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신학

by 이재섭 posted Nov 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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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그리스어: Παυλος)은 기독교 초대교회사의 선교와 신학에 기초를 작성한 사도이며, 첫 번째 신약성경인 데살로니가전서(주후 51년경 저술)를 저술한 신학자입니다.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 Church)에서는 바오로, 기독교(Protestant Church)에서는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기독교 역사에서 결코 제외해서는 않되는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명이라고 할 것입니다. 특히 그가 기록한 로마서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야 하는 이유와 삶의 목적을 명확히 제공함으로서 이 땅에 기독교가 깊이 뿌리내리도록 하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초대 기독교회를 이끌어 나간 가장 우수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신학적인 이념을 정립하여 준 가치로서는 1순위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교리를 선포하려는 열정으로 아프리카(북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한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를 오직 도보로 방문하였습니다 무려 20,000km에 이르는 거리를 돌아다닌 그의 선교여행과,신약성경 27개의 문서 중 13편에 달하는 그의 이름으로 된 서신서들은, 초대 교회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업적이라 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선교여행 중에 여러 번 죽을 위기를 맞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다섯 번 매를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배가 파선되었다는 것이 그의 선교여행에서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목숨을 다하여 선포한 지역에 기독교회를 세웠고, 그 교회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은 지성이 없이 열정만 있는 맹신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열정은 예수 그리스도가 왜 하나님인가 하는 것을 구약성경을 근거로 변증하는 지성적인 신앙에 뿌리를 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연대기



주후 5년경,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에서 출생


32~33년경, 스테파노 부제 순교, 바울의 회심


33년~39년경, 요르단강 동부 거주


39년경, 다마스쿠스 탈출, 예루살렘 교회 방문


39년~43년경, 시리아와 길리기아 거주


43년~44년경,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공동목회


44년~49년경, 제 1차 전도여행


49년경, 예루살렘 공의회


50~52년경, 제 2차 전도여행,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작성


53~58년경, 제 3차 전도여행,에베소에서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번째 편지 작성,


53~58년경, 감옥에서 빌립보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 집필,


53~58년경,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고린도교인들에게 보낸 두번째 편지 집필


58년초경, 고린도에서 로마서 집필


58년경, 예루살렘에서 체포


58년이후, 로마로 이송, 로마선교


62~63년경, 석방되어 63년경,스페인에서 선교하였을 것으로 추정함(로마서15:28)


역사학자중에는 사도 바울이 62년 잠시 석방되어 2년간 고린도교회, 마케도니아 지방교회, 로마교회를 돌아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하는 설이 있으나 확인된 바는 없슴


64~68년경, 로마에서 순교함




1)사도 이전의 사울



주후 5년경, 사도 바울은 베냐민 지파로 유대인이었지만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지 않고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로마의 지배아래에 있었던 다소는 지중해 연안 길리기아 평원을 흐르는 시드누스 강 입구에 있는 항구로서 멀리 유브라데로 부터 소아시아를 가로질러 온 모든 길이 끝나는 종착지였습니다 따라서 다소는 내륙지방의 상품을 수출하고 외국의 문물이 들어오는 세계적인 항구도시였습니다



이로서 탄생과 동시에 로마시민권을 획득한 바울은 이방인 세계에서 엄격히 분리된 유대인이었으며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2절의 히브리인이라는 표현과 빌립보서 3장 5절의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는 표현은 단지 이스라엘 자손이라든지, 유대교의 일반적인 귀의자를 지칭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6장 1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유대인 사회내부에는 헬라인이 히브리인과 구별되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5절에서 사도 바울 자신은 아람어를 쓰는 유대인임과 동시에 팔레스타인 유대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히브리 이름인 "사울"로 불리워 졌던 것입니다



