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신학은 개혁주의의 특색 있는 교리다. 칼빈의 제자인 베자에 의해 철옹성이 된 예정론보다 온건한 주장이 독일 남부 지역과 스위스 자치 도시에서 개발되었으니 그게 바로 언약신학이었다.
연약신학은 구원을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관계로 성찰하는데 인간은 믿음을 통하여 이 언약에 참여하게 된다. 구속 계시의 점진적 발전과정과 통일성에서 언약을 찾을 수 있다. 구약의 각종 언약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체결되는 새언약으로 수렴되고 대단원에 이르는 것이다.
월터 카이저는 “지명된 세대들이 하나님의 유일한 계획의 완성에서 그들의 분깃을 받았다. 이것은 동시에 장기간에 계속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부분적인 확인과 성취 과정에서 당시의 할당된 모습으로 주어졌다. 이 성취의 시대적인 분할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궁극적인 사건의 중요한 부분 부분이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궁극적이거나 절정의 순간에 있을 성취와 결합시키는 수단으로 차례로 동시에 적용하였다. 그러므로 기자가 그 단일한 의미가 많은 부분으로 된 성취인 것을 알았거나 경험하였더라도 기자의 심중에는 하나의 단일한 의미가 있었다”고 통찰하고 있다.
일례로 그는 “시편 95편은 하나님의 안식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하여 권하였다. 시편 기자에게 있어서는 안식에 대한 과거의 제안은 궁극적으로 제2의 그리스도 강림 사건들과 결루되어 있었다. 분명히 다른 모든 안식은 오로지 제2의 그리스도의 강림에 다시 올 마지막 안식일의 안식에 대한 ‘징조’요 ‘보증’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가나안 땅이나 그 안에서의 안식에 대한 언약은 그것으로 끝나는 각개의 단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최종적인 성취와 연결되어 있다. 자연히 이 언약은 언제나 그 연약에 참여하는 하나님 백성의 신앙에 달려 있었다.
예정이 역사 이전의 일순간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라면 언약은 역사 속에서 점증적으로 전개된 하나님의 역사였다. 하지만 둘 다 구속에 대한 신적 확실성을 담보한다는 점에 있어 동일하다.
쯔빙글리, 불링거, 칼빈, 올레비아누스, 우르시누스, 에임스, 코케이우스, 롤록, 카트라이트, 클로펜부르크, 윗시우스, 조나단 에드워즈, 헤르만 바빙크, 게할더스 보스 등이 언약신학의 공로자들이다.
www.kidok.com 기독신문 2008년 05월 21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