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한인 선교사 괴한에게 피살
필리핀에서 10년 넘게 선교사역을 벌였던 한국인 선교사가 23일 새벽 강도로 보이는 괴한들에게 피살됐다.
피살된 선교사는 예장 대신총회가 파송한 조태환 선교사로 현지 봉사활동을 위해 들어온 7명의 한국인들을 인솔하다가 이같은 변을 당했다.
조태환 선교사가 피살된 건 23일 새벽 0시 30분. 조 선교사는 현지의 수해지역을 돕기 위해 밤늦게 입국한 목회자 등 7명의 한국 교인들을 공항에서 인솔해 오다가 강도로 보이는 괴한들에 의해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선교사와 함께 있었던 다른 한국인 7명은 모두 무사하며 현지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파송교단 관계자는 전했다.
올해 43살인 조태환 선교사는 예장대신총회 소속으로, 1999년 필리핀 따이따이시 아리엔따 지역에 파송됐다. 조 선교사는 이곳에 교회를 세우고 구호단체들과 협력해 유치원을 건축하는 등 필리핀 빈곤지역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12년 동안 섬겨왔다.
특히 지난해 수해 피해로 어려움을 당한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 한국교회들과 함께 사랑의집짓기운동을 벌여 주택복구와 주거개선에도 힘써왔다.
또 필리핀 빈민지역 어린이에게도 관심이 많아 안티폴로 지역에서 2년여 동안 태권도 사범을 하며 어린이 사역을 펼치기도 했다.
지난해 기아대책 봉사단원 훈련을 받았을 때는 지원서에서 "선교란 주님의 길을 따르며 그의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두 딸이 있다.
한편, 예장대신총회는 교단 총무와 선교회 총무 등 4명으로 구성된 대책반을 현지로 파견해 유가족을 위로하고 장례절차를 논의할 계획이다.
[노컷뉴스] 2010년 08월 23일(월) CBSTV보도부 www.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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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선교사의 순교를 기리며-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1999년 가을 마닐라를 방문했다가 조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친절하고 상냥한 부부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1999년 6월 카작스탄에서 뜻하지 않게 현지인의 방해로 철수한 후 필리핀 선교지를 둘러보기 위해 몇 사람과 함께 방문했습니다. 교회 등록을 위해 내세웠던 현지인이 주위로부터 유혹을 받았던지 자기가 보관하고 있던 교회 도장을 이용해 우리를 거부하는 글을 종교부에 제출해 비자 연장이 어렵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 허가를 받느라 여러 달 동안 기도하면서 애를 썼는데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일단 한국으로 철수했다가 다른 도시로 가면 별 문제가 없지만 다양한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마침 후배의 권유도 있고 해서 필리핀을 먼저 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마닐라에서 며칠 간 조 선교사 집에 머물렀습니다. 서른 살 막 넘은 조 선교사는 도착한 지 몇 개월 되었다며 어린 딸과 살고 있었습니다. 착실하고 건강해 보여 선교 사역을 잘 감당할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잠시 장사를 했답니다. 금새 5천만원을 벌었지요. 그걸로 선교사로 올 준비를 했는데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구했더니 돈이 금방 없어졌어요." 정말 대단한 의욕과 용기를 가진 젊은이라 생각되었답니다.
당시 마닐라를 비롯해 필리핀 전역이 선교사가 많은 탓에 외진 땅을 선호한 우리가 머물 곳이 못되어 보였습니다. 이때 만난 한 선교사(교단 모암의 대표 격)가 마닐라는 와도 받아들일 수가 없으니 러시아로 가는게 좋게다면서 J선교사를 소개했습니다.
카작스탄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사역이 가능한 도시에 선교사가 몰려 있고 타 지역 진출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J선교사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자기 지역에는 선교사가 많으니 한국 선교사들이 거의 없는 이르쿠츠크로 가라 마침 몇 달 전에 여기서 그쪽으로 간 선교사가 있다고 말하더군요.
J선교사 소개로 P선교사와 J청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한국어 강사로 있던 J청년이 자신이 강의나가는 대학교 초청장을 보내주어 이곳에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도착 후 짐시 P선교사집에 머물 정도로 처음에는 유대가 있었는데 점차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만남의 다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성향이 다른 자는 점차 멀어지게 되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몰아세울 것이 없자 자신이 가본 적도 없는 카작스탄에서 큰 문제를 일으킨 양 몰아세우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신분을 가지고 몰아세우다 보니 듣는 자들의 귀에 따라 진실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자기 양심이 진실 여부를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
조 선교사님의 남은 가족이 속히 안정을 찾고 주님의 위로와 돌보심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힘내세요.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가운데 하나인 조 선교사- 그가 먼저 천국으로 간 사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 선교사 나이 이제 43살- 이 땅에서 우리를 몰아세우는 두 사람과 연령이 비슷해 보입니다. 십 수 년 연상인 목사를 상대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그것도 부족해 고발 운운까지 하는 자들과 한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곳 현실이 마음 아프게 생각됩니다.
