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은이는 저희 가정의 첫째 아이로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6월 20일에 올림픽 체조와 역도 경기장 등이 있던 올림픽 공원 가까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가족은 이 마을에서 작은 교회를 설립해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만삭의 몸으로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아이 엄마가 주일 밤에 양수가 터져 급히 병원으로 갔습니다.
몇 시간 후 탄생한 기은이는 2.54kg의 미숙아였습니다. 출산 예정일보다 1개월 빨리 태어난 탓인지 담당 의사가 인큐베이터가 설치된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입안에 기형적인 혹이 보인다며 나중에 수술해야 될 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출산의 느낄 사이도 없이 앰블런스로 방지거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토실토실하고 보기 좋았는데 기은이는 주름이 지고 크기도 작아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인큐베이터에서 4주 간 있는 동안 이제 막 출산한 아이들 정도 자라났습니다. 아기를 살피던 중에 하얀 이가 조금 보여 의사에게 “혹이 아니라 이빨이 솟는 것 같네요”, “그러네요. 이가 맞네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은이는 100일이 될 무렵 이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가 빨리 상해 일찍부터 치과를 드나들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네 살 전후부터 치과를 다니다보니 어린 나이에 무척 힘들었나 봅니다. 몸을 너무 움직이면 치료를 못하니까 치과 의사가 그물로 아이를 두르고 나서 치료 하겠다고 말하자, 모양새가 안 좋았던 지 참고 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온 대로 첫 아들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태중에서부터 남자아이면 좋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라나길 기도해 왔습니다.
유아교육을 배운 엄마와 지내는 동안 한글에 다소 익숙해졌던지 5살이 될 무렵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헌책방에서 싸게 구해 집에 가져오면 순식간에 다 읽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백과사전도 처음서부터 끝까지 독파해 상식도 풍부했습니다. 밤에 잠을 자야 할 시간에 보던 책을 마저보고 자겠다고 하고 그냥 재우려는 엄마와 실랑이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자다 보니까 기은이가 안 보이는 것입니다. 작은 아파트라 어디 갈만한 곳도 없어 찾던 중에 화장실에서 불빛이 보였습니다. 문을 열자 변기에 걸터앉아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책을 더 보고 싶어 하면 너무 억지로 재우려 들지 말라고 아이 엄마에게 당부했습니다.
기은이는 인근에 있는 공진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2학년이 마칠 무렵 교내 수학 올림픽에서 혼자 만점을 맞아 상을 타왔습니다. 다른 엄마들이 우리 집에 견학을 왔다가 아이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학원은 다니냐, 어떤 식으로 공부를 가르치냐. 경제적으로 어려운 탓에 그냥 엄마랑 공부한다, 같이 문제집 풀어본 게 도움이 된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일찍부터 선교사로 나갈 것을 대비해 온 이 선교사는 후원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언어훈련 중에 소개받아 알게 된 자를 통해 카자흐스탄 선교사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아이 엄마는 그 사람 인상이 안 좋아 보인다며 걱정을 했습니다. 현지 답사할 여유도 없이 혼자 먼 길을 가겠다고 하자 그냥 같이 따라 나서겠다고 하여 1997년 1월 26일 기은이와 동생 찬미, 기성이 모두 낯선 카자흐스탄을 향했습니다.
작고 낡아 보이는 카자흐스탄 비행기는 한국에서 알마타까지 바로 가지 못하고 몽골 울란바타르 공항에 잠시 착륙해 기름을 주입하고 다시 목적지를 향했습니다. 알마타 공항에 도착하자 온통 눈에 싸여 있었습니다. 눈 때문에 이륙이 지연되어 며칠 동안 작은 호텔에 머물렀는데 안내하는 자가 이 나라는 검문이 심해 같이 갈 수 없다며 혼자 시내로 몇 차례 다녀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 안내하던 자가 “비행기가 곧 출발한다며, 목사님 화물칸으로 짐 실으러 갑시다.” 하기에, 아니 승객이 화물칸에 짐싣는 항공사도 있냐고 물었더니, 혹시 짐꾼이 있는지 알아보겠다며 어디를 다녀오더니 300불에 협상했다며 돈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갖은 방법으로 속이고 틈만 나면 돈을 뜯어내는 고도의 사기꾼이었습니다. 도착 후 고려인 몇이 환영을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좋지 않은 목적으로 우리 가족을 안내한 자로 인해 많은 곤욕을 당했습니다(글이 길어져 다음에 계속 쓰도록 하겠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뜻하지 않은 위기를 자주 맞이했는데 기은이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도와 극복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공부도 잘해 줄곧 우등생이었습니다.
러시아로 시베리아로 사역지를 옮겨 11년 동안 지내는 동안 중고교 대학(5년제)까지 마쳤습니다. 기은이는 러시아 대학에서도 우등으로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 물리학부 박사 과정에 입학해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만 24년 동안 기은이와 동행하신 주님께서 앞날 또한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기은이 장학금을 제공해 주신 <아름다운 동행> 대표이신 박 이사님과 장학 후원자 여러분 그리고 저희 선교를 위해 후원과 기도를 계속해 오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진설명> 우등상장(붉은색 표지로 구분)을 받은 기은이- 이르쿠츠크국립대 물리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