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사회에서 어떻게 내 자녀를 나를 뛰어넘는 사람으로?
결혼한 후 제 안에 숨겨진 두려움은 ‘과연 내 자녀를 나를 뛰어넘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인가?’ 이었습니다. 세상은 분명 편리해지고 풍요해졌지만 눈을 뜨고 나면 더 난잡하고, 더 잔인해지고, 더 삭막해지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실감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교회가 양적 성장을 거듭함에도 세상 앞에 이토록 무력하기만 한 지 슬프고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두 아이를 출산 한 97년 겨울, ‘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 몫이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현 교수님의 이론에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름대로는 자녀양육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고 있었는데 난생 처음 듣는 이론이었습니다.
그 때 책에서 발견한 것은 ‘제가 엄마로서 사랑보다 훈련에 더 비중을 두고 자녀를 키우고 있으며, 아이들의 기본 정서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세살, 한살 아들의 엄마인 저는 자녀양육에 대한 많은 충격을 받고서 영상노출을 제한해야 하며, 한국인의 수직 문화인 한국음식과 고전음악이 탁월하다는 정도의 유익을 얻고는 책 속의 큰 보화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자녀교육에 관련된 여러 책을 탐독하면서 헷갈리기도 하고 동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는 늘 ‘자녀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키워 그리스도의 훈련된 군사로 세우리라’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런 열망은 2001년 다른 곳에서 가정사역 2년 과정을 공부하게 했는데 그 안에서 많은 유익을 얻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타협하고 편승하고 있다는 부담감이 로마서 12장 2절 말씀으로 다가와 늘 편치 않았습니다.
쉐마클리닉에 다녀와서
‘책을 읽고도 핵심을 다 놓치고 부스러기만을 주워 먹다니...’
그러던 중 가정사역 아카데미에서 이한의 목사님의 쉐마 자녀교육법 강의가 있었습니다. 그 때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이 연상되면서 마음이 시원해짐을 느꼈습니다. 그 길로 집에 와서 ‘세 아들을 키울 하나님의 비법’이 있을 것 같다며 ‘쉐마목회자클리닉’에 등록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부탁했습니다. 장소, 기간, 비용이 다 만만치 않았으나 우리 부부는 투자하는 심정으로 참석했습니다.
쉐마클리닉에서 받은 충격은 책에서 받은 충격에 10배 이상 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직문화?수평문화’ 강의는 이 시대를 간파하는 현 교수님의 지성과 영성이 빚어낸 보화였습니다.
저는 강의 시간 내내 ‘책을 읽고도 핵심을 다 놓치고 부스러기만을 주워 먹었구나’ 하는 자책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동시에 기독교교육을 전공한 저는 그 동안 제가 읽었던 책들, 교육 이론들이 일시에 한 줄로 줄이 세워지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횡재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곳에 여러 목사님, 사모님, 교사들이 함께 했었는데 ‘자녀가 다 커 버려서 안타깝다’는 분이 대부분 이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나마 큰 아이가 10살이라는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웠습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저는 남편과 함께 어떻게 하면 실천 할 수 있을까 고심하며 계획을 세웠습니다.
‘새벽예배를 습관이 될 때까지 계속하라’
당시 저희 집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10대 초반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소원하면서 새벽예배와 수요예배, 금요예배에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되자 아이도 힘들어하고 함께하던 조카아이가 방학이 되어 집에 가면서 ‘쉬었다 할까’하는 갈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쉐마를 통해 ‘습관이 될 때까지 계속하라’고 말씀하시며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 좋은 습관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가정에서는 여러모로 수평문화 차단이 되고 있었습니다. TV와 게임도 하루 1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있었고, 설거지와 심부름으로 용돈을 모아 절기헌금, 집안 어른 생신, 명절 등을 챙기고 사랑의 리퀘스트 ARS등으로 쓸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쉐마를 듣고 그동안 자녀를 양육하며 세상적 가치와 싸워 온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가슴이 벅차 당장 교회에 적용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가치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방법만을 가져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저희 가정에 더 철저히 쉐마를 적용하기로 결심하고, 남편 목사님은 가치의 변화를 위해 수요일 마다 쉐마를 강의 하셨습니다.
첫 아들과 함께 나머지 두 아들들도 새벽 5시에 깨워 새벽예배에 참석시키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유독 몸이 약한 둘째는 초등학교입학과 함께 새벽예배에 나왔는데 6개월 가까이 코피를 쏟고, 야뇨증 증세도 보였습니다. 저에게도 고통의 시간 이였으나 사명으로 알고 강행했습니다. 막내는 두 형을 따라 저절로 새벽을 깨우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오전 5시에 시작하는 새벽 예배에 참석하고 나서의 변화는 늦게까지 자지않던 아이들이 저녁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고, 점점 새벽 일찍 일어나는 체질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사역이 늦는 날도 저녁식사만 챙기면 아이들이 일찍 자니 부담이 덜하고 새벽시간을 알뜰하게 쓰기에 놓치는 것이 적었습니다. 요즘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는 ‘사이쇼 히로시의 아침형 인간’ 은 바로 우리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와 민족을 생각하게 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결단에 성령으로 기름 부으시고 새벽예배를 다녀온 후 자지 않고 시간 관리를 할 수 있는 요령을 하나씩 가르쳐 주셨습니다. 쉐마교육에 있는 대로 부모가 아들들을 제자삼는 비젼을 품게 되었습니다.
