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숭배에 대한 비교 연구
-고대 메소포타미아, 가나안, 이스라엘 중심으로-
金 正 祐 <구약신약>
조상숭배 문제는 한국교회가 당연한 문화적, 신학적 과제 중 가장 오래되고,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이것은 한국교회 뿐 아니라, 아시아 교회가 당면한 문제 중 가장 절실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동안 조상숭배 문제는 주로 조직신학적인 경향 가운데서, 즉 기독교 신앙의 근본원리인 1,2계명의 빛 속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왔기 때문에, 성경의 보다 큰 맥락 속에서 이 문제를 살피지 못한 것 같다. 달리 말하자면, 성경 속에 있는 조상숭배 이념에 대한 투쟁과, 그 이념에 대한 극복을 살피는데 미흡하였다.
1980년대 초,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복음주의자들의 조상숭배 문제에 대한 토론은 그렇게 좋은 결실을 얻지 못한 것 같다. 각 나라에서 온 여러 분야의 신학자들은 자신의 문화적 배경에서 형성된 신학적틀을 넘어 가지 못했다. 한국계의 신학자들은 조상숭배에 대한 반대입장을, 일본이나 대만 다른 아시아 계통의 신학자들은 긍정적 입장을 표하였다.
조상숭배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지난 200년동안의 구약신학계에서도 소외되고 무시된 주제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표적 구약신학자들의 글에 이런 주제는 좀처럼 다루어지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중요한 한 가지는 서구 신학자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가지고 성경을 보기 때문에, 죽은 자나 죽은 조상이 얼마나 고대 세계의 사람들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인식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 글에서 구약성경에 나타난 조상숭배 문제를 고대 근동아시아의 배경 속에서 비추어 보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조상숭배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것 같지만, 구약은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한 논쟁을 하고 있다.
조상숭배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먼저 조상 숭배에 있어서, “조상”이란 단어는 상당히 포괄적으로 사용되며 한 가족의 직계뿐 아니라, 친족(kins)과 일가(relatives)까지 다 포함한다. 베일리스(M.Bayliss)는 조상숭배 관습과 관련하여 악카드어에서 일가친척을 가리키는 세 단어, 즉 kintu, misutu, salatu가 나타나고 있음을 관찰하고 있다.(1973. 11. 9). 예로서, KAR, 227 iii 9-10, "(GIDIM) AD. MUAD. AD. MU AMA. MU AMA. AMA. MU SES. MU NIN. MU kim-ti-ia ni-su-ti-ia u sa-la-ti-ia ma-la I-na -Kl-tim sal-lu," 내 아버지, 내 아버지의 아버지, 내 어머니, 내어머니의 어머니, 내 형제, 내 자매, 내 친척, 가족과 일가, 땅에 누은 모든 자들(의 혼)이란 표현이 있다(Bayliss, 1973 : 119, n. 34).
"조상숭배“에서 ”숭배하다“는 용어는 분명히 종교적인 차원을 지닌다. 이것은 ”공경하다“와는 다른 차원을 가진다. 핫지(C. T. Hodge)는 의도적으로 ”조상예배“(ancestor worship)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피한다. 그는 산 자들이 죽은 조상과 상의하고, 그들을 무서워하고, 때로는 달래기도 하지만, 숭배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1976:316).
사실 일본제국이 천왕숭배를 강요할 때에도, 그들은 이것이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문화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애써 강조하였다. 그러나 “천왕”이든, 죽은 “조상”이든, 경외심을 가지고 종교의식속에서 그를 부르고, 나아가 절할 때는, 그 행동은 종교적인 차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제물을 바치게 될 때는 분명히 종교적인 의미에서 “숭배”라는 차원을 띠게 된다. 물론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죽은 조상에 대한 예배는 다른 차원을 갖지만, 죽은 조상이 신이 되고, 그에게 제물을 정해진 의식에 따라 드리게 될 때는 “숭배”,“예배”의 차원을 지니게 된다. 흥미롭게도 구약성경 저자들은 여러 구절에서 이방신들을 숭배한다고 말할 때,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사용하는 동사 sahah와 ‘abad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출 20:5; 신 11:16; 왕화 17:35). 따라서 “숭배하다”는 단어를 죽은 조상에게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오펜하임(A. L. Oppenheim)은 우리가 “메소포타미아 종교를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메소포타미아 종교를 체계적으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은 일리가 있다(1962:17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핫지(Hodge)의 제언은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1976:317). “고대 근동 아시아 종교 전부는, 조상의 역할과 집단으로 전수된종교(group hereditary religion)와 지역 영들(local[chthionic] spirits)의 빛 속에서 재조명 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하자면, 죽은 조상숭배에 대한 이해 없이 고대 근동아시아의 종교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문화적인 상황 이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는 나는 “비교대조법”(comparative method)을 중심적인 방법론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나는 메소포타미아의 대표적인 조상숭배의식인 키스푸(kispu) 의식과 우가릿의 마르제아(marzeah) 의식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비교 대조하려고 한다. 물론 구약연구에 있어서 전통적인 “비교법”은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 방법론은 두 문화를 비교할 때, 비교대상의 지리적이고, 시간적이고, 문화적인 인접성이나 거리를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범바벨론 주의”(F.Delitzsch)나 범우가릿 주의(M.J.Dahood)에 빠지고 말았다. 또한 나는 단지 모든 문화 사이에 있는 유사성만을 수집하여 제시하는 개스터(T.H.Gaster)의 입장을 따르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문화적인 제도이든지 먼저 자체의 문화적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각 제도를 성공적으로 재구성한 후, 그 배후에 있는 이념들이 드러나게 될 때, 우리는 서로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서로를 비교하고 대조할 때, 한 문화가 다른 문화에서 빌렸다든가, 각색했다는 주장을 아주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힐레이(Healey)는 “마리(Mari)와 우가릿(Ugarit)의 제사제물을 비교해 볼 때, 마리의 비문과 우가릿 비문에 사용된 제사의 맥락이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에, 이 둘 사이의 직접적 관련성(direct connection)은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두 문화 사이에 있는 유사성을 가지고 역사적인 관계로 대치시키고 있다. 한국과 일본과 중국 사이에 문화적인 관습이 유사하다고, 어디에서 빌어 왔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역사적인 관련성을 따지는 것보다, 조상숭배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와 우가릿과 이스라엘을 비교하는 것으로 마치려고 한다.
여기에서 애굽을 배제한 이유는 애굽인들이 그들의 죽은 조상을 숭배했는지 아직까지 문서로 명료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사후에 사람이 여러 형태로 변하여, 죽은 혼이 사후 생활을 찾아 긴 여행을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조상을 숭배한 증거를 명백히 제시하는 문서를 아직까지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이 점에 대해서 심슨(W.K.Simpson, 1971:240)을 보라. 최근에 핫지(Hodge)는 애굽어 중 신(神)을 가리키는 단어가 조상숭배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하였다(311-12)
Ⅰ 메소포타미아의 조상숭배
이 부분에서 나는 조상숭배와 연관된 중심 용어들을 제시하고, 이어서 제사 의식을 암시하거나,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본문을 다루려고 한다.
1.1 여러 용어들
1) 죽은 자의 혼(etemmu, GIDIM)
악카드에서 일반적으로 죽은 자의 혼은 에쩨무(etemmu)로 알려져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죽은 자의 혼은 신성화되고, 사람들에게 무서움을 주는 존재가 된다. 예로서, 고대 앗시리아 편지인 BIN 4,96:19에 따르면 “신(ilam)과 죽은 자들의 혼(e-te-mi)을 달래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내가 멸망하지 않으려고 한다”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CAD,E:397). 같은 시대의 편지인 KTS 24:7에 보면, "악귀들(utukki)과 귀신들(e-ta-mi) 때문에, 우리는 비참하게 되었다“고 한다(CAD,E:397). 여기와 다른 여러 본문들을 살펴보면(예로써, JEN 478:6, Bab 12 pl.3:36),죽은 자의 혼으로 불려지는 에쩨무가 신들(ilam)이나 악귀들(utukki)과 평행을 이루고 있으며, 그들은 신성을 가진 존재로서 사람들에게 재앙을 주는 무서운 자로 인식되고 있다.
고대 근동아시아의 사람들은 죽은 자의 혼(에쩨무)이 산 사람에게 축복을 주는 능력도 있다고 믿었다. ABL 614r.4-6에 따르면, “앗슈르(Ashshur)와 샤마위(Shamash)의 진실로 그들(영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가 앗시리아를 이어받을 왕자가 될 것이며, 그녀(죽은 여왕)의 신(e-tsem-ma-sha)이 그를 축복하고, 그(왕자)가 혼들(e-tsem-mu)을 섬길 것이다”라는 신탁의 말이 나타난다(CAD,E:397).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에쩨무라는 용어를 여러 종류의 죽은 혼을 가리키는데 사용하였다. 한 구스의 전설(Cuthean legend)에 따르면, 이 단어가 한 가문에 속한 죽은 자들의 혼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의 혼(GIDIM-sha, 이것은 조상의 혼령인 것 같다), …의 혼(GIDIM…)… 그의 친척들의 혼들(GIDIM kimti-shu), 그의 후손의 혼(GIDIM pir'ishu), 그의 후손의 후손의 혼(GIDIM piri' pir'ishu)"이 다 등장하고 있다(CAD,E:3 9 8). 이 본문은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맥락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아마 그들은 가족 묘에 죽은 조상들과 식구들과 친척들을 다 묻고, 그 혼들에게 제사를 드린 것 같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또한 정상적인 거처를 떠나 여행하다가 타향에서 갑작스럽게 죽은 자들의 혼을 가리킬 때에도, 에쩨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것이 LKA 84:23이하에 잘 나타난다. “떠돌이 귀신이들, 방랑 귀신이든, 벌판에 던져진(시체의)귀신이등, 물에 빠진 자의 귀신이든, 우물에 빠진 자의 귀신이든, 배고파 죽은 귀신이든, 목말라 죽은 귀신이든, 불에 타 죽은 귀신이든, 혹은 태양 빛에 쓰러져 죽은 귀신이든 간에…”이 본문은 정상적인 죽음과 장례를 치루지 못한 불행하고, 또 원한을 가질 수 있는 혼들을 나열하고 있다.
죽은 자들의 혼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스러운지 묘사하기 위해,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손”이란 은유를 자주 사용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종종 죽은 혼의 손에 붙잡혀, 사람들이 앓게 되거나, 큰 불행을 당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다. AMT 99,4:4:6에 따르면, “나그네 신의 손이 그를 광야에서 붙들었다”고 말하며, T에 76:62에는 “평원을 떠돌아 다니는 귀신의 손이 그를 사로잡았다”고 말한다(CAD,E:400).이런 배경 때문에,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귀신의 공격을 피하고, 벗어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주술들을 발전시키게 되었다(AMT 47:3).
2) 죽은 조상의 혼을 돌보는 자(paqidu)
베일리스(M. Bayliss)는 파키두의 성격과 기능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1973:116).
