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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섭아, 난 학교 졸업하는 게 싫어.”  한 학생이 내게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왜, 넌 중학교도 가잖아.” 하자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난 이대로가 좋은데- 너 같은 애하고도 친구로 지낼 수도 있고- 난 여길 졸업하고 나가면 아마 나쁜 애가 될 거야. 사실 엄마(계모)와도 사이가 안 좋아.앞으로 누가 날 친구로 받아줄까.” "걱정마 언제라도 날 찾아오렴."
 (이 소년은 자기 말대로 후일 안 좋은 쪽으로 빠지고 말았다. 이따금 우리 집에 들려 지금 경찰에 쫒기고 있는데 밥 좀 달라고 해서 황급히 먹고 달아나듯 가버리는 것이었다).

  평소 늘 전체 1등을 한 탓인지 졸업식 때 우등상 수상과 아울러 졸업생 대표로 뽑혔다. 처음으로 어머니가 학교에 왔다. 학부모들이 모두 어머니를 둘러싸고 환영했다.
  “반장 엄마, 거 상이 뭔지 좀 풀어 보구료. 공부 잘하는 아들 두어 좋겠수-”
  포장을 뜯자 시계가 따르릉-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탁상시계였다.
  담임 선생님은 내가 교육감 상을 타지 못한 데 대해 어머니에게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들 간에 상을 추첨으로 정하기로 했더니 교육감 상이 그만 다른 반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또 그 상품도 영한 사전이라 쟤한테 당장 필요할 것 같지도 않고요.”  하지만 우리가 어려워보여 선생님들 대접을 못할까봐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모처럼 가진 학교 생활이 다시 끝이 나고 말았다. 도저히 우리 형편에 교복과 가방을 사고 학비까지 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옆 반 반장도 형편이 어려웠는데 고등공민학교로 진학 했다. 얼마 후 그는 내가 학업을 중단한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지 어느 날 내게 당부했다.
 “우리 학교로 와라. 학교 선생님에게 잘 얘기해서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줄게. 돈도 안 내도 돼.”
 “글세 난 옷 하나 살만한 형편도 안 되는 걸.” “학교에 말해서 그냥 다니도록 부탁할게. 실력을 보아 한 학년 올려줄 수도 있을 거야.”  “괜찮아, 대신 열심히 살아갈게. 고마워.”  
(이 말을 한 옆반 반장에 대해 훗날 들으니 4급 공무원까지 진급해 지방 어느 도시 부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 어려운 역경을 딛고 잘 성장해 주어 반가웠다. 언제 한번 만나러 갈 생각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단 취직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바깥 세계는 내가 배운 신앙과 전혀 다른 이방 지대였다. 아직 어린 청소년인데도 좋지 않은 생활 태도를 보여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여기에 글로 쓰고 싶지 않을 정도로 벗어난 삶의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다.
 “공부를 해야 한다. 이런 환경과 무관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공부를 해야 돼.” 그래야만 내가 원하는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쟤는 우리 반 반장이었는데 지금 일하러 가나봐.” 어느 날 출근 길에 버스 뒷자리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서로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두고 봐라. 공부가 결코 학교 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일과를 끝내고 밤 늦게 집에 와서 혼자 영어, 수학 등 공부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동안 정부 종합 청사에 납품하는 회사에 근무하기도 하고 했다. 더 어릴 때도 억척스럽게 살아온 탓인지 사회 생활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사장 가운데 내가 마음에 들었던 지 월급도 남보다 많이 주고 붙잡아 두려 했다. 하지만 환경이 안 좋은 곳은 피해 다녔다.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아이들이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하루는 집에 오자 조그만 책상 위에 붙여 놓았던 우등상 상장이 사라진 것이다. 물어보니 둘째 형이 태웠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왜 상장을 태워야 했을까.’
  형수가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내가 공부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기 안 좋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부모를 비롯해 시집 식구를 대하는 태도가 유별나 가뜩이나 여자 형제 없이 자라온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상에는  좋은 여자가 많이 있겠지만 상당한 기간 동안 자매들을 만나는 일조차 부담을 안게 되어 오랫동안 교류가 없이 지냈다.

  이 무렵 일 자리를 알아보려고 해도 대부분 주일에 일을 쉬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수개월 동안 교회를 못나가기도 했다. 마음에 짐을 느끼고 있을 무렵 읽게 된 휴거가 내게 충격을 주었다.  비록 소설로 쓴 내용이지만 장차 주님의 나라가 올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휴거는 정통 신앙과 많이 벗어난 책이다. 대신 보는 이에 따라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다시금 신앙에 정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교회를 다시 찾아가려하자 그동안 잘 알고 있던 분들이 주축이 되어 새로이 사당제일교회(후에 예광교회로 개명)가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교회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되었다.