새벽 예배후 큰 아이는 20절, 작은 아이는 10절씩 성경을 쓰고, 영어를 듣게 했습니다. 글을 모르는 어린 막내(6살)에게는 성경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수학 100문제와 학습지를 풀게 했습니다. 남편은 쉐마교육에서 배운대로 아침 식탁에서 성경쓰기 한 내용을 나누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축복기도를 받고 학교에 갑니다. 새벽을 깨우기에 가능한 일들 이었습니다.
집에서도 한국인으로 키우기 위해 예절과 순종을 강조하며, 한복을 자주 입히고, 국악 공연도 함께 다녔습니다. 아쟁이나 해금, 대금, 거문고의 독특한 소리가 아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교육이 인성교육의 원리인 수직문화교육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정과 교회에서는 쉐마교육연구원에서 보급하는 국악으로 된 쉐마3대찬양과 쉐마효도찬양을 3대가 함께 즐겨 부르고 있습니다.
역사의식을 키워주기 위해 전쟁기념박물관에서 고난의 역사를, 거제 포로수용소에서는 전쟁과 분단 조국의 아픈 현실을, UN묘지에서는 국력의 중요성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 책을 읽을 때나, 시사문제를 이야기 할 때 아이들의 생각이 사뭇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쉐마교육 받을 때 유대인의 절기교육에 큰 도전을 받고, 그동안 고난주간에 어른들만 하던 아침금식을 다 함께 했는데 아이들이 순종하며 잘 따라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금식하고 학교 간 후 저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오전 내내 더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참기 어려운 시기의 아이들이라 더욱 예수님의 고난을 추상적으로가 아닌 체험적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연을 좋아하는 남편은 쉬는 날에 거제도에 있는 저희 교회 수련원 텃밭을 아들들과 함께 가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게와 조개도 잡습니다. 후에 이것들이 아이들의 EQ교육에 유익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TV를 치웠는데
가장 힘든 결단은 정통파 유대인처럼 집에서 TV를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쉐마를 다녀 온 후 1시간 보던 TV와 게임도 일체 금지 했는데 많이 아쉬워하고 투정도 부렸습니다.
30분을 봐도, 1시간을 봐도 만족함이 없는 아이들의 태도는 제 마음 가운데 ‘완전히 끊는 것이 유익하겠다’는 결심을 굳게 해 주었습니다. 2003년 10월에는 드디어 집에서 TV를 치웠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하나같이 “있어도 못 보는데요. 뭐!”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쉬운 사람은 저 뿐이었습니다! 가끔씩 유익한 비디오를 보고 나누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영상을 계속 보여주지 않으니 오히려 다소 딱딱한 다큐나 영화를 더 잘 소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여름 ‘로만 폴란스키감독의 피아니스트’ 라는 영화를 비디오로 보면서 나눌 때였습니다. 글쓰기를 싫어하던 큰 아이가 일기장 3쪽에 나라와 민족의 소중함과 실력의 가치 등에 대해 써 논 것을 보고 우리 부부는 놀라고 감사했습니다.
TV 시청을 금하고 난 후 아이들에게 수평문화만 차단시키는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부수적 효과도 컸습니다. 방과 후 시간에 예체능교육과 바깥놀이 및 다양한 양서들을 읽게 했습니다. 시각적인 교육에서 활자를 읽는 문화로 바뀌었습니다. 가족이 더 많은 시간 함께 보내게 되고, 책 읽는 것이 가정의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조차 ‘아이들을 너무 가둬 키우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고 아이들도 같이 달려갈 친구가 없다는 것이 큰 어려움 이였습니다.
어린이 새벽 모임을 떠오르게 하신 하나님
남편 목사님이 교회에서 수요 쉐마 강의를 하신지 6개월쯤 지나자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가 점점 늘고 저희 가정에서 하는 교육을 배우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설명해 주고 교재도 나누어 주었으나 지속적으로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젊은 30대 목장에서 영혼 구원의 문제를 위해 40일 작정 새벽기도를 시작했는데 따라온 아이들이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고 방해하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사모인 저로서는 너무나 고민스러웠습니다. 작정하고 기도하는 젊은 부부들을 말릴 수도 없고 1시간이 넘도록 아이들을 잡아두기도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 아뢸 때 하나님은 어린이 새벽모임을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막상 시작하려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평생 달려가야 할 텐데.....’하는 마음이 저를 눌렀습니다. 남편 목사님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이고 어린 영혼을 하나님나라 가치로 훈련시킬 탁월한 방법이라며 격려하시고 적극 지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젊기도 하거니와(38세) 성품상 교인들에게 자녀들을 새벽기도에 나오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교육은 세상교육을 능가한다
이때쯤 조기 입학해서 부담 느낄까 봐 성적을 강조하지 않고 키운 큰 아이가 학기말 시험에서 1등을 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쉐마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유대인처럼 먼저 영혼을 위한 내면적 성경교육을 계속하니 외면적 세상학문도 겸비되는 증거입니다.
어린이 새벽모임이 시작 되자 부모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좋아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저희 집 아이 3명뿐이던 새벽기도회에 학부모들의 자발적 참여로 자녀가 25명으로 늘어나 세대차이 없이 새벽기도회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아이들은 20개월을 먼저 달려 온 우리 집 아이들이었습니다. “왜 우리만 새벽에 일어나야 해요?” “언제까지 할 건데요?” 하며 투정하던 말이 쑥 들어갔습니다. 쉐마교육을 시작한 지 1년 8개월 만의 결실입니다.
