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법으로서 ‘이웃 사랑’
<송영찬 /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야고보 사도는 몇몇 특수한 사람들만을 차별하여 경의를 표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한다(약 2:8-9). 여기에서 말하는 이웃은 인류 전체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어느 누구든 자기가 선택한 몇몇 사람만을 상대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열한 이익
에 순종을 바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낯선 사람들과 심지어 원수들에게 그리고 어떤 의미
로든 우리에게 비열해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다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
하신다.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은 이 가르침과 정반대이다.
따라서 외모로 판단한다는 것은 결코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이
유에서 야고보는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
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약 2:8-9)고 경계하고 있다.
본문의 ‘법’(law)이란 원칙 또는 명령과 대등한 것으로 그것을 지킨다
는 것은 수작을 부리지 않고 정직한 마음의 순정을 바쳐 그것을 지키
는 것을 의미한다. 그 가운데 ‘이웃 사랑’이라는 최고의 법이란 탁 트
인 대로와 같은 것으로 이웃에게 꾸밈없는 사랑을 베풀고 자유로운 사
람의 신분으로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와 반대로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는 것은 대다수를 제쳐놓고 소수
만을 위하는 것으로 이런 사람은 율법의 가르침을 파기함으로써 창조
의 질서를 왜곡하는 것과 같다.
때문에 이런 사람을 가리켜 율법의 범죄자라고 야고보는 지적하고 있
다. 하나님은 우리들 마음대로 그의 율법에서 어떤 조항을 삭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시며 또한 단편적인 순종을 원치 않으신다.
우리가 한 항목만 특별히 중하게 여기고 나머지는 소홀히 여길 때, 또
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있어서 우리의 임무를 공평하
게 행사하지 못하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한 순종 역시 금이 가기 마련이
다. 하나님의 원칙은 언제나 하나이며 일관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
다.
따라서 하나님께 올바른 순종을 드리고자 한다면 공평하게 균형을 유지
하도록 해야 한다(사 30:21). 하나님은 우리가 싫어하는 율법에 대한 순
종을 결코 보류하신 바 없으시다. 공평과 공의는 우리 시대의 교회만이
가지는 자랑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