죽은 혼을 돌보는 책임을 가진 사람은 파키두(paqidu, LU.SAG.EN TAR)로 알려져 있으며, 직역하자면, “돌보 는 자 혹은 시중드는 자”라는 뜻을 가진다. 이 용어는 주로 죽은 자들의 친척에게 사용되었다. 만약 귀신이(산 사 람으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면, 그는 땅을 돌아다니면서 산자에게 따라 붙는다.
길가메쉬 서사시의 마지막 토판, 마지막 부분을 보면, 여러 불쌍한 혼령의 상태를 묘사하다가, 특히 아무도 돌보아 줄 자 없는 혼의 비참한 상태가 그려지고 있다. 이 부분은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나타난다(길가메쉬 서사시 토판 12:145-154).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한 자를 보았느냐?”
“나는 보았다. 그는 침대에 누워 깨끗한 물을 마시고 있다”
“전쟁터에서 죽은 자를 보았느냐?”
“나는 보았다. 그는 머리를 들고, 그의 아내는 애곡 하느니라”
“그의 시체가 평원에 던져진 자를 보았느냐?”
“나는 보았다. 그의 혼이 저승에서 쉴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느니라”
“아무도 돌보아줄 자 없는 혼을 보았느냐?”
“나는 보았다. 그는 그곳에 남은 찌꺼기와, 빵부스러기와, 길거리에 흩어진 찌꺼기를 먹고 있느니라.”
여기에서 이 서사시의 저자(혹은 편집자)는 파키두의 의무를 강조해 주고 있다. 파키두의 책임은 주로 아들이나, 가까운 친척들에게 주어진다. 그는 정기적으로 먹을 것과 신선한 물을 제물로 공급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만약 남자가 이 일을 할 수 없을 때, 여자도 파키두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아직까지 그렇게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제사의식 속에 “자매”(ahatu)와 “딸”(martu)이 함께 등장하고 있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여자들도 동참했음을 알 수 있다(A fo 19[1959/60], 117; Bayliss, 119).
3) 제사 제물과 제사의식(kispu)
핑켈스타인(Finkelstein)과 베일리스(Bayliss)는 파키두가 죽은 자의 혼을 위해 세 가지 행동을 취했음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 첫째로, 그들은 제사 제물(kispa kasapu)을 드리며, 둘째로 “마실 것을 부어드리고”(me napu), 셋쩨로 “죽은 조상의 이름을 부른다”(suma zakaru). 이 제물들을 바치는 제사 의식과 연관하여 가장 흥미로운 본문이 대영박물관 소장, 바벨론 토판에서 나온 쐐기문자 본문인 CT 16,10:5-14)에 나타난다.
당신이 장례되지 않은 귀신이든, 혹은
당신이 아무도 돌볼 자 없는 귀신이든(sha pa-qi-da la I-shu-u), 혹은
당신에게 아무도 제사 음식을 드릴 자가 없는 귀신이든(sha na-aq me-ela ishu-u), 혹은
당신에게 아무도 마실 물을 부어줄 자 없는 귀신이든(sha na-aq me-e la ishu-u), 혹은
당신이 자기 이름을 불러줄 자 없는 귀신이든(sha za-kir/8 shu-me la I-shu-u) 간에…
옛날 사람들은 제사음식으로 무엇을 바쳤는가? 고대 바벨론 시대 사람들은 우유와(물소 젖의) 버터기름(TCL 1,7:6)과, 바다 거북이(turtles)와 민물거북이(tortoises, VAS 16,51:5)와 여러 종류의 음식들(CT 45,99:30)을 죽은 자의 혼에 바친다. 중세 바벨론 시대에는 맥주와 소금도 바친다(PBS 212,8:1,9). 이 두 시대 사이에 바친 제물이 달라 보이는 것은, 역사가 흐르면서 제물의 내용이 바뀌어진 것이라고 보기 보다는, 우리가 가진 역사적인 자료가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마리의 행정 문서고에서 발견된 자료들은, 제사 제물에 제사 의식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상세하게 제시해 준다. 여기에서는, 죽은 왕들에게 드리는 제사 음식으로(kispum sha LUGAL-mesh), 매월 초와 16일에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거의 표준화 되었다(Finkelstein, 115).
핑켈스타인은 역사적인 자료 두 가지를 더 제시해 주고 있다. 그것들은 (1) 야둔-림(Yahdun-Lim) 왕의 죽은 혼에게 바치는 키스품과, (2) 샤마쉬-아닷(Shamashi-Adad)에게 드리는 것이다(ARM 1:65). 샤마쉬-아닷의 비문은 테르카(Terqa, Tell 'Ashah)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왕은 이 당시 제사드리는 집(E. ki. si. ga, 즉 bit kispi)을 봉헌하려고 하였다(IAK 1:26f.no.5). 마리와 바벨론에서는 “제삿날”(day of kispum)이 거의 고정되고, 정기적인 관습으로 아부(Abu)달로 못 박힌 것 같다(TCL,1,7:6).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죽은 조상의 혼에게 드리는 제물에 관한 것으로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상호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살았을 동안 내가 너에게 먹을 것을 주었으므로, 내가 죽었을 때 너는 나를 위해 제사 음식(ki-is-pa ta-ka-si-[pa])을 바칠 것이니라”(CAD,K,426).
4) 헌 주(me naqu)
고대 바벨론과 앗시리아 시대로부터 naqu라는 동사가 술을 부어 드리는데 사용되어 왔다. “어떤 여자(f-PN)가 죽으면 여성 2세(f-PN2)나, 그녀의(입양된) 딸이 그녀에게 술을 부어드릴 것이니라”(BE 14,40:15,MB,from CAD,N,337). 한 사람이 죽은 후 그의 무덤에 술을 부을 자가 없는 경우, 그는 저주 받은 자로 여겨지고 있다.(Wiseman Treaties, 452). “너에게 너의 혼을 돌보아 줄 자 없고(paqidu), 물을 부어줄 자(na-aq em)없을찌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앗시리아의 대왕 아수바니팔(Ashurbanipal)은 아마 왕권을 장악한 후, 자신의 조상들에게 헌주를 새로 드리게 되었다는 점을 자랑하고 있다. “나는 그 동안 오랫동안 끊어졌던 관습으로서, 죽은 자들에게 음식(kispi)과, 내 선조 왕들의 혼을 위해 헌주(me-aq me)하게 되었다”(Streack Asb, 250:r:1).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물과, 맥주와 술을 드렸을 뿐 아니라, 기름과 꿀과 젖소의 우유와 같은 다른 마실 것들을 그들의 헌주로 바쳤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죽은 자들이 묻혀 있는 무덤에 대롱을 만들어 여러 종류의 술을 부었다는 점이다. 이 대롱의 전문용어로, 그들은 arutu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샤마쉬)가 그로 하여금 아래(즉 음부)에서, 대롱을 통해 결코 시원한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소서” (BBSt. 2,20,from CAD,A,324).
5) 이름을 부름(shuma zakaru)
우리가 앞에서도 이미 본 바와 같이(CT 16,10:13이하), 죽은 혼을 돌보는 자(paqidu)는 죽은 조상(etemmu)의 이름도 부른다. 여러 곳에서 이런 의식이 나타난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는 죽어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줄 후손이 없는 자이다. “아무(식구) 없는 너, 죽은 혼이여, 아무도 너를 묻어 줄 수 없고, 불러 줄 자 없는 자여”(KAR 227,R:3:28). 또한 다른 본문에 보면 아들의 중요한 효도 중 하나는 죽은 조상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아들을 가질지니, 그는 그의 이름을(사후에) 불러 주리라”(Kraus Texte 7:11).
앗시리아 사람들은 제물을 드리는 맥락에서 그들의 신들에게 기원할 때, suma zakaru라는 전문용어를 사용하였다. “나(아수바니팔)는 위대한 신들을 위해 제사장에 음식을 펼쳐두고, 당신(샤마쉬)의 이름을 불렀나이다”(KAR 55:15). 샴시아닷(Shamshi-Adad)은 “기원의 집”(bit qultishu, the house of his intonation)을 만들어 두고, 살아있는 왕(혹은 그의 대리자)이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죽은 조상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Finkelstein 116).
우리가 조상숭배와 연관된 핵심단어들을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이것들을 다루는 본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2. 중심 본문들
1) 길가메쉬 6 : 5-17에 나타난 조상 숭배에 대한 암시
길가메쉬가 그의 관을 썼을 때,
영광스러운 이쉬타르는 길가메쉬의 아름다움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길가메쉬여, 너는 (내)사랑이 되어다오!”
나에게 너의 열매를 다오.
너는 나의 남편이 되고, 나는 너의 아내가 될 것이니라.
내가 너에게 청옥과 금으로 된 수레를 몰리라.
그 바퀴는 금이요 그 뿔은 동이라.
폭풍-귀신이 힘센 노새를 몰아 줄 것이다.
향나무 냄새와 함께 너는 우리 집으로 들어올 것이다.
네가 우리 집에 들어올 때,
문지방과 단이 너의 발에 입맞추리라!
네 앞에 왕들과, 주들과 왕자들이 겸손히 엎드릴 것이니라.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성혼의식(sacred marriage)의 관점에서 이 본문을 보았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아부쉬(Abush 1984)는 이 본문이 장례의식과 연관되어 있음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이 본문에 따르면, 이쉬타르 여신이 길가메쉬의 아름다움에 도취해 그에게 구혼한다. 그녀는 길가메쉬에게 성적인 연합을 통해, 새로운 집으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이 새집은 무덤을 뜻한다. 이쉬타르는 청옥과 금으로 된 마차를 제공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황금 마차는 곧 저승으로 가는 상여를 뜻한다. 이쉬타르는 길가메쉬에게 향나무 향기를 제공한다고 하나, 이것은 장례의식에 사용되는 분향으로 보여진다. 아쉬타르는 “왕들과, 주들과, 왕자들”이 경배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저승세계의 사자들이다. 특별히 “발에 키스를 하는 것”은 시체에 마지막 작별의 키스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고대 근동 아시아의 사람에게 있어서, 결혼의식과 장례의식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 둘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며, 새로운 집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둘 다 거룩한 의식으로 여겨졌고, 둘 다 기쁜과 슬픔으로 섞여 있는 의식이었다. 결혼과 장례에 사용된 이미지와 모티프들은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쉬타르의 청혼을 죽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길가메쉬는 이쉬타르의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에, 그녀의 청혼을 거절한다. 길가메쉬는 이쉬타르가 사랑했던 모른 자들을 다 죽였음을 상기시킨다. 길가메쉬 서사시 토판 6번이 조상숭배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죽음과 장례와 사후 관리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널리 사용되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2)함무리비 왕조의 족보(BM 80328)에 나타난 조상숭배
함무리비 왕조의 족보는 고대 바벨론 세계의 조상숭배를 가장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본문은 핑켈스타인이 해독하고 번역하였다(Finkelsrein, 95-97)
