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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8 20:12

안톤의 결혼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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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글 - 안톤의 결혼반지

6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교회 전도사로 잠시 있었던 안톤은 시베리아 지역 가운데 가장 추운 도시 가운데 하나인 야쿠츠 출신이다. 이곳은 다이아몬드가 많이 나오는 지역으로 흔히 사하 공화국이라 부른다. 넓은 땅(남한 20배 이상)에 비해 주 중심도시인 야쿠츠 시 인구가 10만 명이 조금 넘는다. 원주민인 야쿠츠 종족은 동양계이다.

15년 전 야쿠츠 지역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한 러시아 목사님이 미지의 땅을 개척하는 선교사처럼 왔다. 유난히 춥고 중앙정부로부터 큰 혜택이 없는 도시였지만 비로소 복음의 씨앗이 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야쿠츠 교회가 막 시작될 무렵 안톤은 12살 소년이었다. 집안이 불우한 편이었지만 어린 안톤은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일찍 헤어지고(러시아는 이혼율이 매우 높다) 어머니마저 건강이 썩 좋지 못했다. 그래도 초중고 모두 무상교육인 탓에 학교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러시아에서는 문맹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안톤의 성장은 곧 야쿠츠 교회 성장과 맥을 같이 했다. 지구상의 외진 땅이라 할 수 있는 야쿠츠에 심겨진 복음의 씨앗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 속에 이내 썩어 싹이 자라나고 열매가 맺기 시작했다. 도시 인구의 1%에 해당하는 1000명이 모이는 대교회로 성장한 것이다. 주위에 30개의 지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주님의 놀라운 섭리가 아닐 수 없다.

70만 명이 넘는 이르쿠츠크 시내 아직 300명 넘게 모이는 교회가 없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이르쿠츠크 1번 교회의 경우 교인들을 일부 덜어 3곳에 지교회를 세운 탓에 중심교회인 1번 교회 성도 수가 150명을 넘지 않고 있다).

불행한 소년기로 끝날 뻔 했던 안톤의 성장기는 교회 생활을 통해 다듬어지고 점차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해 나갔다. 주님께서 장차 자신의 종으로 사용하시고자 하는 인도에 일찍부터 순응한 것이다.

어깨너머 배운 기타 솜씨도 수준급이어서 예배 때 기타연주자로 나설 정도이다. 하지만 성장기에 머리를 다쳐 아직 완전한 상태가 아니다. 이따금 투통을 느낀다고 한다.

스콜라(초중고 합친 과정으로 대부분 한 건물 안에 있다)를 졸업한 안톤은 일찍부터 받은 소명 의식에 따라 신학교로 진학했다.

안톤은 이 신학교를 입학해 2년 간 신학수업을 받았다. 아무래도 신학 과정치고는 짧은 편이지만 일종의 정규 과정이다. 워낙 큰 나라다 보니 학생들은 대개 타 지역에서 온다. 따라서 2년 간 한 기숙사에서 공부하면서 동거동락한다.



안톤은 신학수업 중 실습을 나갔다. 이르쿠츠크에서 기차로 8시간 정도 가야 하는 브럇트 공화국으로 실습을 간 안톤은 그의 나이 20살 한창 젊음에 접어들 때였다.

실습을 하던 지역에서 그는 현지 교회를 출석하고 있던 레나라는 자매를 만나게 되었다. 둘은 짧은 만남 속에서 점차 서로 사랑을 나누게 되고 장차 결혼까지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에 입대했다. 군에서 생각지 않은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고 또 과거에 머리를 다친 적이 있어 이 사실을 입증하면 굳이 군대에 안 가도 된다는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자청해서 군에 입대한 것이다.

하지만 안톤의 군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러시아는 정교회의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기 드물게 신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한 안톤은 주위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자신을 정교회 신자라고 주장하는 나라에서 1% 내외의 신자를 가지고 있는 크리스챤 신분은 어느 사회에서나 대우(?) 받기 쉽지 않다.

그것도 단순한 기독교신자가 아니라 신학교를 졸업하고 앞으로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으로 인해 더욱 주위로부터 놀림감이 되었다. 의인 욥이 당했던 고통을 경험한 것이다.
러시아 기독교 지도자들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서 목회자는 인구 3만 명당 한 명 정도로 정말 귀한 존재들이다(한국으로치면 국회의원만큼 드문 수치이다). 대부분 교회 규모가 작아 사례비를 받는 예가 극히 드물다. 명예도 대가도 없이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나서는 러시아 목회자들을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기 바라고 있다.

어두운 땅에서 별처럼 빛나야 할 안톤이었지만 군 생활은 고독한 투쟁이었다. 본래 2년 간 계속해야 하지만 군 생활에 접어든지 6개월이 못 되어 안톤이 다시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이로 인해 병원에서 몇 개월 치료한 끝에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톤은 돌아갈 집도 가족도 제대로 없다. 그의 꿈이 있다면 멀리 유학을 가서 신학 수업을 더 받고 장차 사랑하는 레나와 결혼해 안정을 찾는 일이다. 안톤의 나이 이제 만 스물 두 살 러시아인으로 볼 때 당장 결혼한다 해도 이른 나이가 아니다.

안톤은 거처도 마땅치 않아 어느 목사님이 설립한 <기도하는 집>에 머물다가 이번에는 신학교를 졸업한 자매가 구해 놓은 집이 비어 있어 대신 봐줄 겸 이곳에서 숙식하고 있다.

