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시대 이스라엘에는 도피성 제도가 있었습니다. 비록 살인을 했더라도 고의성이 없으면 도피성으로 도망쳐 제단 뿔을 잡으면 살 수 있었습니다(민 21:13). 살인자에게는 피해자의 가족이나 혹은 경찰과 같은 추격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도피성은 요단강의 동편에 3개, 서편에 3개의 도합 6개의 도피성이 있었는데, 이는 해가 지기 전에 전국 어디에서든 하루 길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약 30마일)로 조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단 동편에도 도피성이 있었다는 것은 도피성이 이방인에게도 열려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도피성에 이르는 길에는 안내판이 잘 정비가 되어 있어야 했고, 그 길은 언제나 보수가 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도망자가 이리저리 헤매지 않고, 신속하게 도피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설화에 따르면 도피성의 사람들은 대제사장의 모친의 극진한 돌봄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그들이 도피성을 빠져 나가 자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사장이 죽어야하기 때문입니다(민 35:25). 그러므로 도피성 사람들이 제사장이 죽기만을 기도할까보아서 제사장의 모친은 아들의 안녕을 위해서(?) 그들을 극진하게 돌보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도망쳐 나온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가장 안전하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셨습니다.
도피성을 찾는 사람들
도피성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객지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어쩌면 도피성에 들어온 죄인들과 방불합니다. 피난살이가 불편하고 고달픈 것처럼, 이 땅이 내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누구나 여러 가지 실수를 하고 범죄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때에 피할 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고,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가 몰려 올 때에 사람들은 도피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집안이 편치 않으면 가출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외도를 하기도 합니다.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꼬일 때에는 술이나 마약(drugs) 혹은 노름(gamble)으로 피난처를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풀지 못하는 난제를 만났을 때에 도피성을 찾지 못해 극단적으로 자살을 마지막 도피처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 엉뚱한 도피성을 잘못 찾았다가 인생을 망치고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내성적이고 유독 자존심이 강한 우리 한국인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도피성과 교회
여기에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기회의 땅을 찾아 온 분들도 있지만, 이 땅을 피난처로 삼아서 온 분들도 있습니다. 도피성 유학을 온 사람도 있고, 자녀를 핑계 삼아 피신해온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지 이 땅이 우리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조국 땅에 살 때보다도 더욱 어려운 문제와 심각한 위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도피성이 필요합니다. 구약 시대와 달리 현대는 더욱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피난처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위기를 만났을 때에 피할 곳이 있어야 합니다.
시시 때때로 밀려오는 바쁜 일상을 멈추고 우리의 지친 영혼과 육체가 평안히 쉼을 얻고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과 시간에 쫓기지 않고, 돈 걱정 자식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말 못할 아픔과 고민을 털어버릴 도피성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의 도피성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도피성은 전 인류를 품을 만큼 넉넉합니다. 주님은 가장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피난처가 됩니다. 우리는 ‘양의 우리’가 되는 주님의 교회에서 주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습니다. 구약의 도피성에서는 활동에 제약이 있었지만, 새로운 도피성에서는 자유함과 풍족함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인 주께서 우리를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이 시대에 도피성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는 저들을 위해 세우신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쉽게 도피성을 찾을 수 있도록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주님께로 안내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정죄를 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도 주님의 교회에서는 위로받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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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l Day(미국의 현충일)에 내 걸린 성조기
십자가의 팻말에는 전사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의 전사자가 가장 많아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