부모들이 새벽마다 아이들을 깨워 오느라고 전쟁을 치루고, 믿지 않는 남편을 설득하느라 힘겨운 집도 있었습니다. 어느 성도는 외아들을 바로 키울 유일한 길이라며 새벽 4시에 나와 교회당을 아들과 청소하기도 합니다. 코피 흘리는 아이, 밤새 이불에 지도 그리는 아이, 안 간다고 우는 아이 등등 온갖 일이 있었지만 일단 새벽 예배 후 운동장을 한 바퀴 돌때면 5, 6살 난 동생들까지 함께 나섭니다.
그러나 새벽예배에 가장 나오기 힘든 사람들이 있는데 대학생과 청년들입니다. 그들은 올빼미 체질로 새벽에 일어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S양은 제자훈련 때마다 “사모님 저는 새벽 체질이 아니예요, 저는 죽어도 못 나와요” 하며 작정기도 주간에도 못나오던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습니다. 주일 공과 공부 시간에 새벽예배에 나오는 반 아이들이 “선생님은 집도 가까우신데 왜 새벽예배에 안 나와요?” 하는 바람에 자다가도 그 소리만 생각하면 벌떡 일어나진다며 새벽을 깨우기 시작 했습니다. 새벽을 깨우기 위해 부모도 못 말리는 인터넷을 그만 두는 일도 생겼습니다.
사실 새벽에 나오는 초등학생 중에는 20분 걸어서 오는 아이, 차로 15분 이상 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교인의 50% 이상이 타 지역에서 차를 타고 오시는 데 이 일로 교회 가까이로 오고 싶어 하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신기한 것은 아이들이 어릴수록 빨리 적응하고 처음에는 다들 부모 손에 끌려 나오더니, 3주쯤 지나 익숙해지고 차츰 저희들끼리 경쟁이 붙자, ‘새벽 예배를 평생하겠다’ 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인성교육의 실천은 어릴 때부터 하는 것이 좋다는 증거입니다.
교육부흥회 후 세대차이 없이 삼대가 신앙을 대물림에 확신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에 현용수 교수님께서 교육부흥회를 하시고 난 후에 저희 교회는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생겼습니다. 좋은 것 같아서 따라오긴 왔는데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다가 원조(?)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고 나니 한층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도 3대가 함께 예배드리고 새벽예배도 3대로 바꾸고 있습니다. 남편은 거제 수련원을 통해 청소년세계 비젼을 위해 준비하며 기도해 왔는 데 쉐마교육 이후 구체적인 방법으로 세대차이 없이 부모가 자녀를 제자 삼는 것을 목회의 비젼으로 삼고 새벽을 깨우는 부모와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쉐마교육이 성경적 자녀 비젼의 원리로 가장 탁월하다고 확신하는 데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교육원리와 내용이며, 둘째는 4,200년간 이를 실천한 유대인의 선민교육을 통하여 이 교육의 탁월함이 검증되었고, 셋째는 현재 그 원리와 방법이 우리 가정과 교회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임상의 현장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미래를 심는 시작일 뿐입니다. 먼저 제가 쉐마를 통해서 배운 하나님 나라 가치로 무장하고,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자녀들을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하나님 나라의 훈련된 군사로 키우는 일을 위해 끝까지 달려갈 것입니다. 자녀 비젼에 획을 그어주신 현 교수님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현 교수님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분께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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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서는 매달 첫 주 성찬예배에, 삼 세대의 예배를 함께 드리게 되었다. 삼 세대라 하면, 할아버지, 아버지, 자녀가 함께 드리는 예배다. 처음에는 단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예배였기에, 우려도 되고, 몇몇 분들의 반대도 있었으나 수개월이 지난 후엔, 오히려 가족마다 기다려지는 예배가 되었기에 나누고자 한다.
작년 여름수양회 때였다(2000년 9월). 강사로 오신 현용수 목사님(「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 몫이다」의 저자)의 요청으로 온 가족이 함께 성전에 모여 성경적 자녀교육에 관한 강의를 듣게 되어야만 했다. 이미 강사 목사님이 오시기 전에, 이런 요청이 있었으나, 부모님과 학생, 2세 담당 목사님의 완강한 반대와 의구심은 수양회 당일에도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2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다니…. 막무가네였지만 그러나 순종이 제사보다 낫지 않겠느냐고 목사님께서 겨우 설득을 시켜 한 방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모두의 마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거의 미국에서 출생한 아이들은 저희들끼리의 학년별로 온갖 플랜을 갖고 들어왔는데 부모님들과 수양회 삼 일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고 하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불만이 대단하였다. 언어와 문화도 통하지 않는다면서…. 아니나 다를까. 한국말 강의가 시작되자 아예 눈을 감고 자지를 않나 강의 도중에 지루함을 못 이겨 화장실 간다고 왔다 갔다 하며 무언의 항의를 하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시간이 갈수록 못 듣는 척, 이해 못하는 척 하고 앉아있던 아이들이 가는 눈을 뜨고 강사 목사님의 말씀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배 후에 2세 담당 목사님이 영어로 요점을 재 강의하여 한국말을 못 듣는 아이들에게 전하게 되니 시간이 갈수록 저들의 마음은 더욱 더 열리기 시작하였다.
