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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5 14:15

믿음과 순종- 복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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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창세기 22장 1절-19절을 본문으로 작성한 설교 원고(전문)를 천사홈에 소개합니다.

1. 아브라함은 복된 나날을 보냈습니다.

22장 1절은 ‘그 일 후에’(‘와예히’, 그리고 ~이 있었다)로 시작됩니다.
바로 앞날의 일들 복되고 은혜로운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1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사라 가정에서 있었던 경사스러운 내용을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사라를 돌보셔서 사라가 기적적으로 임신하고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였습니다. 사라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하고 기뻐했습니다(창 21:1-6).
아브라함은 이제 어려운 순간들은 다 지나갔고 기쁜 일만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을 수가 있습니다. 건강하게 자라는 이삭이 더욱 든든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일찍이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았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과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약속의 아들 이삭이 자라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을까요. 사라에게도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정말 복되고 기쁜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평안한 삶, 누구하나 부러울 것 없는 환경 바로 그런 날들 후에-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이번에 부르신 목적은 복을 주시고 비전을 심어주시던 전 날과 달랐습니다. 큰 복을 받은 사람은 큰 시험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험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시험은 ‘시험’(test)와 ‘유혹’(temptation)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사람이 사람을 시험하는 경우(단 1:12,14),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해 하나님을 시험하기도 했습니다(출 15:23-26). 하나님께서 개인 또는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셨습니다(출 20:20). 때때로 하나님께서 신앙의 연단을 위해 시험하십니다(신 8:2, 대하 32:31). 유혹과 시험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험(test)은 하시지만 유혹을 받거나 유혹하시지 는 않습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유혹을 가리킵니다.
사단은 예수님이 40일 금식하시는 것을 보고 ‘시험’temptation)하기 위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 가운데 ‘우리를 ’시험‘temptation)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시험’(temptation)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 2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test)하시려고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많은 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100세 얻는 약속의 아들 이삭이 자라는 모습이 너무도 귀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니 아브라함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히브리어 ‘히네니’)는 하나님의 말씀에 언제라도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본문에 세 개의 동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1) 이삭을 취하라, 2) 모리아산으로 가라, 3)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나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 즉 우리 또한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아끼는 아들인지 모두 알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으로 번역된 ‘아하브타’는 아브라함의 지극한 사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삭은 하나뿐인 독자로서 ‘약속의 씨’였습니다.
물론 사라도 무척 사랑하고 있는 아들입니다. 이런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아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내리신 이 엄청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사라와 상의하거나 그 내용을 알리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때로는 조용히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군대식으로 강압적인 명령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따를 것을 당부하시듯이 명하신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사흘 길- 모리아 땅은 예루살렘 인근 산악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곳까지 사흘을 걸어가야 하는 아주 먼 곳입니다. ‘마르에 예호와’- ‘여호와께서 보이신 곳’은 훗날 솔로몬 성전이 건축될 곳으로 추정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번제란 칼로 제물을 잡고 각을 뜨고 제물 전체를 태워서 드리는 희생제사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라면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손에 죽게 되고 각을 떠서 아버지가 가지고 간 나무 위에서 태워져야 합니다. 번제를 드리는 것은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태워 올려보내야 합니다.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1:13).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이 없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조건 순종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많았으면 합니다. 먼저 나 자신부터 이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22장 3절에,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서둘렀습니다. 다윗은 “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 119:60고 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사용할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준 곳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고민을 했다는 내용이 성경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지 않은 일을 상상해서 자의적으로 유추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의 큰 믿음을 지켜보면서 함께 길을 떠나고 아브라함이 취한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해보므로 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땅 예루살렘 인근까지 약 80km 떨어진 곳입니다. 길을 떠난 지 제 삼일에 목적지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5)고 말했습니다.
바른성경에서는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 머물러라 나와 아이는 저기로 가서 우리가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이란 말 대신 ‘아이’(나아르, 소년, 남자 아이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대상이어서 객관적으로 묘사했을 수도 있습니다.
종들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하나님과 둘 만의 관계를 위해 방해 요소를 제거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때때로 혼자 묵묵히 수행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배를 뜻하는 ‘하바’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지금 이삭을 죽이고 번제단에 태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엄숙하게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가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의 큰 믿은 엿볼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고 난 후 혼자 돌아올 수도 있을텐데 왜 굳이 이런 표현을 했을까요. 자신의 종들을 속이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믿음으로 미리 추측했을까요.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은 큰 믿음의 소유자로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거짓말처럼 들리는 말을 했지만 이 말은 나중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7-19절에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에 대해 잘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6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번제 나무를 이삭에게 지운 것으로 보아 이삭은 이미 어느 정도 성숙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에 불을 켜는 것이 쉽지 않았던 만큼 불씨도 챙겨 갔습니다. 