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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2, 카자흐스탄 서북부 변방 도시에  도착한 직후 7살이 채 안 된 딸이 식탁에 앉을 때면 숟가락을 들기 앞서 한숨 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친구도 없고 한국과 전혀 다른 환경인데다 양배추로 대강 만든 김치는 딱딱하고 전혀 다른 맛을 풍겼다. 

  배추는 고사하고 바다로부터 먼 나라여서 생선조차 구경하기 어려웠다.  우랄스크 주 주청이 있는 도시였지만 햄버거 가게 하나, 버젓한 문방구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학용품을 구하기 위해서는 버스로 꽤 걸리는 중앙시장에 가야 하는데 노천 시장이라 낮에만 구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숙제를 내어도 당장 학용품을  구해 못할 때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옷을 입혔지만 추위를 막기가 쉽지 않았다.  목도리, 모자 등으로 꽁꽁 싸서 내보내지만 아이들이 추위에  적응할 지 의문이었다. 더욱이 잔뜩 찌푸린 하늘은 보름이 가도 해가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우랄스크 17학교로 입학한 딸이 왠지 점점 약해만 갔다. 차도 없이 먼 학교를 찾아가느라 눈길을 걸어가는 동안 몹시 힘들어 했다. 본래부터 추운 나라인 탓인지 그 추운 날씨에도 학교를 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유난히도 춥고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타지에서 문화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도 없는데다 식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환경이 어린 자녀에게 가혹한 형벌과도 같았으리라.

어느  딸이 기운이 없어 보여 업고 눈길을 따라 학교를 가고 있는데아빠 나 숨쉬기 힘들어하는 것이었다.  학교에 데려고 가자 담임선생님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지 병원에 가 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하셨다.

  학교를 휴학시킨 후 우랄스크 주립병원으로 딸을 데리고 가자 나중에는 소아과 선생님께서 집에 그냥 두라고 하면서 대신 매일 집으로 왕진을 와 주어 고맙게 생각되었다. 이따금 조그만 쵸콜렛을 선물하면 안받겠다고 사양하다가 받아가는 것이었다. 참으로 순수한 의사 선생님이었다

 

  며칠 동안 집을 드나들던 주립 병원  담당 소아과 선생님은 딸이 이상해 보였던지 옷을 벗겨보라고 했다. 그러자 몸에 부스럼 같은 것이 돋아나 있었다.  담당 선생님은 사태가 심각해 보인다며 큰 아동병원에 입원시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급히 딸을 데리고 아동병원을 찾아갔다.   큰 병원이어서 인지 보호자까지 소독을 시키고 아이와 함께 내부에만 있도록 했다. 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여서 다소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비교적 수준이 나은 러시아 의사들이 거의 본국으로 철수한 상태인데다 원주민인 카자흐스탄 의사들은 아직 실력이나 경험이 부족하고 약이나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 다소 불안해 보였다.

 

매일 딸을 면회 갔지만 제한된 면회실에서만 볼 수 있었다.  투약 후 마사지 선생님이 따로 있어서 정성스럽게 마사지까지 해 주어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딸은 주로 오전에 1시간 이상 기침을 하고 구토까지 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던 현지인들도  차례씩 문병을 다녀갔다. 모두 좋은 만남이  수도 있었을텐데 방해자의 믿다보니 혼란에 빠지게 되고 만 것이다.

딸는 아동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점점 약해져 갔다. 구토와 호흡장애가 계속되면서 사태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도 병원이 안전할  같아서 의사들에게 맡겨두고 있었다. 주위로부터 방해를 받고 있는데 아이마저 위중해 마음이 무거웠다

  입원 5일째 되던 날인 금요일 밤, 집에서 딸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입을 통해 생각지 않은 말이 흘러 나왔다( 이처럼 강하게 다그치는 지시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사단이 딸을 노리고 있으니 빨리 데리고 이 도시를 떠나라

   혹 내가 못 알아 들었을까봐 몇 번 반복되는 것이었다.

  , 알았습니다.  주님의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하자 그쳤다.

  순간 병원 쪽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날  같은 불안이 앞섰다

  이튿날 병원에 갔더니 친절히 대해 주시던 담당 의사 선생님이 휴일이라고 안 나오셨다.  

  

  할 수 없이 월요일에야 병원을 찾아가서 상태를 물어보았다.  외국 아이라 해서 특별히 그 지역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선생님께서 주치의로 배정됐는데 이분이 딸에 대해 설명했다

 낫다가도 도로 나빠지고 하는 상태가 반복되어 치료가 어렵다.  아이들 데리고 나가게 되면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고  물어왔다

일단 딸을 알마타로 데리고 가보겠다. 혹 거기서도 잘 안되면 한국까지 후송시키겠다고 말하자, 쾌히 퇴원을 동의하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챙겨주는 약을 받아들고 그 동안 입원한 만큼 병원비를 내려고 하자 굳이 안 받겠다고 사양하기에 선물로 대신했다.