가정마다 뜨거운 복받침과 감사 감격의 울음바다
마지막 날엔 목사님들의 보좌를 받아 가족의 가장이(조부모님이 계실 땐 연장자가 한다) 성만찬을 베풀며 자녀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주는 순서가 있었다. 강사님이 효도교육 시간에 가르쳐준 내용을 실천하는 시간이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고 야곱이 12자녀들을 축복하는 성경의 가르침이었다. 하나님의 축복은 위에서 가정의 머리를 통해서 내려오기 때문이었다.
신앙인들은 누구나 가족이나 자녀를 위해 기도를 하지만 직접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거나 손과 손을 맞잡고 포옹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비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양회에서 이런 체험을 하게 되었을 때 가정마다 가슴에 뜨거운 복받침과 감사 그리고 감격으로 울음바다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어른들은 효도교육을 좋아하셨다. 자녀교육 수양회이기 때문에 자녀들을 다 키웠다고 올라오지 않으려고 생각했던 장로님과 권사님들은 안 올라왔으면 너무나 후회했을 거라면서 아이들처럼 좋아하셨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마지막 서로 둥그렇게 앉아 받은바 은혜를 간증하는 시간이 있었다. 여러 성도님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다투듯이 간증하였다. 어느 장로님은 은퇴를 앞두고 은퇴 후 무엇을 하고 소일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 마지막 사명을 이번 집회에서 찾았다고 기뻐했다. 과거 자신들의 자녀들에게는 IQ만 가르치고 성경적으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후회스럽지만, 이제는 다른 문화에 선교하는 마음으로 쉐마를 손자들에게 열심히 가르쳐 그들을 말씀 맡은 자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손들과 영원한 천국에서 살 것을 소망하며 반드시 이 사명을 이루겠다고 말하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수양회 후 인터넷에 올라 온
의외의 자녀들 반응
놀라운 것은 수양회 후의 인터넷에 올라 온 2세들의 반응은 의외로 대단하였다. 난생 처음 아버지나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축복기도를 받았음이 충격이 되었다고 고백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 부모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줄 때에 마음의 위로와 안정감을 처음 맛보았다고 하였다.
인터넷 컨퍼런스에서는 앞으로 커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면 하나님께 먼저 십일조를 드리고 부모님에게도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결심하는 아이들이 늘어갔다. 또한 부모가 이혼했거나 편부모 슬하에 자라나는 아이는 가정의 귀함이 이토록 큰 것인가를 비로소 눈을 떴다는 아픈 마음의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남편 목사님이 의아해서 영어권 2세 자녀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처음에는 강사 목사님을 싫어하더니 왜 좋아하게 되었니?”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분은요. 우리들의 잘못도 지적했지만 부모님들의 잘못도 공평하게 지적했거든요. 그분은 우리를 공평하게 대해줘서 좋았어요. 여태까지 대부분 어른들은 우리만 나쁘다고 야단쳤잖아요. 그리고 평가 기준도 하나님의 말씀이구요.”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역시 논리적 설명과 공평한 민주주의를 좋아했다.
대부분 부모님들의 반응도 긍정적이고 부모로서 축복권의 회복을 찾은 듯하였다. 그러나 개중에 가정에 문제를 당하고 있거나 자녀를 IQ식으로만 교육했던 부모들은 이것이 감정에 의한 행위가 아닌가 하는 심한 반감도 만만치 않게 있었다. 그러나 인간에겐 EQ의 축복을 도외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수양회를 다녀 온 후, 교회임원회에서는 그동안 한 달에 한번 있던 성찬예배를 온 교인들이 함께 드리기로 결정하였다. 처음 삼 세대 예배를 시도할 때는 혹시나 아이들로 인해 예배가 어수선해지지 않을까 염려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큰 가상의 염려였음을 첫 예배 시부터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교우들이 미국에 이민 온지 이 삼십년 된 우리 교회로서는 아이들과 함께 한국말로 예배를 드림은 사실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젠, 예배 전에는 청소년들이 찬양을 인도하고, 예배 시에는 아이들이 한국어로 띄엄띄엄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른다. 그리고 주님의 성찬에 가족별로 참여하여 부모님들은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드리게 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강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되며 눈물 없이는 축복기도를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을 늘 갖곤 한다.
아버지가 자녀를 축복하는 순간 자신의 회개와 결단
- 한 가족간의 치유역사 체험 -
교인 중에 계절에 한번씩 예배에 나오는 30대 후반의 남자 성도님이 있다. 한국의 유명한 연예인의 자녀로서 일찍이 부모를 떠나 미국에 유학 와서 상당히 외롭게 자란 분이었다. 그 분이 삼 세대가 함께 하는 성만찬에 참석케 되어 딸들을 축복하는 기회가 있게 되었다.
아직 아이들은 어린 나이였지만 처음으로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게 되니 우선 그 자체가 너무나 막중하고 거룩하여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행동이 정지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번도 자신의 손이 더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그가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려고하니 양심에 심한 찔림이 왔다. “아니 내가 과연 내 손으로 내 아이를 축복해도 좋을까?”
그 분은 얼떨결에 성찬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앉긴 했지만, 마음속에 놀라운 결심이 서기 시작하였다. “내가 내 아이를 축복하기 위해선 나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깨끗하게 살아야 해!”라는 결단이었다. 부인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그의 가정의 변화는 눈에 띄게 달라지게 되었다.
전통적인 예배에 익숙한 교인들 중에는 이런 일들이 어색한 분들도 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무지에 큰 비중을 둘 수 만 없는 일이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소수의 창조적인 무리가 성령 안에서 용기 있게 나갈 때, 교회는 전혀 기대치 않았던 축복을 덤으로 얻게 되어 있다.