히브리서 몇 절을 묵상하면서 보냄받은 자답게 오직 앞을 향해 묵묵히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히 10:32)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5-39)
필리핀에서 10년 넘게 선교사역을 벌였던 한국인 선교사가 23일 새벽 강도로 보이는 괴한들에게 피살됐다.
피살된 선교사는 예장 대신총회가 파송한 조태환 선교사로 현지 봉사활동을 위해 들어온 7명의 한국인들을 인솔하다가 이같은 변을 당했다.
조태환 선교사가 피살된 건 23일 새벽 0시 30분. 조 선교사는 현지의 수해지역을 돕기 위해 밤늦게 입국한 목회자 등 7명의 한국 교인들을 공항에서 인솔해 오다가 강도로 보이는 괴한들에 의해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선교사와 함께 있었던 다른 한국인 7명은 모두 무사하며 현지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파송교단 관계자는 전했다.
올해 43살인 조태환 선교사는 예장대신총회 소속으로, 1999년 필리핀 따이따이시 아리엔따 지역에 파송됐다. 조 선교사는 이곳에 교회를 세우고 구호단체들과 협력해 유치원을 건축하는 등 필리핀 빈곤지역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12년 동안 섬겨왔다.
특히 지난해 수해 피해로 어려움을 당한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 한국교회들과 함께 사랑의집짓기운동을 벌여 주택복구와 주거개선에도 힘써왔다.
또 필리핀 빈민지역 어린이에게도 관심이 많아 안티폴로 지역에서 2년여 동안 태권도 사범을 하며 어린이 사역을 펼치기도 했다.
지난해 기아대책 봉사단원 훈련을 받았을 때는 지원서에서 "선교란 주님의 길을 따르며 그의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두 딸이 있다.
한편, 예장대신총회는 교단 총무와 선교회 총무 등 4명으로 구성된 대책반을 현지로 파견해 유가족을 위로하고 장례절차를 논의할 계획이다.
[노컷뉴스] 2010년 08월 23일(월) CBSTV보도부 www.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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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선교사의 순교를 기리며-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1999년 가을 마닐라를 방문했다가 조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친절하고 상냥한 부부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1999년 6월 카작스탄에서 뜻하지 않게 현지인의 방해로 철수한 후 필리핀 선교지를 둘러보기 위해 몇 사람과 함께 방문했습니다. 교회 등록을 위해 내세웠던 현지인이 주위로부터 유혹을 받았던지 자기가 보관하고 있던 교회 도장을 이용해 우리를 거부하는 글을 종교부에 제출해 비자 연장이 어렵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 허가를 받느라 여러 달 동안 기도하면서 애를 썼는데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일단 한국으로 철수했다가 다른 도시로 가면 별 문제가 없지만 다양한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마침 후배의 권유도 있고 해서 필리핀을 먼저 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마닐라에서 며칠 간 조 선교사 집에 머물렀습니다. 서른 살 막 넘은 조 선교사는 도착한 지 몇 개월 되었다며 어린 딸과 살고 있었습니다. 착실하고 건강해 보여 선교 사역을 잘 감당할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잠시 장사를 했답니다. 금새 5천만원을 벌었지요. 그걸로 선교사로 올 준비를 했는데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구했더니 돈이 금방 없어졌어요." 정말 대단한 의욕과 용기를 가진 젊은이라 생각되었답니다.
당시 마닐라를 비롯해 필리핀 전역이 선교사가 많은 탓에 외진 땅을 선호한 우리가 머물 곳이 못되어 보였습니다. 이때 만난 한 선교사(교단 모암의 대표 격)가 마닐라는 와도 받아들일 수가 없으니 러시아로 가는게 좋게다면서 J선교사를 소개했습니다.
카작스탄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사역이 가능한 도시에 선교사가 몰려 있고 타 지역 진출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J선교사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자기 지역에는 선교사가 많으니 한국 선교사들이 거의 없는 이르쿠츠크로 가라 마침 몇 달 전에 여기서 그쪽으로 간 선교사가 있다고 말하더군요.
J선교사 소개로 P선교사와 J청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한국어 강사로 있던 J청년이 자신이 강의나가는 대학교 초청장을 보내주어 이곳에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도착 후 짐시 P선교사집에 머물 정도로 처음에는 유대가 있었는데 점차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만남의 다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성향이 다른 자는 점차 멀어지게 되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몰아세울 것이 없자 자신이 가본 적도 없는 카작스탄에서 큰 문제를 일으킨 양 몰아세우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신분을 가지고 몰아세우다 보니 듣는 자들의 귀에 따라 진실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자기 양심이 진실 여부를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
조 선교사님의 남은 가족이 속히 안정을 찾고 주님의 위로와 돌보심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힘내세요.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가운데 하나인 조 선교사- 그가 먼저 천국으로 간 사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 선교사 나이 이제 43살- 이 땅에서 우리를 몰아세우는 두 사람과 연령이 비슷해 보입니다. 십 수 년 연상인 목사를 상대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그것도 부족해 고발 운운까지 하는 자들과 한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곳 현실이 마음 아프게 생각됩니다.
히브리서 몇 절을 묵상하면서 보냄받은 자답게 오직 앞을 향해 묵묵히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히 10:32)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