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따와 레나는 클라스메이트다, 이르쿠츠크 국립 외대 불어과 4학년으로 한 기숙사에서 동거동락하고 있다. 이 대학교는 5년제이므로 2004년 6월에 졸업 예정이다. 졸업과 동시에 불어 선생님 자격을 얻게 된다. 한국으로 치면 국립사대 학생인 셈이다.
두 자매에겐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이 나라 대학생 가운데 크리스챤은 1%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자매는 세례교인이다. 정말 어려운 천국 관문을 통과한 복 받은 주님의 자녀인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오염된 땅에서 백합처럼 핀 꽃이라 할 수 있다.
교인이 많은 한국 교회에서는 이 말이 잘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대학교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기독교 신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아직 기독교인이 극소수인 나라에서 신자는 정말 귀한 존재들이다. 주님께서도 이런 환경에 처해 있는 자녀들에게 더 관심이 많으실 듯-
리따와 레나가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둘 다 무척 가난하다는 것이다. 리따는 부모님이 있지만 실업자라 리따를 도울 형편이 안 된다. 그래도 이혼을 않고 이만한 딸을 거느린 부모는 전체 인구 중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에 있어서 리따는 누구보다 행복한 편이다.
레나의 어머니는 어릴 때 돌아가셨다 한다. 아버님마저 병약한 탓에 경제 능력이 없었지만 그래도 힘이 되어왔던 부친마저 얼마 전에 병으로 그만 세상을 떠났다.
레나는 봄을 맞아 토요일과 주일에 아르바이트를 나간다고 한다. 동물 인형 옷을 입고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면 하루 일당으로 한국 돈 만 원 정도 받는다. 하지만 주일 저녁까지 야외에서 보내다 보니 그만 교회를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조금 있으면 학교와 정부에서 고아에게 주는 장학금이 레나에게 지급될 예정이라고 한다. 형편이 다소 나아지면 무엇보다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어주었으면 한다.
한국에서 저희 선교에 관심을 많이 갖고 계신 집사님 한 분이 리따가 끝내 자퇴서를 내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월말쯤 얼마간의 헌금을 보내겠다는 연락이 왔다. 감사한 일이다.
리따에게 정말 기쁜 소식이 될 것 같아 약속한 시간에 우리 집을 방문하기를 기다렸다.
화요일 오후 4시에 리따가 집으로 찾아왔다. 지난 주말만 해도 학교에 자퇴서를 낸 직후라 슬픔에 젖어있던 리따의 표정이 오늘은 밝아보였다.
먼저 자퇴서를 무사히 잘 철회했는지가 관심사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끝내 자퇴를 결심했던 그녀가 우리의 권유로 한 주일 만에 다시금 학업을 재개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리따는 자퇴서를 접수하고 며칠 동안 머물다가 돌아왔다. 집에서도 가능한 학업을 계속하길 바랐지만 별다른 지원을 할 처지가 못 되었다. 모두 마음뿐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지난 며칠 사이에 자퇴가 이미 처리가 된 줄로 알았던 모양이다.
우리가 돕겠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어제 자퇴서를 철회하기 위해 학교에 가보았더니 학장이 결제하지 않고 반려하라 했다는 것이다. 벌써 4학년이 아닌가.
학장을 찾아가자 자퇴를 취소하고 어렵더라도 무조건 학업을 계속하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퇴서를 철회하는 글을 제출하고 이 문제는 없었던 일로 처리되었다고 한다.
리따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집사님의 약속 헌금에 맞추어 미리 장학금 형태로 준비해 두었다. 리따 친구 레나 역시 어려워 보여 리따에게 2/3를 주고 1/3은 레나에게 주라고 했다. 어차피 두 자매는 한 방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함께 잠을 자는 사이이다.
대신 리따에게 몇 가지 당부했다. 불신자들이 만연한 이 땅에서 주의깊게 살아가야 한다. 특히 크리스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에 빠져서는 안 되니 레나를 교회로 다시 인도해라.
마침 우리 교회가 저녁에 정기예배를 드리는 만큼 레나가 예배 시간에 다소 늦더라도 꼭 교회로 나올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말했다. 주님께서 얼마나 자기 자녀를 기다리고 계실까.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시 50:5)고 하지 않았던가.
리따가 일단 위기를 넘기고 나면 우리 집에서 마련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통해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해 보인다. 일부러 리따의 학업 연장을 위해 최소한의 생활비에 맞출 생각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이르쿠츠크로 오기로 되어 있는 선교사님으로부터 여름에 가족이 도착하는 대로 리따에게 러시아어 수업을 맡기겠다는 연락이 왔다는 말도 전해 주었다.
주님의 사랑과 한국 목사 가정의 사랑 그리고 한국교회 후원자로부터 장학금까지 받게 되어 서인지 몹시 기쁜 표정이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하자 물론이죠 하고 답했다.
오후반인 찬미가 학교를 가던 중 그만 넘어져 다리에 상처가 난 채 돌아왔다. 집에 머물고 있던 찬미와 리따가 공부도 할 겸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외출했다.
다시 돌아와 찬미에게 물어보니 리따가 우리 집을 나서면서 당장 봄 구두부터 사야겠다고 말했다 한다. 리따는 한창 피어나는 여대생이어서 하고 싶은 것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벌써 날씨가 많이 풀렸는데 아직도 무겁고 열이 나는 겨울용 부츠를 신고 다니던 리따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신발이었나 보다. 사실 이런 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새 봄을 맞아 리따가 새 신을 신고 가뿐한 마음으로 힘차게 살아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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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3년 전에 쓴 내용이다. 이글을 쓰고 1년이 지날 무렵 길에서 우연히 리따를 만났다. 리따는 시골에 있는 학교 영어 선생님이 되었고 레나는 도시에서 가까이 있는 학교 독일어 선생님이 되었다 한다.
리따는 불어가 주 전공이지만 시골 학교에 불어 과목이 없어 제 2외국어로 공부한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학교 근처 방을 얻어 자취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선생님이 되어서인지 훨씬 세련되어 보였다. 우리와의 만남이 추억으로 남아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은 리따와 연관된 교회 교단과 우리가 새로이 관계를 맺고 있는 교단이 달라 연락이 잘 닿지 않고 있다. 한국 선교사와의 만남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으리라 생각된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매들이다.
사진- 리따와 만날 무렵 이르쿠츠크 교회 부활절 예배 장면- 중국 조선족과 한국유학생들이
주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