한국 02-3662-6567
www.shemaiqeq.org :Email: shemaiqeq@hanmail.net
결혼한 후 제 안에 숨겨진 두려움은 ‘과연 내 자녀를 나를 뛰어넘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인가?’ 이었습니다. 세상은 분명 편리해지고 풍요해졌지만 눈을 뜨고 나면 더 난잡하고, 더 잔인해지고, 더 삭막해지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실감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교회가 양적 성장을 거듭함에도 세상 앞에 이토록 무력하기만 한 지 슬프고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두 아이를 출산 한 97년 겨울, ‘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 몫이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현 교수님의 이론에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름대로는 자녀양육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고 있었는데 난생 처음 듣는 이론이었습니다.
그 때 책에서 발견한 것은 ‘제가 엄마로서 사랑보다 훈련에 더 비중을 두고 자녀를 키우고 있으며, 아이들의 기본 정서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세살, 한살 아들의 엄마인 저는 자녀양육에 대한 많은 충격을 받고서 영상노출을 제한해야 하며, 한국인의 수직 문화인 한국음식과 고전음악이 탁월하다는 정도의 유익을 얻고는 책 속의 큰 보화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자녀교육에 관련된 여러 책을 탐독하면서 헷갈리기도 하고 동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는 늘 ‘자녀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키워 그리스도의 훈련된 군사로 세우리라’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런 열망은 2001년 다른 곳에서 가정사역 2년 과정을 공부하게 했는데 그 안에서 많은 유익을 얻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타협하고 편승하고 있다는 부담감이 로마서 12장 2절 말씀으로 다가와 늘 편치 않았습니다.
쉐마클리닉에 다녀와서
‘책을 읽고도 핵심을 다 놓치고 부스러기만을 주워 먹다니...’
그러던 중 가정사역 아카데미에서 이한의 목사님의 쉐마 자녀교육법 강의가 있었습니다. 그 때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이 연상되면서 마음이 시원해짐을 느꼈습니다. 그 길로 집에 와서 ‘세 아들을 키울 하나님의 비법’이 있을 것 같다며 ‘쉐마목회자클리닉’에 등록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부탁했습니다. 장소, 기간, 비용이 다 만만치 않았으나 우리 부부는 투자하는 심정으로 참석했습니다.
쉐마클리닉에서 받은 충격은 책에서 받은 충격에 10배 이상 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직문화?수평문화’ 강의는 이 시대를 간파하는 현 교수님의 지성과 영성이 빚어낸 보화였습니다.
저는 강의 시간 내내 ‘책을 읽고도 핵심을 다 놓치고 부스러기만을 주워 먹었구나’ 하는 자책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동시에 기독교교육을 전공한 저는 그 동안 제가 읽었던 책들, 교육 이론들이 일시에 한 줄로 줄이 세워지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횡재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곳에 여러 목사님, 사모님, 교사들이 함께 했었는데 ‘자녀가 다 커 버려서 안타깝다’는 분이 대부분 이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나마 큰 아이가 10살이라는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웠습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저는 남편과 함께 어떻게 하면 실천 할 수 있을까 고심하며 계획을 세웠습니다.
‘새벽예배를 습관이 될 때까지 계속하라’
당시 저희 집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10대 초반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소원하면서 새벽예배와 수요예배, 금요예배에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되자 아이도 힘들어하고 함께하던 조카아이가 방학이 되어 집에 가면서 ‘쉬었다 할까’하는 갈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쉐마를 통해 ‘습관이 될 때까지 계속하라’고 말씀하시며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 좋은 습관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가정에서는 여러모로 수평문화 차단이 되고 있었습니다. TV와 게임도 하루 1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있었고, 설거지와 심부름으로 용돈을 모아 절기헌금, 집안 어른 생신, 명절 등을 챙기고 사랑의 리퀘스트 ARS등으로 쓸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쉐마를 듣고 그동안 자녀를 양육하며 세상적 가치와 싸워 온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가슴이 벅차 당장 교회에 적용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가치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방법만을 가져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저희 가정에 더 철저히 쉐마를 적용하기로 결심하고, 남편 목사님은 가치의 변화를 위해 수요일 마다 쉐마를 강의 하셨습니다.
첫 아들과 함께 나머지 두 아들들도 새벽 5시에 깨워 새벽예배에 참석시키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유독 몸이 약한 둘째는 초등학교입학과 함께 새벽예배에 나왔는데 6개월 가까이 코피를 쏟고, 야뇨증 증세도 보였습니다. 저에게도 고통의 시간 이였으나 사명으로 알고 강행했습니다. 막내는 두 형을 따라 저절로 새벽을 깨우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오전 5시에 시작하는 새벽 예배에 참석하고 나서의 변화는 늦게까지 자지않던 아이들이 저녁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고, 점점 새벽 일찍 일어나는 체질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사역이 늦는 날도 저녁식사만 챙기면 아이들이 일찍 자니 부담이 덜하고 새벽시간을 알뜰하게 쓰기에 놓치는 것이 적었습니다. 요즘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는 ‘사이쇼 히로시의 아침형 인간’ 은 바로 우리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와 민족을 생각하게 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결단에 성령으로 기름 부으시고 새벽예배를 다녀온 후 자지 않고 시간 관리를 할 수 있는 요령을 하나씩 가르쳐 주셨습니다. 쉐마교육에 있는 대로 부모가 아들들을 제자삼는 비젼을 품게 되었습니다.
