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 지니는 의미
사람들의 삶은 대개 숫자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출생일, 연도, 시간, 수량, 화폐 단위 등 일생 동안 수에 얽힌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도 수에 민감한 편인데 짝수보다 홀수를 좋아합니다. 선물로 꽃을 줄 때 반드시 홀수여야 합니다. 짝수는 죽은 대상에게 주는 수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따라서 장미 한 다발을 줄지라도 일일이 수를 세어 홀수임을 파악해야 합니다.
생일도 홀수일 때 더욱 기념합니다. 홀 수 가운데 5의 배수를 더 크게 봅니다. 예외적으로 10은 중요시하는데 5의 두 배로 보는 탓일 수도 있습니다. 환갑이 따로 없지만 60회 생일을 아주 귀한 날로 생각합니다.
참고로 성경에 나오는 수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은 하니님
3은 삼위일체 또는 주요 세 제자(베드로, 야고보, 요한)
7은 완전수(삼위와 동서남북 즉 세계를 합친 것으로 보기도 함)
12는 12제자
70은 70제자
120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수(오순절 성령충만받은 자)
500은 예수님 승천을 목격한 수
3000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자
14만4000(구원받은 수- 계시록에 나오는 수는 상징적으로 봄)
10월 15일은 이 선교사 목사 임직받은 지 25년되는 날입니다. 35년 전에 약관 스물 한 살에 교육전도사로 처음 임명받았던 순간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르쿠츠크에서 거주한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은 15년 정도 나이가 어린 젊은이가 오랜 시일 동안 우리를 몰아세워 한국인 크리스챤과 접촉이 없이 지내야 하는 환경입니다. 자기가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일텐데 이처럼 분리한 채 지내는게 편한가 봅니다.
10년 전 젊은이가 선교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하기에 유학 온 청년을 선교사로 볼 수 없으니 우리 둘 만이라도 모임을 갖자고 했더니 썩 내키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챤 모임이라고 하자 그러면 누구나 올 수 있다고 하자 이또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얼마후 젊은이가 선교사로 부르는 청년이 막 결혼하여 새댁인 자매가 왔습니다. 이 선교사와 한 교실에서 러시아어 언어 연수를 하고 있었는데 20년 가까이 나이가 더 든 목사와 매일 아침 마주치면서 아침 인사커녕 일체 대회조차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러시아인 언어 강사가 교과서가 부족하다며 자기 민족끼리 옆에 앉아 책 한 권당 두 명 씩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자매 옆 자리로 옮겨 앉았더니 깜짝 놀라며, “저리 비켜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민족이 보는 앞에서 이 무슨 해괴한 언행인지-
이때만 해도 젊은이와 유대가 있어 따졌습니다(이 부부는 젊은이로부터 선교사 사역비 명목으로 1인당 100불씩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정색을 하면서(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고 표현해야 할 듯- 자기 주문이 통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대뜸 “그 이유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나이든 목사에게 인사 않는 것도 이유가 있나?” 하고 맔했는데, 실제로 이후에 오는 크리스챤 누구도 선뜻 인사하지 않고 있으니 무언가 단단히 교육(?)을 받고 있나 봅니다.
얼마 후 젊은이 또한 결혼을 하고 신부와 같이 인사를 왔습니다. 사라 선교사가 손위 사람 입장에서 김장도 담궈주고 저희 집에서 환영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날 신부가 그만 신랑의 기대와 달리 실수(?)를 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만난지 몇 달 안 되어 결혼한 탓에 신랑의 습성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릅니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목사님이 계셔서 참 좋네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자기를 아는 이 땅의 모든(?) 여자가 해바라기처럼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바라는 신랑에게 가히 충격적인 태도였을 수 있습니다.
청년을 선교사로 부르는데 동의하지 않아 다소 불편한 상태인데다 신부까지 이런 발언을 한 탓에 급격히 멀어지는 하나의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식사 모임을 가진 지 얼마 후 성탄절이 되었지만 전화로만 인사를 하더니 새해 인사도 전화로 대신하려 들기에 대화할 가치를 느끼지않게 되었습니다.
도보로 15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살면서 전화로 인사를 떼우려 들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만나고 싶으면 내가 먼저 찾아와야 한다는 무슨 규율(?)을 세우려 들기에 어이가 없어 그냥 방치했습니다.
독신 자매들이 하나 둘 오더니 10명을 넘어선 듯- 그 외에 선교 목적으로 오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이 땅에 온 한국인 크리스챤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자신의 신분을 내세워 우리를 문제삼자 하나같이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 얼굴을 한 번도 안 본 채 젊은이(아마 추종 세력들이 거들었을 듯-)와 운명을 같이 하려 들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5년 전에 아이들 대학 입학을 위해 학교에 갔다가 선교후보생으로 왔다는 자매는 학교에서 마주쳤습니다. 몇 마디 주고 받다가고 우리 이름을 듣더니 막 뛰어달아나기에 놀랐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뛰는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문화권에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젊은 자매가 백주에 뛰어가다니- 아마 이런 모습(?)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대신 자매들에게 선교사란 훈장을 달아 주어 그 수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선교사 훈련을 받고 정식 파송을 받아 온 경우도 있겠지만 급조된 수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목사 임직 25년, 더욱이 젊은이와 한 교단 소속이고 현재 소속 교단 선교사임에도 이렇듯 대하고 있으니 이해를 어렵게 합니다. 나이를 떠나 선교사 경력이 더 많으면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더군요. 이또한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은 교단 선교사로 영입되어 재파송 받을 때 중앙아시아 선교사 경력부터 소급 적용을 해 주어 젊은이보다 경력 또한 더 빠릅니다.
결국 한국 교회가 보낸 선교사 가운데 가장 경력이 많고 연장자임에도 이렇게 대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곳 현실을 천사홈 독자들도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따금 이곳 현실을 천사홈에 피력함을 십분 양해바랍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주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답니다. 특히 선교사로 외지에서 지내는 동안 적지않게 겪어야 했습니다. 남자가 더욱 질투심이 강하고 권위의식에 민감하다는 말이 있던데 이렇게 해서라도 독보적인 우위(?)를 차지해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이 있는 듯-
예수님이 세상을 따나시기 전에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겸손의 본을 보이셨듯이 그리스도의 지체 의식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제자의 도리라 믿습니다. 아직 성경적인 삶에 익숙치않은 자가 많음을 곳곳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니고 주님을 닮아가는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설명> 이 선교사가 임대해 살고 있는 아파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