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그리고 사랑의 실천

by 이재섭 posted Feb 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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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주의 근본이며 우주의 중심이다.
사랑과 돌봄이 우주의 목적이다.
사랑을 시도하려고 할 때 우리들은 신비와 맞부딪치기 시작한다.
사랑은 경험적인 사실이다.

만약 우리가 사랑을 알려고 하고 사랑에 관해서 지성적으로 이야기
하려면 사랑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사랑은 결과로서 알 수 있다.

사랑은 인간 실존의 중요한 요소이다. 사랑없이 인간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없다. 사람은 사랑을 통하여 자라며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자신을 완성시키는 실존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유기체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사랑과 돌봄이 필요하다.

사랑하고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보다 더 큰 인간의 욕구는 없다.
이 욕구는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곳을 움직인다.

종종 우리는 남을 사랑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의미를 발견한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중심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골자로 한다.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의 궁극적인 구조를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만이 가장 숭고한 사랑을 할 수 있다.

몰톤 T. 켈시 <관심 그리고 사랑의 실천> 예찬사에서 인용-

******************

사랑을 설명할 또 다른 단어는 없답니다.
그래서 사랑의 대상을 향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고 말해야 합니다.
사랑이란 말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세속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이 때문에 크리스챤 간의 사랑을
표현할 때 <사랑>이란 단어를 피해가도 안 됩니다.

가짜 사랑과 참 사랑의 차이를 느낄 때 참된 사랑의 가치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진정한 선교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이방 지역을 찾아가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분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100여년 외국 선교사님들이 불편한 우리 땅에 와서 실천했던 일입니다.

우리도 복음의 빚진 자되어 어렵고 힘든 땅을 찾아가 이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선교사는 곧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에는 차별이나 이유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크리스챤 간에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
4년 전에 쓴 글을 다시 올립니다. 이 글의 배경 사진이 몽골 장로교
신학교에서 한 주간 동안 헬라어 집중 강의를 하고 찍은 것이었답니다.

참 사랑을 하는 사람은 변명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그냥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지에서 살아온 지 모두 15년 째 접어들었습니다.
시베리아에서 11년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목사 가정이 자녀들과 불편한 땅에 선교사로 온 목적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동족을 대할 때 더욱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의 상처입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조국에서 온 사람에게 상처를 입고 맘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는
중국 조선족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자신이 상처받은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았습니다.
시일이 흐르는 동안 신뢰감이 생겼던지 하나 둘 자신이
받은 상처, 가까이에서 지켜본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들이 많아 여기에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앞선 세대를 이어서 세계를 위해 일할 일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말도, 사랑의 충고도, 사랑의 돌봄도
필요없다며 자신이 그 임무(?)를 모두 감당해 나가겠다는
특이한 젊은이가 있어 이또한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만남이 가능했다면 관심있는 젊은이들을 모아 성경 원어 기초
부터 원문 연구를 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과연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왜 사랑을 주고받아야 할 대상이 하나 둘 곁을 떠나갔는지
반성도 회복을 위한 노력도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자는 사랑의 실천자가 아니라 사랑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가지 않고 남도 못가게 하는 일이 계속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0,21).

형제 사랑은 우리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더욱 많은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천사홈 방문자 여러분, 기도와 후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사진설명> 시베리아 원주민 마을 선교여행을 갔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긴 겨울 동안 장작을 뻬찌까(벽나로) 연료로 사용하는데
불이 꺼지면 자칫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크리스챤이라면 사랑의 불꽃이 끊임없이 타올라야 합니다.
결코 성령을 소멸하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