새벽 예배후 큰 아이는 20절, 작은 아이는 10절씩 성경을 쓰고, 영어를 듣게 했습니다. 글을 모르는 어린 막내(6살)에게는 성경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수학 100문제와 학습지를 풀게 했습니다. 남편은 쉐마교육에서 배운대로 아침 식탁에서 성경쓰기 한 내용을 나누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축복기도를 받고 학교에 갑니다. 새벽을 깨우기에 가능한 일들 이었습니다.
집에서도 한국인으로 키우기 위해 예절과 순종을 강조하며, 한복을 자주 입히고, 국악 공연도 함께 다녔습니다. 아쟁이나 해금, 대금, 거문고의 독특한 소리가 아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교육이 인성교육의 원리인 수직문화교육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정과 교회에서는 쉐마교육연구원에서 보급하는 국악으로 된 쉐마3대찬양과 쉐마효도찬양을 3대가 함께 즐겨 부르고 있습니다.
역사의식을 키워주기 위해 전쟁기념박물관에서 고난의 역사를, 거제 포로수용소에서는 전쟁과 분단 조국의 아픈 현실을, UN묘지에서는 국력의 중요성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 책을 읽을 때나, 시사문제를 이야기 할 때 아이들의 생각이 사뭇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쉐마교육 받을 때 유대인의 절기교육에 큰 도전을 받고, 그동안 고난주간에 어른들만 하던 아침금식을 다 함께 했는데 아이들이 순종하며 잘 따라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금식하고 학교 간 후 저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오전 내내 더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참기 어려운 시기의 아이들이라 더욱 예수님의 고난을 추상적으로가 아닌 체험적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연을 좋아하는 남편은 쉬는 날에 거제도에 있는 저희 교회 수련원 텃밭을 아들들과 함께 가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게와 조개도 잡습니다. 후에 이것들이 아이들의 EQ교육에 유익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TV를 치웠는데
가장 힘든 결단은 정통파 유대인처럼 집에서 TV를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쉐마를 다녀 온 후 1시간 보던 TV와 게임도 일체 금지 했는데 많이 아쉬워하고 투정도 부렸습니다.
30분을 봐도, 1시간을 봐도 만족함이 없는 아이들의 태도는 제 마음 가운데 ‘완전히 끊는 것이 유익하겠다’는 결심을 굳게 해 주었습니다. 2003년 10월에는 드디어 집에서 TV를 치웠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하나같이 “있어도 못 보는데요. 뭐!”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쉬운 사람은 저 뿐이었습니다! 가끔씩 유익한 비디오를 보고 나누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영상을 계속 보여주지 않으니 오히려 다소 딱딱한 다큐나 영화를 더 잘 소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여름 ‘로만 폴란스키감독의 피아니스트’ 라는 영화를 비디오로 보면서 나눌 때였습니다. 글쓰기를 싫어하던 큰 아이가 일기장 3쪽에 나라와 민족의 소중함과 실력의 가치 등에 대해 써 논 것을 보고 우리 부부는 놀라고 감사했습니다.
TV 시청을 금하고 난 후 아이들에게 수평문화만 차단시키는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부수적 효과도 컸습니다. 방과 후 시간에 예체능교육과 바깥놀이 및 다양한 양서들을 읽게 했습니다. 시각적인 교육에서 활자를 읽는 문화로 바뀌었습니다. 가족이 더 많은 시간 함께 보내게 되고, 책 읽는 것이 가정의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조차 ‘아이들을 너무 가둬 키우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고 아이들도 같이 달려갈 친구가 없다는 것이 큰 어려움 이였습니다.
어린이 새벽 모임을 떠오르게 하신 하나님
남편 목사님이 교회에서 수요 쉐마 강의를 하신지 6개월쯤 지나자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가 점점 늘고 저희 가정에서 하는 교육을 배우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설명해 주고 교재도 나누어 주었으나 지속적으로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젊은 30대 목장에서 영혼 구원의 문제를 위해 40일 작정 새벽기도를 시작했는데 따라온 아이들이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고 방해하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사모인 저로서는 너무나 고민스러웠습니다. 작정하고 기도하는 젊은 부부들을 말릴 수도 없고 1시간이 넘도록 아이들을 잡아두기도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 아뢸 때 하나님은 어린이 새벽모임을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막상 시작하려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평생 달려가야 할 텐데.....’하는 마음이 저를 눌렀습니다. 남편 목사님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이고 어린 영혼을 하나님나라 가치로 훈련시킬 탁월한 방법이라며 격려하시고 적극 지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젊기도 하거니와(38세) 성품상 교인들에게 자녀들을 새벽기도에 나오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교육은 세상교육을 능가한다
이때쯤 조기 입학해서 부담 느낄까 봐 성적을 강조하지 않고 키운 큰 아이가 학기말 시험에서 1등을 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쉐마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유대인처럼 먼저 영혼을 위한 내면적 성경교육을 계속하니 외면적 세상학문도 겸비되는 증거입니다.
어린이 새벽모임이 시작 되자 부모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좋아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저희 집 아이 3명뿐이던 새벽기도회에 학부모들의 자발적 참여로 자녀가 25명으로 늘어나 세대차이 없이 새벽기도회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아이들은 20개월을 먼저 달려 온 우리 집 아이들이었습니다. “왜 우리만 새벽에 일어나야 해요?” “언제까지 할 건데요?” 하며 투정하던 말이 쑥 들어갔습니다. 쉐마교육을 시작한 지 1년 8개월 만의 결실입니다.
