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요리문답 요약
※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사람에 대한 지식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해 태어났다.
아무리 미개한 사람이라 해도 종교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을 우리가 발견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창조주의 위엄(la maieste)을 인식하기 위해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이 명백해 진다. 인생의 주된 걱정과 염려는 하나님을 찾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모든 애정으로 그분을 열망하며, 단지 그분 안에서만 안식을 누리는 일에 두어야 한다.
참 종교와 거짓종교의 차이
인간은 대다수가 한 신의 속박을 받으며 산다. 하지만 거짓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적당히 신을 섬기며 난잡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멸하는 거대한 안전감을 과시하며 산다. 게다가 그들은 무한하신 위엄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오성이 가지는 어리석고 경솔한 허영심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평가를 내리며, 하나님 경배대신 자신의 마음의 환영과 망상을 경배하고 있다.
참 경건이란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사랑하고, 그분을 주님으로서 공경하며, 그분의 공의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을 죽기보다 더 두려워하는 순수하고 참된 열정을 말한다. 이러한 열정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하나님을 무엄하게도 고안해 내려 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참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구하며, 자신들에게 계시되고 분명하게 나타난 그대로만 하나님을 이해할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인식해야 될 일
인간의 이해력으로는 하나님을 납득할 수 없다. 때문에 하나님의 엄위를 탐구하기보다는 그의 위대하심을 예배함이 마땅하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롬1장, 히11장)이라 불리는 하나님의 사역들 안에서 하나님을 찾고 또 그분을 정관 해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것을 정관하기엔 인간의 지성의 타락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가야 한다.
인 간
인간의 타락은 자신의 탁월한 본성이 어디서 연원하고 존속하고 있는지를 망각한 채 오히려 주님 밖에서 자기관철을 해 보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랑이 상실된 상태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도록 하나님의 은사를 박탈하였다. 비록 우리의 몸이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육 이외의 그 어떤 것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지.정.의는 완전히 타락하게 되었다.
자유의지
타락한 인간의 의지는 악하고 부패한 격정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공의보다 더 혐오하는 것은 없다. 죄의 독으로 가득 채워진 마음은 죄악의 열매밖에는 산출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죄는 강제성과 필연성의 원리 때문만이 아닌 인간 의지의 자발적 동의와 더불어 이루어진다. 결론적으로 인간이 자유의지라고 불리 우는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결론한다.
죄와 죽음
우리는 우리의 전 삶을 통해 지은 추악한 죄들로 인해 죽음으로 달려간다. 우리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그분의 진노가 가져다 줄 명백한 수치만을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사유(cogitation)는, 비록 그것이 인간을 공포감으로 무력하게 만들며 절망으로 짓누를 지라도, 우리를 위해 필요하다. 즉 이것은 우리 자신의 의가 박탈당하고, 우리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내던져지며, 삶에 대한 모든 기대가 거부당한 후 우리가 우리 자신의 빈궁, 가련함 그리고 수치를 인식함으로써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을 배우기 위해 필요하며 또 우리 자신의 부패, 무능 그리고 저주(perdition)를 자인함으로써 우리가 거룩, 능력 그리고 구원의 모든 영예를 (오직) 주님께 돌리는 것을 배우기 위해 필요하다.
구원과 생명에로의 복귀
우리의 무가치함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께 대한 참 지식으로 쉽게 접근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두 가지 매우 악질 적인 질병 하나님의 징벌에 대한 무사안일의식(securite)과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릇된 신뢰를 파괴하실 때, 하나님 나라의 첫 번째 관문으로 가는 것이다. 곧 우리자신의 양심과 죄 짐에 의해 몹시 고통을 받아 신 경외에로 부추겨지는 것을 구원을 위한 첫 단계로 설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 인식 안에서 우리를 단련시키는 율법을 먼저 선물해 주셨다.
율 법
우리가 주님의 뜻이라고 불러 마땅한 모든 의에 대한 완전한 규칙이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졌다.
출애굽기 20장 2~3절(제1계명)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주 너의 하나님이로라.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나님께 속한 고유한 영광을 오직 그분을 위해서만 예배해 놓아야 한다.
1계명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분을 떠나서는 어떤 다른 신도 생각하거나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제 2계명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이 계명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영적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하나님께서 (본질상)영이신 것처럼 그분은 (당신의 본질에 상응하여)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되어지기를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에게 육체적인 어떤 것을 감히 부과하려 해서는 안되며 그분을 우리의 감각의 수준으로 끌어 내리려해서는 안됨을 가르친다. 마치 그가 우리의 아둔한 머리에 의해 이해될 수 있거나 어떤 형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제 3계명
"너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는 주께서 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시리라."