이 자매는 미국인 여 선교사가 함께 지내자고 해서 자기 집을 안톤에게 맡겨두고 미국인 여선교사와 살고 있다. 서로 러시아어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로 한 것이다.

이르쿠츠크에는 미국인 선교사가 몇 분 와 있다. 흔히 전방위 선교라 할 수 있는 개척 선교에 나서는 미국 교회의 헌신적인 모습을 자주 목도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비교적 어려운 땅에 와 있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기도 한다.

우리는 안톤을 지켜보면서 너무 어려운 형편에 처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진찰과 치료에 도움을 주기 위해 얼마간의 헌금을 덜어 주고 또 집에 가지고 있던 한국 종합영양제 한 병을 주었다. 안톤의 머리가 빨리 회복되도록 그를 위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기도 했다.

이르쿠츠크교회를 시작하면서 안톤을 전도사로 임명했다. 자신이 다니던 교회는 주일 예배드릴 건물을 못 얻게 되자 토요일에 정기예배를 드리고 있다(교회로 임대해 주는 건물이 드물고 해가 거듭될수록 임대료가 비싸 사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안톤은 토요일에 이 교회에서 기타를 치면서 예배를 돕고 주일에는 우리 교회로 나온다. 안톤이 자라난 야쿠츠는 한 겨울에 영하 50도 이하 내려가기도 한다.
시베리아 남부 도시인 이르쿠츠크에 와서 느끼는 영하 30도 내외 기온이 자신에게 대수롭지 않은 듯 “아프리카에 온 것 같다”고 말한다.

안톤은 아무래도 생업에 어려움이 있어 평일에는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주유소에서 주유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때론 임시 경찰이 되기도 했다. 레나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말에 수요일 예배에 빠지는 것을 묵인해 주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신학교를 졸업했다 해서 한국의 부교역자와 같이 사례를 받는 교회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교회 개척을 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무언가 일자리를 찾아나서야 한다. 주님을 위해 남보다 많은 짐을 지고 있는 것이다.

3월 마지막 주일에 안톤이 내게 지금 레나가 자기를 만나자고 한다는 것이다. 아마 결혼 문제를 서두르는 것 같다. 러시아인들은 대개 비슷한 나이에 일찍 결혼하는 편이다.

본래 안톤은 큰 도시에 가서 신학 수업을 더할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장학금을 주어 모스크바 신학교로 유학을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레나가 몇 년 동안 기다릴 수 없다며 반대하여 이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나는 안톤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럼 지금 레나에게 갈 기차비가 있냐고 묻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책정한 사례비를 미리 주어 레나에게 다녀오라고 했다. 앞으로도 혹 필요한 일이 있으면 우리를 부모처럼 생각하고 부담없이 말하라고 일러두었다.

안톤의 꿈을 실은 기차가 맑은 바이칼 호수를 끼고 브럇트 공화국으로 가는 동안 주님께서도 그와 함께 동행하고 계시리라. 몸이 다쳐 생활에 다소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음에도 이를 아랑곳 않고 계속 자신을 사랑해 주는 자매가 있다는 것이 행복해 보였다.

5월 첫째 주일 예배를 끝내고 안톤이 우리 집까지 따라오는 것이었다. 지난 예로보아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같이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필요한 말이 있냐고 묻자, 지금 결혼반지를 샀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여름이 되면 금값이 오르기 때문에 지금사야 할인이 된다는 말에 얼마 정도 드는지 물어보았다. 안톤에게는 아무래도 벅차보이는 액수였다.

이런 것은 자신의 수고의 대가로 구입해야 될 것 같아 다음달 사례비까지 앞당겨서 두 달 치를 주었다. 중국 조선족 위주로 교회가 형성된 탓에 러시아 예배가 활성화되지 않아 안톤의 할 일이 별로 없음에도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안톤을 돕기 위해 전도사로 임명한 것이었다.

이날 안톤은 뜻밖의 말을 했다. 자신은 가을에 결혼을 하게 되면 바로 레나가 사는 지역으로가서 선교사(전도사)로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 나이가 젊지만 서둘러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는 말에 감동이 왔다. 역시 안톤을 향한 주님의 뜻이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경비가 부족할지 몰라 물었더니 자기가 소속한 교단 총회에서 2년 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르쿠츠크 같은 큰 도시에서 살고 싶었지만 자기 형편이 그렇게 안 되어 브럇크 공화국의 작은 도시로 가서 일하게 됐다는 말에 어릴 때부터 교회 생활을 해 온 그의 신앙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조금씩 지원할 수도 있다고 말하자 괜찮다며 사양하는 그의 순진한 모습에서 앞으로 이 땅을 지켜나갈 목자의 얼굴이 그려졌다.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 집을 나서면서 우리와의 만남을 두고 감사하는 안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안톤을 보낸 후 사라 선교사가 “우리가 결혼반지를 사줄 걸 그랬죠.” 하고 말하기에 “그렇지 않다. 사내대장부가 자기 여자 결혼반지 정도는 자기 노력으로 구해야지.” 하고 말했다.

‘안톤. 레나의 결혼반지는 네 힘으로 사야 하는 거야. 남이 선물해서는 기념이 안 되거든.’

안톤이 이 지역을 떠난 지 오래 되었다.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레나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 같다.

안톤이 믿고 있는 주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시리라 믿는다. 주님을 언제나 자기를 사랑하는 자의 친구가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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