부모들이 새벽마다 아이들을 깨워 오느라고 전쟁을 치루고, 믿지 않는 남편을 설득하느라 힘겨운 집도 있었습니다. 어느 성도는 외아들을 바로 키울 유일한 길이라며 새벽 4시에 나와 교회당을 아들과 청소하기도 합니다. 코피 흘리는 아이, 밤새 이불에 지도 그리는 아이, 안 간다고 우는 아이 등등 온갖 일이 있었지만 일단 새벽 예배 후 운동장을 한 바퀴 돌때면 5, 6살 난 동생들까지 함께 나섭니다.
그러나 새벽예배에 가장 나오기 힘든 사람들이 있는데 대학생과 청년들입니다. 그들은 올빼미 체질로 새벽에 일어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S양은 제자훈련 때마다 “사모님 저는 새벽 체질이 아니예요, 저는 죽어도 못 나와요” 하며 작정기도 주간에도 못나오던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습니다. 주일 공과 공부 시간에 새벽예배에 나오는 반 아이들이 “선생님은 집도 가까우신데 왜 새벽예배에 안 나와요?” 하는 바람에 자다가도 그 소리만 생각하면 벌떡 일어나진다며 새벽을 깨우기 시작 했습니다. 새벽을 깨우기 위해 부모도 못 말리는 인터넷을 그만 두는 일도 생겼습니다.
사실 새벽에 나오는 초등학생 중에는 20분 걸어서 오는 아이, 차로 15분 이상 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교인의 50% 이상이 타 지역에서 차를 타고 오시는 데 이 일로 교회 가까이로 오고 싶어 하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신기한 것은 아이들이 어릴수록 빨리 적응하고 처음에는 다들 부모 손에 끌려 나오더니, 3주쯤 지나 익숙해지고 차츰 저희들끼리 경쟁이 붙자, ‘새벽 예배를 평생하겠다’ 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인성교육의 실천은 어릴 때부터 하는 것이 좋다는 증거입니다.
교육부흥회 후 세대차이 없이 삼대가 신앙을 대물림에 확신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에 현용수 교수님께서 교육부흥회를 하시고 난 후에 저희 교회는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생겼습니다. 좋은 것 같아서 따라오긴 왔는데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다가 원조(?)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고 나니 한층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도 3대가 함께 예배드리고 새벽예배도 3대로 바꾸고 있습니다. 남편은 거제 수련원을 통해 청소년세계 비젼을 위해 준비하며 기도해 왔는 데 쉐마교육 이후 구체적인 방법으로 세대차이 없이 부모가 자녀를 제자 삼는 것을 목회의 비젼으로 삼고 새벽을 깨우는 부모와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쉐마교육이 성경적 자녀 비젼의 원리로 가장 탁월하다고 확신하는 데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교육원리와 내용이며, 둘째는 4,200년간 이를 실천한 유대인의 선민교육을 통하여 이 교육의 탁월함이 검증되었고, 셋째는 현재 그 원리와 방법이 우리 가정과 교회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임상의 현장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미래를 심는 시작일 뿐입니다. 먼저 제가 쉐마를 통해서 배운 하나님 나라 가치로 무장하고,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자녀들을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하나님 나라의 훈련된 군사로 키우는 일을 위해 끝까지 달려갈 것입니다. 자녀 비젼에 획을 그어주신 현 교수님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현 교수님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분께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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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서는 매달 첫 주 성찬예배에, 삼 세대의 예배를 함께 드리게 되었다. 삼 세대라 하면, 할아버지, 아버지, 자녀가 함께 드리는 예배다. 처음에는 단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예배였기에, 우려도 되고, 몇몇 분들의 반대도 있었으나 수개월이 지난 후엔, 오히려 가족마다 기다려지는 예배가 되었기에 나누고자 한다.
작년 여름수양회 때였다(2000년 9월). 강사로 오신 현용수 목사님(「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 몫이다」의 저자)의 요청으로 온 가족이 함께 성전에 모여 성경적 자녀교육에 관한 강의를 듣게 되어야만 했다. 이미 강사 목사님이 오시기 전에, 이런 요청이 있었으나, 부모님과 학생, 2세 담당 목사님의 완강한 반대와 의구심은 수양회 당일에도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2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다니…. 막무가네였지만 그러나 순종이 제사보다 낫지 않겠느냐고 목사님께서 겨우 설득을 시켜 한 방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모두의 마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거의 미국에서 출생한 아이들은 저희들끼리의 학년별로 온갖 플랜을 갖고 들어왔는데 부모님들과 수양회 삼 일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고 하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불만이 대단하였다. 언어와 문화도 통하지 않는다면서…. 아니나 다를까. 한국말 강의가 시작되자 아예 눈을 감고 자지를 않나 강의 도중에 지루함을 못 이겨 화장실 간다고 왔다 갔다 하며 무언의 항의를 하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시간이 갈수록 못 듣는 척, 이해 못하는 척 하고 앉아있던 아이들이 가는 눈을 뜨고 강사 목사님의 말씀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배 후에 2세 담당 목사님이 영어로 요점을 재 강의하여 한국말을 못 듣는 아이들에게 전하게 되니 시간이 갈수록 저들의 마음은 더욱 더 열리기 시작하였다.