앞면
1. IA-ra-am-ma-da-ra
2. ITu-ub-ti-ya-mu-ta
3. IYa-am-qu-uz-zu-lam-mz
4. IHe-a-na
5. INam-zu-u
6. IDi-ta-nu
7. IZu-um-ma-bu
8. INam-hu-u
9. IAm-na-nu
10. IYa-ah-ru-rum
11. IP-ti-ya-mu-ta
12. IBu-ha-zu-um
13. Isu-ma-li-ka
14. IAs-ma-du
15. IA-bi-ya-mu-ta
16. IA-bi-di-ta-an
17. Ima-am(?)-x[x-x(?)]
18. Isu-x-ni(?)-x-[x(?)]
19. IDa-ad(?)-x-x-x(?)
20. ISu-m[u-a-bu-um]
뒷면
21. ISu-mu-la-[il]
22. IZa-bi-um
23. IA-pil-d/sin
24. Id/Sin-mu-mu-ba-li-[it]
25. IHa-am-mu-ra-p[i]
26. ISa-am-su-i-lu-n[a]
27. IA-bi-e-su-[uh]
28. IAm-mi-di-ta-[na]
29. BAL ERIN MAR. [TU]
30. BAL ERIN He-e-[na]
31. BAL Gu-ti-um
32. BAL sa I-na tup-pi an-ni-i la sa-at-ru
33. u AGA.Us sa i-na da-an-na-atbe-li-su im-qu-tu
34. DUMU. MES LUGAL
35. DUMU. MI.MES LUGAL
36. a-wi-lu-turn ka-li-siin
37. is-yu d/UYU. E. A a-du(!) d/UTU.SU.A
38. sa pa-qi-darm u sa-hi-ra-am la I-su-u
39. al-ka-nim-ma- an-ni-a-am a-ak-la
40. an-ni-a-am si-ti-a
41. a-na Am-mi-sa-du-qa
42. DUMU Am-mi-di-ta-na
43. LUGAL KA. DINGIR-RAki
29번째 줄로부터 43번째 줄까지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29. the palu of the Amorites,
30. the palu of the Heneans,
31. the palu of the Gutim,
32. the palu not recorded on this tablet,
33. 그리고 자신의 주를 위해 위험한 전쟁에서 죽은 용사(들)
34. 왕자들,
35. 공주들
36. 모든 “사람들”,
37. 동이든 서이든
38. paqidim이나 sahiram이 없는 자들
39. 모두 오셔서, 이것을 드시고
40. 이것을 마시고
41. Ammiditana의 아들,
42. Ammitsaduq를 축복하소서
43. 바벨론의 왕
문제시되고 있는 본문은 대영박물관의 “벗지 수집품”(Budge Collections) 중 BM 80328로 알려진 것으로서 아마 싯파르(Sippar)에서 발굴된 것 같다. 이 본문은 원래 행정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도서관(administrative archive)에 소장되어 있었다. 28번까지 이름 앞에 I자가 있는 현상(원본에 따르면 각 이름 앞에 꺽자 표시가 있다)에 대해 펭겔스타인은 서기관이 다른 문서에 있는 이름과 대조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 족보(Ahnentafel)는 바벨론의 첫 왕조를 이끌어간 왕들을 수무아붐으로부터 암미짜두카까지 모두 정확한 순서를 따라 열거하고 있다. 수무아붐 앞에 있는19명은 바벨론 제국의 왕은 아니었으나, 이들은 도시 왕이었거나, 혹은 부족의 세이크나, 혹은 족장들이었을 것이다(Finkelstein, 97). 엄격한 의미에서 첫 바벨론 제국의 왕조는 수무아붐(주전 1894-1881)부터 시작한다. 함무리비는 제6대 왕이며(주전 1692-1750), 암미짜두카는 아홉 번째 대왕이다(1646-1626).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암미짜두카가 고대 바벨론 사람들을 대표하여, 족보를 가지고 그의 조상들을 숭배하고 있다는 저밍다. 그는 모든 조상신들과, 무명의 용사들과 “고아가 된” 혼들이 자기 잔치에 와서 마음껏 드시도록 초대하고 있다. 핑켈스타인은 이 본문의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115쪽). “본문 전체의 성격과 가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것은 죽은 자를 기념하는 날에,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데 사용되었다. 이 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에쩨무(etemmu)", 즉 죽은 혼령들에게 음식과 마실 것으로 구성된 키스푸(kispu)를 드리는 것이었다.
즉 이 족보(Ahnentafel)는 명백하게 조상숭배에 사용되었다. 특별히 paqidum과 sahirum이 평행을 이루고 나타나는 것이 흥미롭다. 후자 역시 죽은 자를 돌보는 자이지만, 뉘앙스에 있어서 전자는 주로 먹을 것을 드리는 자요, 후자는 죽은 조상의 이름을 부르는 자이다.
고대 마리(Mari)의 관습을 미루어 볼 때, 이 족보는 정기적은 키스푸 날에 바쳐지고, 특히 매월 16일, 즉 죽은 왕에게 제사음식을 드리는 날(kispum sa LUGAL-mes)에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29절부터 32절까지 아모리인과 하네안과 구팀과 이 족보에 기록되지 않은 팔루(palu), 즉 “왕조”(dynasty)들 (Finkelstein, 106)과, 무서운 전쟁에 참여하고 죽은 용사들과, 이름을 잊어버리는 여러 왕자들과 공주들과 모든 사람을 언급하는 것을 볼 때, 이 문서는 보다 특별한 날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는 새 왕이 즉위하는 날이 본문은 Sitz im Leben으로 가장 적합한 날이었다고 가정하게 된다. “새 왕관을 쓴, sar misarim으로서 암미짜두카는 산 자와 죽은 자에게 특별한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백성들에 대한 그의 사랑을 확증하고 있다”(Finkelstein, 116).
Ⅱ.우가릿에서의 조상숭배
2.1 용어
1)죽은 자들의 혼(rp′um/rp′im)
우가릿 비문에서 러파임(rp′um/rp′im)은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다. 그것은 (1) 신들(Ch. Virolleaud; R. Dussaud). (2) "그림자“(shade; A. Caquot), "신성화 된 죽은 자"(the deified dead;M.Pope), (3) 제단에서 일하는 자들(cultic functionaries ; J. Gray) 등으로 해석되고 있다(L′Hereux, 1974 : 265-74). 러파임의 정체에 대한 새로운 가설로서, L′Hereux는 러파임이, 신이든 인간이든 간에, "전차 타는 용사들”임을 제시하였다. “우가릿어 rp′/rp′m”은…신적인 차원에서 단수로서 엘의 칭호로 사용되었으며, 복수형으로서는 엘신의 초대에 응한 모든 신을 가리킨다. 인간적 차원에서, 러파임은 엘의 후원을 받고 사는 귀족층 용사단(warrior guild)을 형성하고 있다. L′Hereux가 러파임을 말 타는 요사로 본 것은, 러파임 본문에서 이들은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271쪽). 그러나 포우프(Pope)는 러파임 본문에 나타난 “전차”가 장례의식과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신들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다닐 수 있었다…말과 장례식의 연관성은 고대로부터, 널리 받아들여지던, 지속적인 관습이었다”(1977:167).
드무어(J. C. DeMoor)도, “가나안 사람들이 죽은 혼을 러파임이라 불렀다는 점은 읫미할 여지가 없다”(1976 :330)고 말한다. 바알(Ba′le)신화가 담긴 CYA 6, 6:41-48에 따르면, “샤파쉬여, 당신은 러파임을 다스리며, 샤파쉬워, 당신은 귀신들을 다스리나이다. 신들이 당신을 따르며, 죽은 자들이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드 무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1976 : 331).
여기에서 ′ilm과 ′lnym이 평행을 이루고 잇는 것을 볼 때, 우가릿 사람들은 러파임을 신적인 존재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묻히면, 그는 땅들 신들 (′ilm ′arts)로 매장된다. 때로는 바벨론어에서 신을 가리키는 표시(DINGIA, "deity")가 나타나기도 한다. 우가릿에서 조상될은 “조상신”(′li ib)으로 불려진다(CTA 17,1 : 27 등). 우가릿 만신전에서 가장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자가 ′li ′ib로 불려졌다. 이 신은 신들의 조상으로 여겨진 신이 분명하다. 러파임에 대한 우리의 연구가 부분적이긴 하지만 이 용어가 우가릿에서 죽은 조상의 혼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제사제물과 제사 의식(mrzh)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키스푸 의식을 행한 것처럼, 우가릿 사람들은 소위 마르제아라고 불려지는 조상숭배의식을 행했다. 이것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본문이 RS 24, 254 : 15-24)이다.
15 il.ytb. bmrzhh
16 yst [il y]n. ′d sb′//try. ′d skr
17 il. hik. ibth.//ystql.
18 Ihtrh.//y msn. nn. tkmn
19 w snm.//wngsnn. hby.//
20 b′l. qrnm wngsnn.hby.//
21 b hrih. w tnth.//ql. il
22 il. k yrdm. ars//′nt
23. w ′ttrt. tsdn.//
위의 본문에 대한 포우프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15 El sat in his MRZH,
16 El drank wine to satiety, Must till to inebriated
17 El went to his house, Descended
18 to his court, Tkmm-
19 w-Snm carried him. There accosted him a creeper
20 with two hours and a tail, He floundered
21 in his excrement and urine. El collapsed
22 El like those who descend into earth. ′Anat
23 and ′Astart went roaming
포우프에 따르면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d sb′), 만취되는 것(′d skr)은 마르제아 잔치(Marzeah festival)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고 한다. 우가릿 신전의 주상신을 대표하는 자로서, 엘신은 백성들이 마르제아 잔치에서 조상신들을 위해 하는 역할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잔치는 너무나 난잡하였고, 신전의 여종들이 너무나 문란했기 때문에 바알신은 견딜 수 없어 한다(A, Herdner, 1963, CTCA, No.4,Col. Ⅲ,17-22; Pope, 1972, 173-174에 인용됨).
바알이 미워하는 두 개의 잔치가 있다.
구름타는 자(the Cloud Rider)가 [미워하는]세 가지가 있다.
수치의 잔치요
상스러운 잔치이다
여종이 난잡해지는 잔치요
거기에 수치가 있으니
거기에 여종의 문란함이 있다
두 번째의 본문은 케렛의 전설(혹은 Legend of Kuritu)이 담겨 잇Sms CTA 20-22에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 다넬(Danel)왕은 러파임들(rp′im)을 제사에 초대하여, “자기의 죽은 아들에게 말할 수 이TEhfhr"부탁하고 있다(UF 7 [1975], 171을 보라).
(5) tkm. bm tkm. hm.
There, shoulder to shoulder, were the brothers,
qym. ′il (6) blsmt.
whom ilu caused to rise up in a hurry.
tm.ytbs.sm. il. mtm
There the name of ilu substantiated the dead,
(7) yt!bs. brkn. sm. il gzrm
The blessing of the name ilu substantiated the heroes.
(12) tbh. ′alpm
그는 암소를 잡고,
′ap s′in
또한 작은 식용가축을 잡고,
sql. trm
그는 황소를 죽이며
(13) awmri′lim.
양들 중 가장 살진 것을 잡고
′glm. dt. snt
1년생 송아지를 잡았고,
(14) imr. qms. ll′im.
양과 어린양을 수 없이 잡았다.
……………
(21) hn. ym. wtn. tlhmn
보라 첫날과 둘째날에 그들이 먹었고,
rp′um (22) tstyn
러파임이 마시고,
tlt. rb. ym
세째, 네째 날에
hms (23) tdt. ym. tlhmn.
