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by 이재섭 posted Jan 1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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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시편 26 : 2절)

사람이 겸손해 질 수 있을까요?
물론 학습을 통해서 자기 모습을 겸손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겸손은
그런 겸손이 아닙니다

지금 다윗이 어떤 겸손을 구하고 있습니까?
겸손은 그런 학습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살피 시고 시험하시면서 내 뜻과
마음을 단련할 때 하나님 앞에 겸손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도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겸손을 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감찰하지 않고 시험하지 않고 단련하지 않으면 인생들은 겸손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겸손의 모양에 속고 있습니다
참다운 겸손을 모르기 때문에 겉모습을 보고 그가 겸손하면 하나님 앞에서도 겸손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성로라면 당연히 그 모습에서 겸손함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보이는 겸손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겸손의 모양을 자기 몸으로 연습하고 익히고 지식으로 알고 있으면 사람 앞에서 겸손하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겸손을 얻으세요...

스바냐2 : 3절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겸손을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 자기를 단련해서 겸손하게 해 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이 이런 말씀들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 보여지는 겸손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으로 부터 겸손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까?
고난과 시련이 나를 꼼짝할 수 없게 하고 있습니까?
그런 나의 삶에 대해서 감사하세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으로 부터 겸손함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시련과
고난이 찾아오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는 겸손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겸손을 주시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히브리서에서도
고난이 없으면 사생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것은 내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겸손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인내하세요
그것이 바로 겸손을 구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슬프고 힘들지라고 그것을 인내함으로서 나 안에는 겸손이 선물로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겸손해 지는 것은 반드시 고난을 인내함으로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겸손하면 무엇이 주어집니까?

잠언22 : 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겸손과 하나님을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어려움과 슬픔은 천국에서 얻을 수 있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성도는 고난을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겸손을 구하세요
내 스스로도 겸손해 져야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섭리하시면서 겸손하도록 만드시는 경륜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도의 참다운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겸손해진 성도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성도에게 겸손을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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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병, 2등 콤플렉스

심리적으로 2등 콤플렉스를 가진 자가 있답니다. 주로 1등의 자리에 올라보지 못한
유약한 자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앞서 제자들이 혹 1등 자리놓고 다툴까봐 친히 제자들
의 발을 씻기시면서 종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의 삶을 살아는 자라면 1등 자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많은 형제 중에 막내로 자라다보면 형이나 오빠 소리를 들어볼 기회가 없습니다.
자기 아래(?) 누가 없다는 현실이 때론 안탄깝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조금
벗어나게 되면 형보다 내가 낫다는 식으로 자위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타던 차 형 주고 왔어.” 착한 것 같지만 달리 해석하면 나 이렇게 형에게 타고
다니던 차도 선뜻 줄 수 있을 만큼 형을 보살피는(?) 사람이야 라고 들릴 수도 있습니다.

남자들은 군에서 2년 내외(이 선교사는 오래 전이라 3년 가까이) 근무하다 보면 불과
몇 개월 차이가 한없이 크게 느껴지게 됩니다. 대개 두 달만 차이가 나도 존대말을 해야
하고 지휘를 받게 됩니다. 그 상대가 자기보다 모든 면에 부족해 보이고 심지어 나이까지
어려도 몇 개월 또는 몇 년 먼저 군에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특수한 사회에서 살아본 자라면 나이나 경력이 앞선 대상을 쉽게 인정할 수 있습니다.
군에 갔다 온 남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위계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도 어떤 차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신학 과정 또한 들어가기 쉽지 않다 보니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진 곳도 있습니다. 정규 코스 출신은 비정규 코스보다 자신이 우월하
다는 생각에 싸이기 쉽습니다. 반대로 이런 과정을 밟지 않은 사실이 못내 아쉬움이나 열
등감으로 남기도 합니다. 주어진 대로 최선의 삶을 살아가면 될 것을-

선교지에 누가 먼저 왔느냐 하는 사실 가지고 선임과 후임으로 나누는 일도 종종 봅니다.
무언가 순서를 앞당기기 위해 다른 나라나 다른 도시 사역은 제외한다는 엉뚱한 법칙을
내세우기까지 합니다. 그것도 부족해 사람들과의 틈새를 내고 아예 만날 필요가 없다
고 못박은 듯- 남자가 아닌 여자까지 나서 이런 수고를 했다는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1등 하려드는 자를 배후에서 적절히 이용해 주도권(?)을 가지려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선교사라면 가능한 그 나라가 정하는 법을 따라야 합니다. 러시아에서 특별한 모임을 가
질 때 사전에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러시아 성도들을 대상으로 설교할 때 외
국인의 경우 허가받은 자만 할 수 있습니다(특히 이 도시가 더욱 법에 민감하다고 합니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려 들다가도 비자 연장이 안 되거나 추방될 수도 있습니다.
외지에서 동족 간에 불필요한 마찰을 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신자가 되어 이런 일을
도모하는 것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두 착한 일에 힘쓰는 2011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 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2011년은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삶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새해 위로부터 내려오는 복 많이 받고 아름다운 열매 많이 맺으시길 기원합니다.

<사진설명> 겨울나라 아이들 모습- 현지인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가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