가정마다 뜨거운 복받침과 감사 감격의 울음바다
마지막 날엔 목사님들의 보좌를 받아 가족의 가장이(조부모님이 계실 땐 연장자가 한다) 성만찬을 베풀며 자녀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주는 순서가 있었다. 강사님이 효도교육 시간에 가르쳐준 내용을 실천하는 시간이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고 야곱이 12자녀들을 축복하는 성경의 가르침이었다. 하나님의 축복은 위에서 가정의 머리를 통해서 내려오기 때문이었다.
신앙인들은 누구나 가족이나 자녀를 위해 기도를 하지만 직접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거나 손과 손을 맞잡고 포옹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비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양회에서 이런 체험을 하게 되었을 때 가정마다 가슴에 뜨거운 복받침과 감사 그리고 감격으로 울음바다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어른들은 효도교육을 좋아하셨다. 자녀교육 수양회이기 때문에 자녀들을 다 키웠다고 올라오지 않으려고 생각했던 장로님과 권사님들은 안 올라왔으면 너무나 후회했을 거라면서 아이들처럼 좋아하셨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마지막 서로 둥그렇게 앉아 받은바 은혜를 간증하는 시간이 있었다. 여러 성도님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다투듯이 간증하였다. 어느 장로님은 은퇴를 앞두고 은퇴 후 무엇을 하고 소일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 마지막 사명을 이번 집회에서 찾았다고 기뻐했다. 과거 자신들의 자녀들에게는 IQ만 가르치고 성경적으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후회스럽지만, 이제는 다른 문화에 선교하는 마음으로 쉐마를 손자들에게 열심히 가르쳐 그들을 말씀 맡은 자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손들과 영원한 천국에서 살 것을 소망하며 반드시 이 사명을 이루겠다고 말하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수양회 후 인터넷에 올라 온
의외의 자녀들 반응
놀라운 것은 수양회 후의 인터넷에 올라 온 2세들의 반응은 의외로 대단하였다. 난생 처음 아버지나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축복기도를 받았음이 충격이 되었다고 고백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 부모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줄 때에 마음의 위로와 안정감을 처음 맛보았다고 하였다.
인터넷 컨퍼런스에서는 앞으로 커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면 하나님께 먼저 십일조를 드리고 부모님에게도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결심하는 아이들이 늘어갔다. 또한 부모가 이혼했거나 편부모 슬하에 자라나는 아이는 가정의 귀함이 이토록 큰 것인가를 비로소 눈을 떴다는 아픈 마음의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남편 목사님이 의아해서 영어권 2세 자녀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처음에는 강사 목사님을 싫어하더니 왜 좋아하게 되었니?”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분은요. 우리들의 잘못도 지적했지만 부모님들의 잘못도 공평하게 지적했거든요. 그분은 우리를 공평하게 대해줘서 좋았어요. 여태까지 대부분 어른들은 우리만 나쁘다고 야단쳤잖아요. 그리고 평가 기준도 하나님의 말씀이구요.”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역시 논리적 설명과 공평한 민주주의를 좋아했다.
대부분 부모님들의 반응도 긍정적이고 부모로서 축복권의 회복을 찾은 듯하였다. 그러나 개중에 가정에 문제를 당하고 있거나 자녀를 IQ식으로만 교육했던 부모들은 이것이 감정에 의한 행위가 아닌가 하는 심한 반감도 만만치 않게 있었다. 그러나 인간에겐 EQ의 축복을 도외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수양회를 다녀 온 후, 교회임원회에서는 그동안 한 달에 한번 있던 성찬예배를 온 교인들이 함께 드리기로 결정하였다. 처음 삼 세대 예배를 시도할 때는 혹시나 아이들로 인해 예배가 어수선해지지 않을까 염려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큰 가상의 염려였음을 첫 예배 시부터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교우들이 미국에 이민 온지 이 삼십년 된 우리 교회로서는 아이들과 함께 한국말로 예배를 드림은 사실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젠, 예배 전에는 청소년들이 찬양을 인도하고, 예배 시에는 아이들이 한국어로 띄엄띄엄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른다. 그리고 주님의 성찬에 가족별로 참여하여 부모님들은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드리게 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강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되며 눈물 없이는 축복기도를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을 늘 갖곤 한다.
아버지가 자녀를 축복하는 순간 자신의 회개와 결단
- 한 가족간의 치유역사 체험 -
교인 중에 계절에 한번씩 예배에 나오는 30대 후반의 남자 성도님이 있다. 한국의 유명한 연예인의 자녀로서 일찍이 부모를 떠나 미국에 유학 와서 상당히 외롭게 자란 분이었다. 그 분이 삼 세대가 함께 하는 성만찬에 참석케 되어 딸들을 축복하는 기회가 있게 되었다.
아직 아이들은 어린 나이였지만 처음으로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게 되니 우선 그 자체가 너무나 막중하고 거룩하여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행동이 정지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번도 자신의 손이 더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그가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려고하니 양심에 심한 찔림이 왔다. “아니 내가 과연 내 손으로 내 아이를 축복해도 좋을까?”
그 분은 얼떨결에 성찬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앉긴 했지만, 마음속에 놀라운 결심이 서기 시작하였다. “내가 내 아이를 축복하기 위해선 나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깨끗하게 살아야 해!”라는 결단이었다. 부인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그의 가정의 변화는 눈에 띄게 달라지게 되었다.
전통적인 예배에 익숙한 교인들 중에는 이런 일들이 어색한 분들도 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무지에 큰 비중을 둘 수 만 없는 일이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소수의 창조적인 무리가 성령 안에서 용기 있게 나갈 때, 교회는 전혀 기대치 않았던 축복을 덤으로 얻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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