다섯째, 여섯째 날에 그들이 먹고
rp′um (24) tstyn. bt. ′ikl.
러파임은 식당에서 마시고
brp 1 (25)ysq. b′irt.
첫(날)에 그는(포도주)를 레바논의 잔에 붓고
mk. bsb′ (26) [ymm]
보라, 제 일곱째 날이라.
여기에 보면, 러파임들은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함께 모여, 엄청난 제물을 먹고(12-13), 포두주를 7일간에 걸쳐 퍼 마신다(21-16).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비록 우가릿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사람들 처럼 paqidum, me naqu, shuma zakaru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혹은 우리가 아직 찾지 못했든지), 그들의 마르제아 제사는 키스푸와 여러면에서 너무 유사하다. 둘 다, 조상숭배는 효도의 핵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죽은 조상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드리는 것이 효도의 근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조상의 모에 술과 물을 부어주는 파이프를 만들었다. 우가릿어에서는 더무어는 우가릿어 ′urbt는 뚜껑(hatches), gngnt혹은 knkn은 물붓는 대롱(libation pipe)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고 제시한다(DeMoor, 1976, 331). 또한 우가릿에서도, 죽은 조상을 부를 때, qara'라는 동사를 사용한다(RS 34. 126, 2-12).
2.2 본문
1)RS 34, 126:1-34에 나타난 조상숭배
1.“빠른 자”(the Swift Ones)의 제사 잔치에 대한 보
2. 너는 땅의 구원자들 (신들, rpim 'arts)을 불렀다.
3. 너는 Didanu의 총회를 불렀다.
4. 그는 구원자(the Davior, 게′a), Belkenu를 불렀다.
……
8. 옛 구원자들(rpim qdmym)…
……
11. 그는 왕 암미짜타마루(Ammittamru)를 불렀다.
12. 그는 또한 왕, 나크마두(Niqmaddu)를 불렀다.
……
27. 첫날 그는 제사를 드리고, 둘째날 그는 제사를 드렸다.
28. 셋째날 그는 제사드리고, 넷째날 그는 제사드렸다.
29. 다섯째날 그는 제사드리고, 여섯째날 그는 제사드렸다.
30. 일곱째날 그는 제사드렸다. 너는 새를 드렸다.
31. “암무라피를 환호하고, 환호하라.
32. 또 그의 아들을 환호하라. 그의 친척들을 환호하라.
33. 그의 집을 환호하라. 우가릿을 환호하라.
34. 그 모든 문을 환호하라.”
이 본문의 의식적 배경은 명료하지 않지만, 우가릿의 제사장이나 왕이 큰 제사의식에서 창립 왕 암무라피의 조상신들을 모두 불러 제사를 드리고 있다. 그는 모든 죽은 자의 신들인 러파임이 와서 마음껏 먹고 축복해 주길 기원한다. 3절에 있는 디다누(Didanu)는 우가릿 왕조가 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보여준다. 죽은 조상은 모두 러파임이 되어 조국의 소호신으로 여겨지고, 제사를 받게 된다.
2) 러파임 본문에 나타난 조상 숭배
우가릿의 조상 숭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은 아캇 서사시에 있는 소위 러파임 본문이다. 이 서사시는 다니엘의 비극으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뒤를 이를 아들이 없자, 엘신에게 구한다(Pope, 163).
1. 나는 돌아가 쉬리라
2. 내 영혼이 쉬리라.
3. 나에게도 내 형제처럼 아들이 태어났다.
4. 내 피를 받은 뿌리이다.
5. 그는 내 조상의 비문을 세우고
6. 백리향을 성소에서 나를 위해 피우며
7. 땅으로 내게 노래하며
8. 땅으로 내게 노래하며
9. 내 원수의 모욕을 반박하고
10. 나를 거스리는 자를 물리치며
11. 내가 술취했을 때 내 손을 붙들고
12. 내가 술에 잠겼을 때 나를 들어주며
13. 바알의 집에서 내 식물을 먹고
14. 엘의 집에서 분깃을
15. 진창의 날에 내 지붕을 막아주며
16. 더러운 날 내 옷을 빨리라.
이 본문에 담겨있는 여러 이미지의 모티프를 다 파헤치는 것은 우리의 범위를 넘어간다(deMoor & M. Dijkstra, 1975 : 171-215; W. F. Albright, 1944 : 30-35를 보라). 따라서 여기에서 조상숭배와 연관된 몇가지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우가릿의 전통에 따르면, 죽은 조상 숭배를 위해 묘비를 세우고, 제사 음식과 술을 바치며, 향을 피우고, 혼을 달래기 위해 노래하며, 혹시 있을 지 모르는 재난과 모독을 막아주고, 성소에서 조상을 셍각하며 제사 음식을 드리고, 끝으로 사후에 무덤을 관리하는 것을 효도의 중심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가릿의 조상숭배와 바벨론의 조상숭배와 거의 같은 팻턴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죽은 조상을 “신”, 혹은 “구원자”로 신격화 시켰으며, 마르제아 제사를 신전이나 집에서 정기적으로 드렸다. 바벨론이다 우가릿에서 조상숭배는 효도의 근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Ⅲ. 구약성경의 관점에서 본 조상 숭배
신약성경은 말할 것도 없지만, 구약성경에서는 메소포타미아의 키스푸 제사나 가나안의 마르제아 제사와 같이 죽은 조상신에게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허락하는 규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그들은 죽은 조상 숭배와 연관된 의식을 철저히 거부한다. 죽은 영에게 바친 제사 음식은 금지된 것이었다. 먼저 민수기 25:1-3을 보라.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 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 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주석이 시편 106 : 28에 잘 나타나고 있다.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wayyissame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zibehe metim)을 먹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서 “죽은 자들”, 구체적으로 죽은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며, 바쳐진 음식과 술을 함께 먹으면서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었다. 이 바블브올 사건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여 그들은 모두 멸망할 뻔 하였다.
신명기 26 : 14에 따르면,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감사예배를 드리며 십일조를 드리면서 한 가지 금기사항을 지켰음을 고배해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즉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행하였나이다” 여기에 “죽은 자를 위하여 십일조를 사용한 경우”가 나타난다. 이것은 십일조를 “죽음의 사자” 바알(Baal, the Dead One)에게 드리는 것일수도 있고(Craigie, 1976, 323),혹은 십일조를 “죽은자를 위해 무덤에 두는 것”일 수도 있다(Wolff, 103). 어떻게 해석되든지 간에, 이것은 여호와 앞에 가중한 짓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레미야 16 : 5에 따르면, 여호아께서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에게 말하신다.
너희는 상가(marzeah-house)에 들어가지 말라.
가서 통곡하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지 말라.
인자와 긍휼을 제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왜 상가집(marzeah-house)에도 들어갈 수 없는가? 바로 이 다음절에 따르면(16 : 6-9), 상가집이 이방의 의식으로 가득찼기 때문이다(fp- 29 : 27-28; 21 : 5; 신 14: 1). 즉 “ 그 곳에서 그들은 애곡하며, 자기 몸을 베며, 대머리 되게 하는”일이 있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위로의 잔”을 마셨다. 이 잔은 특히 방탕함으로 가득찬 것이었다. 상가 집은 “마시는 집”(bet misteh)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그들은 애곡하면서 방탕한 행동을 하였다. 아무스 6 : 4-7역시 같은 배경을 제시해 주고 있다.
저희가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이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 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mirzah seruhim)가 그치리라.
이사야 65 : 4에 따르면 패역한 백성들이“무덤 사이에 앉으며…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무덤에 앉는 것”은 죽은 자를 위해 애곡을 하거나, 그들에게 제사하거나, 혹은 그들에게 신탁의 말씀을 묻기 위한 행동(신 19 : 11 ; 삼상 29 : 3; 사 57: 9)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죽음과 연관된 모든 것이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이방사상에 젖어서 이제는 무덤안에 들어가 앉으며 돼지고기를 먹고 있다.
나아가 바벨론과 우가릿의 사람들이 죽은 조상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에게 축복을 구하고, 때로는 그들과 교통하며 신탁을 묻는 것과 연관하여, 성경은 죽은 자들을 불렁는 접신술과 강령술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사야 8 : 19-20을 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성경은 초혼술을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명백한 입장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초혼술은 명백히 이방의 종교행위로 정죄하고 있다. 이것은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라고 못을 박는다(신 18 : 12-14). 이사야 29 : 4에서도 신접한 자들이 땅에서 올라오는 소시를 술법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a라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사울은 정신분열을 일으킨 후에 엔돌의 신접한 여자에게 나아가 죽은 사무엘의 혼을 불러내라고 한다(삼상 28장). 역대기 기자는 이 점에 대해 명백한 신학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셨더라”(대상 10 : 13-14).
선지자의 규례를 말하는 신명기 18 : 11에서는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고 말한다.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신다” 왜 가나안 사람들은 그 땡에서 쫓겨났는가? “바로 이런 가증한 일 때문이었다”(12절).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레 20 : 6,27).
죽음의 비 신성화와 연관된 것으로, 신명기는 장례식에서 금지된 규례 두 가지를 명시하고 있다. “너는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14 :1). 우가릿의 효자 아캇의 전설(Legend of Aqht)에 따르면, 죽은 자를 위해 애곡하는 전문 여성이 몸을 난자하는 것이 나타난다(CTA 19. Ⅳ).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기” 때문이다(2절). 유사한 말씀이 레위기 19 : 28에 나타난다. “주긍ㄴ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방의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 중 누가 죽으면 머리털이나 수염을 자르는 규례가 있었다 (레 41 : 5참조). 그 이유는 애곡하는 자들이 자신의 슬픔을 극대화하기 위해 몸을 해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비신성화와 연관하여, 우리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그 많은 족보들이 전혀 조상숭배와 연관되어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족보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법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었다. 상속과 가문의 정당성을 위한 것이 일차적 모교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는 고대 근동 아시아의 족보가 종교적인 측면, 구체적으로 조상숭배에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 점은 성경의 족보 용도와 너무나 큰 차이를 만들어 준다.
죽음과 죽은 자를 비 신성화시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덤을 화려하게 장식하지 않는데도 나타난다. 그들은 이방인들처럼 무덤을 높이지 않는다. 이사야 선지자는 국고를 맡고 궁을 차지한 셉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네가 여기 무슨 관계가 있으냐? 여기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해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 내었도다”(사 22 : 15-16). 주님은 셉나에게 죽음을 선고한다(22 : 17-25). 예수님도 선지자를 죽인 자들이 선지지의 무덤을 짓고 장식하는 것을 책망하였다(마 23 : 29).
