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늦게 큰 아이 기은이 컴퓨터가 고낭이 났다. 대학교 4학년인 기은이는 늘 컴퓨터로 사는 편이다. 따라서 컴퓨터 고장은 이른바 비상사태에 해당한다.
사라 선교사가 없어 주방 일을 보고 있는데 막내가 일부러 날 찾아와 형아 컴퓨터가 소리를 내면서 멈췄다고 알려 왔다. 남자 아이들이 볼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여벌로 부품이 더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급한 대로 막내 컴퓨터에서 파워를 꺼내어 연결해 보았더니 컴퓨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었다.
큰 고장이 아니라 마음이 놓였다. 이번에는 파워를 분해해 퓨즈를 조사했다. 속이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퓨즈가 나간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전자 제품 퓨즈를 하나 꺼나 대신 연결해 보았다. 용량이 모자랐는지 잠깐 정상적으로 켜지다가 이내 퓨즈가 끊어지고 말았다. 큰 고장은 아닌 것 같나고 안심시키고 다음날 파워와 퓨즈를 사서 고치기자고 말했다.
이 선교사가 컴퓨터와 인연을 가진지 벌써 20년 이상 흘렀다. 우리나라 컴퓨터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는 XT컴퓨터가 유행할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하드가 불과 20메가 많으면 40메가 정도였다.
요즘 주로 쓰는 단위인 1기가는 1000메가에 해당된다. 최근 컴퓨터 하드는 200기가가 넘는다 . 따라서 초창기 컴퓨터보다 무려 만 배 이상 용량이 늘어났다. 그러면서도 지금 쓰는 컴퓨터 값이 더 싼 편이다(1000기가를 1테라하 하는데 드디어 가정용 컴퓨터에 테라급을 설치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불편한 XT에서 성능이 훨씬 나은 AT로 넘어가면서 윈도우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 무렵 미국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파는 상점에 들렸다가 영어 성경 프로그램을 하나 구했다.
자주 출입하는 기독교 소프트웨어 업체에 이 프로그램을 보여주자 한글 데이터를 넣어 우리 말 성경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성경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라 이내 인기를 끌었다. 회사 규모가 점점 커지고 많은 직원을 고용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성경 프로그램 값이 너무 비싸게 책정되어 보기 안 좋았다. 심지어 이 회사에서 구입한 컴퓨터가 이내 고장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동안 회사에 기여한 것을 생각해서라도 성능 좋은 컴퓨터를 하나 선물할 수도 있을텐데 교체도 수리도 제대로 해 주지 않아 큰 손해를 보고 말았다. 큰 마음 먹고 구입한 컴퓨터를 못 쓰게 되어 마음이 씁쓸했다(수십 명의 직원을 거느릴 만큼 확장되었던 이 회사도 경쟁자들이 생기고 경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시 축소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상태가 나빠진 컴퓨터를 이용해 직접 수리 기술을 익히기로 했다. 친절해 보이는 청계천 상가 컴퓨터 집을 정해 놓고 출입하면서 어깨너머로 익혀가다 보니 얼마 안 있어 거의 전문가 수준이 되었다.
당시 컴퓨터 수리나 조립이 쉽지 않고 업그레이드를 하려 들면 바가지 씌우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소련 선교회를 비롯해 선교회나 측근 교회 컴퓨터를 손봐주거나 직접 업그레이드하기도 했다.
시대가 점차 바뀌면서 컴퓨터 성능이 좋아진데 비해 값이 싸지고 고장율도 적어 큰 불편이 없게 되었다. 컴퓨터 상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만큼 우리가 쓸 컴퓨터는 중고 부품을 구입해 만들거나 아예 값 싼 중고를 구해 사용한다.
선교지에 있는 동안 이따금 컴퓨터가 고장나도 쉽게 손볼 수 있어 유리한 면이 많이 있다. 중고 부품으로 손수 조립한 컴퓨터를 현지인 교회에 몇 대 주기도 했다. 수년 전 멀리 이르쿠츠크 중부 지방에서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 한 대를 선물하고 에반젤리칼 교회에 두 대를 선사했는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고장 난 컴퓨터에 새로 산 퓨즈를 갈아 넣고 테스트 하자 이내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파워 수명이 다 된 것 같다. 메인 보드까지 이상이 안 미쳤으면 하는 걱정이 앞섰다. 오후에 기은이가 파워 사 들고 왔기에 조립하자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기은이 또한 선교지에 오래 살아오면서 절약이 몸이 배었는데 큰돈을 들이지 않고 컴퓨터를 고치게 되어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가능한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선교지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는 것이 감사하게 생각된다.
얼마 전 여행 중에 잠시 우리 집을 방문한 목사님은 나보다 두 살이 적다. 천사홈을 운영하는 컴퓨터가 커버도 덮지 않은 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묻기에 이따금 손볼 일이 있어 그냥 대충 쓰고 있다고 하자 우리네 나이가 컴맹 시대에 해당하는데 어떻게 컴퓨터를 잘 만지냐고 물었다. 20년 전부터 만지다 보니 웬만큼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내가 쓰는 컴퓨터는 중고 컴퓨터를 싼 값에 구해다가 필요한 부품을 바꿔가며 사용한다. 성능이 나은 것은 아이들 주어야 하는 탓에 당장 쓸 정도에 만족한다. 이따금 고장이 나거나 장애를 일으킬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손을 봐가면서 쓰고 있다.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가 주어지면 더 유리하겠지만 우리 돈을 들여 비싼 새 컴퓨터를 살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어려운 중에서도 이만큼 쓸 수 있는 컴퓨터가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잠시 컴퓨터 때문에 고심하던 자녀들이 컴퓨터를 벗삼아 즐겁게 지내고 있어 보기 좋다.
천사홈을 통해 만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특히 천사홈을 보고 후원에 참여하는 분도 있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천사홈이 아름다운 만남의 광장이 되기 원한다.
사진설명- 카작스탄에서 지낼 당시 전기가 안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전기가 없어 무용지물이 된 컴퓨터 앞에서 책을 보고 있는 기은이-
1998. 4. 6. 이란 날짜가 꼭 10년이 지났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