당대 최고의 교법사 가말리엘 문하에서 쉐마(신명기6:4~9, 11:13~21, 민수기15:37~41), 창조주 이야기(창세기1~5장), 의식법(레위기1~8장), 할렌(시편113~18편) 등 율법 교육을 받았으며 엄격한 바리새인(격리된 자)으로서의 사울의 삶은 기독교도들에 대한 철저한 핍박이었으며 그 결과 스데반 집사의 순교적 사건의 중심에 서 있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동의하여 증인이 되었고 예루살렘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흩어진 후에도 사울은 계속하여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서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다메섹 지역의 기독교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핍박하려 가던 도중,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그의 일생은 단번에 변화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홀연히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 눈이 멀어버린 사울은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새로운 삶을 선택하였고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고서야 눈이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첫번째 실천한 행동은 다메섹에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혹한 핍박자로서으 사울에 대한 인식은 쉽게 변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전력은 사울을 주의 사도로 받아들이는데 심각한 장애요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그의 행동을 의심하고 있었으나 바나바의 지혜로운 중재로 그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는 3년 동안 베드로와 신앙적 교제를 나누며 예루살렘으로 올라 왔던 것입니다



2) 사도로서의 바울



그는 로마 시민권의 소유자로서 이것을 그리스도를 위한 복음 전파의 유용한 방편으로 이용하였습니다 그는 로마가 누리는 질서와 평화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보고 복음 전파를 위한 디딤돌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난 뒤 아라비아에서 은거한 후 다메섹으로 돌아와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전하는 변화된 삶의 첫발을 내 디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베드로, 야고보와 3년간 교제하였으며 그 후로 고향인 길리기아로 돌아가 8년 이상을 조용히 지냈습니다



바나바와 함께 시작된 제 1차 전도여행은 구브로를 시작으로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에 이르기 까지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마가 문제로 인하여 바나바와 헤어진 제 2차 전도여행에서는 실라와 함께 안디옥을 출발하여 드로아 항구를 경유, 마게도냐 지방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뵈뢰아, 아덴, 고린도 전역에 이르기 까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어 3년간의 제 3차 전도여행에서는 에베소를 중심으로 소아시아 서부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일로 보냈습니다 이러한 3차에 걸친 전도여행 중에 투옥되고 핍박받는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 하였슴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복음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던 것입니다



3차 전도 여행후 유대인에게 붙잡혀 연금을 당하고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주후 60년 로마에 입성하지만 주후 67년경 네로 황제시대에 대화재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고 결국 순교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사도바울은 스페인에 이르기 까지 전도하였다고 전해지며 학자들에 의하면 그가 도보로 여행한 거리가 6,000마일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정열적인 사도 바울로 인해 오늘날의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누구보다도 명확하고 분명하게 해석한 당대 최고의 신학자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씨를 뿌리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자라도록 양육하는데 전심을 기울인 책임감있는 목자였습니다 또한 교회내의 많은 문제들, 개인적인 삶에 관한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결책을 제시해 준 최고의 설교자인 것입니다



