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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태연 선교사(GMS 선교훈련원장)

선교사로 떠나는 나는 인천 공항을 뒤로하면서 한국인으로는 죽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현지인으로 다시 태어나리라는 스스로의 도전이었다. 사물을 평가하는 기준도, 생각하는 방법도, 그래서 곧 고국의 문화에는 죽고 현지인의 문화로 다시 세례받겠다는 각오였다. 그래야만이 내가 좋은 선교사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다른 운명으로 태어나라는 말이다.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았다. 수년을 아니 수십 년 간 그렇게 이전 나의 껍질을 벗고 또 벗어보아도 여전히 한국인이었다. 결코 호락호락한 과제가 아니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현지인으로 거듭남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선교지에 산지 이십년이 넘어도 가라앉은 잠수함마냥 내 옛 모습은 머리를 들고 불현 수면 위로 치솟아서 “너는 현지인이 아니야. 너는 한국 사람이야”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힘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건 괜히 헛 인생 산 것 같은 공허한 느낌마져 주는 아주 고약한 것이었다.

선교사에게 죽기 전에 찾아오는 회광반조처럼 자의식이 뚜렷하게 올라오는 때가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그렇고, 옛 친구가 죽었을 때도 그렇다. 고국의 명절 때도 가끔 이런 현상이 나타나며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날 혼자 있을 때도 그렇다. ‘내가 누구인가?’란 의식은 아주 선명해지다 못해 날카로와지는데, 그럼에도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여전히 나는 이 땅에 외국인 이방인이다. 고국도 저 멀리 있고 살아가고 있는 이 곳 선교지도 낯선 곳이 된다. 나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같은 부류가 되지 못하는 운명적 이방인이다. 봄철, 여름철도 지났건만 아직도 이 땅은 쉴 땅이 아니다.

차라리 더 낯선 땅으로 가 쉬어볼까? 고향 없는 영혼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내 영혼에 그 누구도 관심없는 곳으로. 내 아비의 생가도 평생 살아온 곳도 고향이 되지 못하거늘, 고향 없는 것이 대수인가. 삶을 잘못 살아서도, 고향을 잘못 가져서도 아닐진져, 아니 그건 내가 인생을 너무 잘 살아서 일거야!

이 세상에는 지친 영혼이 쉴 수 있는 복지란 없단다. 온통 양지만 만들어서, 아니 온통 음지로만 된 것이어서 하나님의 날개 밑처럼, 십자가 그늘 밑처럼 그렇게 몸도 마음도 쉴 수 있는 곳은 이 땅에는 없단다. 요셉처럼 누군가가 나타나 환도뼈에 손을 얹고 맹세한 사람이 없겠는가? “제가 선교사님을 막벨라 무덤에 묻어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하는 사람이. 그건 허상이다.

2009년 05월 18일 (월) 기독신문 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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뺄셈 선교훈련

선교훈련을 마친 훈련원이 다시 텅 빈 공간이 됐다. 지난번 훈련받았던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른다. 새벽에 기도하는 모습, 마음을 모아 찬양하던 모습, 식당에서 그릇을 닦던 모습…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이런 훈련생과 몇 개월 동안 함께 산다는 것은 내게 복이다. 이런 훌륭한 일꾼을 훈련시킬 수 있어서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들에게 미안하다. 이번 훈련기간에는 행사도 많아 노동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미안한 것이 있다. 그렇게 순한 마음에 무엇을 많이 집어넣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거는 기대도 많았다. 좋은 강사, 좋은 강의내용, 훌륭한 선배 선교사, 그들의 경험담 등등.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가능한 한 꾸역꾸역 집어넣으려 했다. 그렇게 하면 더 좋은 훈련이 될 것 같아서이다. 그들은 열심히 따라 했다. 그리고는 떠났다.

이렇게 홀로 훈련원 공간에 다시 서고 보니 아쉬운 게 많다. 그동안 내가 그동안 무엇을 집어넣으려 발버둥쳤나? 혹시 주님이 원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억지로 집어넣은 것은 아닐까? 소화시키지도 못할 것들을 너무 많이 집어넣은 것은 아닐까? 차라리 함께 둘러앉아 우리 자신에게서 빼내어야 할 것을 나눠야 하지 않았을까!

내가 훈련원에 처음 부임할 때 누가 이런 주문을 했다. “사역자를 먼저 만들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라”고. 그렇다. 무엇을 하기 전에 무엇이 되는가가 더 중요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기부인이 먼저 앞서야 했다. 그런데 우리 삶이 미화된 선전물이 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현지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사역의 역사성을 위해서, 현지인을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들어내기 위해서 깃발도 세웠다.

나는 훈련생들에게 덧셈보다 뺄셈을 가르쳐야만 했다. 선교사란 “떠나는 것이고, 포기하는 것이고, 버리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나는 왜 덧셈 훈련을 많이 할까? 더 능력있는 자로, 리더로, 더 지식이 있는 자로, 더 경험이 많은 선교사로 보이고 싶은 욕심을 죽이는 빼기 훈련을 왜 하지 못하는가? 자기 인생에 무엇을 더하려 말고 오히려 있는 것에서 빼는 자세로 서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기가 더 쉽다고 왜 가르치지 못했을까! 그렇다. 다음 훈련생들에게는 뺄셈 교육을 더 많이 해보자. 주님이 군중으로부터 숨으신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자.

2009년 06월 15일 (월) 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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