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환 편집국장(기독신문)
1968년 출간된 안이숙 사모의 자서전 ‘죽으면 죽으리라’는 원래 해방 전 미국인 바이럼 선교사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감옥에 갇혔어도 신앙의 정절을 지킨 안이숙의 신앙적 투쟁을 영문 소책자로 만든 것이 원본이다.
바이럼 선교사는 한 조선 여인의 옥중신앙을 통해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일본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핵심내용은 안이숙의 신앙적 소신이다. 안이숙은 성경 속 에스더의 신앙과 삶을 애모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제목 역시 민족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애국적 신앙을 닮고자 했던 것이다.
한때 뿌연 매연이나 황사로 뒤덮인 도시의 형상을 회색도시라고 했다. 80년대 전후 정의와 허구가 구분되지 않고 부정과 불의가 횡행하며 아첨과 눈치보기가 팽배했던 세태를 회색지대로 불렀다. 소신 없는 사람을 회색인간으로 꼬집기도 했다. 모두가 때를 타지 않고, 덮지도 차지도 않은 회색의 속성을 빗댄 표현들이다.
사람은 매순간 판단과 선택의 기로에 살고 있다. 선택과 판단의 결과에 따라 때로는 만족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고민을 만들기도 한다. 소신있는 선택은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남을 탓하지 않고, 소신없는 선택은 원망이 남는다.
오늘날 세상 정치판에서 소신을 기대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일부 소장들이 한 번씩 소신발언은 하지만 불꽃에 지나지 않는다. 일관성이 없다. 소신이란 말 속에는 처음과 끝이 같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한 행태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잔머리나 굴리고, 눈치나 보는 행태들이 교계 정치판에서도 엄연히 벌어지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잘 보이려는 아첨과 과잉충성이 공공연하다고 한다.
신앙에도 소신이 필요하다. 주변의 정서나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해 갈 수 있는 믿음 말이다.
믿음이 의심으로부터 출발한다면 순교는 소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옛 선인들이 고결하게 여긴 정절이나 절개의 시작도 소신이 신념으로 굳어진 것이다. 소신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는 용기가 없을 뿐이다.
2012년 04월 24일 (화) 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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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십 수년 동안 살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한국 교회 역사에 있었던 <신사참배>를 함부로 거론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해 시절 초신자들이 세례(침례)를 받다가 순교하기도 하고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갖은 고초를 당한 데 비해 교단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한 사실을 선교지에서 말한다면 한국 교회 위상에 지장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선교지에서 누군가 어떤 인물을 문제삼더라도 신분을 고려해 소신을 가지고 인사나 교류를 가질 수 있음에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신앙은 곧 용기라 생각합니다. 선교지에 와서까지 소신을 다하지 못한다면 비겁한 자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에도 소신이 필요하다. 주변의 정서나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해 갈 수 있는 믿음 말이다.”는 편집국장님의 말에 공감합니다.
<사진설명> 시베리아 브리얏트 원주민 교회 가운데 하나인 보한교회 세 성도들이 빌치르 교회 행사에 와서 특송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치면 군청 소재지 규모 마을임에도 교역자가 없어 몇몇 성도의 힘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마을을 지킬 목자가 속히 올 수 있도록 기도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