바른성경).

바울은 기독론에 기초한 경건을 강조하고 있다. 디도서 2:1에서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라고 말했다. 이 말은, 유대의 신화와 사람의 계명을 가르쳤던 그레데인들(딛 1:10-16))과 대비되어 디도는 참된 복음을 가르쳐야 한다. 이 가르침의 내용은 뒤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설명된다. 목회서신 전반적으로 그러한 것처럼, 올바른 행위(2-9절)는 정확한(바른) 신학(1절)에 기초한다(바운즈).
2:11-14절에서 구체적으로 구술한 것이다. 바울은 경건한 삶을 위한 신학적 근거를 제기한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는 구원 그 이상을 의도하고 있음을 제기한다.

목회서신의 경건과 불경건 용법은 구약 경건 개념에다 여러 신약적 사상(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 승귀)을 덧붙였다고 볼 수 있다. 즉 경건에의 부름은 하나님과 인간들에 대해 불경건하게 사는 이방세계로부터 선택된 자들을 불러내어 경건하게 살도록 초대하는 부름인데, 그것이 바른 교리와 모든 선한 행실들에의 초대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구기정).
“구약 경건 개념에다 여러 신약적 사상(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 승귀)을 덧붙였다고 볼 수 있다”는 표현은 경건의 개념이 더욱 구체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더라도 신약 시대 이후 더 경건하고 분명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오순절 성령의 도래 이후 성도의 삶은 더욱 경건해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성령이 오셔서 함께 거하신다(요 14:16,17; 고전 12: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2:33).
성도의 경건한 삶을 위해 삼위일체가 모두 참여한다.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이 결속되어 구원받은 자의 삶을 이루어 간다. 고전 12:4-6 “은사에 여러 가지가 있으나 성령은 같고 직분에 여러 가지가 있으나 주님은 같으며, 사역에 여러 가지가 있으나 모든 이들 가운데서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같으시다.”(바른성경).

엡 1:3-4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을 위해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신 사실을 말하고 있다. 엡 4:4-6에서 부르심 안에서 하나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며,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만유 안에 계신다.”(바른성경).

끝으로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와 연관지어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원하셨다. 삼위일체와 더불어 하나된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라 생각된다. 따라는 성도 특히 목회자는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처럼 거룩한 속성을 지녀야 한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같이 그들을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요 17:15-17. 바른성경),

경건한 삶은 삼위일체와 하나되고 성도 간에도 하나되어 살아갈 때 가능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삶, 상부상조하므로 한국교회가 하나가 되고 나아가 선교지에서도 본이 되길 소망한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 21-23)

<사진설명> 민족을 초월해 하나된 동역자들- 이 선교사, 이반 목사님, 니꼴라이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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