끝으로 우리는 왜 죽은 조상에 대해 이스라엘과 이방인 사이에는 이렇게도 큰 차이를 나타내는가 :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있는 명백한 구별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신앙의 현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히브리 종교의 중심 싸움은 인간과 하나님, 하나님과 자연을 혼돈시키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J. Barr, 1959 : 7). 이방인들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있는 예리한 구별을 하지 못했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죽은 조상을 신격화 시킬 수 밖에 없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어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 :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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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메소포타미아, 가나안, 이스라엘 중심으로-
金 正 祐 <구약신약>
조상숭배 문제는 한국교회가 당연한 문화적, 신학적 과제 중 가장 오래되고,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이것은 한국교회 뿐 아니라, 아시아 교회가 당면한 문제 중 가장 절실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동안 조상숭배 문제는 주로 조직신학적인 경향 가운데서, 즉 기독교 신앙의 근본원리인 1,2계명의 빛 속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왔기 때문에, 성경의 보다 큰 맥락 속에서 이 문제를 살피지 못한 것 같다. 달리 말하자면, 성경 속에 있는 조상숭배 이념에 대한 투쟁과, 그 이념에 대한 극복을 살피는데 미흡하였다.
1980년대 초,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복음주의자들의 조상숭배 문제에 대한 토론은 그렇게 좋은 결실을 얻지 못한 것 같다. 각 나라에서 온 여러 분야의 신학자들은 자신의 문화적 배경에서 형성된 신학적틀을 넘어 가지 못했다. 한국계의 신학자들은 조상숭배에 대한 반대입장을, 일본이나 대만 다른 아시아 계통의 신학자들은 긍정적 입장을 표하였다.
조상숭배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지난 200년동안의 구약신학계에서도 소외되고 무시된 주제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표적 구약신학자들의 글에 이런 주제는 좀처럼 다루어지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중요한 한 가지는 서구 신학자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가지고 성경을 보기 때문에, 죽은 자나 죽은 조상이 얼마나 고대 세계의 사람들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인식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 글에서 구약성경에 나타난 조상숭배 문제를 고대 근동아시아의 배경 속에서 비추어 보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조상숭배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것 같지만, 구약은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한 논쟁을 하고 있다.
조상숭배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먼저 조상 숭배에 있어서, “조상”이란 단어는 상당히 포괄적으로 사용되며 한 가족의 직계뿐 아니라, 친족(kins)과 일가(relatives)까지 다 포함한다. 베일리스(M.Bayliss)는 조상숭배 관습과 관련하여 악카드어에서 일가친척을 가리키는 세 단어, 즉 kintu, misutu, salatu가 나타나고 있음을 관찰하고 있다.(1973. 11. 9). 예로서, KAR, 227 iii 9-10, "(GIDIM) AD. MUAD. AD. MU AMA. MU AMA. AMA. MU SES. MU NIN. MU kim-ti-ia ni-su-ti-ia u sa-la-ti-ia ma-la I-na -Kl-tim sal-lu," 내 아버지, 내 아버지의 아버지, 내 어머니, 내어머니의 어머니, 내 형제, 내 자매, 내 친척, 가족과 일가, 땅에 누은 모든 자들(의 혼)이란 표현이 있다(Bayliss, 1973 : 119, n. 34).
"조상숭배“에서 ”숭배하다“는 용어는 분명히 종교적인 차원을 지닌다. 이것은 ”공경하다“와는 다른 차원을 가진다. 핫지(C. T. Hodge)는 의도적으로 ”조상예배“(ancestor worship)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피한다. 그는 산 자들이 죽은 조상과 상의하고, 그들을 무서워하고, 때로는 달래기도 하지만, 숭배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1976:316).
사실 일본제국이 천왕숭배를 강요할 때에도, 그들은 이것이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문화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애써 강조하였다. 그러나 “천왕”이든, 죽은 “조상”이든, 경외심을 가지고 종교의식속에서 그를 부르고, 나아가 절할 때는, 그 행동은 종교적인 차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제물을 바치게 될 때는 분명히 종교적인 의미에서 “숭배”라는 차원을 띠게 된다. 물론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죽은 조상에 대한 예배는 다른 차원을 갖지만, 죽은 조상이 신이 되고, 그에게 제물을 정해진 의식에 따라 드리게 될 때는 “숭배”,“예배”의 차원을 지니게 된다. 흥미롭게도 구약성경 저자들은 여러 구절에서 이방신들을 숭배한다고 말할 때,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사용하는 동사 sahah와 ‘abad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출 20:5; 신 11:16; 왕화 17:35). 따라서 “숭배하다”는 단어를 죽은 조상에게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오펜하임(A. L. Oppenheim)은 우리가 “메소포타미아 종교를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메소포타미아 종교를 체계적으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은 일리가 있다(1962:17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핫지(Hodge)의 제언은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1976:317). “고대 근동 아시아 종교 전부는, 조상의 역할과 집단으로 전수된종교(group hereditary religion)와 지역 영들(local[chthionic] spirits)의 빛 속에서 재조명 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하자면, 죽은 조상숭배에 대한 이해 없이 고대 근동아시아의 종교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문화적인 상황 이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는 나는 “비교대조법”(comparative method)을 중심적인 방법론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나는 메소포타미아의 대표적인 조상숭배의식인 키스푸(kispu) 의식과 우가릿의 마르제아(marzeah) 의식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비교 대조하려고 한다. 물론 구약연구에 있어서 전통적인 “비교법”은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 방법론은 두 문화를 비교할 때, 비교대상의 지리적이고, 시간적이고, 문화적인 인접성이나 거리를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범바벨론 주의”(F.Delitzsch)나 범우가릿 주의(M.J.Dahood)에 빠지고 말았다. 또한 나는 단지 모든 문화 사이에 있는 유사성만을 수집하여 제시하는 개스터(T.H.Gaster)의 입장을 따르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문화적인 제도이든지 먼저 자체의 문화적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각 제도를 성공적으로 재구성한 후, 그 배후에 있는 이념들이 드러나게 될 때, 우리는 서로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서로를 비교하고 대조할 때, 한 문화가 다른 문화에서 빌렸다든가, 각색했다는 주장을 아주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힐레이(Healey)는 “마리(Mari)와 우가릿(Ugarit)의 제사제물을 비교해 볼 때, 마리의 비문과 우가릿 비문에 사용된 제사의 맥락이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에, 이 둘 사이의 직접적 관련성(direct connection)은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두 문화 사이에 있는 유사성을 가지고 역사적인 관계로 대치시키고 있다. 한국과 일본과 중국 사이에 문화적인 관습이 유사하다고, 어디에서 빌어 왔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역사적인 관련성을 따지는 것보다, 조상숭배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와 우가릿과 이스라엘을 비교하는 것으로 마치려고 한다.
여기에서 애굽을 배제한 이유는 애굽인들이 그들의 죽은 조상을 숭배했는지 아직까지 문서로 명료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사후에 사람이 여러 형태로 변하여, 죽은 혼이 사후 생활을 찾아 긴 여행을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조상을 숭배한 증거를 명백히 제시하는 문서를 아직까지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이 점에 대해서 심슨(W.K.Simpson, 1971:240)을 보라. 최근에 핫지(Hodge)는 애굽어 중 신(神)을 가리키는 단어가 조상숭배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하였다(311-12)
Ⅰ 메소포타미아의 조상숭배
이 부분에서 나는 조상숭배와 연관된 중심 용어들을 제시하고, 이어서 제사 의식을 암시하거나,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본문을 다루려고 한다.
1.1 여러 용어들
1) 죽은 자의 혼(etemmu, GIDIM)
악카드에서 일반적으로 죽은 자의 혼은 에쩨무(etemmu)로 알려져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죽은 자의 혼은 신성화되고, 사람들에게 무서움을 주는 존재가 된다. 예로서, 고대 앗시리아 편지인 BIN 4,96:19에 따르면 “신(ilam)과 죽은 자들의 혼(e-te-mi)을 달래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내가 멸망하지 않으려고 한다”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CAD,E:397). 같은 시대의 편지인 KTS 24:7에 보면, "악귀들(utukki)과 귀신들(e-ta-mi) 때문에, 우리는 비참하게 되었다“고 한다(CAD,E:397). 여기와 다른 여러 본문들을 살펴보면(예로써, JEN 478:6, Bab 12 pl.3:36),죽은 자의 혼으로 불려지는 에쩨무가 신들(ilam)이나 악귀들(utukki)과 평행을 이루고 있으며, 그들은 신성을 가진 존재로서 사람들에게 재앙을 주는 무서운 자로 인식되고 있다.
고대 근동아시아의 사람들은 죽은 자의 혼(에쩨무)이 산 사람에게 축복을 주는 능력도 있다고 믿었다. ABL 614r.4-6에 따르면, “앗슈르(Ashshur)와 샤마위(Shamash)의 진실로 그들(영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가 앗시리아를 이어받을 왕자가 될 것이며, 그녀(죽은 여왕)의 신(e-tsem-ma-sha)이 그를 축복하고, 그(왕자)가 혼들(e-tsem-mu)을 섬길 것이다”라는 신탁의 말이 나타난다(CAD,E:397).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에쩨무라는 용어를 여러 종류의 죽은 혼을 가리키는데 사용하였다. 한 구스의 전설(Cuthean legend)에 따르면, 이 단어가 한 가문에 속한 죽은 자들의 혼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의 혼(GIDIM-sha, 이것은 조상의 혼령인 것 같다), …의 혼(GIDIM…)… 그의 친척들의 혼들(GIDIM kimti-shu), 그의 후손의 혼(GIDIM pir'ishu), 그의 후손의 후손의 혼(GIDIM piri' pir'ishu)"이 다 등장하고 있다(CAD,E:3 9 8). 이 본문은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맥락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아마 그들은 가족 묘에 죽은 조상들과 식구들과 친척들을 다 묻고, 그 혼들에게 제사를 드린 것 같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또한 정상적인 거처를 떠나 여행하다가 타향에서 갑작스럽게 죽은 자들의 혼을 가리킬 때에도, 에쩨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것이 LKA 84:23이하에 잘 나타난다. “떠돌이 귀신이들, 방랑 귀신이든, 벌판에 던져진(시체의)귀신이등, 물에 빠진 자의 귀신이든, 우물에 빠진 자의 귀신이든, 배고파 죽은 귀신이든, 목말라 죽은 귀신이든, 불에 타 죽은 귀신이든, 혹은 태양 빛에 쓰러져 죽은 귀신이든 간에…”이 본문은 정상적인 죽음과 장례를 치루지 못한 불행하고, 또 원한을 가질 수 있는 혼들을 나열하고 있다.
죽은 자들의 혼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스러운지 묘사하기 위해,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손”이란 은유를 자주 사용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종종 죽은 혼의 손에 붙잡혀, 사람들이 앓게 되거나, 큰 불행을 당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다. AMT 99,4:4:6에 따르면, “나그네 신의 손이 그를 광야에서 붙들었다”고 말하며, T에 76:62에는 “평원을 떠돌아 다니는 귀신의 손이 그를 사로잡았다”고 말한다(CAD,E:400).이런 배경 때문에,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귀신의 공격을 피하고, 벗어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주술들을 발전시키게 되었다(AMT 47:3).
2) 죽은 조상의 혼을 돌보는 자(paqidu)
베일리스(M. Bayliss)는 파키두의 성격과 기능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1973:116).