3) 사도 바울의 신학



사도 바울의 신앙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완전히 변화된 삶에서 시작되고 있으며 유대교적 신학의 바탕위에 성장하였던 것입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엘리트 계층의 바리새파인 그가 일생일대의 전환기적 삶이된 스데반의 순교사건은 그에게 평생의 충격적인 삶의 허물이었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유대 최고의 교법사 가말리엘 문하에서 쉐마(신명기6:4~9, 11:13~21, 민수기15:37~41), 창조주 이야기(창세기1~5장), 의식법(레위기1~8장), 할렌(시편113~18편) 등 율법 교육을 엄격하게 적용받았던 바울에게 있어서 신학의 전환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에 있어서 초대교회 당시에는 차별화와 구별이 어려운 혼합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것은 두가지 다 구약성경에 기초한 연유에 있었으며 여전히 구약의 율법과 문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던 기간이었습니다 어떤 철학이 생성하고 그것이 새로운 진화과정을 거치기까지는 수많은 진통과 세월이 필요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초유의 사태는 바로 이러한 두가지 혼합된 사상을 완전히 분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버로 이러한 구약과 신약으로 대립되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사상에서 가장 정확하고 명확하게 정립한 것이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토대가 되는 구약성경을 결코 무시하거나 경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강화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강조하되 그 바탕이 되는 "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을 율법의 기초로 세움으로서 그 율법의 완성을 가져오게 한 것이었습니다 율법의 폐위가 아닌 완성의 의미는, 율법을 지키되 그것을 "외식과 거짓" 이 아닌 "진심과 순종" 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정립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하여 부르심으로 부터 구원에 이르는 9단계를 정립함으로서 기독교의 핵심교리에 대한 신학적 사상을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즉, 부르심(Calling)이라는 소명(召命)을 1단계로 거듭남(Born again, 중생(重生)), - 회개(Conversion,회심), - 신앙(信仰, Faith), - 칭의(稱義, Justification, 의로움), - 양자(養子, Adoption, 하나님의 자녀), - 성화(聖化, Sanctification, 성결한 삶), - 성도의 견인(堅忍, Perseverance, 택함에 대한 보증), - 영화(榮華, Prosperity, 천국, 동일한 가치) 에 이르는 구원의 서정 9단계 (또는 8단계) 라고 하는 기독교의 핵심적 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을 인용한 것은 적으나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을 잘 알고 있었으며 베드로와 여러 제자들의 삶과 내용을 통해서 많은 것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상적 중심은, 객관적으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었으며, 주관적으로는 구원이 행함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속죄인 까닭에 하나님의 은총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나타난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적 사상 가운데 핵심적 용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항상 관련되어 있슴을 알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된 삶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연결성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항상 보이지 않는 라인과 같은 영적 탯줄을 통하여 연결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세상의 욕망과 죄의 속성으로 인하여 사람은 항상 죄성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는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유에서 사도 바울 자신은 "나는 매일매일 죽노라" 고 하였으며, "죄인중의 괴수"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신비적인 인물로서, 속죄를 설명함에 있어서 법률적인 적합성을 일치시켜 설교하였습니다 즉,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음은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일치성을 조직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사상에 있어서 가장 근간이 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 진리가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와 기독교를 말하는 자들과 논쟁함에 있어서 기독교 사상을 명확히 한 바가 많으며,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는 이 시대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말년에 로마에 감금되어 있던 시대에 기록한 서신에는 논쟁의 내용보다 영적인 측면을 강조한 기록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 영광의 주님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심과 모든 만물이 다 그에게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말한 대목은 다른 초대 사도들과 일치하는 것이었으나 말년의 사상은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이 세계에 충만하시다는 영적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일컬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함으로서, 교회의 권위와 소유가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만물이 충만한 그리스도가 가장 많이 교회에 충만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을 철폐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었으며, 이 교리의 영향이 세계적인 기독교로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로마서를 비롯하여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등 13권(히브리서 제외)을 기록한 저자로서 오늘날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관점을 정립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였던 것입니다





