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오면서 상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동체 속에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기도 하고, 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웃을 대할 때에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또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많이 배우고 재능이 많은 사람일수록 예민하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쉽게 상처를 입습니다.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일수록 깊은 상처를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람들이 사실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각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상처를 입고, 또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받은 상처에 대한 반응은 각기 다릅니다. 그 자신이 받은 상처 때문에 아파하면서도 그 상처에 대한 앙갚음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상처를 끌어안고 홀로 극복해 가면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위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쓴 뿌리와 가시
우리 한국 사람을 한이 많은 민족이라고 합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우리 선조들이 살아오면서 받은 이웃면 주변국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많다는 것입니다. 상처가 쓴 뿌리가 되어 가시를 내게 되면 이웃에게 똑 같은 상처를 줍니다. 상처를 제때에 치료하지 못하면 그 상처가 냉기(chilly energy)가 되고, 독기(spite)가 됩니다. 이것이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이 때문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합니다.
돈에 한이 맺힌 사람은 부자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가진 자들을 미워하고,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complex)를 가진 사람은 까닭 없이 미인을 미워합니다. 그 한을 풀어버리지 못하고 그 한이 미움이 되고 저주가 되면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선조들은 이런 분노를 노래로 풀고 한을 날려버리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받은 상처를 철저히 되돌려 주는 것이 인간 내면의 숨겨진 본성입니다. 더구나 인간의 자존심은 받은 만큼만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복수를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흔히들 복수를 정당화하기 인용하는 것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성경구절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받은 만큼 당연히 복수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 이상의 복수를 하지 말라는 금령(prohibition)으로 복수를 금하는 사랑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복수(revenge)를 주제로 한 드라마나, 소설이 끊임없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직접 나서서 복수하지는 못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라도 통쾌하게 복수하는 장면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주조개
진주조개는 상처를 입은 몸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는 가운데 ‘나카르’(Nacre)라고 불리는 물질을 만들어 모래알을 감싸기 시작합니다. ‘나카’가 커질수록 진주는 커지고 그만큼 가치도 올라갑니다.
험한 세상을 살면서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낯선 땅에 와서 사기를 당하고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자신이 받은 상처와 손해를 다른 사람에게 똑 같이 되갚음을 하려고 하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아파하겠습니까?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그 사회는 불신과 암흑천지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교회는 상처를 입고 복수하기 위해 칼을 가는 싸늘한 집이 아니라, 그 상처를 치료하고 회복하는 병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치료하고 회복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강단에서 치료하는 생수(mineral)가 흘러넘치고, 주님의 보혈이 흘러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물이라도 고인 물이 되면 썩어 냄새가 나고, 죽은 물이 되어 생명이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회에서부터 바깥세상으로 생수가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를 위로하고 상처를 싸매주지는 못할망정 이웃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웃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복수의 칼을 가는 자가 아니라, 상처 입은 쓴 뿌리를 잘라내는 아픔을 감내해야 합니다. 성도란 자신의 허물을 씻고 상처를 치료받을 뿐만 아니라, 형제의 허물을 씻겨주고 저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란? 원수에게 입은 상처 때문에 복수의 칼을 가는 것이 아니라, 진주조개처럼 그 상처의 아픔을 안고 보석같이 아름다운 사랑으로 승화시켜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아픔과 한을 눈물로 삼키며 기도할 때에 우리는 조금씩 정말 괜찮은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수이고 가장 멋진 복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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