죽은 혼을 돌보는 책임을 가진 사람은 파키두(paqidu, LU.SAG.EN TAR)로 알려져 있으며, 직역하자면, “돌보 는 자 혹은 시중드는 자”라는 뜻을 가진다. 이 용어는 주로 죽은 자들의 친척에게 사용되었다. 만약 귀신이(산 사 람으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면, 그는 땅을 돌아다니면서 산자에게 따라 붙는다.
길가메쉬 서사시의 마지막 토판, 마지막 부분을 보면, 여러 불쌍한 혼령의 상태를 묘사하다가, 특히 아무도 돌보아 줄 자 없는 혼의 비참한 상태가 그려지고 있다. 이 부분은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나타난다(길가메쉬 서사시 토판 12:145-154).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한 자를 보았느냐?”
“나는 보았다. 그는 침대에 누워 깨끗한 물을 마시고 있다”
“전쟁터에서 죽은 자를 보았느냐?”
“나는 보았다. 그는 머리를 들고, 그의 아내는 애곡 하느니라”
“그의 시체가 평원에 던져진 자를 보았느냐?”
“나는 보았다. 그의 혼이 저승에서 쉴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느니라”
“아무도 돌보아줄 자 없는 혼을 보았느냐?”
“나는 보았다. 그는 그곳에 남은 찌꺼기와, 빵부스러기와, 길거리에 흩어진 찌꺼기를 먹고 있느니라.”
여기에서 이 서사시의 저자(혹은 편집자)는 파키두의 의무를 강조해 주고 있다. 파키두의 책임은 주로 아들이나, 가까운 친척들에게 주어진다. 그는 정기적으로 먹을 것과 신선한 물을 제물로 공급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만약 남자가 이 일을 할 수 없을 때, 여자도 파키두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아직까지 그렇게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제사의식 속에 “자매”(ahatu)와 “딸”(martu)이 함께 등장하고 있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여자들도 동참했음을 알 수 있다(A fo 19[1959/60], 117; Bayliss, 119).
3) 제사 제물과 제사의식(kispu)
핑켈스타인(Finkelstein)과 베일리스(Bayliss)는 파키두가 죽은 자의 혼을 위해 세 가지 행동을 취했음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 첫째로, 그들은 제사 제물(kispa kasapu)을 드리며, 둘째로 “마실 것을 부어드리고”(me napu), 셋쩨로 “죽은 조상의 이름을 부른다”(suma zakaru). 이 제물들을 바치는 제사 의식과 연관하여 가장 흥미로운 본문이 대영박물관 소장, 바벨론 토판에서 나온 쐐기문자 본문인 CT 16,10:5-14)에 나타난다.
당신이 장례되지 않은 귀신이든, 혹은
당신이 아무도 돌볼 자 없는 귀신이든(sha pa-qi-da la I-shu-u), 혹은
당신에게 아무도 제사 음식을 드릴 자가 없는 귀신이든(sha na-aq me-ela ishu-u), 혹은
당신에게 아무도 마실 물을 부어줄 자 없는 귀신이든(sha na-aq me-e la ishu-u), 혹은
당신이 자기 이름을 불러줄 자 없는 귀신이든(sha za-kir/8 shu-me la I-shu-u) 간에…
옛날 사람들은 제사음식으로 무엇을 바쳤는가? 고대 바벨론 시대 사람들은 우유와(물소 젖의) 버터기름(TCL 1,7:6)과, 바다 거북이(turtles)와 민물거북이(tortoises, VAS 16,51:5)와 여러 종류의 음식들(CT 45,99:30)을 죽은 자의 혼에 바친다. 중세 바벨론 시대에는 맥주와 소금도 바친다(PBS 212,8:1,9). 이 두 시대 사이에 바친 제물이 달라 보이는 것은, 역사가 흐르면서 제물의 내용이 바뀌어진 것이라고 보기 보다는, 우리가 가진 역사적인 자료가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마리의 행정 문서고에서 발견된 자료들은, 제사 제물에 제사 의식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상세하게 제시해 준다. 여기에서는, 죽은 왕들에게 드리는 제사 음식으로(kispum sha LUGAL-mesh), 매월 초와 16일에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거의 표준화 되었다(Finkelstein, 115).
핑켈스타인은 역사적인 자료 두 가지를 더 제시해 주고 있다. 그것들은 (1) 야둔-림(Yahdun-Lim) 왕의 죽은 혼에게 바치는 키스품과, (2) 샤마쉬-아닷(Shamashi-Adad)에게 드리는 것이다(ARM 1:65). 샤마쉬-아닷의 비문은 테르카(Terqa, Tell 'Ashah)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왕은 이 당시 제사드리는 집(E. ki. si. ga, 즉 bit kispi)을 봉헌하려고 하였다(IAK 1:26f.no.5). 마리와 바벨론에서는 “제삿날”(day of kispum)이 거의 고정되고, 정기적인 관습으로 아부(Abu)달로 못 박힌 것 같다(TCL,1,7:6).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죽은 조상의 혼에게 드리는 제물에 관한 것으로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상호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살았을 동안 내가 너에게 먹을 것을 주었으므로, 내가 죽었을 때 너는 나를 위해 제사 음식(ki-is-pa ta-ka-si-[pa])을 바칠 것이니라”(CAD,K,426).
4) 헌 주(me naqu)
고대 바벨론과 앗시리아 시대로부터 naqu라는 동사가 술을 부어 드리는데 사용되어 왔다. “어떤 여자(f-PN)가 죽으면 여성 2세(f-PN2)나, 그녀의(입양된) 딸이 그녀에게 술을 부어드릴 것이니라”(BE 14,40:15,MB,from CAD,N,337). 한 사람이 죽은 후 그의 무덤에 술을 부을 자가 없는 경우, 그는 저주 받은 자로 여겨지고 있다.(Wiseman Treaties, 452). “너에게 너의 혼을 돌보아 줄 자 없고(paqidu), 물을 부어줄 자(na-aq em)없을찌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앗시리아의 대왕 아수바니팔(Ashurbanipal)은 아마 왕권을 장악한 후, 자신의 조상들에게 헌주를 새로 드리게 되었다는 점을 자랑하고 있다. “나는 그 동안 오랫동안 끊어졌던 관습으로서, 죽은 자들에게 음식(kispi)과, 내 선조 왕들의 혼을 위해 헌주(me-aq me)하게 되었다”(Streack Asb, 250:r:1).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물과, 맥주와 술을 드렸을 뿐 아니라, 기름과 꿀과 젖소의 우유와 같은 다른 마실 것들을 그들의 헌주로 바쳤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죽은 자들이 묻혀 있는 무덤에 대롱을 만들어 여러 종류의 술을 부었다는 점이다. 이 대롱의 전문용어로, 그들은 arutu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샤마쉬)가 그로 하여금 아래(즉 음부)에서, 대롱을 통해 결코 시원한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소서” (BBSt. 2,20,from CAD,A,324).
5) 이름을 부름(shuma zakaru)
우리가 앞에서도 이미 본 바와 같이(CT 16,10:13이하), 죽은 혼을 돌보는 자(paqidu)는 죽은 조상(etemmu)의 이름도 부른다. 여러 곳에서 이런 의식이 나타난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는 죽어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줄 후손이 없는 자이다. “아무(식구) 없는 너, 죽은 혼이여, 아무도 너를 묻어 줄 수 없고, 불러 줄 자 없는 자여”(KAR 227,R:3:28). 또한 다른 본문에 보면 아들의 중요한 효도 중 하나는 죽은 조상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아들을 가질지니, 그는 그의 이름을(사후에) 불러 주리라”(Kraus Texte 7:11).
앗시리아 사람들은 제물을 드리는 맥락에서 그들의 신들에게 기원할 때, suma zakaru라는 전문용어를 사용하였다. “나(아수바니팔)는 위대한 신들을 위해 제사장에 음식을 펼쳐두고, 당신(샤마쉬)의 이름을 불렀나이다”(KAR 55:15). 샴시아닷(Shamshi-Adad)은 “기원의 집”(bit qultishu, the house of his intonation)을 만들어 두고, 살아있는 왕(혹은 그의 대리자)이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죽은 조상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Finkelstein 116).
우리가 조상숭배와 연관된 핵심단어들을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이것들을 다루는 본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2. 중심 본문들
1) 길가메쉬 6 : 5-17에 나타난 조상 숭배에 대한 암시
길가메쉬가 그의 관을 썼을 때,
영광스러운 이쉬타르는 길가메쉬의 아름다움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길가메쉬여, 너는 (내)사랑이 되어다오!”
나에게 너의 열매를 다오.
너는 나의 남편이 되고, 나는 너의 아내가 될 것이니라.
내가 너에게 청옥과 금으로 된 수레를 몰리라.
그 바퀴는 금이요 그 뿔은 동이라.
폭풍-귀신이 힘센 노새를 몰아 줄 것이다.
향나무 냄새와 함께 너는 우리 집으로 들어올 것이다.
네가 우리 집에 들어올 때,
문지방과 단이 너의 발에 입맞추리라!
네 앞에 왕들과, 주들과 왕자들이 겸손히 엎드릴 것이니라.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성혼의식(sacred marriage)의 관점에서 이 본문을 보았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아부쉬(Abush 1984)는 이 본문이 장례의식과 연관되어 있음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이 본문에 따르면, 이쉬타르 여신이 길가메쉬의 아름다움에 도취해 그에게 구혼한다. 그녀는 길가메쉬에게 성적인 연합을 통해, 새로운 집으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이 새집은 무덤을 뜻한다. 이쉬타르는 청옥과 금으로 된 마차를 제공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황금 마차는 곧 저승으로 가는 상여를 뜻한다. 이쉬타르는 길가메쉬에게 향나무 향기를 제공한다고 하나, 이것은 장례의식에 사용되는 분향으로 보여진다. 아쉬타르는 “왕들과, 주들과, 왕자들”이 경배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저승세계의 사자들이다. 특별히 “발에 키스를 하는 것”은 시체에 마지막 작별의 키스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고대 근동 아시아의 사람에게 있어서, 결혼의식과 장례의식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 둘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며, 새로운 집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둘 다 거룩한 의식으로 여겨졌고, 둘 다 기쁜과 슬픔으로 섞여 있는 의식이었다. 결혼과 장례에 사용된 이미지와 모티프들은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쉬타르의 청혼을 죽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길가메쉬는 이쉬타르의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에, 그녀의 청혼을 거절한다. 길가메쉬는 이쉬타르가 사랑했던 모른 자들을 다 죽였음을 상기시킨다. 길가메쉬 서사시 토판 6번이 조상숭배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죽음과 장례와 사후 관리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널리 사용되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2)함무리비 왕조의 족보(BM 80328)에 나타난 조상숭배
함무리비 왕조의 족보는 고대 바벨론 세계의 조상숭배를 가장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본문은 핑켈스타인이 해독하고 번역하였다(Finkelsrein, 95-97)
