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고난당하신 예수님의 모습 그림 앞에서 - 이르쿠츠크 주립 미술 박물관 소장
우리 인생은 염려가 아니면 비판입니다.
약한 자는 염려하고, 강한 자는 비판합니다.
주님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구체적인 적용이
우리가 공동체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동체에 들어가면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사실 사람마다 믿음의 종류가 다르고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없는 공동체는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문제가 있는데 교회 안에,
목장 안에 문제가 없겠습니까?
"찰스 스윈돌"은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일곱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첫째, 우리는 모든 사실을 다 알지 못한다.
둘째, 우리는 그 동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셋째, 우리는 완전히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넷째, 그 상황에 있지 않으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섯째,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여섯째, 우리에게 편견이 있고, 시야가 흐려질 수 있다.
일곱째, 우리는 불완전하고 일관성이 없다.
-「큐티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김양재 - /자료ⓒ창골산 봉서방
*******************************************
공동체 의식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우리를 아예 공동체의 일원으로조차 간주하지 않으려든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이 자의 현란한 말로 인해 우리와 벽을 형성한 채 지내온 한국인들 과연 천국에서 영원히 같이 지내는 천국 가족이 될 지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지- 이방인도 아니고- 자신이 소속힌 교단 목사이자 교단 선교사로 인정된 대상으로 상대로 아런 태도를 보이다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답니다.
어떤 비판보다 주어진 사실 그대로 제공함으로 선교지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판을 목적으로 사실과 달리 말하거나 숫자를 부풀리는 행위, 의도적으로 주어진 상황을 다르게 설명하려는 쇼를 더 이상 연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남을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 되겠지만 굳이 비판의 말이나 글을 할 경우 그만큼 자신의 삶에 자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칫하면 감추고 싶었던 부분이 하나 둘 드러나게 되어 더욱 곤란해질 수도 있답니다.
천사홈에 올린 글과 2010년 11월 30일 강동노회 홈페이지에 실린 내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 러시아 측에서 몇 사람을 보내주었습니다(쉽게 말하면 빌려 준 셈). 건축 문제가 대두될 때 5명 내외의 소수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공사 마무리에 관심을 가진 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현지 방문한다고 연락이 오자, 몇 배(5배 이상일 듯)의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국인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어디서 일회용(?) 사람들을 불러 모은 듯- 한국 목사님 방문을 기념해 특별 집회를 위해 모인 무리였다고 말하면 교회 완공에 지장이 있었을까요.
<현제 저는 이르크추크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예수사랑교회" 를 섬기고 있습니다(본래부터 “예수사랑의교회”였다는 억지 주장을 더 이상 내세우기 어려울 듯-)..........
러시아 예배에는 현지인과 한국인을 포함해서 약 16명 ~17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몽골인 예배에는 5명 정도가 예배를 드립니다. 특별히 몽골예배 때 더 많은 몽골인들이 나아와 함께 예배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http://kdnh.org/bbs/board.php?bo_table=bgroup3_5&wr_id=517
한국인 선교사와 선교후보생, 한국인 성도들을 모두 합치면 10명 내외될 듯- 이 숫자를 빼면 5명 내외라는 수치가 나옵니다. 몽골 선교사(우리와 아는 사이)가 보낸 자매 중심으로 몽골 예배를 드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수가 더 적어져 예배 존폐를 논할 정도라 함-
http://cafe.daum.net/irkmc에 실린 내용 등 관련 자료를 관계된 분들이 적절히 판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교회 용도로 건물을 지는 것까지는 바람직한데 아직 소유권이 분명치 않고 교회로 등록되지 않아 불씨가 남아 있는 셈입니다. 후원한 두 교회가 모두 헌당했다고 주장할 수 없는만큼 둘 사이에 조절이 필요해 보닙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미 신자들만 아니라 이르쿠츠크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한국인들에게까지 악성 소문을 냈더군요. 정말 끈질긴 자라 생각됩니다. 자기는 오랫동안 나이든 목사를 몰아세우기 위해 이런 수고를 감당해놓고 <이르쿠츠크에 있는 L선교사가 자신의 홈페이지(http://www.russia1004.com)에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글을 올렸습니다>라고 주장하다니-
그렇다면 왜 자기와 상관없는 목사(신분이 같고 소속 교단까지 같으니 무관한 사이가 아니지만- )에 대해 오랜 시일에 거쳐 좋지 않은 말을 했는지- 전해 들은 말만 가지고 진위 여부에 대한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옮긴 자들도 책임을 면키 어려울 듯- 천사홈을 사태를 파악한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얼마전 여섯 아이들과 우리 집을 방문했던 제니스 목사가 이날 자리를 같이 한 한국인 형제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왜 한국인들은 동족 간에 서로 안 만나고 문제 인물인 양 몰아세우고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은 그동안 우리 가족이 너무 좋고 고마운 분들이라 존중해 왔는데(멀리 옴스크 신학교 재학 때는 교통비를 보내주기도-) 아예 상대를 않고 사방에서 욕하고 있는 모습이 자기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한국인 형제가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는지 웃으면서 “그건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좋지 않은 문화다.”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당쟁, 일본이 지배할 때 많은 친일파가 득세하고 심지어 신사참배 반대자가 극소수였던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형제에게 재미있는 예를 들었습니다. “악한 자는 당을 짓는다. 그래서 “악당”이란 말이 생겨나고 “깡패”(본래는 갱패였을 듯-)란 말도 있다. 수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은 극소수였다” 라고 말했습니다. 형제는 처음에 우리와 연관을 가졌는데( 동유럽에 있는 자가 선교회 관계자들에게 우리를 문제삼아 형제의 모교회에 우리와 연관을 갖지 않도록 조치해 달라고 당부한 듯-) 한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이들 그룹의 일원이었다가 선교사 협회(?)를 조직하려 든다는 말을 듣고 우리 참여를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K자매도 왜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는지 물었지만 묵살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연합회가 아닌 셈-
형제는 지난 수년 동안 의아하게 생각한 부분이 많았다고 합니다. 협의회(?) 조직을 앞두고 이들의 태도에 모순이 많은 것을 더욱 알게 되어 이들 무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혜를 주셨다는 말이 순진하게 들렸습니다. 혹 어떤 장면을 직접 보았냐고 따지려 들면 형제가 나서서 당시 자신이 직접 지켜본 상황을 설명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도 보였습니다.
유다서 4절에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고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계시록에도 여러 부류를 소개합니다.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니골라 당"(계 2:14, 15)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사탄의 회당”(계 3:9)이란 말도 나옵니다. 옳지 않은 그룹이라 판단되면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이에 비해 아름다운 모임이 있습니다. “성도” 는 거룩한 무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수가 많지 않았지만 얼마나 위대한 분들입니까. 우리 모두 지상에서 지낼 동안 좋은 만남을 갖고 천국 길을 함께 걷는 아름다운 동반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완전한 평강
죄인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어둠에 흔들리며
모든 잡음이 생기고
모든 사람을 적으로 바라본다.
- 존 크라이소스텀
+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 분 없이는 평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는 평강이 없습니다.
잠깐의 행복과 만족은 느낄지 모르지만
영원히 지속되는 평강은 없을 것입니다. +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장 6절)
한몸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