  하지만 선교지 병원은 한국인의 상식으로 이해 못할 때가 많은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알마타로 가는 비행기가 자주 있지 않아 금요일이 되어서야 떠날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선교비 반을 집에 두고 반만 가지고 알마타로 향하기로  것이다. 온 몸에 기운이 빠진 듯 나약해 보이는 딸과 함께 알마타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국내선으로 3시간이나 걸려 알마타에 도착하자 마침 공항에서 한국 선교사 2명을 만났다. 이들에게 신아무개(우리는 이 자의 안내로 선교지로 온 자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고 있었다) 아느냐고 했더니 친절히 알려 주었다. 

 

공항에서 만난 젊은 선교사들은 우리가 우랄스크에서 왔다고 하자, 선교의 A,B,C 모르는  같다. 선교란 예루살렘부터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젊은 선교사들의 말은 마치 자신들의 변명처럼 들렸다예수님께서도  유대와 사마라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친히 사마리아 전도에 나서지 않으셨나.  넓은 땅을 마냥 방치해 두는  선교를 아는 자인가

  한국의 12배가 넘는 나라에서 수도만 고집한다면 나머지 땅에 사는 사람들은 복음을 접하지 말란 말인가. 어려운 지역에서 수고한다는  대신 자격 운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알마타에는 카자흐스탄 다른 지역 선교사를 모두 합친  보다 많은 50여명의 한국 선교사가 있다고 들었다. 아마  나라 예루살렘이라 생각되어 이곳만 고집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일단 신 아무개를 찾아가자 교회에 딸린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딸이 많이 아프다고 했음에도 선교사들 간에는 현지 병원을 불신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래서 중환자가 발생해도 한국에서 파견 나온 외과의 M박사에게 보이던가 아니면 무조건 한국으로 후송하려들 뿐 현지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대도시인 알마타에서도 이런데 우리는 조그만 도시에서  어린 자녀를 입원 시켰으니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았는지도 모른다. 무언가 불안이 엄습했다

 

  이때 마침 숙소를 방문한 K목사가 자신이 한국에 머물 때 현지인 소아과 의사를 한 사람 알게 되었다며 소개하겠다는 것이었다. K목사는 약수동 S교회가  현지인 의사가 한국에서 연수 받을 동안 돌보아 주었다는 말을 했다사실 자신도 그동안 병원 위치를 모르고 있었는데 어제 우연히 이 의사를 만나게 되어 비로소 알게 됐다는 것이다). 고려인 소아과 의사여서J 한국어도 조금할  아는데 경희대에서 설립한 경희크리닉이란 자선병원 의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병원비 문제를 걱정  해도   같았다

  주님께서 딸을 지키기 위해 우리 보다 앞서 준비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병원비조차 없는 우리에게 희소식이 아닐  없었다

 

  이미 시간이 늦어 하루를 딸과 함께 교회에서 보내고 이튿날 찾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밤이 되자 딸이 점점 호흡이 가빠지더니 그날 밤을 넘기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사라 선교사에게 알릴까 하다가 참았다. 거의 3,000km 떨어진 곳에 남은 두 자녀와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을텐데-,

  더욱이 알마타까지 남은 아이들을 데리고  경비도 남아 있지 않아 괜스레 마음의 짐만 지게 될까봐 부담스러웠다.  혼자 중환자를 돌보자니 답답했다낯선 땅에서 거의 중태에 빠진 딸을 함께 지켜봐 줄 사람 하나 없이 외로운 밤을 보내야 했다.

  나는 딸 상태가 급박한 것을 느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라기보다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주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곳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이 어린 딸이 타지에서 외롭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혹 아이가 죽더라도 저희는 이 땅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 

 주님 그렇지만 이 아이를 살려 주세요. 주님이라면 우리 딸을 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한참 기도를 하는데 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리게 시작했다. “내 딸은 내가 지킨다.  너는 딸을 네 소유하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네게 딸의 양육을 맡겼을 뿐 딸은 분명히 내 자녀이다그러므로  자녀는 내가 지킨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 염려하지 말아라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주님,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성경 구절 가운데 엘리사가 죽은 아이를 품에 품고 살리는 장면이 떠올랐다그래서 엘리사와 같이 딸을 정면으로 안은 채 밤을 지세우기로 했다. 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춥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몸도 점차 식어가는  같았다.   위기 속에 누구  사람 동석하는 사람도 없이 외로운 땅에 외로운 밤을 지내는 동안에도  오직 주님만 의지했다. 200만이 넘는 대도시 숱한 한국 사람들이 와있는 곳임에도-   그보다 정작 우리가 머문 교회에서조차 숙소를 제공한 정도만으로 최대한 도운 것으로 생각한 

이튿날 아침 K선교사가 자기 차를 가지고 왔다.  함께 경희크리닉을 찾아가자 세 분의 현지 인 의사 선생님들이 계셨다.  고려인인 함미영 선생님은 소아과 의사로서 남편은 한국인 사업가였다.  이런 환경에다가 한국에서 1 간 연수를 받아서인지 한국어를 곧잘 했다. 