4)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



1) 제 1차 선교 여행/13:1-14:28

(1)안디옥에서의 행적/13:1-3

(2)구브로에서의 행적/13:4-12

(3)갈라디아 지역에서의 행적/13:13-14:20

(4)안디옥으로 회귀하는 동안의 행적/14:21-28



2) 예루살렘 공의회/15:1-35

(1)분쟁/15:1-5

(2)토론/15:6-18

(3)결론/15:19-29

(4)안디옥에 보낸 편지/15:30-35



3) 제 2차 선교여행/15:36-18:22

(1)개별적 선택/15:36-40

(2)교회를 재방문/15:41-16:5

(3)유럽으로 부르심/16:6-10

(4)빌립보에서의 사역/16:11-40

(5)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에서의 사역/17:1-34

(6)고린도에서의 목회 활동/18:1-17

(7)제 2차 전도여행을 종결/18:18-22



4) 제 3차 선교 여행/18:23-21:26

(1)에베소 - 말씀의 능력/18:23-19:41

(2)그리이스/20:1-5

(3)소아시아 - 드로아와 에베소 장로들에게 전하는 설교/20:6-38

(4)밀레도에서 가이사랴/21:1-14

(5)예루살렘 교회와 바울/21:15-26



5) 로마 여행/21:27-28:31

(1)바울의 체포와 변호/21:27-22:29

(2)바울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게 됨/22:30-23:10

(3)바울을 가이사랴로 호송함/23:11-35

(4)벨릭스 앞에서의 바울의 변호/24:1-27

(5)베스도 앞에서의 바울의 변호/25:1-27

(6)아그립바 앞에서의 바울의 변호/26:1-32

(7)바울의 항해와 배의 파선/27:1-44

(8)말타에서의 바울과 로마 도착/28:1-16

(9)로마에서의 바울/28:17-31





5) 사도 바울의 서신



(1) 로마서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제 3차 전도여행이 끝날무렵(로마서15:19)인 주후 57년경, 고린도에서 머무는 3개월 동안 기록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서는 스페인 선교를 위한 사도 바울의 로마 교회 방문을 준비하게 하며, 또한 사도들로 부터 성경적 가르침을 받지 못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기본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유대인 성도들의 율법주의적 신앙체계를 교정하고 바르게 훈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로마서는 서신서이지만 복음서에 가까운 것으로 기독교 신앙의 가본적인 원리 즉 죄, 구원, 은혜, 믿음, 칭의, 성화, 부활 등 핵심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이것을 생활에 적용하는 과정까지 방대한 분량을 한권으로 집약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서는 성경 66권을 대표하는 성경으로 알려져 있고 신학자들 사이에서 모든 성경의 중심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로마서 8장은 로마서의 중심으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다루고 있습니다



(2) 고린도전서

주후 55년, 사도 바울의 제 3차 전도여행중에 예베소에서 기록한 것으로, 고린도 교회의 분쟁과 다양한 견해의 신학적 논쟁을 해결하고, 또한 고린도 교회내의 신학적 질문서에 대한 회신을 다루고 있습니다 로마서가 신학적 사상을 정립한 신학교리 또는 조직신학적 정서에 근접하다면, 고린도전서는 고린도교회 내외의 분쟁과 현실적 고민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생활을 실재적인 접근을 통하여 해석한 지침서가 되고 있습니다



(3) 고린도후서

주후 55년, 사도 바울의 제 3차 전도여행중에 마게도냐에서 기록한 것으로, 고린도 교회의 사도 바울에 대한 오해를 변론하고 자신의 사도적 정당성을 변호하였으며, 교회내 분쟁의 중심에 서있던 유대주의자들을 척결하였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위한 구제헌금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가 논리적인 방향으로 성도의 생활을 지도해 나갔다면, 고린도 후서는 감성적인 호소로 지도한 양면성을 가진 것이라 할 것입니다



(4) 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의 기록연대에 대하여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았으나 대략 세가지의 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첫째는 제 1차전도여행이 끝난후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기전이라는 설이 있고, 둘째는 제 2차 전도여행중에 기록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으며, 셋째는 제 3차 전도여행 중인 주후 56년경 마게도냐에서 기록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신뢰받는 설이 제 3차 전도여행 중인 주후 56년경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율법을 통한 구원을 주장하는 유대인 교사들의 잘못된 주장들을 지도하고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갈라디아서는 기록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에 이르고 이것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이신득의 사상이 갈라디아서의 핵심으로서 유대인들의 사상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보다 강한 논조로 지도하고 있는것이 바로 갈라디아서입니다



(5) 에베소서

에베소서는 주후 62년경, 사도 바울이 제 1차로 투옥되었던 로마에서 기록한 것으로, 각 각 지역적으로 분할되어 있는 교회들에 대하여 만유의 주재로서 통일하시는 그리스도안에서 교회공동체의 일치를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성도들의 모든 삶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통일되어 하나됨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보낸 서신이지만 교회의 문제에 관한 지적보다는 교회공동체를 이루는 사람에 대한 일치와 통일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러한 통일성과 일치성의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신학적 사상 가운데 핵심이 되는 것은 교회론에 관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의 3대 원칙을 명확하게 세우고 있는데, 그것은 예배와 전도, 그리고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말씀선포(케리그마), 구제와 지역사회의 확장을 선도하는 봉사(디아코니아), 성도간의 화목과 친교,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교제(코이노니아)인 것입니다



(6) 빌립보서

빌립보서는 주후 62~63년경, 로마 감옥생활 가운데 기록한 것으로 빌립보교인들의 헌금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 투옥되어 있는 사도 바울 자신의 근황을 알리며, 또한 율법주의를 경계하고 일심동체로 연합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다른 서신과 달리 구약성경에서 인용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 분의 마음을 품고, 그분을 아는 지식의 깊이를 더해가며, 그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평강을 가지라는 권면을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7) 골로새서

