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기은이는 88 올림픽을 앞둔 6월 20일 올림픽 공원 가까이 있는 방이동에서 태어났답니다. 기은이 엄마(사라 선교사)는 작은 교회 목사 아내로 만삭의 상태에서 주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주일 밤 예정일 한 달 빨리 양수가 터져 급히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이때문에 기은이는 약 3주 동안 인큐베이터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출생 후 100일 쯤 되어 서울올림픽이 열려 유모차를 타고 올림픽 경기장 여기 저기 구경을 많이 다녔답니다. 기은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겠지만- 아버지가 밤에 강단에서 있으면 베개를 들고 와서 옆에 누워지내기도 했습니다.
어디로 보낼 형편이 안 되어 유아교육을 배운 엄마가 대강 가르쳤는데 5살이 못되어 한글을 깨치더군요. 어려서 책읽기를 좋아해 책을 구해다주면 밥먹듯이 읽어 감당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주로 단골 헌책방에서 싼 값에 책을 사서 날랐는데 전집도 며칠이 안 되어 모두 읽더군요. 책을 많이 보다 보니 이번엔 부모라도 대화에 무리가 따르기까지 했습니다.
기은이가 처음보는 건 소개하는데 6살 무렵 어느 날 키위를 사다가 이게 키위다 고 말하자 자기는 키위가 새인 줄 알았다면서 어디서 책을 가져오는데 뉴질랜드 키위섬에 사는 새를 보여주더군요.
하루는 아이가 밤에 안 보여서 깜짝 놀랐답니다. 자세히 보니 화장실에 불빛이 있어 문을 열었더니 변기 위에 걸터앉아 책을 보고 있더군요. 밤마다 책 그만 읽고 자라는 엄마와 실랑이할 때가 많은데 이날은 보던 책을 마저 보느라 부모가 잠든 사이 몰래 화장실로 숨어든 모양입니다.
7살 때 영등포 신세계백화점 옆을 지나면서 저기가 백화점이다 하자 아빠 백화점을 왜 백화점이라 하는 줄 알아요 하기에 백가지 있어 백화점 아니냐 했더니 그보다 정찰제로 에누리를 못하는 곳이 백화점이라나요. 아직 초등학교 입학도 안한 아이가 에누리도 알고-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날 부렴 내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혼자 만점을 맞아 교장선생님 상을 수상했습니다. 한반 아이 엄마들이 우리집에 견학을 왔습니다. 조그만 미니아파트로 들어선 엄마들이 과외는 어디서 하느냐. 그런적 없다. 공부는 누구랑 하느냐 어제 엄마랑 풀어본 문제집이서 본
문제와 비슷한 것이 많이 나왔다 고 대답했다더군요. 상으로 용돈은 얼마 었느냐 하기에 조금 주었다 했더니 그것도 받더냐며 놀라운 모양입니다.
기은이는 9살 들면서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갔습니다. 좋아하던 책을 더 못읽게 되어 아쉽게 생각되었습니다. 이방 나라에서도 하는 것마다 1등을 하더군요. 학교 성적도 , 특활 때 체스를 해도, 교장 선생님이 기은이를 너무 아껴서 학교 행사 때마다 기은이를 앞세웠습니다. 그래서 부모 또한 한국을 알리느라 기은이에게 한복을 입혀 보냈습니다.
1999년 6월 20일 바로 기은이 12번째 생일에 방해 세력에 의해 카자흐스탄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측근 고려인 집에서 커다란 메기를 잡아 송별식을 해 주었습니다. 한 마리는 무려 1m나 되었습니다. 송별회를 열어준 고려인 아저씨는 못된 동족들이 우리를 몰아내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픈지 한동안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입관리국 담당 경찰도 한국인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마 이만큼만 지냈어야 하나 봅니다.
한국에 1년 머문 후 러시아 시베리아로 옮겨서 살았습니다. 러시아 대학교에서도 우등 졸업(과수석) 했습니다. 지금 한국 나이 24 <아름다운 동행>에서 주관하는 장학금에 힘입어 모스크바 국립대 물리학부 박사과정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지금 1학기만 시험을 보느라 분주한가 봅니다. 그동안 학금을 보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졸업 때까지 장학금이 잘 조달될 수 있도록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재작년 기은이가 한국을 방문해 토익을 보았는데 955점, JPT도 800점을 넘었습니다. 아버지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기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이 방문을 통해 <아름다운 동행> 발행겸 편입인이신 박에스더 이사님을 만난 사실 또한 주님께서 허락허신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넉넉지 않은 삶을 살아오느라 자녀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능한 본인 의사를 존중하고 스스로 탐구하며 노력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책을 읽어라 하는 말 대신에 읽을말한 책을 구해다가 아이 근처에 갖다 놓고 본인이 스스로 마음이내킬 때 보도록 했습니다. 아이 성장에 따라 새로 운 책을 구해주어 다방면에 지식과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힘썼습니다.
특히 가정예배 시간을 통해 성경을 통해 신앙인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일깨우는데 힘썼습니다. 자녀의 성장과 발달 과정을 한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답니다. 하지만 부모의 힘은 미미할 따름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양육하시고 그 걸음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기은이는 음악학교에서 기타와 피아노를 배웠는데 모스크바 생명교회에서 기타 반주를 하고 청년회 활동, 교사 등 여러 가지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은이가 신학 수업을 하고 대물림 사역을 했으면 하고 어려서부터 기도해 왔습니다. 물리학수업을 마치고 신학교도 가겠다는 말이 반갑게 들렸습니다. 기독교 물리학자가 되어 주님께 쓰임받고 과학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은이 동생인 찬미와 기성이가 금년 6월 대학교 5년 과정을 졸업하게 됩니다. 기은이를 인도하셨던 주님께서 찬미와 기성이도 적절히 길을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기은이와 함께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기은이와 저희 가족과 사역을 후원해 주시고 기도를 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진설명> 닉후된 카자스흐스탄 지방 도시에서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던 기은, 기성, 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