제 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이날에는 너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나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하나님이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제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제 6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
제 7계명
"간음하지 말지니라"
제 8계명
"도둑질하지 말지니라"
제 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제 10계명
"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율법의 요약
첫째는 우리의 온 몸과, 온 영혼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의 의의
율법은 올바르고 거룩한 삶의 모범이며 의에 대한 아주 완전한 상(image)이기도 하다. 따라서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실천적으로) 제시한다면, 그는 완전을 위해 필요한 사항에 있어서 주님 앞에 아무런 결함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 안에는 어떤 결함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 율법을 완전하게 이행할 수는 없다.
율법의 직무
율법은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상응하여 이중적인 직무를 가지고 있다고 결론하고 있다. 불신자에 대해서는 단지 이들을 논박하여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도록 하는 데 소용되기 때문입니다.(롬3:3). 성 바울이 말씀하신 대로 율법은 죽음과 정죄의 직무를 가지고 있다.(고후3:6,9).
그러나 신자들에 대해서는 다른 기능을 행사하고 있다. 첫째로, 율법은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겸허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찾도록 준비시켜 준다.(롬5:18~24) 둘째로, 율법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요구함으로써 그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게끔 주님께 간구 하도록 권면해 줍니다. 셋째로, 율법은 그들을 신경외 가운데 붙들어 놓는 굴레와도 같습니다.
신앙
우리는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를 인식한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분을 이해하며 그분이 우리에게로 보내심을 받은 분임을 인식한다. 오직 믿는 사람들만이 그리스도를 향유하며 그분을 자신들에게로 보내심을 받은 분으로서 영접한다.
선택과 예정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오직 주님께서 그의 영원하신 선택을 통해 당신의 자녀로서 그리고 하늘 나라의 상속자로서 예정하신 사람들 안에서만 그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께서 선택과 유기의 대상을 정하신 것에 대해서는 오직 그분에 의해서만 인식되어지도록 놔두어야 한다.
주님의 섭리는 영원 전부터 우리에 대해 결의해 놓으신 것인데 이러한 것을 궁구하려 들지 말자 차라리 우리는 주님께서 이 확신을 충분하고도 견고하게 만들어 주신 바로 그 증거로써 만족하자. 왜냐하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생명에로 예정된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을 받아들여 영접한다면 선택의 보증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 신앙
단순한 지식적(pure et simple)지식 또는 성서에 대한 어떤 이해가 신앙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은 일반적으로 어떤 개연성 있는 근거에 의해 입증되는 사물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이란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해 확실히 결단하는 확고 부동한 마음의 신뢰이다. 신앙의 정의는 약속의 내용으로부터 취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이 이렇듯 그리스도 안에서 확증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항구적인 대상은 의심할 나위 없이 그리스도 시라는 사실과 신앙이 신적 긍휼의 모든 풍요로움을 관조하는 것은 바로 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신앙은 하나님의 은사이다
신앙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모든 능력을 무한히 능가한다는 사실 그리고 신앙이야말로 하나님의 특별하고도 값진 선물이라는 사실을 의심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들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사물들에 있어서까지도 우리 안에서 불확실하게 나타난다면, 우리의 눈이 보지 못하고 우리의 지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주님께서 약속하실 때 어찌 그 진리가 (우리 안에서)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게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신앙은 성령님의 조명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이런 연고로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신적 진리의 확실성을 견고히 해 주는 담보라 불리워지며 또한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날의 고대 속에 인봉해 두는 도장이라 불리워진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정결하게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어떤 불결한 것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인 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도록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자신께 참여하도록 만들어 주신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방식으로 이 의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셨으며 이 의가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지는 사도신경 해설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신앙을 통해 거룩하게 된 것은 율법에 복종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와 '거룩함'이 되신다. 따라서 우리가 이 거룩함을 동시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얻을 수 없다. 율법의 준수는 우리 자신의 능력에 의한 사역이 아니고 영적인 힘에 의한 사역이다. 율법의 실천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신앙 없이 이뤄질 수가 없다.
참회와 중생
참회는 항상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결합된다. 참회는 회개를 뜻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세상의 부패로부터 벗어나 주님의 길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회의 작용은 중생에 달려 있는데 이 중생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의 제어(선천적 부패의 제어)와 영적 갱신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죄와 우리 자신에 대해 죽은 우리는 전 삶을 통해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위해 살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고 이 중생은 우리가 썩어 없어질 육의 감옥 속에 갇혀 있는 한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참회는 죽을 때까지 지속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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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사람에 대한 지식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해 태어났다.