앞면
1. IA-ra-am-ma-da-ra
2. ITu-ub-ti-ya-mu-ta
3. IYa-am-qu-uz-zu-lam-mz
4. IHe-a-na
5. INam-zu-u
6. IDi-ta-nu
7. IZu-um-ma-bu
8. INam-hu-u
9. IAm-na-nu
10. IYa-ah-ru-rum
11. IP-ti-ya-mu-ta
12. IBu-ha-zu-um
13. Isu-ma-li-ka
14. IAs-ma-du
15. IA-bi-ya-mu-ta
16. IA-bi-di-ta-an
17. Ima-am(?)-x[x-x(?)]
18. Isu-x-ni(?)-x-[x(?)]
19. IDa-ad(?)-x-x-x(?)
20. ISu-m[u-a-bu-um]
뒷면
21. ISu-mu-la-[il]
22. IZa-bi-um
23. IA-pil-d/sin
24. Id/Sin-mu-mu-ba-li-[it]
25. IHa-am-mu-ra-p[i]
26. ISa-am-su-i-lu-n[a]
27. IA-bi-e-su-[uh]
28. IAm-mi-di-ta-[na]
29. BAL ERIN MAR. [TU]
30. BAL ERIN He-e-[na]
31. BAL Gu-ti-um
32. BAL sa I-na tup-pi an-ni-i la sa-at-ru
33. u AGA.Us sa i-na da-an-na-atbe-li-su im-qu-tu
34. DUMU. MES LUGAL
35. DUMU. MI.MES LUGAL
36. a-wi-lu-turn ka-li-siin
37. is-yu d/UYU. E. A a-du(!) d/UTU.SU.A
38. sa pa-qi-darm u sa-hi-ra-am la I-su-u
39. al-ka-nim-ma- an-ni-a-am a-ak-la
40. an-ni-a-am si-ti-a
41. a-na Am-mi-sa-du-qa
42. DUMU Am-mi-di-ta-na
43. LUGAL KA. DINGIR-RAki
29번째 줄로부터 43번째 줄까지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29. the palu of the Amorites,
30. the palu of the Heneans,
31. the palu of the Gutim,
32. the palu not recorded on this tablet,
33. 그리고 자신의 주를 위해 위험한 전쟁에서 죽은 용사(들)
34. 왕자들,
35. 공주들
36. 모든 “사람들”,
37. 동이든 서이든
38. paqidim이나 sahiram이 없는 자들
39. 모두 오셔서, 이것을 드시고
40. 이것을 마시고
41. Ammiditana의 아들,
42. Ammitsaduq를 축복하소서
43. 바벨론의 왕
문제시되고 있는 본문은 대영박물관의 “벗지 수집품”(Budge Collections) 중 BM 80328로 알려진 것으로서 아마 싯파르(Sippar)에서 발굴된 것 같다. 이 본문은 원래 행정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도서관(administrative archive)에 소장되어 있었다. 28번까지 이름 앞에 I자가 있는 현상(원본에 따르면 각 이름 앞에 꺽자 표시가 있다)에 대해 펭겔스타인은 서기관이 다른 문서에 있는 이름과 대조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 족보(Ahnentafel)는 바벨론의 첫 왕조를 이끌어간 왕들을 수무아붐으로부터 암미짜두카까지 모두 정확한 순서를 따라 열거하고 있다. 수무아붐 앞에 있는19명은 바벨론 제국의 왕은 아니었으나, 이들은 도시 왕이었거나, 혹은 부족의 세이크나, 혹은 족장들이었을 것이다(Finkelstein, 97). 엄격한 의미에서 첫 바벨론 제국의 왕조는 수무아붐(주전 1894-1881)부터 시작한다. 함무리비는 제6대 왕이며(주전 1692-1750), 암미짜두카는 아홉 번째 대왕이다(1646-1626).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암미짜두카가 고대 바벨론 사람들을 대표하여, 족보를 가지고 그의 조상들을 숭배하고 있다는 저밍다. 그는 모든 조상신들과, 무명의 용사들과 “고아가 된” 혼들이 자기 잔치에 와서 마음껏 드시도록 초대하고 있다. 핑켈스타인은 이 본문의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115쪽). “본문 전체의 성격과 가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것은 죽은 자를 기념하는 날에,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데 사용되었다. 이 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에쩨무(etemmu)", 즉 죽은 혼령들에게 음식과 마실 것으로 구성된 키스푸(kispu)를 드리는 것이었다.
즉 이 족보(Ahnentafel)는 명백하게 조상숭배에 사용되었다. 특별히 paqidum과 sahirum이 평행을 이루고 나타나는 것이 흥미롭다. 후자 역시 죽은 자를 돌보는 자이지만, 뉘앙스에 있어서 전자는 주로 먹을 것을 드리는 자요, 후자는 죽은 조상의 이름을 부르는 자이다.
고대 마리(Mari)의 관습을 미루어 볼 때, 이 족보는 정기적은 키스푸 날에 바쳐지고, 특히 매월 16일, 즉 죽은 왕에게 제사음식을 드리는 날(kispum sa LUGAL-mes)에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29절부터 32절까지 아모리인과 하네안과 구팀과 이 족보에 기록되지 않은 팔루(palu), 즉 “왕조”(dynasty)들 (Finkelstein, 106)과, 무서운 전쟁에 참여하고 죽은 용사들과, 이름을 잊어버리는 여러 왕자들과 공주들과 모든 사람을 언급하는 것을 볼 때, 이 문서는 보다 특별한 날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는 새 왕이 즉위하는 날이 본문은 Sitz im Leben으로 가장 적합한 날이었다고 가정하게 된다. “새 왕관을 쓴, sar misarim으로서 암미짜두카는 산 자와 죽은 자에게 특별한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백성들에 대한 그의 사랑을 확증하고 있다”(Finkelstein, 116).
Ⅱ.우가릿에서의 조상숭배
2.1 용어
1)죽은 자들의 혼(rp′um/rp′im)
우가릿 비문에서 러파임(rp′um/rp′im)은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다. 그것은 (1) 신들(Ch. Virolleaud; R. Dussaud). (2) "그림자“(shade; A. Caquot), "신성화 된 죽은 자"(the deified dead;M.Pope), (3) 제단에서 일하는 자들(cultic functionaries ; J. Gray) 등으로 해석되고 있다(L′Hereux, 1974 : 265-74). 러파임의 정체에 대한 새로운 가설로서, L′Hereux는 러파임이, 신이든 인간이든 간에, "전차 타는 용사들”임을 제시하였다. “우가릿어 rp′/rp′m”은…신적인 차원에서 단수로서 엘의 칭호로 사용되었으며, 복수형으로서는 엘신의 초대에 응한 모든 신을 가리킨다. 인간적 차원에서, 러파임은 엘의 후원을 받고 사는 귀족층 용사단(warrior guild)을 형성하고 있다. L′Hereux가 러파임을 말 타는 요사로 본 것은, 러파임 본문에서 이들은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271쪽). 그러나 포우프(Pope)는 러파임 본문에 나타난 “전차”가 장례의식과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신들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다닐 수 있었다…말과 장례식의 연관성은 고대로부터, 널리 받아들여지던, 지속적인 관습이었다”(1977:167).
드무어(J. C. DeMoor)도, “가나안 사람들이 죽은 혼을 러파임이라 불렀다는 점은 읫미할 여지가 없다”(1976 :330)고 말한다. 바알(Ba′le)신화가 담긴 CYA 6, 6:41-48에 따르면, “샤파쉬여, 당신은 러파임을 다스리며, 샤파쉬워, 당신은 귀신들을 다스리나이다. 신들이 당신을 따르며, 죽은 자들이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드 무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1976 : 331).
여기에서 ′ilm과 ′lnym이 평행을 이루고 잇는 것을 볼 때, 우가릿 사람들은 러파임을 신적인 존재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묻히면, 그는 땅들 신들 (′ilm ′arts)로 매장된다. 때로는 바벨론어에서 신을 가리키는 표시(DINGIA, "deity")가 나타나기도 한다. 우가릿에서 조상될은 “조상신”(′li ib)으로 불려진다(CTA 17,1 : 27 등). 우가릿 만신전에서 가장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자가 ′li ′ib로 불려졌다. 이 신은 신들의 조상으로 여겨진 신이 분명하다. 러파임에 대한 우리의 연구가 부분적이긴 하지만 이 용어가 우가릿에서 죽은 조상의 혼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제사제물과 제사 의식(mrzh)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키스푸 의식을 행한 것처럼, 우가릿 사람들은 소위 마르제아라고 불려지는 조상숭배의식을 행했다. 이것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본문이 RS 24, 254 : 15-24)이다.
15 il.ytb. bmrzhh
16 yst [il y]n. ′d sb′//try. ′d skr
17 il. hik. ibth.//ystql.
18 Ihtrh.//y msn. nn. tkmn
19 w snm.//wngsnn. hby.//
20 b′l. qrnm wngsnn.hby.//
21 b hrih. w tnth.//ql. il
22 il. k yrdm. ars//′nt
23. w ′ttrt. tsdn.//
위의 본문에 대한 포우프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15 El sat in his MRZH,
16 El drank wine to satiety, Must till to inebriated
17 El went to his house, Descended
18 to his court, Tkmm-
19 w-Snm carried him. There accosted him a creeper
20 with two hours and a tail, He floundered
21 in his excrement and urine. El collapsed
22 El like those who descend into earth. ′Anat
23 and ′Astart went roaming
포우프에 따르면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d sb′), 만취되는 것(′d skr)은 마르제아 잔치(Marzeah festival)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고 한다. 우가릿 신전의 주상신을 대표하는 자로서, 엘신은 백성들이 마르제아 잔치에서 조상신들을 위해 하는 역할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잔치는 너무나 난잡하였고, 신전의 여종들이 너무나 문란했기 때문에 바알신은 견딜 수 없어 한다(A, Herdner, 1963, CTCA, No.4,Col. Ⅲ,17-22; Pope, 1972, 173-174에 인용됨).
바알이 미워하는 두 개의 잔치가 있다.
구름타는 자(the Cloud Rider)가 [미워하는]세 가지가 있다.
수치의 잔치요
상스러운 잔치이다
여종이 난잡해지는 잔치요
거기에 수치가 있으니
거기에 여종의 문란함이 있다
두 번째의 본문은 케렛의 전설(혹은 Legend of Kuritu)이 담겨 잇Sms CTA 20-22에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 다넬(Danel)왕은 러파임들(rp′im)을 제사에 초대하여, “자기의 죽은 아들에게 말할 수 이TEhfhr"부탁하고 있다(UF 7 [1975], 171을 보라).
(5) tkm. bm tkm. hm.
There, shoulder to shoulder, were the brothers,
qym. ′il (6) blsmt.
whom ilu caused to rise up in a hurry.
tm.ytbs.sm. il. mtm
There the name of ilu substantiated the dead,
(7) yt!bs. brkn. sm. il gzrm
The blessing of the name ilu substantiated the heroes.
(12) tbh. ′alpm
그는 암소를 잡고,
′ap s′in
또한 작은 식용가축을 잡고,
sql. trm
그는 황소를 죽이며
(13) awmri′lim.
양들 중 가장 살진 것을 잡고
′glm. dt. snt
1년생 송아지를 잡았고,
(14) imr. qms. ll′im.
양과 어린양을 수 없이 잡았다.
……………
(21) hn. ym. wtn. tlhmn
보라 첫날과 둘째날에 그들이 먹었고,
rp′um (22) tstyn
러파임이 마시고,
tlt. rb. ym
세째, 네째 날에
hms (23) tdt. ym. tlhmn.
