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달 전 비행기에서 한 부부를 만났다. 뒤늦게 얻은 아기와 동행 중이었다. 신앙이 그리 깊어 보이지는 않지만 형제들과 친척 가운데 신앙인이 많은 탓인지 성격이 온화하고 신실해 보였다.
이 만남이 계기가 되어 며칠 후 아기 엄마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자기는 이따금 K자매를 만난다고 했다. 그래서 이 도시에 오도록 내가 소개했지만 정작 우리 집을 온 적이 없다고 말하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되물었다.
사실 10년 정도 친구(?) 관계를 유지해 온 자가 대표로 있는 단체 소속이다. 나와의 대화로 인해 이곳으로 오기로 결정한 것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남자의 질투랄까 노파심 같은 것이 작용한 것 같다. 명목상으로는 우리와 대적하고 있는 젊은 친구 중심으로 이루어진 그룹에 사람들이 많으니 외로운 땅에서 이들과 가까워지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하더라 하자 <아무도 안 만나고 혼자 지내던 걸요> 하고 답했다.
K자매는 비교적 순수한 편이어서라 성향이 다른 부류들과 쉽게 어울릴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더욱이 우리와도 교류가 안 되고 있어 영적으로 지장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기 엄마 말로는 학생 비자가 더 이상 안 나와 많이 철수한 것 같다(나이든 자매들로 10명 안팎이나 되었는데 대부분 학생 비자로 있었다- 하나같이 우리와 거리를 두고 지낸 탓에 이들의 동향을 알 수 없다). K자매는 정규 코스로 입학을 해서 잔류하게 되었다 한다. 하지만 한 때 그만 돌아갈까 고심하기도 했다 한다. 같은 신분이자 나이 또한 또래이면서도 친구를 믿지 못하고 발을 묶어둔 탓에 이렇듯 애매한 입장이 되고 만 것이다.
K자매 문제를 듣고 난 아이 엄마가 내린 결론이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여자(더욱이 아직 젊은 처녀 입장에서-)는 자기로 인해 남자들 간에 다툼이 있을 경우(사실 나는 이런 결과가 발생하리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 어쩌면 계속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수도 있는데 공연히 담을 만들고 말았다면 자매 개인이 얻는 이익보다 잃는 게 더 클 수가 있다.
이 말을 듣고 내가 덧붙여 말했다. 자매가 먼 나라로 나가기로 결심하는 것을 보고 가족, 친구, 주위 사람들이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을텐데 중도에 포기한 인상을 주기가 쉽지 않다. 자매 자신보다 자기가 먼저 알고 있는 여자를 지키겠다(?)고 나와 결별까지 불사한 자가 더 문제다 라고 결론지었다.
이날 인터넷 검색을 통해 K자매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이 지역에 올 무렵 의욕을 가지고 야후 블러그도 만들었다가 얼마 안 있어 운영을 포기한 것 같다. 자기로 인해 친구 간에 충돌이 생긴 사실이 마음에 부담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친구를 사귀려면 신의로 사귀라고 했는데 꼭 이런 식으로 끝을 내야 했는가. 평소에 단체 성격상 시베리아 원주민 지역을 감당할 사역자를 보낼 필요가 있다. 우리 쪽으로 누가 오게 되면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누누이 말했다.
젊은 자의 성향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설명했다. 아마 자매가 꼭 이 그룹에 속하기를 기대하지 않았을 수 있다. 일단 우리와 거리를 두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써 먹은 것 같다. 그 결과 낯선 땅에서 고립되고 만 것이다. 마땅히 갈 곳도 없어 영적 관리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내가 옛 친구에게 이 일로 우리가 불편한 상태에 빠지기 보다 차라리 이웃 도시나 다른 지역으로 가도록 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매가 원한 곳이다며 나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는 것 같아 놀랐다.
대화를 어렵게 만든 요인 가운데 하나가 이 지역 사역자 수를 13-4명이라고 자신들 회보에 실을 사실이다. 그동안 몇 년이 더 흘렀지만 제대로 파송받은 자는 그 절반에도 못미칠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수가 있음에도(대부분 독신 자매이다) 자매가 아무와도 교류를 가지지 않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는가. 자매는 비교적 순수한 편이라 성향이 좋지 않은 그룹에 관여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외로운 땅이라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을 택해야 한다는 옛 친구의 말이 무색해지고 만 것이다.
이제라도 선교지 질서를 위해 무언가 조치가 따라야 하지 않을까~ 가족과 친구 살아오던 고국을 떠나 선교사로 나가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현지 선교사와의 유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내 소개가 선교지 결정에 한 몫을 했음에도 도대체 뭐라고 언질을 주었으면 선교지에 도착한 지 3년이 다 되도록 전화 한 통 없이 지내고 있을까~
누군가 사건의 발단과 자매가 선교지에 도착한 이후 지내온 이야기를 알아야 할 것같아 이글을 쓴다. 자매를 사랑하는 주위 사람 또한 이런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선교 현장을 제쳐놓고 한국에서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탁상공론만 일삼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의욕을 가지고 먼 나라까지 온 자매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자매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가 나이드신 선교사님들을 만나 이 지역 상황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열다섯 살 정도 나어린 자가 주도해 벽을 형성한 탓에 한국인들 얼굴보기조차 힘들다고 말하자 인생을 많이 살았지만 그런 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며 놀라는 것이었다. 자기만 피하면 될 것을 남들까지 선동해가며 수년 째 담을 쌓고 있는 현실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소탐대실이란 말이 있다. 조그만 것을 얻으려고 큰 걸 놓치고 마는 태도이다. 나는 자매가 선교지에 올 경우 친구와 좋은 동역자가 되리라 기대했다. 또한 친구가 운영하는 선교 단체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사역보다 자기 사람지키는 일에 급급한 것을 보고 놀랐다. 남자의 심리가 이런 수준이라면 자매들 스스로가 자신의 진로를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선교의 주체는 성령이시다. 사람의 말보다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지체 의식이 없다면 신앙인의 삶 나아가 선교를 논해서 안 되리라 생각한다. 언젠가 한 천국에 갈 사이라면 지상에서도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이글을 옛친구에게 개인 메일로 보냈지만 며칠 동안 읽지 않아 일부 수정한 후 천사 홈에 올린다. 천사 홈에는 아름다운 글만 올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독자 제위의 양해를 구한다).
<사진설명> 시베리아의 6월은 온통 민들레 꽃으로 싸여 있다. 꽃도 모여야 더 아름답다. 선교지에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왔다며 자주 만남의 장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를 막는 저의는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