아무리 미개한 사람이라 해도 종교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을 우리가 발견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창조주의 위엄(la maieste)을 인식하기 위해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이 명백해 진다. 인생의 주된 걱정과 염려는 하나님을 찾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모든 애정으로 그분을 열망하며, 단지 그분 안에서만 안식을 누리는 일에 두어야 한다.
참 종교와 거짓종교의 차이
인간은 대다수가 한 신의 속박을 받으며 산다. 하지만 거짓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적당히 신을 섬기며 난잡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멸하는 거대한 안전감을 과시하며 산다. 게다가 그들은 무한하신 위엄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오성이 가지는 어리석고 경솔한 허영심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평가를 내리며, 하나님 경배대신 자신의 마음의 환영과 망상을 경배하고 있다.
참 경건이란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사랑하고, 그분을 주님으로서 공경하며, 그분의 공의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을 죽기보다 더 두려워하는 순수하고 참된 열정을 말한다. 이러한 열정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하나님을 무엄하게도 고안해 내려 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참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구하며, 자신들에게 계시되고 분명하게 나타난 그대로만 하나님을 이해할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인식해야 될 일
인간의 이해력으로는 하나님을 납득할 수 없다. 때문에 하나님의 엄위를 탐구하기보다는 그의 위대하심을 예배함이 마땅하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롬1장, 히11장)이라 불리는 하나님의 사역들 안에서 하나님을 찾고 또 그분을 정관 해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것을 정관하기엔 인간의 지성의 타락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가야 한다.
인 간
인간의 타락은 자신의 탁월한 본성이 어디서 연원하고 존속하고 있는지를 망각한 채 오히려 주님 밖에서 자기관철을 해 보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랑이 상실된 상태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도록 하나님의 은사를 박탈하였다. 비록 우리의 몸이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육 이외의 그 어떤 것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지.정.의는 완전히 타락하게 되었다.
자유의지
타락한 인간의 의지는 악하고 부패한 격정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공의보다 더 혐오하는 것은 없다. 죄의 독으로 가득 채워진 마음은 죄악의 열매밖에는 산출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죄는 강제성과 필연성의 원리 때문만이 아닌 인간 의지의 자발적 동의와 더불어 이루어진다. 결론적으로 인간이 자유의지라고 불리 우는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결론한다.
죄와 죽음
우리는 우리의 전 삶을 통해 지은 추악한 죄들로 인해 죽음으로 달려간다. 우리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그분의 진노가 가져다 줄 명백한 수치만을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사유(cogitation)는, 비록 그것이 인간을 공포감으로 무력하게 만들며 절망으로 짓누를 지라도, 우리를 위해 필요하다. 즉 이것은 우리 자신의 의가 박탈당하고, 우리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내던져지며, 삶에 대한 모든 기대가 거부당한 후 우리가 우리 자신의 빈궁, 가련함 그리고 수치를 인식함으로써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을 배우기 위해 필요하며 또 우리 자신의 부패, 무능 그리고 저주(perdition)를 자인함으로써 우리가 거룩, 능력 그리고 구원의 모든 영예를 (오직) 주님께 돌리는 것을 배우기 위해 필요하다.
구원과 생명에로의 복귀
우리의 무가치함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께 대한 참 지식으로 쉽게 접근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두 가지 매우 악질 적인 질병 하나님의 징벌에 대한 무사안일의식(securite)과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릇된 신뢰를 파괴하실 때, 하나님 나라의 첫 번째 관문으로 가는 것이다. 곧 우리자신의 양심과 죄 짐에 의해 몹시 고통을 받아 신 경외에로 부추겨지는 것을 구원을 위한 첫 단계로 설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 인식 안에서 우리를 단련시키는 율법을 먼저 선물해 주셨다.
율 법
우리가 주님의 뜻이라고 불러 마땅한 모든 의에 대한 완전한 규칙이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졌다.
출애굽기 20장 2~3절(제1계명)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주 너의 하나님이로라.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나님께 속한 고유한 영광을 오직 그분을 위해서만 예배해 놓아야 한다.
1계명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분을 떠나서는 어떤 다른 신도 생각하거나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제 2계명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이 계명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영적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하나님께서 (본질상)영이신 것처럼 그분은 (당신의 본질에 상응하여)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되어지기를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에게 육체적인 어떤 것을 감히 부과하려 해서는 안되며 그분을 우리의 감각의 수준으로 끌어 내리려해서는 안됨을 가르친다. 마치 그가 우리의 아둔한 머리에 의해 이해될 수 있거나 어떤 형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제 3계명
"너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는 주께서 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시리라."
