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포도주와 새 포도주

by 강진구 posted Apr 0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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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포도주와 새 포도주

술 취한 사람들의 특징은 이기적이고 인색한 것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분들은 술 마시는 일에는 인심이 좋고 아낌없이 돈을 쓰지만, 집안 식구들에게나 구제하는 일에는 인색하고 관심이 없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지극히 자기중심이기 때문에 남을 배려하지 않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더구나 술은 중독성이 있어서 술에 찌들게 되면 자신마저 절제를 하지 못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사람이 술을 먹고, 술이 술을 먹고,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처럼 술에는 뱀(사단)의 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신32:32,33). 쓴 포도주는 뱀의 독이며 죄악의 근원입니다. 뱀이 내민 독주(strong liquor)를 마시면 철저히 자기중심이 됩니다.

주님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일에 지독하게 인색했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와 과부들의 것을 수탈함으로 ‘만민의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이 강도의 굴혈(cave)이 되었다’고 주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쓴 포도주를 마시고, 뱀의 독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돕는 배필로서의 교회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을 지으시고, 그 혼자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 보임으로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아담의 갈빗대를 위하여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아담의 돕는 배필(partner)’로 나온 것처럼, 두 번째 아담인 주님의 옆구리에서 ‘주님의 돕는 배필’인 새로운 교회가 나왔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돕는 배필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신부인 교회의 할 일은 자명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들을 주님의 돕는 배필로서 감당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가난한 자들과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린 자를 먹이시며, 각생 병든 자를 고치시고, 고아와 과부들을 돌아보신 것처럼, 교회가 그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도들 역시 주님에게 무엇을 달라고 하는 배필이 아니라, 주님을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뱀의 최면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개 교회 중심과 이기적인 욕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형제와 이웃의 신음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부자와 힘 있는 자들이 대접받는 교회가 아니라, 소외된 자들이 대접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한 교회

주님의 공생애에서 처음 행하신 기적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입니다(요 2:1-12). 주께서 이 기적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뜻은 분명합니다. 뱀의 저주와 쓴 포도주의 독에서 고통당하는 저들에게 새 포도주의 기쁨을 주시고, 뱀의 최면에서 깨어나게 하고자 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새 포도주를 마시고, 뱀의 독에서 풀려났습니다. 새 포도주의 맛과 기쁨은 이전의 쓴 포도주에 비할 수 없습니다. 새 포도주는 바로 오순절 성령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저들은 성령의 새 술에 취했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쓴 포도주의 중독에서 풀려난 초대교회 성도들은 더 이상 인색하지도 않았고, 이기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차별이 없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옆구리에서 새로 탄생한 오순절 교회는 유무상통하는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새 포도주에 취한 이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자발적으로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 예배를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집에서는 사랑의 떡을 떼고 순전한 마음을 음식을 나누었습니다(행 2:46). 이 때문에 초대교회에는 핍절한 사람들이 없었고(행 4:34), 믿는 자의 수효가 늘어갔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사도들이 있었고,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작지만 강력한 교회였습니다. 거대한 철의 제국 로마를 무너뜨릴 만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땅에 교회도 많고 교인들도 많지만, 오히려 세상의 지탄을 받는 것은 교회가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부활절 아침마다 연합예배를 드리지만, 교회일치와 연합은 아직까지 요원하기만 합니다.

이 때문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수없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외침을 들었습니다. 아예 교회 이름을 ‘초대교회’로 사용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교회들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단 하나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는 자가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이 때문에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고 외면하는 신자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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