  “얘야, 옛말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고 했다. 뱁새가 황새 걸음 쫓으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단다. 그만 공부에 미련을 버리고 좀 쉬려무나.”  밤 늦도록 혼자 공부하는 것이 어머니가 보시기에 안쓰러웠던지 자주 만류하시는 것이었다.
  “괜찮아요. 엄마,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께요.”  하고 공부를 계속했다. 무엇보다 독학을 통해서라도 공부해 나가는 것이 장래를 위해 꼭 필요할 것 같았다. 
  마을 입구에 길거리에서 헌책을 파는 집사님이 있었다. 100원을 주면 필요한 책을 한 권 살 수 있었다. 여기서 대부분 필요한 책을 구했는데 주로 영어책을 많이 샀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혼자 책을 스승삼아 공부하는 동안 밤을 지세우기 일쑤였다.
 이틀에 한번 꼴로 자기도 했다. 어디가나 암기할 메모지나 책을 갖고 다니고 불을 끌 기운만 있어도 그 시간만큼 책을 더 보려 들다 보니 밤새 불이 켜 있을 때가 많았다. 가난한 살림에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며 미리 불을 끄고 자려드는 가족들과 옥신각신 하기도 했다.
  셋째 형은 “애 공부하게 그냥 좀 내버려 두라” 며 오히려 부모님을 나무랐다. 나무라는 소리가 심할 때는 아예 책을 챙겨 들고 거리로 나가 가로등 밑으로 가서 읽기도 했다.

  너무 잠을 제대로 안자고 공부에 매달려서인지 이따금 목으로 피가 올라오기도 했다.
  어느 겨울날 새벽, 목에 피를 머금은 채 새벽기도를 가는데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잠시 눈길에 미끄러지는 순간 하얀  눈 위로 핏방울이 죽 그려지는 것이었다.  
  이 날따라 몸의 상태가 안 좋아 교회에 도착하고도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주님, 저는 교회가 좋습니다. 세상에 나가보니 제가 할 일이 없는 것을 느꼈습니다.
  갖은 범죄와 이기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는 저 바깥 세계보다 차라리 교회 종지기나 문지기라도 좋으니 교회 안에서 일을 하게 해 주세요.  또 제가 무리하게 공부를 하다가 혹 죽게 되더라도 자신이 원해서 한 일인 만큼 누구도 원망을 않겠습니다.” 라고 기도했다.

훗날 신학 수업을 하게 되면서 성경을 자세히 보는 가운데 이때 기도한 내용과 비슷한 성경 구절을 발견했다. 주님은 나의 기도를 모두 듣고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집에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하지만 주님께서는 나를 성전 문지기가 아닌 목사로 나중에는 선교사로 사역하도록 이끄셨다.

검정고시 합격자 발표 날이 되어 서소문에 있는 서울시교육위원회를 찾아가자 벽에 내 번호가 보였다. 감격스러웠다. 드디어 하나의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누가 어깨를 탁 쳐주며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자 힘내. 나머지 공부도 계속해야지.” 하고 축하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합격증을 찾아와 어머니께 보이며 말했다.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이게 중학교 졸업장과 똑 같은 거예요. 학교 다니는 애들보다 내가 먼저 졸업한 셈인걸요. 두고 보세요. 고등학교 졸업장도 따낼테니 -” 
“장하구나, 난 교복 입은 아이들만 보면 네 생각이 나서 눈길을 피해 왔단다.”

  좋지 않은 환경을 피하기 위해 다니던 직정을 그만두고 일일공부 학습지를 돌리러 다녔다.  틈틈이 초등학생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눈에 띄었던지 고마워했다. 얼마후 학부모들 몇몇이 서로 상의한 듯 자기 아이를 포함해 학생들 몇 명 모아놓고 과외선생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17살에 주위로부터 '선생님' 소리를 듣게 되었다. 가르친 아이들은 금방 성적이 올라가 모두 좋아했다. 학생들과 친숙해진 다음에는 교회를 가도록 권했다. 불교 신자인 부모도 내가 교회로 보내려 들자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어린 영혼들에게 신앙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나는 내 주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기 바랐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시 정리해 가르친 탓인지 아이들이 잘 따랐다. 어떤 학생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제 막 교회를 나가게 된 어머니가 기독교 장례식으로 치르겠다고 했다. 

하루는 잘 아는 집사님이 나를 찾아와 상담을 하셨다. 자기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인데 전교 2등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해도 1등 하는 아이를 따라 잡을 수 없어 아들 마음이 좀 심란해 보인다는 것이다. 남 보기 쑥스럽지만 아이를 맡겼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맡아 가르치자마자 바로 전교 1등이 되더니 계속 2등이 된 아이와 많은 점수 차이를 내는 것이었다. 대신 스스로 수업할 수 있도록 자습을 많이 시키는 등 주의를 기했다. 이 분은 얼마 후 권사님이 되셨는데 마치 누님처럼 여러모로 나를 많이 도와주셨다.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으면 체계적으로 수업이 가능했을텐데(독학을 하게 될 경우 검정고시학원이 훨씬 유리하다) 혼자 고등학교 과정 여러 과목을 공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동생같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 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내게 배우던 학생 대부분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부모님까지 같이 교회 나가는 아이도 있었다.
. 
<사진설명> 수년 전 멀리 알혼섬 입구 엘란츠 마을로 선교여행을 갔다가 러시아인 할머니 성도와 석별을 아쉬워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먼 나라 한국에서 이곳까지 목사 가족이 방문해 주어 너무도 반가우신 듯- 금년 여름에도 이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함께 간 일행과 함께 할머니 성도 댁에서 세 명의 원주민 성도를 모아놓고 설교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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