제 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이날에는 너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나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하나님이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제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제 6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
제 7계명
"간음하지 말지니라"
제 8계명
"도둑질하지 말지니라"
제 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제 10계명
"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율법의 요약
첫째는 우리의 온 몸과, 온 영혼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의 의의
율법은 올바르고 거룩한 삶의 모범이며 의에 대한 아주 완전한 상(image)이기도 하다. 따라서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실천적으로) 제시한다면, 그는 완전을 위해 필요한 사항에 있어서 주님 앞에 아무런 결함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 안에는 어떤 결함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 율법을 완전하게 이행할 수는 없다.
율법의 직무
율법은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상응하여 이중적인 직무를 가지고 있다고 결론하고 있다. 불신자에 대해서는 단지 이들을 논박하여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도록 하는 데 소용되기 때문입니다.(롬3:3). 성 바울이 말씀하신 대로 율법은 죽음과 정죄의 직무를 가지고 있다.(고후3:6,9).
그러나 신자들에 대해서는 다른 기능을 행사하고 있다. 첫째로, 율법은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겸허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찾도록 준비시켜 준다.(롬5:18~24) 둘째로, 율법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요구함으로써 그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게끔 주님께 간구 하도록 권면해 줍니다. 셋째로, 율법은 그들을 신경외 가운데 붙들어 놓는 굴레와도 같습니다.
신앙
우리는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를 인식한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분을 이해하며 그분이 우리에게로 보내심을 받은 분임을 인식한다. 오직 믿는 사람들만이 그리스도를 향유하며 그분을 자신들에게로 보내심을 받은 분으로서 영접한다.
선택과 예정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오직 주님께서 그의 영원하신 선택을 통해 당신의 자녀로서 그리고 하늘 나라의 상속자로서 예정하신 사람들 안에서만 그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께서 선택과 유기의 대상을 정하신 것에 대해서는 오직 그분에 의해서만 인식되어지도록 놔두어야 한다.
주님의 섭리는 영원 전부터 우리에 대해 결의해 놓으신 것인데 이러한 것을 궁구하려 들지 말자 차라리 우리는 주님께서 이 확신을 충분하고도 견고하게 만들어 주신 바로 그 증거로써 만족하자. 왜냐하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생명에로 예정된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을 받아들여 영접한다면 선택의 보증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 신앙
단순한 지식적(pure et simple)지식 또는 성서에 대한 어떤 이해가 신앙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은 일반적으로 어떤 개연성 있는 근거에 의해 입증되는 사물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이란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해 확실히 결단하는 확고 부동한 마음의 신뢰이다. 신앙의 정의는 약속의 내용으로부터 취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이 이렇듯 그리스도 안에서 확증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항구적인 대상은 의심할 나위 없이 그리스도 시라는 사실과 신앙이 신적 긍휼의 모든 풍요로움을 관조하는 것은 바로 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신앙은 하나님의 은사이다
신앙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모든 능력을 무한히 능가한다는 사실 그리고 신앙이야말로 하나님의 특별하고도 값진 선물이라는 사실을 의심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들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사물들에 있어서까지도 우리 안에서 불확실하게 나타난다면, 우리의 눈이 보지 못하고 우리의 지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주님께서 약속하실 때 어찌 그 진리가 (우리 안에서)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게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신앙은 성령님의 조명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이런 연고로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신적 진리의 확실성을 견고히 해 주는 담보라 불리워지며 또한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날의 고대 속에 인봉해 두는 도장이라 불리워진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정결하게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어떤 불결한 것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인 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도록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자신께 참여하도록 만들어 주신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방식으로 이 의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셨으며 이 의가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지는 사도신경 해설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신앙을 통해 거룩하게 된 것은 율법에 복종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와 '거룩함'이 되신다. 따라서 우리가 이 거룩함을 동시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얻을 수 없다. 율법의 준수는 우리 자신의 능력에 의한 사역이 아니고 영적인 힘에 의한 사역이다. 율법의 실천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신앙 없이 이뤄질 수가 없다.
참회와 중생
참회는 항상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결합된다. 참회는 회개를 뜻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세상의 부패로부터 벗어나 주님의 길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회의 작용은 중생에 달려 있는데 이 중생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의 제어(선천적 부패의 제어)와 영적 갱신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죄와 우리 자신에 대해 죽은 우리는 전 삶을 통해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위해 살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고 이 중생은 우리가 썩어 없어질 육의 감옥 속에 갇혀 있는 한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참회는 죽을 때까지 지속되어야만 한다.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