  우랄스크 병원에서 가지고 온 기록을 보이자,  선생님은 이럴 수가....” 하며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급히 옆방으로 가서 원로 내과 의사이신 루드밀라 선생님과 함께 한동안 숙의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우랄스크 병원에서 아이 상태에 대해 너무 서두른 것 같다딸에게 지나치게 많은 홀몬제를 투약해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중퇴로     선생님은 우랄스크 병원에서 딸에게 프레드니졸론’ 5mg 짜리를 하루에 8개씩 투약해 중요한 내장이 대부분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며 걱정했다. 이미 투약 기간이 8일이 넘었기 때문에 감량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가 시키는 대로 그동안 열심히 먹인 약이 이토록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말인가.  아무리 낙후된 나라라지만 그래도 의술을 전공한 의사가 아닌가 어이가 없었다

  루드밀라 선생님이 한 시간 동안 연구하시더니 약 처방과 홀몬 감량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지고 K선교사의 차로 직접 약을 구하러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K선교사 도움이 컸다알마타 약국은 규모가 크지 않아  곳에서 필요한 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즉시 우랄스크를 떠나라고 하신 말씀이 자꾸 되살아났다. 바로 그날부터 투약이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의학 상식이 없이 다른 나라로 선교를 나왔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르두밀라 선생님은 위장을 보호하기 위해 홀몬제 4개 분량은 주사로 대체하고 심장약을 비롯하여 위, 쓸개 등 간장을 보호하는 약과 벤토린, 심지어 코를 열어주는 흡입기까지 준비해 오셨다.  또한 피하 주사와 항생제 등 주사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입원실이 없는 탓에 저녁부터 이튿날 아침까지는 숙소에서 내가 대신 주사와 투약을 하라고 주문하셨다.

   내가 주사를 놓은 경험이 없는 것을 알고 낮에 딸과 함께 병원에 있을 동안에는 현지인 의사 선생님들이 직접 주사 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특히 감량이 시작되면 순간적으로 위험해 질 수 있는 만큼 홀몬제와 벤토린을 항상 가지고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중환자를  사이 내가 돌보게  것이다. 시간별로 주사를 놓고 약을 먹이고 환자 상태를 감시해야 했다. 그래서 딸가 잠잘 때도 자주 관찰했다

 경희크리닉에서는 위험시 즉시 함 선생님 집으로 전화하고 그전에 호흡장애가 심해지면 일단 홀몬제 양을 다시 늘리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야말로 비상사태였다

  이제 생명을  홀몬제와의 전쟁이 시작되려나 보다.’

딸에게 저녁을 먹인 다음 의사들이 시킨 대로 약을 줄이고 주사로 대체하자 얼마 후 딸의 호흡이 가빠오면서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가지고 있던 홀몬제 한 개를 더 먹였더니 조금 후 다소 안정을 찾는 것이었다.

다음날 주일이 되자 교인 중에 몇 분이 딸을 지켜보았다. 특히 그 교회 집사이기도 한 M박사가 청진기를 딸에게 대고 들어보더니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다. 전혀 숨을 쉬는 것 같지 않다.” 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나에게 청진기를 들어보라며 귀에  주었다.       호흡할 때마다 끼이끽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마 횡경막 쪽이 잘 작동을 않는 모양이었다.  교회  여자 성도님이 딸를 돌보는데 쓰라며 50불을 주고 갔다. 어려울 때여서  힘이 되었다. 

 

   선교사의 자녀가 이토록 사경에 처해 있는 데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신 아무개는 핀잔만 늘어놓으니 아무래도 새로운 곳으로 옮겨야   같았다

딸와 함께 병원에 갔더니 마침 함 선생님 남편 손 사장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숙소에서 한국으로 가라고 독촉하여 더 있을 수 없게 됐으니 잠시 딸와 머물 장소를 알아봐 달라고 하자, 회사 총무로 있는 현지인을 불러서 우리 가족을 도와주라고 당부했다. 

저녁 무렵 러시아인 집 방을 하나 구해 일 주일 간 머물기로 하고 거처를 마련했다.  러시아 사람 집이라 식사를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집에  언니 또래가  명이 있어 딸와 자주 놀아주었다보름 정도 딸 응급 처치를 한 후 한국으로 후송해 치료와 기도를 계속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어려운 선교지에서 의학 상식도 없이 지내던 중에 하나님께서 친히 위기를 벗어나도록 인도해 주신 사실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딸은 시베리아에서 오랫동안 아빠 사역지를 따라 다니며 동시통역을 해 주어 작은 선교사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딸은 주님의 돌보심에 힘입어 건강하게 성장해 이르쿠츠크 국립대(5년제)를 졸업했다. 딸의 회복을 위해 기도와 후원해 주신 분들 그리고 2개월 간 무료 진료를 해 주신 한통석, 유장신 부부 의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딸은 러시아어에 능통하고 러시아 유리스트(일종의 변호사 역할)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두 딸의 엄마가 되어 육아휴직 중입니다.

 

<사진설명> 미하일 목사님, , 사라 선교사와 함께 멀리 알혼섬을 갔다가 돌아오는 배가 끊어졌습니다. 민박집에서 하루 잘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딸이 법대생이어서 결석을 하면 안 된다고 하여 부득이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배를 전세 내어 육지로 나왔습니다. 알혼섬에 약 3000명 거주하는데 신자가 한 사람도 없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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