다섯째, 여섯째 날에 그들이 먹고
rp′um (24) tstyn. bt. ′ikl.
러파임은 식당에서 마시고
brp 1 (25)ysq. b′irt.
첫(날)에 그는(포도주)를 레바논의 잔에 붓고
mk. bsb′ (26) [ymm]
보라, 제 일곱째 날이라.
여기에 보면, 러파임들은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함께 모여, 엄청난 제물을 먹고(12-13), 포두주를 7일간에 걸쳐 퍼 마신다(21-16).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비록 우가릿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사람들 처럼 paqidum, me naqu, shuma zakaru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혹은 우리가 아직 찾지 못했든지), 그들의 마르제아 제사는 키스푸와 여러면에서 너무 유사하다. 둘 다, 조상숭배는 효도의 핵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죽은 조상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드리는 것이 효도의 근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조상의 모에 술과 물을 부어주는 파이프를 만들었다. 우가릿어에서는 더무어는 우가릿어 ′urbt는 뚜껑(hatches), gngnt혹은 knkn은 물붓는 대롱(libation pipe)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고 제시한다(DeMoor, 1976, 331). 또한 우가릿에서도, 죽은 조상을 부를 때, qara'라는 동사를 사용한다(RS 34. 126, 2-12).
2.2 본문
1)RS 34, 126:1-34에 나타난 조상숭배
1.“빠른 자”(the Swift Ones)의 제사 잔치에 대한 보
2. 너는 땅의 구원자들 (신들, rpim 'arts)을 불렀다.
3. 너는 Didanu의 총회를 불렀다.
4. 그는 구원자(the Davior, 게′a), Belkenu를 불렀다.
……
8. 옛 구원자들(rpim qdmym)…
……
11. 그는 왕 암미짜타마루(Ammittamru)를 불렀다.
12. 그는 또한 왕, 나크마두(Niqmaddu)를 불렀다.
……
27. 첫날 그는 제사를 드리고, 둘째날 그는 제사를 드렸다.
28. 셋째날 그는 제사드리고, 넷째날 그는 제사드렸다.
29. 다섯째날 그는 제사드리고, 여섯째날 그는 제사드렸다.
30. 일곱째날 그는 제사드렸다. 너는 새를 드렸다.
31. “암무라피를 환호하고, 환호하라.
32. 또 그의 아들을 환호하라. 그의 친척들을 환호하라.
33. 그의 집을 환호하라. 우가릿을 환호하라.
34. 그 모든 문을 환호하라.”
이 본문의 의식적 배경은 명료하지 않지만, 우가릿의 제사장이나 왕이 큰 제사의식에서 창립 왕 암무라피의 조상신들을 모두 불러 제사를 드리고 있다. 그는 모든 죽은 자의 신들인 러파임이 와서 마음껏 먹고 축복해 주길 기원한다. 3절에 있는 디다누(Didanu)는 우가릿 왕조가 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보여준다. 죽은 조상은 모두 러파임이 되어 조국의 소호신으로 여겨지고, 제사를 받게 된다.
2) 러파임 본문에 나타난 조상 숭배
우가릿의 조상 숭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은 아캇 서사시에 있는 소위 러파임 본문이다. 이 서사시는 다니엘의 비극으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뒤를 이를 아들이 없자, 엘신에게 구한다(Pope, 163).
1. 나는 돌아가 쉬리라
2. 내 영혼이 쉬리라.
3. 나에게도 내 형제처럼 아들이 태어났다.
4. 내 피를 받은 뿌리이다.
5. 그는 내 조상의 비문을 세우고
6. 백리향을 성소에서 나를 위해 피우며
7. 땅으로 내게 노래하며
8. 땅으로 내게 노래하며
9. 내 원수의 모욕을 반박하고
10. 나를 거스리는 자를 물리치며
11. 내가 술취했을 때 내 손을 붙들고
12. 내가 술에 잠겼을 때 나를 들어주며
13. 바알의 집에서 내 식물을 먹고
14. 엘의 집에서 분깃을
15. 진창의 날에 내 지붕을 막아주며
16. 더러운 날 내 옷을 빨리라.
이 본문에 담겨있는 여러 이미지의 모티프를 다 파헤치는 것은 우리의 범위를 넘어간다(deMoor & M. Dijkstra, 1975 : 171-215; W. F. Albright, 1944 : 30-35를 보라). 따라서 여기에서 조상숭배와 연관된 몇가지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우가릿의 전통에 따르면, 죽은 조상 숭배를 위해 묘비를 세우고, 제사 음식과 술을 바치며, 향을 피우고, 혼을 달래기 위해 노래하며, 혹시 있을 지 모르는 재난과 모독을 막아주고, 성소에서 조상을 셍각하며 제사 음식을 드리고, 끝으로 사후에 무덤을 관리하는 것을 효도의 중심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가릿의 조상숭배와 바벨론의 조상숭배와 거의 같은 팻턴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죽은 조상을 “신”, 혹은 “구원자”로 신격화 시켰으며, 마르제아 제사를 신전이나 집에서 정기적으로 드렸다. 바벨론이다 우가릿에서 조상숭배는 효도의 근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Ⅲ. 구약성경의 관점에서 본 조상 숭배
신약성경은 말할 것도 없지만, 구약성경에서는 메소포타미아의 키스푸 제사나 가나안의 마르제아 제사와 같이 죽은 조상신에게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허락하는 규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그들은 죽은 조상 숭배와 연관된 의식을 철저히 거부한다. 죽은 영에게 바친 제사 음식은 금지된 것이었다. 먼저 민수기 25:1-3을 보라.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 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 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주석이 시편 106 : 28에 잘 나타나고 있다.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wayyissame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zibehe metim)을 먹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서 “죽은 자들”, 구체적으로 죽은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며, 바쳐진 음식과 술을 함께 먹으면서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었다. 이 바블브올 사건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여 그들은 모두 멸망할 뻔 하였다.
신명기 26 : 14에 따르면,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감사예배를 드리며 십일조를 드리면서 한 가지 금기사항을 지켰음을 고배해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즉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행하였나이다” 여기에 “죽은 자를 위하여 십일조를 사용한 경우”가 나타난다. 이것은 십일조를 “죽음의 사자” 바알(Baal, the Dead One)에게 드리는 것일수도 있고(Craigie, 1976, 323),혹은 십일조를 “죽은자를 위해 무덤에 두는 것”일 수도 있다(Wolff, 103). 어떻게 해석되든지 간에, 이것은 여호와 앞에 가중한 짓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레미야 16 : 5에 따르면, 여호아께서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에게 말하신다.
너희는 상가(marzeah-house)에 들어가지 말라.
가서 통곡하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지 말라.
인자와 긍휼을 제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왜 상가집(marzeah-house)에도 들어갈 수 없는가? 바로 이 다음절에 따르면(16 : 6-9), 상가집이 이방의 의식으로 가득찼기 때문이다(fp- 29 : 27-28; 21 : 5; 신 14: 1). 즉 “ 그 곳에서 그들은 애곡하며, 자기 몸을 베며, 대머리 되게 하는”일이 있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위로의 잔”을 마셨다. 이 잔은 특히 방탕함으로 가득찬 것이었다. 상가 집은 “마시는 집”(bet misteh)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그들은 애곡하면서 방탕한 행동을 하였다. 아무스 6 : 4-7역시 같은 배경을 제시해 주고 있다.
저희가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이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 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mirzah seruhim)가 그치리라.
이사야 65 : 4에 따르면 패역한 백성들이“무덤 사이에 앉으며…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무덤에 앉는 것”은 죽은 자를 위해 애곡을 하거나, 그들에게 제사하거나, 혹은 그들에게 신탁의 말씀을 묻기 위한 행동(신 19 : 11 ; 삼상 29 : 3; 사 57: 9)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죽음과 연관된 모든 것이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이방사상에 젖어서 이제는 무덤안에 들어가 앉으며 돼지고기를 먹고 있다.
나아가 바벨론과 우가릿의 사람들이 죽은 조상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에게 축복을 구하고, 때로는 그들과 교통하며 신탁을 묻는 것과 연관하여, 성경은 죽은 자들을 불렁는 접신술과 강령술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사야 8 : 19-20을 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성경은 초혼술을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명백한 입장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초혼술은 명백히 이방의 종교행위로 정죄하고 있다. 이것은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라고 못을 박는다(신 18 : 12-14). 이사야 29 : 4에서도 신접한 자들이 땅에서 올라오는 소시를 술법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a라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사울은 정신분열을 일으킨 후에 엔돌의 신접한 여자에게 나아가 죽은 사무엘의 혼을 불러내라고 한다(삼상 28장). 역대기 기자는 이 점에 대해 명백한 신학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셨더라”(대상 10 : 13-14).
선지자의 규례를 말하는 신명기 18 : 11에서는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고 말한다.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신다” 왜 가나안 사람들은 그 땡에서 쫓겨났는가? “바로 이런 가증한 일 때문이었다”(12절).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레 20 : 6,27).
죽음의 비 신성화와 연관된 것으로, 신명기는 장례식에서 금지된 규례 두 가지를 명시하고 있다. “너는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14 :1). 우가릿의 효자 아캇의 전설(Legend of Aqht)에 따르면, 죽은 자를 위해 애곡하는 전문 여성이 몸을 난자하는 것이 나타난다(CTA 19. Ⅳ).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기” 때문이다(2절). 유사한 말씀이 레위기 19 : 28에 나타난다. “주긍ㄴ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방의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 중 누가 죽으면 머리털이나 수염을 자르는 규례가 있었다 (레 41 : 5참조). 그 이유는 애곡하는 자들이 자신의 슬픔을 극대화하기 위해 몸을 해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비신성화와 연관하여, 우리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그 많은 족보들이 전혀 조상숭배와 연관되어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족보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법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었다. 상속과 가문의 정당성을 위한 것이 일차적 모교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는 고대 근동 아시아의 족보가 종교적인 측면, 구체적으로 조상숭배에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 점은 성경의 족보 용도와 너무나 큰 차이를 만들어 준다.
죽음과 죽은 자를 비 신성화시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덤을 화려하게 장식하지 않는데도 나타난다. 그들은 이방인들처럼 무덤을 높이지 않는다. 이사야 선지자는 국고를 맡고 궁을 차지한 셉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네가 여기 무슨 관계가 있으냐? 여기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해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 내었도다”(사 22 : 15-16). 주님은 셉나에게 죽음을 선고한다(22 : 17-25). 예수님도 선지자를 죽인 자들이 선지지의 무덤을 짓고 장식하는 것을 책망하였다(마 23 : 29).
끝으로 우리는 왜 죽은 조상에 대해 이스라엘과 이방인 사이에는 이렇게도 큰 차이를 나타내는가 :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있는 명백한 구별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신앙의 현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히브리 종교의 중심 싸움은 인간과 하나님, 하나님과 자연을 혼돈시키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J. Barr, 1959 : 7). 이방인들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있는 예리한 구별을 하지 못했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죽은 조상을 신격화 시킬 수 밖에 없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어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 :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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