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와 선교사의 삶

by 이재섭 posted Oct 05, 200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신토불이와 선교사의 삶

선교사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조국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야 한다. 환경이 바뀌다 보면 뜻하지 않을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몸이 잘 적응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상태에 접어들 수 있다.

J선교사님은 적지 않은 나이에 러시아 선교사로 헌신하신 분으로 많은 일을 감당해 왔다. 사모님이신 I선교사님 또한 선교를 위한 열정이 크신 분이다.
수년 전 선교사가 쉽게 가지 않는 부랴트의 한 마을을 방문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I선교사님이 극심한 저기압에 적응이 안 되어 사역지를 삼으려던 계획을 취소한 채 돌아가야 했다고 한다.

J선교사님이 방문한 곳은 이르쿠츠크의 한 마을이었다고 들었다. 지난봄에 미하일 목사님과 함께 보한 마을을 방문했다. 약 3000 명 이상 살고 있는 제법 큰 마을이다.
12년 전인가 교회를 세우고 교역자까지 있었지만 사역지를 옮겨가면서 후임자가 없어 이르쿠츠크 에반젤리칼 교회와 위성도시인 셀레호프 교회가 형제들을 보내 협력 사역을 해오고 있다. 몇몇 성도들이 주기적으로 기도 모임을 갖고 있다고 한다. 보한 마을을 방문해 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바로 J선교사님 부부가 이 마을을 다녀간 것을 알게 되었다.

J선교사님 우리가 초청한 자의 방해로 비자 연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에반젤리칼 교회를 찾아가 보라고 말한 분이다. 그 결과 러시아 교회와 좋은 동역자가 되었다. 그런데 에반젤리칼 교회 담임 목사님과 찾아간 곳에 J선교사님이 다녀간 흔적이 있어 반가웠다.

우리 가족은 2000년 여름에 이르쿠츠크로 왔다. 도착한 직후 이 선교사가 적응이 잘안 되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서 온 젊은이가 주위 사람들을 규합해 우리와 거리를 둔 까닭에 더욱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가슴에 심한 압박감을 느끼거나 통증을 느낄 때가 자주 있었다. 그래도 선교지에 온 만큼 견디어 왔다. 기후 적응이 잘 안 되어 어려움이 큰데 지성과 교양을 지녀야 할 한국에서 온 크리스챤 자매들까지 이 젊은이와 합세해 한국인과의 접촉조차 없이 지내온 지 오래되었다. 이런 결과를 유도하고도 우리가 무슨 문제가 있는 양 몰아세워 어이가 없다.

이르쿠츠크 주위에 복음이 잘 전파되지 않은 땅끝 마을이 곳곳에 산재해 러시아 목사님들과 자주 방문하고 심방하는 등 사역을 해 왔다. 교회가 필요한 곳이 많아 하루속히 교회가 세워지기 바라고 있다.
적절한 후원이 따른다면 더욱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지만 최선을 다해 주어진 직무를 감당하고 있다. 이러한 만남과 지원은 혹 우리가 이 지역을 벗어나더라도 힘이 닿는 데까지 이들과의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다. 선교는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올 가을은 유난히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아마 저기압으로 인
한 산소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대기압은 이 지역을 벗어날수록 다시 오른다.
J선교사님이 10년 이상 사역해 온 도시는 이곳보다 대기압이 조금 더 높지만 저기압 지대라 I선교사님이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수년 전부터 다른 도시로 사역지를 옮길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러시아 서쪽 끝에 위치한 도시에 있는 현지인 교회를 맡아 남은 사역을 펼치시기로 하고 이사 준비 중이라고 한다. I선교사님 건강이 조속히 회복되길 기원한다.

수일 후 사라 선교사와 함께 J선교사님 댁을 한번 방문하고자 한다. J선교사님이 계신 곳은 여기서 서쪽으로 약 2000km 떨어져 있다. 러시아에서 이 정도 거리는 그리 먼 편이 아니다. 고속 열차가 없는데다 속도가 느린 편이어서 30시간 이상 걸린다.
그래도 값이 싸고 가는 동안 차창을 통해 러시아 마을들을 지켜볼 수 있어 기차 여행이 유리해 보인다. 꿉베라는 방으로 된 객실에 비해 오픈된 칸은 요금이 반 정도 저렴하다. 이번에는 오픈된 칸에 타고 여행을 하려고 한다. 대기압계를 챙겨 가지고 먼 길을 가는 동안 기압 변화를 관찰하고 신체 적응도 유심히 체크해 볼 생각이다.

외지에서 살다보면 신토불이가 주는 의미를 더욱 느낄 수 있다. 한국과 가깝거나 환경 조건이 비슷한 곳에 사는 것도 복이라 생각된다. 이곳처럼 대기압과 기온이 현저하게 다른 땅에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
먼 나라에서 같은 목적으로 오고도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워 피해가는 자들의 마음 상태도 이해가 어렵다. 남북 정상도 분단의 벽을 넘어 만나고 있는데 이 도시에 살고 있는 한국인 크리스챤을 만나는 일이 이처럼 어려워서야-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후원자들과 후원교회들의 기도와 이해가 절실히 요청된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살아남아야 선교를 지속할 수 있다. 신토불이의 벽을 넘다 보면 몸도 마음도 상할 수가 있다.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현지 적응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 모르는 선교사에게 모험을 감행하라고 주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선교사 역시 대개 자녀를 둔 가장이다. 선교지에 오래 있다 보면 자녀들을 위해 제대로 해 줄 수 있는 것이 적다.
그래서인지 일부 선교사들은 자녀들 대학교만은 한국으로 보낸다. 일단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적으리라 생각된 탓이리라. 이러한 노력에 비해 현지 대학교 그것도 잘 알려지지도 않은 지방 대학교를 졸업할 경우 장래가 보장될 지 의문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결과를 예측하지 않고 살아온 지 10년이 지났다. 자녀들 모두 우리나라 유학생이 한 명도 없는 대학교로 진학한 상태이다. 러시아어를 익히는데는 유리한 편이지만 학교의 지명도를 중시하는 우리네 정서에 부합되지 않아 조금 걱정이 될 때도 있다.

10년이 넘도록 선교지에서 살아오는 동안 일부 한국인들의 태도로 심신이 피곤할 때가 많았다. 이런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서인지 결국 건강에까지 무리가 온 탓에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빚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선교사 가족이 외지에서 건강을 잘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비단 J선교사님 가정만의 일이 아니다. 주어진 환경을 바꾸어서라도 선교지에 적응해 나가야만 주어진 몫을 감당할 수 있다.
I선교사님과 같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 땅을 지켜온 선교사가 건강에 적신호가 오는 것을 알면서까지 러시아 민족을 사랑한다면 격려와 함께 기도를 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한다.

우리 또한 러시아를 사랑한다. 지구의 1/6을 차지한다는 넓은 러시아 땅에 복음이 골고루 잘 미치지 않은 곳이 많이 있다. 러시아 곳곳에 선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는 곳이 많이 있다.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서도 최선의 답을 찾았으면 한다. 이들이 또한 장차 러시아와 한국 나아가 세계를 위해 작은 몫을 감당했으면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적절히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이 선교사의 건강과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 그리고 폭넓은 사역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시고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 이르쿠츠크에서는 통나무집을 쉽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