골로새서는 주후 62~63년경, 로마 감옥생활 가운데 기록한 것으로 골로새 교회의 설립자인 에바브라로 부터 교회내에 이단이 침투하였다는 심각한 보고를 받고 이단을 배격하며, 정통적 기독론을 확립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내에 성행하던 잘못된 철학, 유대의식주의, 천사숭배, 신비주의, 금욕주의 등 이단사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유일하신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8) 데살로니가 전서

데살로니가 전서는 주후 51년경,사도 바울의 제 2차 전도여행 중 갈리오가 고린도 지역 총독으로 부임하기 직전에 디모데의 보고를 받고 고린도에서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경건한 삶에 대한 교훈을 주며, 생활의 중심이 되는 종말론적 신앙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4장과 5장을 통하여 치밀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9) 데살로니가 후서

데살로니가 후서는 주후 51년경, 데살로니가 전서를 기록하고 수개월후 고린도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전서를 기록할 때의 상황과 크게 변화한 것이 없다고 판단한 사도 바울은 박해받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재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지도하였으며, 생활의 경제 활동에 관심을 가질것을 경고하되 유대적 기법으로 엄격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전서와 마찬가지로 종말론적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더 많은 할애를 하여 바른 교훈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10) 디모데 전서

디모데 전서는 디모데 후서, 디도서와 함께 목회서신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주후 63~65년경, 로마 감옥에서 1차로석방되어 동방여행을 하는 도중에 기록되었습니다 특별히 영지주의 이단에 대하여 경고하고, 에베소 교인들을 윤리도덕적으로 연단하며, 교회 조직의 효과적인 운영지침과 올바른 목회지침을 제시해 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영지주의와 거짓교사등 이단에 대한 경계를 강조하고 있는 디모데 전서는 신학적 사상보다 윤리 도덕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며 공중예배와 교회행정과 권징에 대한 교훈, 그리고 목회자의 의무 등 교회생활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현대 교회행정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서신이라 할 것입니다



(11) 디모데 후서

디모데 후서는 바울서신의 최후서신으로, 주후 66년경, 로마 제국에 의해 2차로 투옥되어 순교하기 직전에 감옥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짓교사들로 부터 복음과 진리를 수호하고,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에서 끝까지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디모데를 만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특히 디모데의 소심한 성격과 연약한 육체를 염려하면서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해 낼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성도로서 시련에 대한 인내와 말세에 나타날 여러가지 시험에 대한 대비를 기록하면서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사역자들의 삶을 기록하며 또한 그러한 지체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12) 디도서

주후 66년경, 마게도냐에서 기록한 디도서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인 디도에게 보낸 목회서신입니다 신앙의 선한 행위가 종식되면서 혼란스러음으로 가득차 있는 그레데 교회의 질서를 바로 잡고, 바른 신앙관을 정립하며 또한 디도를 격려하여 율법학자 세나(Zena)와 아볼로를 통하여 영적 양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위하여 기록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디도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신앙의 실천을 강조하며 기독교의 교리와 영생,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구원의 보편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레데 사람들의 부패성과 비도덕적인 생활을 지적하며 목회자 디도에게 신앙적, 윤리적 모범성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13) 빌레몬서

주후 62년경,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1차로 투옥되었을 때 옥중에서 기록한 것으로 주인의 재산을 도적질하여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복음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회심케 하였으며, 그를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 보내면서 그를용서하고 받아들일 것과 또한 복음전파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것을 당부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빌레몬서는 노예신분에 대한 혁파를 논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 모두는 신분과 관계없이 한 형제이며 사랑안에서 모든 허물을 용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활적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4) 히브리서(저자는 미상)

주후 60~69년경, 기록된 것으로 사도바울을 비롯하여 바나바, 누가, 아볼로, 클레멘트 등이 기록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명확하게 정리되는 논리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유대교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서로서 서신과 설교의 중간지대에 있는 논문 형식의 서신 또는 변증서입니다 히브리서는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 중 동족의 박해를 이기지 못하고 유대교로 회심하려는 기독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품성과 사역과 신앙의 3가지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우월성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언약의 지도자를 나열하는 가운데 그들의 믿음과 신앙을 지켜 보면서 그들보다 우월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월성은 구약을 넘어 오늘에 이르기 까지 불변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우월성을 신앙하며 믿음을 굳게 지킬것을 간청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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