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연 선교사
우리 집에 고갱의 그림이 하나 있다. 화병에 담긴 꽃이 탐스럽다. 사실 이것은 내 가슴을 한동안 흥분시킨 진짜 같은 복사본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박물관에서 고갱의 그림들을 본 후로 내가 필리핀에서 산 그림 한 폭이 혹시 사라진 진짜 그림인가 해서 말이다. 40불 주고 산 이 그림이 몇 백만 불 될 것을 상상하며 -평생 동안 선교비 걱정 안할 것 같은 기대로- 나는 얼마나 가슴이 벅차올랐던가! 그렇다고 지금 내 마음이 와르르 무너진 것은 아니다. 왜냐면 나는 원래부터 그 진위를 알았기 때문이다. 단지 이 가짜가 그 황홀한 색상으로 내 허파에 구멍을 냈을 뿐이다.
오늘날은 짝퉁시대다. 이런 시대는 사람까지 가짜가 행세하는 시대이다. 영화에서 대역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고, 정치연설을 대신 해주는 시대이니 그것도 그렇다. 사람이 먹는 것도, 입고 걸치는 것도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사상의 복사나 그 것을 담고 있는 몸뚱이의 진위를 가리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기에 이 세대에는 진짜에 대한 지나친 집작은 오히려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요소인 것이다.
이제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진위여부를 따지는 것은 시간낭비요, 교만으로 비쳐진다. 이제 우리의 구별능력은 한계에 달했다. 바람 불고 비가 오는 날들이 지나고 난 후에야 겨우 그 모습이 나타나는 가라지를 우리가 무슨 수로 다 솎아 내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진짜 걱정은 자신의 무딘 감각이 아니다. 오히려 이 시대를 좇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이다. 진품이 아닐지라도 복제품이라도 많이 만들어보자는 유혹이다. 세상이 온통 그러하니 내가 일하는 이곳에서도 세모나 네모난 형을 뜨고, 그것을 윤전기로 마구 돌리고 싶은 자포자기다.
오늘부터 장마가 왔다. 밤새 비가 내렸다. 새벽의 공기가 상큼하다. 훈련생들의 기도소리를 듣는다. 아무리 들어도 이 소리는 가라지의 소리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들 중에 가짜가 있다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길에서 어쩌다가 마주친 시대의 희귀본 같은 사람도 다시금 쳐다본다. 나도 이 세대 따라 의심병이 든 모양이다. 주님만이 의로운 재판관이 되어 실상과 허상을 구분하실 터인데 내가 주님의 자리에 앉으려나 보다. 복사기 소리가 철커덕거리는 사무실에서 나는 벽에 걸린 복사판 그림을 힐끗 바라본다.
http://www.kidok.com 06월 27일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