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이기는 지혜

by 이재섭 posted May 0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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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겨우살이를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시베리아 사람들이 추위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이따금 인터넷을 통해 한국 신문을 보기도 한다. 영하 10도의 한파(?)가 몰려왔다며 난리법석을 떠는 것을 보고 머나먼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다. 이곳에는 영하 15정도는 쌀쌀하다는 단어를 사용한다(겨울의 경우 따뜻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대개 영하 25를 넘어야 춥다는 말이 통한다. 영하 30도 안팎까지 노점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물론 더 추워도 생업을 위해 노점에서 장사를 하기도 한다).




먼저 시베리아 사람들은 따뜻한 신발을 신는다. 대개 부추를 신는데 겨울용의 부츠는 속에 털(대부분 인조털이지만)이 있는 것을 신는다. 혹 부추라도 이런 장치가 되어 있지 않을 경우 봄, 가을 용이라고 말한다. 여자들의 경우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추를 많이 신는다. 남자들은 활동이 편하도록 대개 발목까지 올라오는 것을 즐겨신는다.




다음에 중요한 것은 모자이다. 시베리아 사람들은 대개 10월이면 모자를 쓴다. 이때부터 겨울이 끝나는 5월까지 모자를 애용하게 된다. 남자 아이들은 빵 모자를 즐겨 쓰지만 여자 아이들의 경우 좀더 다양한 형태를 선호한다. 1년중 반 이상을 모자를 쓰는 셈이니 모자의 비중이 크디 하겠다. 혹 겨울에 접어들었을 때 모자를 안 쓰는 아이가 보이면 어른들이 주의를 주기까지 한다.



어른들은 <싸프까>하고 하는 털모자를 쓰게 된다(메뉴 화면에 본인이 쓴 것). 이 싸프까는 가격이나 질에 있어서 여러 형태가 있다. 좀 여유가 있는 사람은 노르까(해달 가죽)와 같이 부드럽고 질 좋은 가죽으로 만든 것을 구입한다. 본인은 형편도 어렵고 해서 노르까 값의 1/5에도 못미치는 토끼털로 된 가장 싼 것을 하나 구했다.



이 나라에서는 모자가 부의 상징일 수도 있다. 값비싼 모자를 쓴 사람은 다소 여유가 있어 보여서인지 대우(?)를 받기도 한다. 토끼털로 된 모자를 쓴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아마 아주 가난한 사람 중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베리아 사람들은 아무래도 가죽옷을 선호한다. 한번 입으면 수 년 동안 입게 되는 만큼 두툼하고 무거운 것을 즐겨 입는다. 하긴 가벼운 옷은 워낙 비싸서 선뜻 사기가 쉽지 않다. 한국 사람의 경우, 싸다고 옷을 샀다가 무거워서 못입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출석하던 교회 한 집사님이 오리털 파카를 하나 선물했는데 영하 40도에도 견딜만큼 따뜻해 겨울 동안 즐겨 입는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라 선교사가 즐겨 입는 옷은 학부 동창 전도사님이 선물한 것이다. 속에 긴 털이 들어 있어 시베리아 기후 속에서도 따뜻하고 가벼워 늘 입고 다닌다.



아주 추운 지역 사람들은 손목과 발목을 보온하는데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을 볼 수 있다(아예 동물 가죽을 손목과 발목에 감기도 한다). 이처럼 중무장 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곧 바람과의 전쟁을 치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찬바람이 몸 안에 들어오는 것을 방어하는 것이 곧 추위를 이기는 길인 것이다.



특히 머리로 찬 바람이 침투할 경우 큰 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도의 추위라면 간단한 모자나 신발만 바꾸어도 충분히 이겨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값비싸고 좋은 옷은 즐겨 입으면서도 정작 모자나 겨울용 신발을 피하다 보니 더 춥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물론 머리 모양이 헝끄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시베리아 사람들의 경우 남의 집을 들어갈 때 문 입구에서 거울을 보고 머리 손질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집에는 문 입구에 거울 외에 겉옷을 거는 곳이 준비되어 있다. 심지어 관공서나 도서관, 학교 등 거의 모든 곳에 겉옷을 보관하는 곳이 있다. 여기서는 번호표를 주고 겉옷을 맡아 준다. 특히 박물관이나 학교 등 몇몇 장소는 의무적으로 겉옷을 맡기게 되어 있다(이것은 아마 도난 방지 의도도 포한된 듯-).



시베리아에서는 갓난아기라도 반드시 데리고 산보를 나간다. 아예 걷지 못하는 아이는 유모차에 태워서라도 나간다. 겨울을 이기는 훈련이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겨울과 추위는 피할 수 없는 즉 주어진 환경인 것이다.



사실 한국은 추운 나라가 아니다. 한국 아이들이라 해서 영하 30도가 넘는 추위 속에서도 학교를 오가는 시베리아의 아이들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탓도 아닐 것이다. 사람의 몸이 느끼는 것은 대동소이하다고 본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문화적인 탈바꿈이 따라야 할 것 같다. 일단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면 자신에게 맞는 적당한 모자를 쓰기도 하고 신발 또한 보온이 잘 되는 것을 바꾸어 신을 필요가 있다. 찬바람이 침투하기 쉬운 곳은 마후라나 스카프 등으로 막는 것도 지혜이다.



사라 선교사에게 물어보았다. 한국인은 어째서 영하 10도만 되어도 저처럼 난리를 피우는가 하고 묻자, 대뜸 "멋내느라고 그래요." 하고 대답한다. 간단한 대답 속에 한국인의 생활 모습이 서려있는 것 같다.

추위에 맞설 수 있는 의복이나 모자 또는 신발이 없는 것도 아닐텐데 좀더 날씬하고 가볍게 보이려고 추위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계절 가운데 겨울이라고 피할 수 없다. 날씬하고 멋진 러시아 여성들도 겨울에는 두툼한 옷과 모자로 몸을 가리고 있는데, 우리네 사람들도 더 이상 추위를 겁내지 말고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어떨까.

혹 겨울에 시베리아를 방문하게 되더라도 너무 부담갖지 말고 현지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말에 잘 따르면 된다.  이르쿠츠크보다 더 추운 곳도 많이 있지만 지혜롭게 잘 살아가고 있다. 

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냉정하게 식어버린 마음이다. 크리스챤이라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사진설명- 시베리아의 겨울 여인이 된 사라 선교사-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살아가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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