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앞에 홀로서기

by 이재섭 posted May 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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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 마태복음 5장 3절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 Matt. 3:5








+ 가난해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


더 이상 추락할 데가


없는 사람은 평안하다.


모든 사람들이 떼 몰려 지나가고


남은 빈자리에 혼자 남을 수


있다는 것은 용기이다.


삶에 지친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십자가 위에 달리신


외로운 주님을 만난다. +





한몸기도에서-





************





나는 종전 이듬해 여름 부산 동래에 있는 한 피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경북 안동이 고향이지만 세 형제 중 둘째인 부친 몫으로 전답이 거의 없어 부모님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시는 것을 포기한 탓에 부산에서 나게 된 것이다.





위로 형이 셋이 있는데 동생 둘이 더 태어났다. 전후 한국의 어려운 실정, 보릿고개를 넘는 동안 형들이 하나 둘 중고교로 진학하면서 가세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끝내 파산 지경에 이르러 부산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큰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지만 장남 집안이라 해서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는 영악한 분이라 역시 땅을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친 형제가 나오미처럼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가까운 인척이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직 어린 조카들을 거느린 형과 형수가 왔음에도 첫날부터 외면하는 것이었다.  당장 잠잘 곳조차  없었다.  먼 일가 집 어른이 이런 모습을 보고 자신의 외양간이 비어 있는데 우선 기거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예수님의 부모가 잠잘 곳을 찾지 못해 마굿간에서 밤을 맞듯이 우리는 소가 살던 외양간을 급히 손보고 잠을 청했다. 겨울이 다가와 이내 어두워졌지만 불을 켤 능력이 없었다.


일단 온돌을 놓는 일이 급했다.  막내는 아직 갓난아기였던 것이다. 아버지께서 산을 다니며 구들장을 구해와 온돌을 놓았다. 형과 나는 매일 나무를 해와 방이라도 따뜻하게 했다.  추수철이 되었지만 누구 하나 식량을 지원하는 인척이 없었다.





주인집 일가 아저씨가 호박 열 개를 주셔서 한 달 간 호박죽으로 연명했다.  부모 몫으로 땅도 좀 있었는데도 농사를 지으면서도 누구도 선뜻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12월이 접어들면서 위기가 고조되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마침내 고향을 떠났다.





돌이켜보면 고향에서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주님의 뜻이었다. 기독교인이 한 명도 없는 고향 땅에 정착을 했더라면 언제 교회를 찾게 될 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의 배척으로 유리방황하다가 불과 12살 난 나의 기지로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했다.  그것도 어렵게 모은 돈으로 지은 판잣집이 철거되면서 사당동 이주 단지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고향을 떠난 지 불과 1년 만에 서울에서 살게 된 우리 가족은 뜻밖의 보금자리로 인해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무엇보다 초등학교마저 중퇴해야 했던 나는 교회 천막학교에서 밀린 학업과 신앙을 배울 수 있었다.


얼마 후 정규 학교 졸업반 편입 시험에서 주위에 있는 정규학생들과 함께 본 평가고사에게 전체 1등을 차지했다. 줄곧 수위를 유지하다가 초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중학교 진학할 형편이 안 되어 주경야독 끝에 중고교 과정 모두 검정고시로 패스했다. 





가난의 시련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경험한 탓인지 가난한 자의 이웃이 되기 원했다.  7년 과정의 신학 수업을 마치고 바로 선교사로 나가려다가 선뜻 보내주는 곳을 찾지 못해 젊은날에 선교사로 헌신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대신 가난한 청소년들이 주를 이루는 봉제공과 전자 조립공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 유급 사목으로 있으면서 헬라어 등 신학교 강의를 10년 가까이 했다. 





선교사로는 다소 늦은 나이인 40대 중반에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나갔다가 2000년 7월에 러시아 시베리아로 왔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자녀들 또한 가난한 이웃을 많이 체험해야 했다. 


우리가 거주하던 카자흐스탄 도시는 전기와 난방이 끊어지기 일쑤였다.  21세기를 바라보는 시대에 희미한 촛불 아래서 지내야 했던 것이다.  피난민처럼 난방이 안 된 방에서 옷을 몇 겹 껴입고 이불을 있는 대로 꺼내 덮고 자야 했다.





러시아 시베리아는 춥기는 해도 환경이 좀 나은 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철저한 신앙훈련을 받은 탓에 지금까지 맥주 한 잔을 마신 적이 없다.  평소 거짓말을 싫어해 고지식해 보이기까지 한 편이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3-5).






권면과 책망 이것은 목자의 직무이기도 하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던지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되면 복종해야 한다.  신앙의 질서를 지키지 않을 때 주위가 혼탁해진다.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딛 1:9-11).







이 땅에 와 있는 한국인들이 이제라도 형제사랑과 민족의식을 갖기 바란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해서 꼭 그 자리에 낄 필요가 없다. 

특히 자신이 이 땅에 선교사로 왔다고 생각하는 자라면 더욱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신앙인이라면 영적 지각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 5:14).





부활절도 지났다. 유월절 어린 양을 기념하며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되어야 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벧전 5:15,16).








모든 사람들이 떼 몰려 지나가고


남은 빈자리에 혼자 남을 수


있다는 것은 용기이다.


삶에 지친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십자가 위에 달리신


외로운 주님을 만난다. +





한몸기도의 글귀가 위로가 된다. 


좁은문으로 들어갈 때 주님이 기뻐하신다.  신앙인은 주님의 십자가 앞에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니고데모도 그랬고 아리마대 요셉도 그랬다.  구약의 모세도, 아브라함도 야곱도 요셉도 엘리야도 하나님 앞에 홀로서기를 잘 했던 분이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처럼 언제 어디서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기 원한다.





봄을 맞아 나무들마다  잎이 나고 있다. 자연도 하나님의 섭리를 지키고 있다.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 곳도 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크리스챤들 모두 신앙의 봄이 오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가 되어 하나를 이룰 때 주위에서 보기에도 아름답고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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