또 거룩한 불씨가 지니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지금 자신을 태울지도 모르는 나무를 지고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이삭은 지켜보면서 어쩌면 살아있는 모습을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길을 가던 이삭이 갑자기 질문을 합니다. 7절에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삭이 하나님의 법도를 잘 알고 있는 믿음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8절에,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앞에 번제할 양을 보여 주신다> 글자 그대로 따져본다면 거짓말한 셈입니다. 지금 번제물은 분명히 이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사전에 사인을 맞춘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하실 일을 이삭에게 예언한 셈이 됩니다.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가는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시면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은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제물이라 해서 하나님이 다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제물을 가져가야 합니다. 이사야 1장 11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본문에 나오는 히브리어 ‘로’는 “스스로”, “자기를 위해”라는 재귀적 의미를 갖습니다. 아브라함의 말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엿보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 앞에 어떤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믿음으로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4.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여호와 이레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2:9).
조금 전에 이삭과 대화를 주고받던 장면과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정성스럽게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결박해 제단 위에 놓았습니다. 이때쯤 이삭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알렸으리라 생각됩니다. 나뭇짐을 지고 산을 오를 정도로 장성한 이삭과 100세를 훨씬 넘긴 아브라함이지만 이삭은 아버지 손에 묶이어 번제 단 위에 올려졌습니다. 이때 이삭은 18세 내지 20세 정도 청년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삭 또한 믿음의 소유자로 아버지 아브라함의 뜻에 순순하게 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10절에,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라고 기록하고 ㅇ;있습니다. 이때까지 이삭을 대신할 양이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온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려 들었습니다.
너무 순종하니까 이번엔 하나님이 더 놀라신 것 같습니다.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이삭을 정말로 죽일 상황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급히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이름을 두 번 부르신 것은 급박한 상황에 맞춰 즉시 제지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언제나 즉각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던 일을 즉시 멈추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명하신 일인만큼 그대로 해야 합니다. 그냥 제가 감당하게 내버려 두세요’하고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여호와의 사자”는 창세기 16:7-12과 21:17,18절에 나온 분으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어느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신앙의 교과서처럼 느껴집니다.
12절에,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이제야 아노라”는 “야다티”는 “경험으로 알다”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야다티”는 아브라함의 실제 행동을 칭찬하시는 대화법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파멸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가 잘 되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의한 태도와 실행이었습니다. 이삭의 번제를 원하신 것이 아니라 <믿음과 순종>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지금 아셨을까요.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화법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믿음은 합격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하나님과 여러 언약을 한 대상이었습니다. 아주 강도 높은 시험이지만 아브라함이 시험에 합격할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순종을 통해 입증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 믿음의 교과서가 된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번제물을 준비하셨습니다.
13절을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정말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뿐인 아들인 이삭을 죽이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대신할 양이 보이는 것입니다. 8절에서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한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사실 양으로 번제를 드리는 동안 이삭이 죽은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칠 마음을 가지고 행동에 옮기는 중이었습니다. 이삭을 대신한 양은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연상케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우리 모두 자신의 죄로 인해 죽을 존재인데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살아났습니다. 이삭을 대신해 양이 죽은 것입니다. 우리 대신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아들 이삭 또한 죽지 않고 돌려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수양으로 제사도 잘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하신 장면이 얼마나 큰 감동이 되었을까요.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세기 22:14). 이 말은 “여호와께서 산에서 준비하시다”라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5. 아브라함은 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15절에서 19절까지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창 22:1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참된 믿음을 보시고 흡족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로 약속되어 있었습니다(창 12:2-3).
모든 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복은 역사를 거쳐 세상 전체에게 미치는 복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복을 우리 또한 받고 있는 것입니다. 큰 믿음을 가지면 더 큰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같은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약 2:21-24)
종들은 그 사이 일어난 일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그리고 이삭 사이에 더욱 돈독한 맺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 즉 믿음에 따라 실행하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믿음의 본질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은 참 믿음을 갖는 자들에게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과 같은 은혜를 베푸시기 위한 것입니다. 아울러 이삭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 이삭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천하만민을 복 주시려는 계획은 마침내 그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전히 성취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메시야의 약속을 이루십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우리가 이삭을 드리는 믿음과 태도를 가질 때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리신 것처럼 우리 또한 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성령을 통해 영적인 복을 충만히 주시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 세계도처에 퍼져 있습니다.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눅 1:73-75).

아브라함을 통한 복은 선교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세계선교를 이루신 것입니다. 각 족속에게 복음이 퍼져나가고 여러 언어로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으로 미리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예수님을 통해 아브라함의 씨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일어날 것입니다. 온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퍼져 나가도록 아브라함과 같은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진설명> 찬미의 동시 통역으로 이르쿠츠크 1번교회에서 부활에 대해 설교하고 있는 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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