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스물두번째 생일을 축하바랍니다

by 이재섭 posted Apr 1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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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는 1990년 4월 17일, 서울 면목동에서 작은 교회를 맡고 있는 목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5살 무렵 서울 서쪽 가양동으로 이사해서 자라다가 7살이 되면서 부모를 따라 선교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찬미의 한국 생활 기억은 선교원에 잠시 다닌 것뿐이었습니다.
1997년 1월 말 경 가족이 도착한 카자흐스탄 서북부 도시는 외지고 추웠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눈이 내린 탓에 햇볕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한국인이 한 명도 없고 배추를 구경할 수 없는 환경이 나어린 찬미에게 가혹하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따뜻한 봄에 갈 수도 있었지만 선교지로 안내한 자가 1월말까지 도착해야 어려움에 처한 한 가족을 구할 수 있다는 말에 모험을 걸었던 것입니다(하지만 나중에 거짓말로 밝혀졌습니다). 선교지 생활을 통해 사람의 말을 믿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지 피부로 느꼈습니다. 거짓말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인간이 낳은 첫 번 째 죄의 하나에 해당합니다. 본래 사단이 즐겨 사용하는 무기가 거짓말입니다. 사단에 매인 자들은 습성이 비슷해 오늘날 도 거짓말을 일삼고 있습니다.

선교지에 도착한 직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찬미 치료를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했습니다. 부득이 현지 아동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더 큰 위험에 처할뻔 했습니다. 기도 중에 “사단이 찬미를 노리고 있으니 데리고 빨리 이 도시를 떠나라”는 말이 입에서 반복해서 나와 위기를 느꼈습니다. 서둘러 비행기로 3시간 거리인 알마타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마침 한국에서 연수받은 적이 있는 고려인 소아과 의사를 소개받아 찬미를 보였더니 그동안 먹인 약이 위험해 보인다며 응급처치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찬미가 먹은 약은 프레드니졸린이라는 홀몬제로 하루에 8개씩 투약해 심각한 위험에 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감량 프로그램도 없이 무조건 다량의 홀몬제를 투약한 탓에 며칠 더 지났으면 더 위험할뻔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어린 딸을 살리시기 위해 대피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알마타에서 보름간 응급 처치를 한 후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두 달 간 홀몬제 해독과 함께 폐렴 치료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신 탓에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완전치 않은 찬미를 데리고 선교지로 돌아갔지만 끊임없는 방해로 인해 부득히 남쪽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한국인으로 인해 상처입은 영혼들을 돌볼 수 있었습니다.

남부 도시는 규모가 큰 탓에 지내기가 수월했습니다. 한국인이 몇 명 상주하고 있어 여러 가지 방해를 가해왔지만 보냄받은 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찬미와 기성이는 영국 선교부가 설립한 샬롬 스쿨에 다닌 탓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 살 차이가 난 탓에 한 학년이 달랐지만 학교 측에서 기성이가 수학을 잘 해 월반을 시켜줄 수 있다고 제의해 왔기에 수락했습니다.
가계 질서를 위해 한 학년 차이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해 보였지만 이 선교사가 36살에 찬미를 낳은 탓에 찬미의 희생을 감수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 이유는 학년이 같아야 학교를 데리고 오가는 일에 유리기 때문입니다. 오전, 오후반이 다를 경우 학교를 오가는 일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결국 찬미와 기성이는 초중고 대학교 모두 동창이 되었습니다.

방해 세력으로 인해 여권을 탈취당하고 비자 연장이 어렵게 되어 부득이 한국으로 철수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1년 머물 동안 초등학교에 편입한 것이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2000년 7월 새로운 선교지로 시베리아를 택해 11년 동안 이 지역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사이 찬미와 기성이 모두 이곳 대학교 졸업반이 되었습니다. 찬미는 시베리아 여러 마을들을 순회 선교할 때 통역을 위해 따라 나섰습니다. 러시아 민족을 대상으로 설교할 때 동시통역을 해 주어 설교가 자유롭고 청중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주어 왔습니다.

찬미는 금년 6월에 러시아 국립대학교 법대 국제법학부를 졸업하게 됩니다. 그동안 지방에서 수학한 탓에 기성이와 함께 모스크바 대학원 진학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의 경우 지방 대학교에 비해 학비가 많이 비싼 탓에 때를 따라 도우시는 주님께서 적절히 인도해 주시리라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욱 관심을 가져주시고 선교사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설명> 이르쿠츠크 1번 교회 주일예배- 찬미가 동시 통역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